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3화
베테랑만으로 일반 부대원을 구성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로즈니가 이끄는 병력은 죄다 베테랑뿐이요, 가끔 들어오곤 하는 신병들도 혹독한 전장 환경 속에서 불과 몇 달이면 베테랑으로 성장하는 판국이다. 그냥 길을 가다가 ‘아, 이 사람을 부대원으로 쓰면 좋겠다.’면서 스리슬쩍 스카우트해오고 보면 베테랑이었던 식이다.
여기서 굳이 가려 뽑는다고 한다면 소위 말하는 ‘베테랑 오브 베테랑’만을 선발해야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기존 지휘관들의 반발을 심하게 살 우려가 있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칼디르는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어딘가에서 타협하여 베테랑 오브 베테랑, 베테랑, 신병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부대원을 선발해 나갔다.
이쪽에서 먼저 나서서 기존 부대에서 인력을 차출해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자원자도 상당하여 집단군급 부대를 금세 편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 도대체 누가 15살짜리 거유 빗치가 지휘하는 부대에 자원하느냐고?
먼저, 최전방에서 카이프와 구르며 칼디르 제 무기의 우수한 성능을 체감했던 이 중 일부. 그저 전쟁이 끝나는 그 날까지 살아남아 전역하는 것만이 유일한 꿈인 수많은 군인에게 생존율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주는 칼디르의 발명품은 환영할 만한 물건이었고, 자연스럽게 뛰어난 무기의 발명자인 칼디르를 향한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류의 자원자 중에서는 카이프와 함께 꼬박 1달을 구른 대가로 3달 휴가를 받아놓고도 시체 냄새 자욱한 전장이 그립다면서 당장에라도 자신을 전장에 처박아달라고 애원하는 미친 사이코들만 수두룩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이들은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 속에서 극도의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음 부류로는 후방에서 휴식과 훈련을 적절히 병행하며 그녀의 발명품의 혜택을 누렸던 더 많은 군인이 있었다. 칼디르가 중증 밀덕인 데다 경공업보다는 중공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는 했어도 삶의 질을 향상하는 문제에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던바, 장병의 복지를 크게 향상할 만한 물건 역시 만들어냈고 이는 뜨거운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당장에 한창 팔팔한 나이일 10대에 군대에 끌려 들어와서는, 개좆같은 전쟁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바람에 어느덧 40살을 바라보는 이 날까지 전역도 못 하고 삽질만 오지게 하면서 고무 타이어처럼 질긴 고기와 시멘트 조각처럼 단단한 빵을 짬밥이랍시고 처먹어오던 군인들이다.
그런데 칼디르가 이들 앞에서 교시하기를, 도무지 사람이 먹을 게 못 되던 기존의 전투식량과는 다르게 앞으로는 그로즈니에게 직접 건의하여 맛이 좋은 전투식량을 공급할 것이며, 술 담배(윤락 여성은 그로즈니의 직권으로 금지되었으니, 굳이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마약 정도?) 말고는 딱히 스트레스를 풀 거리가 없는 이들에게 달달한 간식을 풀 것이라고 하시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쌀밥에 황금색 빛깔이 좌르르 흐르는 카레를 올려 만든 카레라이스, 고무 타이어처럼 질겼던 고기와는 그 품질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스테이크,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신선한 채소, 그동안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왔던 시멘트 조각과는 다르게 사람 이빨로 제대로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운 빵조각, 초코파이나 초콜릿처럼 달달한 디저트들...
최소 몇 달 이상 제대로 된 식사와는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칼디르가 오자마자 풍성한 식단을 받게 된 군인들은 그야말로 눈이 홰까닥 돌아가서는, 칼디르더러 거유 빗치라고 씹어대던 이들까지 태세 전환하여 이 뛰어난 물건들을 공급해준 칼디르와 그녀로 하여금 그 물건들을 공급할 수 있게 해준 그로즈니를 칭송하였다.
“칼디르 아스트라... 한때 그분의 뜻을 의심하던 적이 있었지요... 아아, 뱁새가 어찌 황새의 뜻을 이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보잘것없는 우리 병사들에게마저 이런 자비를 베풀어주시다니... 그분은 정녕 하나님께서 내려 보내주신 사도임이 틀림없습니다.”
굳이 이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지 않더라도, 보고 있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어린 딸이 생각나게 하는 칼디르가 제대로 된 밥과 간식을 내주는 것을 받아들고는 진실한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많았다.
특히나 휴가도 없이 군대에 짱박힌 지 10년 이상 된 고인물들의 반응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는다는 초코파이에 관한 소문이 퍼지자마자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옆 부대에 침입하여 털어오지를 않나, 그동안 엄격한 군율을 유지해온 이들까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서 이 말도 안 되는 패싸움에 가담하지를 않나...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는 장병 복지에 도움이 될 만한 물자를 더더욱 많이 공급하겠습니다. 그전에... 아틀란티스 국민 파시스트당 가입 신청서, 아니, 신규 부대 자원 신청서에 서명하시면 초코파이 상자 100개 드리려고 하는데, 서명허쉴?’ 이런 식으로 약을 팔고 다니는 칼디르에게 그대로 넘어가서 그녀가 지휘한다는 부대에 자원해버리지를 않나...
급기야 일선 부대의 혼란을 진압할 책임을 진 헌병들도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새로 나온 식량과 간식을 스틸 해가는 무리에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혼란상에도 불구하고 그로즈니는 여태까지 미처 신경 써주지 못했던 장병 복지 문제를 드디어 해결할 수 있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동안 장병 복지에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은 내가 인색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닐세. 나라고 장병들이 잘 먹고 잘 쉬어야 잘 싸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나? 지금까지는 돈이 있어도 맛 좋은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를 구할 길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장병들을 비인간적인 환경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네.”
그로즈니가 말한 대로, 아틀란티스의 산업 기반은 전쟁 이전에도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전쟁 이후에는 더더욱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데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치솟아버린 물가 때문에 장병 복지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할 여력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에 무기도 제대로 못 뽑아서 전투 인력이 남아도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오는지는 몰라도, 칼디르는 오랫동안 굶주려온 군인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을 만한 맛있는 식사, 달달한 간식,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 등등의 발명품을 가져와주었고...
여기에 덧붙여 그동안은 오랜 전쟁으로 수많은 행성이 폐허가 되어버린 탓에 휴가를 보내주고 싶어도 ‘못’ 보내주는 면도 있었는데, 심각하게 오염되었던 행성들 상당수가 칼디르 제 테라포밍 장치 덕분에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복구된 덕분에 비로소 휴가증을 받은 장병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만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는 20여 년 간 풀어버릴 방법도 없이 누적되어 오기만 한 군인들의 피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군인은 본래 힘든 것이 당연한 법입니다. 그런데 장병 복지라니요...?”
“이러한 물자들을 급작스럽게 풀어버리면 자칫 군율이 흐트러질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 국방군 장병 중에는 길게는 20년 이상 굶주려온 자들도 많은데, 이들에게 칼디르... 사...령...관...의 발명품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자제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맞습니다! 이러한 물자들을 공급하여 장병의 분위기를 흐리게 된다면, 장병들이 자칫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해이해질 수 있습니다!”
귀족 가문 출신의 고급장교들이 이에 딴지를 걸기는 했으나, 초급장교 이하 실제 전투 인력들은 윗대가리들이 뭐라고 짖어대거나 말거나 구경해본 지 오래된 고기를 뜯고, 초코파이 상자를 열어댔다. 고난의 행군 시절의 북한군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면 딱 이러한 반응을 보이겠다 싶을 정도로, 그들은 칼디르의 발명품을 탐닉했다.
당장 그들의 상대인 루시드 군은 고무 타이어처럼 질긴 고기나 시멘트 조각처럼 딱딱한 빵조차 먹지 못해 서로 잡아먹으면서 연명해야 할 정도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삽질만 오지게 해온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칼디르의 발명품을 반기는 반응에는 거짓이 한 점도 있을 수 없었다.
솔직히 고난의 행군 시절 북한군이나 임팔 작전 당시의 구 일본군보다도 못한 식사를 해오던 끝에 초코파이를 100상자씩 넘겨받고 나면 신규 부대 자원서에 서명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아예 칼디르 사령관에게 충성 맹세를 해버려도 인정하는 부분...
“에라이 씨발, 윗대가리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초코파이는 일단 위장 속에 처넣으면 증거가 인멸된다, 이 말씀이야!”
“그래, 그 말이 맞다! 헌병이고 나발이고, 씨발, 일단 먹고 마시고 죽자!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더라!”
“10년 넘게 굶으면서 삽질을 해왔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이 맛있는 밥과 간식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버티라는 거냐!”
“야, 근데 시발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그동안 먹어온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냐? 이번에 새로 사령관이 된 칼디르라는 사람이 백 년 천 년 사령관을 해 처먹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 사람이 가버리고 나면 이런 건 다시는 먹어보지 못하는 거 아니냐?”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 지금 이 순간을 그냥 즐기라고!”
설혹 귀족 가문 출신의 고급 장교라고 해도 ‘귀족’하면 으레 떠올리는 화려한 삶과는 동떨어진 진흙탕과 시체의 밭에서 병사들과 함께 굴러온 이들의 경우에는 휘하 장병들의 심정을 모르지도 않았기 때문에 일으키는 소란을 모른 척해주기도 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칼디르의 발명품이 퍼져 나가면서 분위기는 더더욱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다음, 칼디르가 지휘할 부대에 자원한 세 번째 부류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이들이 퍼뜨리고 다닌 소문을 접하고는 흥미가 동하여 제 발로 걸어온 이들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자원자가 넘쳐났던 덕분에 칼디르가 신규 부대를 편성해 나가면서 인력 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일은 없었다.
카이프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칼디르는 족히 수억 명은 되는 부대원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아무려면... 열심히 일해서 많은 공훈을 세워야 공주님께 이쁨을 받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삶도 좀 더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할 수 있을 테니 열심히 구르고 뛰어다녀야지...
그녀는 부대원 충원을 완료한 뒤에, 베테랑 오브 베테랑 중에서 특별히 자신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충성심을 지킬 이들만 따로 모아 1개의 친위 사단을 구성하였다.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먼 훗날 이 친위 사단에 부여될 명칭이었다. 이들은 이제 그녀가 휘두를 날카로운 창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