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화 〉은밀한 비밀 공유: 1화
전장에서 풍겨오는 화약 냄새는 매캐하기 그지없었고, 레이저 건에 맞아 사르르 녹아버린 바위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탄내도 역겨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이 역겨운 냄새가 짙게 배겨있는 전장이 눈에 닿는 곳에만 그치지 않고 저 멀리 눈이 닿지 않는 지평선 너머에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더욱 놀라운 진실이 있다면, 어느 한 진영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이 참혹한 현장이 이 행성 하나에만 펼쳐져 있지 않고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행성계 전체에 넓게 흩뿌려져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나 많은 행성계에 시체 썩은 내와 탄내가 짙게 배긴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루시드 군의 규모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번에 ‘청소’ 당한 행성계의 숫자가 수백 수천 개에 그치지 않고 수만 개를 넘어갈 수도 있고... 이번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칼디르도 일이 다 끝나고 나서 굳이 적군의 피해를 집계하기 위해 공을 들이지 않았기에 루시드 군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루시드 군이 ‘감히’ 그녀의 조국인 아틀란티스 제국의 국경을 무단으로 넘어 침공을 감행해왔다는 사실뿐이었다. 놈들은 그 이유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무도한 침략군이여, 죽음으로 속죄하라.
설득과 외교? 물론 그것도 좋지. 하지만... 어차피 지금 무장을 해제한 채로 받아들인 루시드 군 투항병들도 언젠가는 고기 방패로 모조리 소모해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 지금 이렇게 한 합에 죽여 버리나, 아까운 아틀란티스 국민의 목숨을 허비하는 대신 고기 방패로 내몰거나 매한가지가 아니겠는가?
저들 시신 중에서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이는 아무도 없으니 내가 국제 사법 재판에 회부될 염려조차 없다. 누군가가 재판정에 서야만 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겠지. 이를 위해서 지금도 범혁에게 내려주는 지령서에 ‘학살’이나 ‘살해’ 같은 직설적인 단어 대신 ‘최종 해결책’ 같은 파시스트들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은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나로서는 혹여나 누군가가 오늘의 일을 문제 삼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누군가를 직접 죽이거나, 죽이라고 저놈들에게 시킨 적 없음! 저놈들이 멋대로 내 말을 곡해해서 저지른 일임!’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 그러니 내가 우려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욱... 그래도 적의 시신을 직접 보는 건... 기분이 영 좋지는 않군요...”
칼디르는 돌격대원들과 흑십자회 무리가 씽나게 대검을 휘둘러대는 동안, ‘청소’가 끝나 깨끗해진 행성을 거닐며 루시드 군의 잔해를 살펴보았다. 아군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전투 데이터를 확보하여 다음 전투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였다.
한 때 루시드 제국의 군인들과 그 가족을 상대하며 번성했을 대도시는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그 자리에는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거대한 크레이터들만이 남아 있었다. 대도시 행성에서 가장 거대한 마천루의 꼭대기에 매달린 채 휘날리며 루시드 제국의 영광을 상징하던 태양기가 애저녁에 불타오른 것은 물론이었다.
어떤 잔해는 달을 그대로 넣을 수 있을 만큼 거대했지만, 개중에 아군의 시신이 섞여 있는 잔해는 없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번 전투는 성공적이다. 루시드 군의 전력을 한순간에 섬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칼디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내놓은 성과이니만큼, 기성 정치가들이나 OKW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기존 관료들의 반동성을 의심한 끝에 칼디르 자신에게 새 인물을 천거해 달라고 요구하는 데 이른 기성 정치가들은 그녀의 사람 보는 안목을 칭찬하며 평가를 더 높여줄 것이고, 돌격대원들과 함께 흑십자회를 데리고 가면 OKW에서도 아군 진영과 외따로 떨어져 있던 최고의 전력을 무사히 데려와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할 것이었다.
어디 감사를 표하는 것만으로 끝날까? 흑십자회 무리보다 훨씬 강력한 범혁의 존재를 고려한다면, 이후에 OKW에서 제4의 군종을 신설하는 문제에 관한 논의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 틀림없다. 돌격대에 더불어 흑십자회를 제4의 군종의 일원으로 집어넣는다면, 국내 최강의 무력을 한 손에 틀어쥐게 되는 셈이 되겠지.
기성 파시스트 세력 중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흑십자회마저 포섭한 이상, 다른 파시스트 조직을 흡수하거나 공산주의 조직에게 전향을 강요하여 세력을 불려 나가는 일도 훨씬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것과는 다르게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끝없는 해골의 대열이었다. 우욱, 우우욱...! 아무리 적군의 것이라도 시신이 가득한 현장을 거닐고 있으니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수많은 생명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거나, 아니면 오늘처럼 다른 누군가가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놓는 일은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어도, 그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이거나 참혹하게 죽은 시신을 목격하는 것에는 약한 인간이었다.
그 왜,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지시한 나치 독일의 하인리히 힘러라는 인간도 절멸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이나 소련군 포로를 보고는 불쾌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주제에 잘도 사람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그녀도 그와 비슷하게 위선적인 인간이었다.
위선적이면서도 아틀라인 서기장 앞에서는 수많은 적군을 베어 넘기며 ‘학살자’라는 오명을 얻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지만, 그 똑똑한 머리를 본인의 사법적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는 데 쓸 정도로 약아빠진 인간. 그것이 바로 칼디르 아스트라였다.
오늘의 일로 인해 언젠가 벌어지게 될 사법적 논란에서 시선을 떼면 다시 거대한 전장이 눈동자를 가득 메운다.
돌격대, 흑십자회 소속의 수만 명에 달하는 초능력자들이 만들어낸 전투의 흔적은 가히 참혹했고, 거대했다. 그런 만큼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서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은 많았는데, 어떤 곳은 거대한 크레이터에 시신이 죄다 빨려들어 간 탓인지 핏물조차 묻어있지 않아 너무 많은 시신을 보느라 피로에 지친 눈에도 휴식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칼디르는 온몸의 내장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여 죽은 루시드 군의 시신에서 눈을 떼고 운 좋게 제 형태를 보존하고 있던 바위 뒤로 가서 갑갑하기 그지없는 군복 외투를 벗었다. 장교 정복이라는 물건이 입고 있으면 폼은 죽이는데, 실생활 면에서 근무복이나 전투복보다 훨씬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아틀란티스 국방군의 군복을 거부하고 독일 SS 무장친위대 특유의 검은색 제복을 스스로 만들어서 평상시에도 계속 입고 다니는 범혁이 대단해 보일 지경이다. 정규군도 1년 내내 군복만 입고 다니지는 않는데, 정규군 소속 군인들보다도 더 제복을 좋아하는 비정규군이라니.
후우우... 군복 외투를 벗어서 바위 위쪽에 걸어놓으니 좀 편안해지는 것 같다. 그 상태에서 잠시 바람을 쐬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칼디르의 모습은 참혹한 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무엇이 이 아름다운 소녀가 군문에, 파시즘에 스스로 몸을 담도록 만들었는가? 그 누구라도 그녀의 매혹적인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의문이 머릿속에 피어오르게 될 것이었다. (만일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여인이라면 머릿속에 의문을 떠올릴 시간에 그 자리에서 덮치려 들겠지만.)
어디에선가 불어온 산들바람에 찰랑거리는 그녀의 금발은 더러운 얼룩이 한 점도 없이 매끈하여 햇빛이라도 받으면 보는 이로 하여금 머리에 순금이라도 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주님과 처음 만나고 나서 몇 주가 지나, 어깨 위에 맞닿을 정도로 자라난 금발을 몇 달 정도 더 기른다면 매력적인 장발이 되겠지. 슈가와 공주님이 뒤치기할 때 손잡이로 잡을 것이 필요하다고 머리를 기를 것을 요구한 것을 빼고 생각해도, 아름답게 자라난 장발은 파시스트 독재자 꿈나무로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아마도 중간에 자를 일은 없을 것 같다.
권력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점점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텐데, 차가운 단발의 미인상보다는 부드러운 장발의 미인상이 정치가로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유리하겠지.
그녀의 푸르른 눈동자와 분홍색 입술, 아직 완전히 빠지지 않은 볼살의 조합은 아주 귀여웠지만, 그 안에 내재된 색녀의 기질을 알고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본다면 그 인상이 미묘하게 달라질 것이었다. 그래도 따로 화장하지 않은 쌩얼 상태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면, 이 또한 그녀가 타고 태어난 본질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칼디르는 본인의 얼굴에 귀여움을 더해주는 볼살이 완전히 빠져나간다고 할지라도 그전과는 단지 형태-토실토실한 귀요미에서 턱선이 날렵하고 성숙한 미녀로-만 달라질 뿐, 여전히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장래가 기대되는 여인이었다.
시선을 고개 아래쪽으로 내리면 하얀색 와이셔츠에 둘러싸인 봉긋한 젖무덤이 보였는데, 공주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착용한 하늘하늘한 하얀색 브래지어의 막을 뚫고 분홍색 젖꼭지가 돌출되어 보이는 것을 보면 모유가 새어 나와 브래지어를 적시다 못해 와이셔츠까지 푹 적셔버린 것 같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큰 지방 덩어리를 타고 태어난 걸까? 그 자신에게 자문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달리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이 거대한 젖무덤 덕분에 슈가나 아틀란티아 공주님과 이어질 수 있었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는 부위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와이셔츠가 푹 젖어버려 젖가슴 전체에 찰싹 달라붙을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단추를 뜯어 앞을 열어버리고 불편했던 브래지어까지 벗어 바위 위에 올려둔다. 아... 군복 외투를 벗은 뒤에도 뭔가 미묘하게 불편했는데, 이렇게 가슴에 가해지던 압박을 제거하니 한결 편해진 것 같다.
와이셔츠와 브래지어의 가호마저 사라지고 완전히 바깥에 노출된 그녀의 젖가슴이 중력에 이끌려 물방울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살짝 쳐졌지만, 그 현상 자체가 수술로 만든 가슴이 아니라 자연산 거유임을 증명해주는 것이었으니만큼 보기 흉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작은 것도 좋지만, 큰 것은 더 좋다! 그리고 난 아직 너보다 더 큰 년을 본 적이 없어! 그러니 네 가슴이 제일 좋아!’ 언젠가 공주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큰 가슴은 누군가를 유혹하는 데 특화된 흉기라고 할 만했다.
시선을 젖무덤에서 좀 더 아래로 내리면 공주님께서 정성스럽게 새겨준 아랫배의 자궁 문신을 볼 수 있었다. 아리아가 그녀들의 일상에 멋대로 개입하여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와중에도 유일무이하게 지워진 적이 없는 절대 문신이었다.
열심히 일하다가 선진국의 일일 근무시간인 8시간을 채웠다 싶으면 그 날은 바로 퇴근해버리거나 중간에 다시 돌아갈 각오를 하고서 공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집으로 돌아가 질펀하게 떡을 쳐주는데도 자궁 문신의 에너지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자궁 문신에 저장된 음기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속도가 빨라지니, 미칠 것만 같았다.
칼디르의 아랫배에 새겨진 자궁 문신은 음기가 가득 찬 상태에서는 중앙의 하트 문양이 아름다운 분홍색으로 물든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속이 완전히 비어버려 그녀의 하얀색 살결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공주님의 손에 이끌려 순결을 잃고 섹스의 참맛을 깨닫고 나서 단 하루라도 섹스-를 하기는 힘들겠다 싶으면 적어도 자위-를 거른 날이 없는 그녀였지만, 지금처럼 자궁 문신의 속이 뻥 비어버린 상태에서는 특히나 성적 욕구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끝없이 늘어서 있는 시신의 대열을 보면서 얻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자궁 문신이 빨리 음기를 채워 넣을 것을 강요하며 큥큥거리니 전장에서 얻은 흥분이 성적 흥분으로 이어져 젖꼭지와 클리토리스가 발기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상태로 사람들에게 돌아가면 못 볼 꼴을 보여주게 될 것 같으니, 여기서 자위를 통해 성욕을 한 번 풀어주고 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야외 자위를 정당화하며, 자위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아...! 공주님... 거, 거기... 딱 좋아요...! 거기에요! 아...! 좀 더 깊숙한 곳까지... 만져주세요...!”
슈가와 공주님께 번갈아가며 조련당한 뒤, 그녀는 꼬박꼬박 연락을 취하며 근황을 보고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따로 통신을 켜지는 않고 머릿속으로 공주님의 얼굴을 그리며 하얀색 티팬티 속에 손가락을 슬며시 집어넣어 G스팟을 스스로 자극하고 있었다.
처녀막이라면 관통당한 지 오래되었으니만큼 손가락을 깊숙한 곳까지 집어넣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쑤우우욱...! 찌걱, 찌걱, 찌걱... 아...! 하, 으, 으으...! 공주님의 손가락을 허용할 때만은 못하지만, 한계까지 달아오른 유두를 한 손으로 자극하며 다른 손으로는 보지를 쑤시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내온 슈가의 얼굴이 아니라 공주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자위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요즈음 공주님께서는 ‘착한 히로인’을 연기하시면서 슈가가 칼디르를 거칠게 따먹고 난 다음에 위로해주는 척 접근하여 섹스를 통해 그녀를 달래주고 있었는데, 그 어설픈 연기가 칼디르에게 그대로 먹혀들어간 것이었다.
“칼디르, 이번 흑십자회 어르신들과의 내기... 이제는 그냥 합동 전투라고 해야 하려나? 하여튼 간에, 말해줄 것이 좀... 있는...데...?”
칼디르가 자위 끝에 허리를 활처럼 들어 올리며 앙증맞은 보지로 조수를 내뿜는 순간, 범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와의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그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류 이상으로 시력이 좋았기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그녀가 보여주는 추태를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엇, 어어엇...! 저, 저런...!
범혁은 자신이 아주 좋지 않은 타이밍에 나타났음을 직감하고는 도로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해버렸다. 나는 오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