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9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2화 (189/225)



〈 189화 〉총통경호 친위대 칼디르 아스트라(LSSKA): 2화

그로즈니로부터 허락이 떨어진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어진 카이프가 몸소 칼디르가 도맡을 부대를 편성하는 작업을 도와주겠노라고 나섰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고 그로즈니의 집무실에서 나오자마자 그의 집무실에 들어가서 아군의 작전 계획을 검토하는 작업을 도와주어야만 했지만, 그게 어딘가.

카이프와 칼디르라는 이름을 가진 의사들의 집도하에 수술대에 오르게 된 기존 비스마르크 대공세 계획은 크게 다섯 가지 단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루시드 총독부가 통치하는 구역과 반 루시드 저항운동 세력이 부딪히는 경계선 부근에 고립된 아군 부대와 민간인을 구출하고, 아군 구역 내부로 깊숙이 들어온 루시드 군을 물리적으로 섬멸하여 경계선을 정리하는 제1단계.

이 제1단계는 다음 단계를 수행하기 위한 사전 작업 단계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카이프가 칼디르 제 무기를 들고 날뛰면서 이미 목표의 일정 부분을 달성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이제  단계에서 남은 것은 나머지 목표들을 섬멸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다.

“OKW 내부의 귀족 가문 출신 도련님들이 무어라고 반발하든 간에, 칼디르 자네 덕분에 비스마르크 대공세 계획은 이미 기존에 상정해두었던 것과는 방향성이 달라졌네. 아,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변화란 긍정적인 변화일세.”


“과찬이십니다, 참모차장님. 저의 무기와 정보를 받아들여 주시고, 그를 통해 실제로 적군 부대를 물리적으로 섬멸하신 건 참모차장님이 아니십니까?”


카이프와 칼디르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지금 이 부분을 다루고 있었다. 작전의 제2단계, ‘전쟁계획(War plan) 델타’, 이는 작전의 제1단계를 마무리한 후에, 지난날 각 지역의 경계선 부근에 그로즈니 원수가 남겨두고 간 철통 같은 방어시설에 그대로 눌러앉아 버티고 있는 루시드 군을 공격하는 것을 골자로  계획이었다.

기존 작전안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는 ‘대전쟁’ 당시 그로즈니 원수가 직접 고안한 3겹의 방어선, 그로즈니 선의 핵심 요충지 중 하나인 ‘테라 델타’를 탈환하고 그를 거점으로 삼아 아틀란티스 영내의 다른 지역과 모두 이어지는 아틀랜드 회랑 지역까지 짓쳐 들어가서 해당 지역을 수복하게 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작전의 제3단계는 ‘전쟁계획 베타’, 역시 그로즈니 선의 요충지 중 하나인 ‘테라 베타’를 탈환하고 지금도 테라랜드 지역에서 고군분투 중인 제임스의 국내정부와 직접 접촉하게 되어 있었고, 제4단계 ‘전쟁계획 알파’에서는 그로즈니 선의 마지막 요충지인 ‘테라 알파’를 탈환하고 총독부를 직접 위협할 예정이었으며...

대망의, 그리고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전쟁계획 테라’에서는 아틀란티스의 영원한 수도인 지구를 해방, 아틀란티스 제국의 재건을 선포하고 그 시점까지도 아틀란티스 영내에 잔존해 있는 루시드  및 연합군을 섬멸할 계획이었다.

본래 기존 작전안에서 상정한 최종 목표의 달성일은 작전 개시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시점이었지만, 칼디르가 카이프에게 닦달을 당하자마자 토해낸 수정 작전안을 채택한다면 훨씬 짧은 기간 안에 목표를 달성할  있을 터였다.


이야, 어떻게 수정 작전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하자마자 수만 장의 자료를 토해낼 수 있는 거지? 아, 자기 입으로 아카식레코드 능력자라고 한 것도 있으니... 딱히 다른 사람한테 들은 적도 없는데 비스마르크 대공세 계획을 ‘그냥’ 알고 있는 거라면 이를 기반으로 수정안을 토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자네 덕분에 기존 작전안을 통째로 폐기해야 할 판이네만, 그래도 자네가 수정 작전안을 미리 준비해준 덕분에 야근 시간이 줄어들어서 다행이다 싶네. 그래도 아예 야근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네, 칼디르! 귀족 가문 출신 도련님의 반대가 거셀 테니 말이야. 앞으로도 나와 함께 즐겁게 야근을 해보세나!”


혹시나 오해할까 봐 싶어서 첨언하자면, 이는 절대로 칼디르를 돌려 까는 말이 아니었다. 그의 말인즉슨 희대의 맹장이라 평가받는 카이프가 보기에도 칼디르의 수정 작전안이 너무나도 훌륭하여 기존 작전안은 아주 쓸모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는 말이었다. 헌데 말하는 방식이 방식이다 보니 괜히 꼽을 주는 것처럼 들릴 뿐이지.

카이프뿐만 아니라 그로즈니와 아틀라인 서기장 등에게도 극찬을 받은 작전안이니만큼, 여기서 괜히 수그러들 이유는 없다만... 왠지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없는 것 같다.

“하, 하하... 예, 저도 참모차장님과 함께할 앞날이 매우 기대됩니다...”

“그래... 기대해도 좋네, 칼디르... 아니, 이제는 칼디르 ‘사령관’이라고 불러줘야 하려나? 수정 작전안의 채택이니 뭐니 하는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혹시 담배 한  피우겠나? 좆같은 군대에 몸을 담으면서 일하다 보면 담배만큼 스트레스를 풀기 좋은 물건이 없다는 것을 절로 알게 되지.”


이 타이밍에 흡연 권유를...? 술 담배 말고는 이렇다 할 유흥 거리도 없는, 여성 흡연을 심각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라의  조직 안에서 참모차장쯤 되는 사람으로부터 담배를 권유받았다는 것은 곧 당사자로부터 엄청난 호의를 받고 있다는 증거였고, 칼디르도 일단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군대에 몸을 담은 이상  뜻을 모르지는 않았다.


여기서 ‘아, 저는 담배를 안 피워서...’라고 발을 빼면 분위기 갑자기 싸해지는 각이다. 지금은 군말 없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면서 담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세상에! 라이터를 꺼내서 불도 빌려주고 까마득한 선배 겸 상관인 그 자신과 맞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주는 걸 보면 보통 수준의 호감을 품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쓰으읍... 파하아아... 칼디르는 카이프를 따라 불이 붙여진 담배를 입에 물고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뒤에 도로 내뱉었다. 인생 첫 담배의 맛은 굉장히 썼다. 하긴 스트레스를 장난 아니게 받을 군인의 가슴팍에서 나온 궐련 담배가 독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리라. 그나마 생아편인 아틀랜디보다는 약한 물건이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려나.

“담배 연기를 머금으니 이제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같군. 그러면 이제 자네가 지휘할 첫 부대를 편성하러 가보세나!”

카이프는 추후 OKW 전체 회의에서 보수파의 극렬한 반발을 모두 물리치고 칼디르가 제시한 수정 작전안이 그대로 채택된다 하더라도 해당 수정 작전안의 입안자인 칼디르의 수중에 정작 실전 부대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일 것이라는 논리로 신규 부대 편성 건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는 참모차장이라는 직위에서 나오는 힘을 앞세워 ‘1. 내 말이 곧 법이다. 2. 칼디르 사령관의 말을 내 말과 같이 따라라. 3. 이 지시를 어길 시, 니 위로 내 아래로 총집합.’이라는 내용의 지침을 통해 이를 반대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찍어 눌러버렸다. 그가 괜히 또라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는  아니었다.


칼디르는 모처럼 호의 어린 시선을 받았겠다, 부디 기억력은 또 드럽게 좋아서 수십 년 전의 사소한 원한이라도 기억해놓고 있다가 반드시 갚기로 유명한 이 사람의 눈 밖에 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말을 아꼈다.


카이프의 위세를 빌려 부대 편성에 돌입한 칼디르가 아틀랜드 회랑 지역에서 마주한 로버트 일당과, 그전부터 착실하게 모집해온 김범혁 패거리를 해당 부대의 구성원으로 포함했음은 물론이었다. 자, 초능력자 전력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평가를 할  있으니 남은 일은 비 능력자 전력을 채워 넣는 일인데...

아... 근데... 모두의 반대를 물리치고 마침내 칼디르에게 수여된 정식 계급장과 직책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고? 계급으로는 상급대장, 직책으로는... 일명 ‘칼디르 집단’으로 명명된 집단군급 비상설 조직의 사령관 겸 국방군의 보급, 전략 수립, 전술 교리 등등에 모두 간섭할 권한을 허락 받은 고급 참모...쯤 되려나...?


물론 칼디르가 이러한 지위를 허락받고 번쩍거리는 황금색 계급장, 카라장, 견장을 받는 데도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칼디르에게 맡겨진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으나 정작 그녀에게 정식 계급장과 직책이 수여된 일은 없으니 이는 안 될 말이오. 이번에 아틀랜드 회랑 지역에서 세운 공훈까지 생각한다면...해서, 칼디르에게 소장의 직위를 내리고자 하는데,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아니 되옵니다, 육군원수 각하! 평민 출신 계집을 장성에 올리신다니요, 이는 절대로 아니 될 일이옵니다!”

“자네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군. 그녀에게 몸소 중장의 직위를 내리겠네.”

“그것은 불가합니다! 정  계집을 장성의 지위에 올리려 하신다면, 그전에 저를 강제로 퇴역시켜야 하실 겁니다!”

“...칼디르 아스트라에게 병과대장의 직위와 함께 국방군의 보급과 전략 수립에 간여할  있는 권한을 내리겠네.”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불가한 일입니다!”


“...그녀에게 상급대장의 지위와 함께 집단군급 실전 부대를 지휘할 책임까지 맡기겠네.  이상의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네.”

이것은 칼디르가 상급대장의 계급장을 받기까지 벌어졌던 설전을 굉장히 축약한 것에 불과했다. OKW 내부에는 여전히 칼디르에게 우호적인 이들보다 적대적인 이들이 많았고, 그로즈니는 그들이 아우성을 칠 때마다 칼디르에게 돌아갈 몫을 키우는 식으로 대응하여 끝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아이고, 이대로라면 15살짜리 계집년에게 원수도 시켜줄 판이다!’ 싶었던 보수파도 결국은 그로즈니의 굳건한 뜻과 카이프의 개지랄 앞에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고, 임명권을 가진 인민 정부 역시 이에 동의함으로써 그녀는 하루아침에 고위 장성이 될 수 있었다.

“거, 내가 알기로 자네는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원래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불철주야 일해 온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몸값에 걸맞은 자리에 앉게 되었군. 정부를 대변하여 자네를 축하하는 바이네.”

정부  이인자인 케인스가 이 일을 몸소 칭찬해주면서 칼디르에게 정식으로 벼슬을 내리기를, 여러 부처의 차관직을 모두 겸하게 하였다. 그녀가 그전에도 정부에서 맡겨주는 여러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왔음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지나친 처사라고 할  없었다.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상 처음으로 실전 부대를 직접 편성할 권한을 부여받은 역사적인 순간이니만큼 부대원 구성에 심혈을 기울여보실까. 칼디르는 비 능력자 전력이라도 이왕이면 베테랑들을 위주로 부대를 꾸리고자 했다.

오직 최고만이 필요했다. 그래야 속에 품은 뜻을 이루기도 쉬울 테니까. 지금  손아귀에 들어온 권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정도로 막강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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