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적색공포, 그리고 파시즘: 4화
쾅, 쾅, 콰앙! 빌뇌브가 자신의 안락한 저택 안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 동안에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들에서는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오래전부터 식민 통치자들의 목을 노려왔던 공산주의자들과 이른 시일 내에 그들이 일군 성적에 비견할 만한 성과를 내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고자 하는 파시스트들이 그 폭발의 범인이었다.
타타타타... 탕! 탕! 으아악, 항복...! 악, 항복했다고...! 도망가! 저, 저쪽에도 있다! 펑, 퍼펑! 쿵... 쾅...! 아아악! 끄악! 살, 살려... 투타타타-! 펑, 펑, 펑! 가금씩은 거대한 폭발음 속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 소리들의 정체는 가늠쇠와 가늠자만 한 구멍도 놓치지 않는 솜씨 좋은 저격수가 낸 소리거나, 폐건물에 숨어있던 레지스탕스가 쏘아대는 기관총 내지는 로켓포 소리, 딱 좋은 곳에 설치된 부비트랩이 ‘불쌍한’ 루시드 군을 죽이는 소리였다.
급작스럽게 나타난 이들의 존재에 자극받은 다른 정파의 행동 역시 더더욱 대담해져서 도시 행성에서는 단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루시드 인들과 친 루시드파가 모여 사는 태양계에서조차 일부 지역에서는 야음을 틈탄 암살자들의 암살 시도를 피하느라고 사병들을 대동하고 나닐 정도였다.
‘태양이 떠 있는 낮이라면 몰라도, 이 나라의 밤까지 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놈들은 결코 밤에 편안히 잘 수 없을 것이다. 으흐흐흐...’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식민 통치자들과 부역자들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로부터 그나마 안전한 곳은 총독부가 위치한 화성이었지만, 그 화성이라고 해도 언제까지 뚫리지 않고 버틸 수는 없을 것이었다. 돌격대와 인민당이 그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이에 실망한 칼디르가 직접 나서서라도 그들의 방비 태세를 뚫어버리고야 말 것이었다.
아니면 칼디르의 역작, 마우스 전차를 받아들고는 전차 뽕에 취해 사경을 헤매면서 루시드 군을 실시간으로 분쇄하는 카이프가 돌격대와 인민당을 제치고 칼디르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로 떠오를 수도 있고.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팔꿉혀 펴기 500배! 자, 하나에 ‘지크’, 둘에 ‘하일!’을 외친다, 실시!”
“조국도 없고, 부모도 없다는 빨갱이들이 네놈들보다 더 잘 싸우겠다! 지금 이걸 공작이라고 해놓은 거냐!”
“인민 정부의 과학자들은 벌써 칼디르의 기술을 몇 가지 복제하는 데 성공했단다! 니들은 도대체 언제쯤 기초 수학을 뗄 거냐?”
“아틀랜드 출신들은 깡다구가 넘쳐서 다들 알아서 잘 하는데, 어째 노스랜드에서 온 놈들은 열심히 가르쳐줘도 제대로 따라오지를 못하는군! 애미가 노스랜드 갔다가 얼어 죽어버려서 젖을 못 빤 탓에 힘을 못 내는 거냐?”
돌격대를 지휘할 책임을 진 범혁은 칼디르가 딱히 시키지 않아도 성과를 내기 위해 안달이 나서 돌격대원들을 갈구며 단 몇 주 만에 머리에 든 게 없던 깡패 무리를 적어도 글자는 읽을 줄 아는 이들로 만들어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칼디르와의 신뢰 관계가 깨어지게 될 것을 우려하여 더더욱 열성적으로 자신의 임무에 임했다.
단순 깡패들보다는 군대식으로 훈련받은 병사나 기술을 이수 받은 노동자가 낫고, 일반 병사나 노동자보다는 정예병이나 숙련 노동자들이 낫고, 전투만 할 줄 아는 정예병이나 고급 학문과는 거리가 먼 숙련 노동자들보다는 고급 참모들이나 지식인들이 효율성과 생산성 면에서 더 낫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범혁이 칼디르로부터 위임을 받아 진행하는 모든 훈련과 교육은 이 공식을 입증해 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범혁의 노력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판단할 머리는 갖추게 된 돌격대원들은 범혁이 입안한 작전에 동원되었는데, 우주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아틀란티스에서 대중의 관심과 환호를 한몸에 받으려면 대규모 살상을 동반한 폭발 사건 정도는 되어야 했기에 작전 대부분은 예술적인 폭★팔로 끝났다. 그것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키는 것보다 더더욱 큰.
돌격대의 앞에는 애초에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돌격대는 빌뇌브, 제임스 같은 정통 보수파들 이상으로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두려워했다. 당장 당수인 칼디르부터 ‘사람들이 그들의 속삭임에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일정 부분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국이었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우주적 전염병을 퇴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역대책은 경제 발전이요, 둘째는 충분한 복지정책이요, 셋째는 ‘조국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고문은 하책 중의 하책이고, 정신지배 능력을 동원하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말인즉슨 등 따습고 배부르면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현혹될 일이 없는데,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복지 예산을 늘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거대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거나 식민 영토를 확보하는 식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영광’을 조작하는 방법을 통해 공산주의의 위협적인 전염 속도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범혁 역시 ‘비프스테이크 나치(겉으로는 파시스트지만, 속내는 시뻘건 이들. 나치당 내 좌파를 이르던 말)’라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을 각오하고 칼디르의 견해에 동의를 표했다. 뭐, 칼디르보다는 공산주의자들을 평화적으로 포섭하는 대신 고문하거나 살해하는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혁신적이다 못해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칼디르의 공약이 제대로 이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자명한데 그동안에 죽치고 앉아있을 수도 없는바, 당장의 대중 지지도를 얻기 위해 돌격대원들은 거리낌 없이 폭탄을 들고 총을 쏘아댔다.
높으신 분들에게 뜯기며 사느라고 삶에 유흥거리가 없던 시민들은 범혁의 의도대로 돌격대의 활약상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시민들이 보기에도 세금을 거둬 가는 만큼 국가에서 해주는 것도 많은 선진 복지 국가들과는 다르게 엄청 뜯어가기만 하고 주는 건 좆도 없는 정부가 아니꼬웠기에 돌격대의 행각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더 나아가 같이 총과 칼을 들고 군경을 향해 휘둘러대기까지 했다.
물론 시민들이 돌격대의 테러 행각에 지지 의사를 보낸데는 돌격대가 시민의 피난을 돕고, 먹을 것을 제공하며, 탐욕스러운 부자들로부터 빼앗은 것을 나눠주는 것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쓸모없는 것들아!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 오늘도 작전이다! 피고 있던 담배는 다 내려놓고 튀어나와!”
“오, 그렇지 않아도 몸이 뻐근해서 참을 수가 없었는데, 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
“젠장, 믿고 있었다고, 범혁 대장! 그래서 오늘은 무슨 작전이요?”
“우리 작전이라고 해봐야 뻔하지. 귀족 도련님들을 참교육해주고, 거기서 교육료를 뜯어오는 거야. 우리가 사유 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빨갱이는 아니지만, 정당하게 벌어들인 돈도 아니고 사람들을 착취해서 쌓은 부를 압류하여 다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꺼릴 이유는 없겠지.”
아틀란티스의 최고 부자라고 할 만한 이들의 자산은 기본이 행성계 수십 수백만 단위에서부터 시작했기에 범혁이 앞장서서 뺏고 나눠주고를 쉬지 않고 반복해도 바닥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고위층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대대적으로 고발한 돌격대를 주목하는 이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갔다.
범혁은 이제 수억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광장에 돌격대를 주목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펼쳐 참석객 모두를 압도할 정도의 선동가였으며, 대중을 말 한마디로 지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반도의 히틀러’보다는 ‘조선반도의 괴벨스’라고 불러줘야 할 것만 같았다.
범혁의 활약으로 인해 돌격대를 주목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들을 경계하는 이들의 숫자도 많아지고, 겨우 15살의 나이로 총독부 현상 수배 명단에 오르게 된 범혁의 몸값 역시 자꾸만 올라갔지만, 범혁은 이러한 현상이 파시스트당의 당세가 지속해서 커지지 않고 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라고 해석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돌격대는 총독부가 자기네들에게 현상금을 걸든 말든, 자신들이 직접 나설 수 없다면 통역을 핑계로 서기장의 명령서에 장난질을 쳐가면서 인민당의 하부 조직인 좌익 전투 노동조합과 전국 농민조합 총연맹의 일부를 떼어내어 만든 우파 성향의 아웃소싱 단체, 그러니까 국가주의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에 테러 외주를 줘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자 했다.
아웃소싱 단체는 욕먹을 만한 짓거리는 짬 때려놓고 우리는 좋은 일에만 집중하여 평가를 올리는 식으로 써먹을 수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단순 짬 때리기 용으로 쓰기는 아쉬운 국가주의 노동조합, 농민조합 대신 고기 방패로 아낌없이 내던질 수 있는 루시드 투항군은 우리 측 인명피해는 최소화하고 대중의 지목도를 높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확보한 대중의 관심은 이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 큰 자산이 될 것이었다. 이에 관해 칼디르는 파시스트당이 향후 십몇 년 내로 다른 모든 정당을 일방적으로 불법화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범혁은 십몇 년이나 차후 대통령 선거까지 갈 필요도 없고 앞으로 몇 년 내에 20~30%의 지지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예상은 아틀란티스가 안정된 국가였다면 터무니없는 것이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틀란티스는 극단주의가 자라나기에 아주 좋은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대전쟁에서의 참혹한 패배, 오늘도 굶주리며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는 이들...
그리고 민주주의 열강의 배신에 가까운 행위로 인해 국민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지금 상황은 독재자를 꿈꾸는 칼 아무개 씨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국민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지지하더라도 파시즘을 밀어붙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국민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혐오하는 상황이라니...?
범혁이 파시스트당의 미래를 낙관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민주주의자들이야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알아서 린치를 해주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우리는 사람들을 말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지금 하는 것처럼 천천히 전향시켜 나가면 된다.
빌뇌브와 같은 친 루시드파는 조국을 팔아넘긴 시점에서 이미 이 나라의 진정한 지배자가 될 자격을 잃었다고 할 수 있었으니 역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그럼 남은 건 그의 속임수에 귀를 팔랑거리는 제임스뿐인데 자꾸 칼디르를 견제하려고 드는 이 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빌뇌브와 엮이면서 숙청당할 건덕지를 만들어내실 예정이니까. 범혁은 제임스를 빌뇌브와 함께 엮어 숙청해버릴 그 날이 굉장히 기다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