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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4화 (191/225)


  • 〈 191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4화

    로버트와 범혁은 부대 편성을 마무리 짓고 카이프의 재촉을 받아 바로 실전에 나아가려는 칼디르를 매우 자연스럽게 따라 나갔다. 현재 조직화된 파시스트 세력이 로버트가 이끄는 흑십자회, 범혁이 이끄는 돌격대밖에 없었으니  두 사람이 칼디르를 따라나서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로버트 자네, 정말로 괜찮겠나? 자네나, 아니면 자네가 지휘하던 부대의 부대원들이나... 자네를 시기하던 이들로부터 한참이나 어린 사령관을 상관으로 모신다며 험담을 듣게 될 텐데.”

    “참모차장님,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십니까? 애초에 그런 문제를 걱정했으면 칼디르 사령관의 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이번에 아틀랜드 회랑 지역을 말끔히 청소하는 와중에 칼디르 사령관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본 참이니,  밑으로 들어가 지휘를 받는 것에 별다른 불만은 없습니다.”



    칼디르가 이번에 새로 부여받은 계급은 상급대장. 그리고 로버트의 계급이 그보다  단계 낮은 병과대장. 어찌 보면 한참 아래 후배인 칼디르의 밑으로 들어가게 된 상황인데도 로버트는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아틀랜드 회랑 지역에서 대결한답시고 날뛰는 와중에 날카로운 눈썰미로 칼디르 본인이 보여주지 않은 살상기의 위력까지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우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주라고 할 수 있었다. 강자가 약자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해도  죄는 약자에게 있었고, 약자가 강자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세계가 바로  우주였다. 그 강자가 설혹 나보다 한참은 어린 소녀라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로버트는 이렇듯 강자가 모든 것을 손에 쥐는 ‘힘의 논리’를 당연시하면서, 흑십자회의 대장으로서 대원 중에 끝끝내 그녀에게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아 하는 이가 있다면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고, 그녀가 가진 힘에 복종하라. 그녀가 마음을 바꿔 먹는다면 우리를 해치우는 일쯤은 언제라도 할  있을 테니.’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다행이네. 나나, 자네나, 칼디르 사령관이나 모두 똑같은 평민 출신이니만큼 귀족 가문 출신 도련님들의 시기와 질투로부터 살아남으려면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치는 편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던 참이네.”



    “그 점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육군원수 각하처럼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대신, 귀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설치는 자들은 결코 우리의 연대를 깨부술 수 없을 것입니다.”


    카이프와 로버트가 칼디르의 사령관 취임에 관련하여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과연 기존 지휘관들이 그녀의 권위를 인정해줄 것인가?-을 잠시 대화의 주제로 올렸으나, 그들은 제아무리 신분제 질서가 공고하다고 해도 하나로 단결된 평민 계층을 깨부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 주제에 관한 담론을 끝냈다.

    이후에는 로버트가 존경하는 선배님을 위해서 이번에 아틀랜드 회랑 지역을 청소하며 얻은 두개골을 가지고 와인잔을 한 번 만들어왔다며 그것을 선물로 바치고, 카이프가 이에 화답하여 고급 포도주를 선물해주는 것을 로버트가 받아들고는 다시 선배님이 여전히 정정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식으로 덕담을 주고받다가 헤어졌다.

    로버트는 카이프와 헤어지자마자 칼디르, 범혁의 무리와 다시 합류했다. 그리고 곧바로 카이프가 어느 정도 두들겨 패놓은 비스마르크 대공세 계획 제1단계의 목표물들을 완전히 소거하기 위해 휘하의 기병 부대를 이끌고 출격했다. 말고삐를 세게 쥐고 전장으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익살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오냐, 이놈아! 네놈도 전장이 그리웠느냐!”



    히히힝! 아틀라늄으로 만든 무기들처럼 검은 빛깔을  그의 애마가 맨 앞에 서서 힘차게 울부짖으며 돌진하자, 그 휘하 흑십자회 대원들이나 기병대 장병들까지도 군말 없이 그를 따라 군마를 몰았다. 요즘 시대에는 참 보기 힘들다는 기병 돌격진 대열이었다.




    그러나  기병 돌격진 대열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하여 우습게 본다면 큰코다칠 것이었다. 적군이  지랄발광을 다 해도 절대로 깨부술 수 없을 아틀라늄 방어구로 온몸을 도배한 정예 기병대에서 나오는 위력은 어지간한 전차 부대 이상으로 강력하다고 할 수 있었고, 이제 이를 입증하기 위해 루시드 군 장병들이 또 제물이 되어주실 예정이었다.



    미래의 LSSKA를 비롯한 베테랑 병력, 매우 강력하면서 경험마저 풍부한 초능력자가 즐비한 흑십자회, 거기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의 초능력자들이 뭉친 흑십자회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강력한 범혁이 이끄는 돌격대, 그리고 테라 마리네와 루프트바페의 강력한 화력 지원까지.



    “칼디르 사령관. 듣자하니 이번이 지휘관으로서의 첫 출격이라고 들었는데, 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소이다.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쿵쾅 뛴다고 하더라도 으레 처음에는 다 그런 법이고... 내가 이끄는 함대에서 그대의 병력을 호위하기로 하였으니 사령관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마침 루프트바페에서도 내 딸이 지휘하는 편대가 지원을 나온다고 했으니 더더욱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오.”



    테라 마리네 소속의 사성제독, 오토가 칼디르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넨 말이었다. 오토 제독이라면 해군 내부 보수파들의 반발을 꺾고 자기가 설계한 함선들이 정식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도와준 바로 그 제독이었다.

    그가 오랜 검증 끝에 마침내 ‘아, 칼디르가 설계했다는 이 함선들은 원래 우리가 쓰던 함선들과 그 구조가 거의 동일하여 수병들이 이를 다루는 데 큰 어려움은 없겠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화력 지원에 나서준다면 칼디르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그야말로 처음으로 지휘하게  부대를 드림팀으로 구성한 데다, 그 자신이 해군에 무상으로 공여한 우주 전함의 호위까지 받게 된 칼디르에게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1분 1초라도 빠르게 전장으로 돌아가 적군을 학살하고 싶어서 안달 난 수많은 사이코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루시드 군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전 부대 출정 이후 약 1시간 만에 치르게  칼디르 사령관의 영광스러운 루시드 군과의 데뷔전은... 전혀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나도 허무하게 승리로 끝났다. 카이프에게 두들겨 맞고 나서 그 피해를 그때까지도 회복하지 못한 루시드 군이 칼디르가 이끄는 병력을 보자마자 바로 백기를 들어 올려버린 것이었다.



    “하하하... 루시드 인 여러분, 제 나이가 몇 살인지 아십니까? 올해로 15살, 만으로 하면 14살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 무릎을 꿇고 백기를 휘날리시다니...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싸우지도 않고, 아군의 피해도 없이 적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지금 이 상황... 칼디르로서도 나쁘지만은 않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하여 그녀가 현장에 당도하자마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항복 의사를 표시한  지휘관을 만나 그렇게 물어보았다.

    “부끄럽기는 무슨...! 싸움이 붙었다 하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학살당할  분명한데 지금 자존심을 따지게 생겼소? 우리 총독부가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한 놈들인지 알기는 하시오? 지금 여기서 그대의 병력과 맞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총독부는 우리의 죽음을 기억해주지도 않겠지! 우리는 결단코 그런 개죽음을 당할 생각이 없소!”



    “그렇게도 살고 싶으십니까? 제가 알기로, 루시드 제국은 ‘야마토 정신’이라 하여 적군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 행위를 경멸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바로 그렇소! 우리는 이렇게 해서라도 살아야겠소! 입장 바꿔서 생각을 해보시오! 그대 같으면 고향 은하에서 수천만 광년은 족히 떨어진 이곳까지 힘들게 왔는데 조국으로부터 잊혀져서는, 20여 년 째 흙탕물만 처먹고 있으니, 항복을 안 하고 배기겠소?!”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국의 부름에 응하여 루시드 제국 본토인 안드로메다은하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곳- 어쩌면 아예 이 우주를 넘어서 다른 우주에 위치한 루시드 제국의 식민 은하-에서 우리 은하까지 어떻게 왔는데, 일이 년도 아니고 무려 20여 년 동안을 조국으로부터 잊혀진 채로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보면 차라리 현지의 적군에 투항하여 살길을 마련할 방도를 찾을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터였다.




    이들 부대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루시드 군 병력이 비슷한 꼴일 텐데도 여태까지 아틀란티스 국방군에 투항하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하나. 심각한 부정부패와 관리 소홀로 인해 실제로 기동 가능한 함선이 많이 없어서 아틀란티스 국방군이 주둔하는 곳까지 갈 방법이 없었던 것.


    그런 그들이 보기에는  발로 항복을 받으러 와준 국방군 병력이 두렵기보다는 반가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광스러운  데뷔전을 이토록 시시하게 끝내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웠던 칼디르는 부끄러움도 내던지고 목숨을 구걸하고 보는 루시드 군 지휘관을 좀 더 몰아붙여 봤다.



    “여러분이 설혹 저에게 투항한다고 하시더라도 온전히 목숨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을 침범하여 저지른 전쟁범죄의 횟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하십니까? 여러분은 형벌부대원이 되어 아틀란티스 제국을 위해 각자 30번 넘게 출격하며 속죄한 다음에야 자유로운 몸이  수 있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혹여나 아직 투항하지 않은 다른 루시드 군부대에 붙들리게 된다 해도 구원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겨우 형벌부대 30년 형? 그 정도 조건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문서로 만들어 드릴 수 있소!”



    칼디르는 이들 모두를 죽여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아군의 불만을 받아내 가며 순순히 투항한 루시드 군 병력을 죽이지 않고 형벌부대원으로 삼되 30년 형을 선고하고, 한  출격할 때마다 형벌 기간을 1년 줄여주는 조건으로 항복을 받아주었다.

    어어, 이게 그다지 너그러운 조건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순순하게 받아주는 걸까? 루시드 제국군으로 계속 남아있으나, 국방군에 투항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구하는 대신 형벌부대원이 되거나 고기 방패 취급을 받는 건 매한가지니 받아들일 만한 조건이라는 생각이 든 걸까?

    미래 예지 능력을 통해서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진짜로 일이 이렇게 되니 당혹감을 감추기가 힘들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로 생각하고 넘어가자.

    이후에도 칼디르는 대병력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출격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적군으로부터 손쉽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오랜 굶주림 끝에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서 소총은커녕 권총 한 정도 제대로 쥐기 힘들어 보이는 병신들이었지만, 별다른 저항도 받지 않고 빛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



    이게 그 ‘우주 전격전’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어째 적 병력을 만나는 족족 항복해주는 덕분에 후방으로 파고들기가 너무 쉬웠던 나머지 이것이 함정일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칼디르는 전광석화처럼 달려나가는 아군 부대에 가끔 제동을 걸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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