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적색공포, 그리고 파시즘: 2화
빌뇌브가 파시스트 돌격대에 관심을 쏟기로 했다고 해도 그들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훨씬 더 격렬하게 활동해온 공산주의 조직을 감시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로, 그가 돌격대의 확장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실제로 현재 시점에서는 돌격대가 등장한 것만으로 무엇인가가 크게 바뀐 일은 없었다.
그들의 등장 전이나 후나 루시드 군과 반 루시드 저항운동가들 간의 격렬한 전투로 도시가 불타오르고 억 단위의 사상자가 심심찮게 발생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단지 추가된 것이 있다면 루시드 군과 시뻘건 공산주의자들만 돌아다니던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의 배경에 검은색 제복을 차려입은 돌격대원들의 존재뿐이었다.
“어휴,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지도 못했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 마을에서 하루하루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무식한 농꾼일 뿐입니다, 나으리...”
“돌격대요? 최근에 그런 이름을 쓰는 조직이 출현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놈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우리 도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무슨 문제라도?”
“그놈들을 체포하는데 협조해달라고요? 글쎄요... 저희는 그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만...?”
“자기네가 배부르게 먹고도 남아서 썩어 으스러질 만큼의 식량을 가지고도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높으신 분들과는 다르게 그분들은 우리 불쌍한 것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병이 있으면 고쳐 주시는데... 굳이 체포하셔야만 하겠습니까? 순사 나으리들?”
그나마 돌격대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하는 시민들도 소탕 작전에 협조해달라는 경찰의 요청에 시큰둥한 반응을 내비쳤다.
“조용히 해라! 조용히! 우리의 협조 요청에 응하지 않는 것은 비국민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건가?”
“불순분자를 제때 신고하는 것은 황국신민의 의무다! 모두 그점을 주지하라!”
시민들은 평소 자신들을 괴롭히는 마피아들은 묵인하고 무고한 시민들만 을러대어 삥을 뜯어가고는 하던 무능력한 경찰 조직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런 만큼 경찰의 협조 요청에 냉랭한 빛을 비추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경찰들이 고성을 내지르면서 자신들에게 협조할 것을 강요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비슷했다.
“제기랄... 끝까지 이렇게 나올 건가? 네놈들 전부 반역자에 협조한 혐의로 체포하겠... 자, 잠깐! 그 총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거야! 당장 내려놓지 못... 아아악!”
“좆같은 마피아놈들을 때려잡아 주시는 착한 분들을 썩어빠진 짭새들이 잡아가겠다고? 에라이, 이 우라질 놈들아!”
“야, 짭새 새끼들 우리보다 머릿수도 적은데 다 때려죽여 버리자!”
시민들이 협조를 안 하는 선에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이었고, 돌격대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시민들은 은근슬쩍 경찰의 작전을 방해하거나, 뒷골목에서 적절하게 ‘처리’해버리거나, 돌격대원들에게 정보나 숨을 공간을 제공해주기까지 했다.
“여기에 순사님들이 오는 걸 보지 못했느냐고요? 글쎄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만?”
“아, 잠깐만요. 다시 생각해보니... 있었는데요? 금방 없어져 버렸지만요. 바로 네놈들처럼! 으하하! 이게 바로 인민의 판처 파우스트다, 개새끼들아!”
초등학교 입학 연령도 되지 않은 꼬꼬마들조차 장난감 총이 아닌 실탄 총을 가지고 놀 정도로 아틀란티스의 치안 상황은 최악이었으니, 경찰 병력이 중무장한 채로 작전에 나서도 돌격대에 충성을 맹세한 시민들의 손에 역으로 쓸려나가는 상황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현재 아틀란티스의 정세는 이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수 없을 정도로 최악까지 치달은 상태. 의적 활동으로 인기를 얻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었고 돌격대는 현명하게도 나름대로 계율을 만들어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시민들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혹여나 계율을 깨고 시민을 해친 자가 있다면 ‘총통’의 이름 아래 ‘처단’하는 방식으로 민심을 얻고 있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 조직의 규모에 비하면 현재 돌격대의 세력은 작은 불에 지나지 않았다. 소방서에서 큰불과 작은 불 모두에 동일한 지원을 쏟아부을 수 없다면 큰불을 우선하여 진화하려고 드는 것처럼, 빌뇌브가 어마어마한 사재를 털어 무장시킨 경찰은 대개는 공산주의자들과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빌뇌브도 결국은 이 나라 기득권층의 일원으로서 아틀란티스의 수많은 보수적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빈자들이 들끓는 이 나라에서 공산주의는 일단 퍼지고 나면 수습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질병’이며, 그들을 막지 못한다면 문명은 없어지고 야만인이 들끓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그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 없었다.
빌뇌브가 조금만 더 돌격대에 관해 파고들었더라면 그들이야말로 공산주의 조직에 깊숙이 침투하여 조직 전체를 꼭두각시처럼 갖고 놀며 기득권층을 엿먹이는 새로운 거대 암세포라는 사실을 눈치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정보는 거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뭐, 뭐야... 이 빨갱이 새끼들...! 전에는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굴지 않았는데... 구석까지 밀어 넣었는데도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거야!”
“그, 그것이... 저희도 놈들에게 뭔가 있는지 파악 중인 상황인지라...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이미 상황이 보고된 것과는 영 딴판으로 틀어져 버렸는데 시간과 예산은 무슨 빌어처먹을 놈의...! 됐네. 자네는 돌아가는 대로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걸세!”
따라서 빌뇌브는 일단 돌격대 쪽에는 최소한의 감시 인력만 붙여놓고 공산주의 조직을 어떻게든 섬멸한 다음 돌격대를 일망타진한다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기로 했지만, 그 전략은 시작부터 꼬이고 있었다. 그 전략의 대전제, ‘공산주의 조직의 섬멸’조차 가망이 보이지 않는 판에 돌격대의 일망타진이라니...?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이전까지는 중앙당의 지원을 원활히 받지 못하는 말단 조직들을 중심으로 하여 루시드 인들과의 지긋지긋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전투 끝에 백기를 들어 올리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면 이제는 중무장 경찰의 화력에 정면으로 노출되어 조직원 모두가 개죽음을 당할 상황에 이르게 되더라도 항복하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저항의 세기가 이전보다 훨씬 커지게 된 이유를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루시드 총독부의 부역배 노릇을 한다는 오명을 진 주제에 자기네를 통솔하는 총독이 부총독의 쿠데타에 직면하여 마조 암컷이 되어버렸다는 사질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칼디르와 돌격대의 노력 덕분에 이제 식민 통치 기구의 최고 책임자인 총독이 아틀란티스 공산주의자의 손에 비명횡사했다는 소식은 저항운동 내부에서는 충분히 널리 퍼진 상태였고, 자기네 조직에서 총독을 죽인 사람을 배출했노라는 그 소식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심신의 피로가 극에 달했던 이들의 사기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총독 유고 사태의 진실은 저항조직의 준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애초에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들은 ‘진짜 진실’보다는 ‘믿고 싶은 진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시대에는 무엇이 ‘진짜 진실’인지 파헤치려드는 쪽이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총독이 우리 인민당원의 손에 목숨을 잃다니...!”
“동지들이여, 기나긴 기다림 끝에 해방은 드디어 우리에게 오고 있다! 이제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 저 비열한 식민 통치자들은 스스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하나 된 민중은, 굴복하지 않는다! 하나 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싸울 수 있는 남성들은 모두 총기를 들고 봉기하라! 부녀자들은 공장에서 일하며 아틀란티스 인민과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를 위해 봉사하라!”
모처럼 사기를 충전한 인민당원들은 경찰 조직에 준하는, 혹은 그보다도 우수한 무장을 갖춘 채로 곳곳에서 대규모 회전을 벌여 경찰 조직을 전멸시키고 승리를 거머쥐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위장한 폐건물에서 총알 세례를 날려 전장에서 살아남아 허겁지겁 기지로 돌아가는 경찰들을 죽여 자신들의 승리를 확고하게 굳혔다.
쾅, 쾅, 쾅! 인민당원들이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중무장 경찰들이 전방에서 투닥거리는 사이, 다수의 경찰이 빠져나가 일시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된 도시들에서는 핵 수류탄을 품에 안은 채 침입한 인민당원들의 테러가 빈발했다.
졸지에 앞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모두 대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경찰 조직은 그야말로 혼이 빠진 상태가 되었다. 빌뇌브가 빨갱이들을 때려잡으랍시고 무장만큼은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로 좋은 것으로 들려줬다고 하나, 애초에 전투 의지가 낮은 경찰들은 그 좋은 무기를 들고 그대로 인민당원들 앞에 가서 두 팔을 들어 올려 버리고는 했다.
총독 유고 사태가 널리 알려지기 전까지는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 어느 정도 숨을 돌리면서 테러로 무너진 도시와 공장을 재건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격화된 저항운동과 이를 진압해야 할 경찰 조직의 줄지은 투항으로 인해 제때 복구되지 못하는 시설의 숫자가 늘어만 갔다.
식민 통치자들의 힘을 꺾기 위해 테러를 감행한 장본인인 인민당원들조차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하였고, 돌격대의 머장인 범혁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뭐라고! 짭새놈들이나 빨갱이놈들이나 전투를 치르고 나서 도시 복구에는 안중에도 없다고! 그렇다면 우리 돌격대에서 나설 수밖에 없겠구만!”
인민당원들의 테러로 무너져 내린 행성들은 해당 행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던 루시드 인이나 친 루시드파가 아니라, 칼디르가 제작한 테라포밍 장치를 들고 온 돌격대원의 손에 의해 복구되었고, 돌격대원들은 칼디르의 힘으로 복구된 행성에서 탐욕스러운 부호들로부터 빼앗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민심을 얻고 칼디르의 이름을 드높였다.
“Sieg heil(지크 하일: 승리 만세)!”
돌격대원들이 행하는 기적 앞에 고향을 잃고 타 행성을 전전하던 시민들이나 인민당에 몸을 담은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인민당원들은 한쪽팔을 높이 뻗쳐 올리며 정부...가 아닌 칼디르 개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른바 ‘친위대식 경례’라는 이름이 붙은 이 간단한 경례 방식은 총독 유고 사태에 관한 정보가 퍼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경찰보다 더 좋은 무기, 예컨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법한 군부대의 상황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루시드 제국 정부는 아틀란티스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고 있던 전략 핵무기의 9할 이상을 써버렸고, 경제가 잃은 와중에 신규 생산은 요원한 일이었기에 폭동 진압에 섣불리 투입할 수 없었다.
어차피 전략 핵무기의 통제권은 칼디르의 딸내미, 플랑에게 넘어간 뒤라서 상황을 급반전시킬 수는 없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