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파렴치한 짓: 4화
샤워실 안은 두 가지 종류의 열기와 습기로 가득했다. 하나는 칼디르가 다시 켜놓은 샤워기에서 내려온 온수로 인해 생긴 것이고, 또 하나는 칼디르와 공주님의 부드러우면서도 질펀한 섹스로 인해 생긴 것이었다.
화날 때는 섹스를 통해서 화를 푼다. 슬플 때는 섹스를 통해 위로받는다. 즐거울 때는 섹스를 통해서 즐거움을 배가한다... 어떠한 감정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섹스라고 할지라도 그 종착점은 섹스로 향한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대강 이런 식의 알고리즘이 박혀 있기라도 한 건지, 어느 한쪽이 진지하게 슬픔을 토로한다는 상황에서도 잘도 분위기를 섹스 쪽으로 몰고 갔고, 그 결과는 아주 화려했다.
두 사람이 흘린 씹물만큼은 샤워기에서 흘러나온 온수를 따라 배수구로 빠져나갔지만, 밀폐된 샤워실 안에서 두 사람이 질펀하게 즐기면서 생산한 색기와 칼디르의 유혹 페로몬만큼은 어쩔 수 없었고 이는 그 둘이 몇 시간 동안이나 즐겁게 뒹굴며 놀았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샤워실 바닥을 자세히 한 번 살펴보면 씹물이 완전히 씻겨 내려갔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간간히 샤워기를 꺼둔 채로 떡을 치다 보면 바닥에 고여있던 물에 씹물이 섞여 들어가 끈적해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지금 샤워실 바닥은 접착력이 약한 물풀을 한가득 발라놓은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다.
가뜩이나 열기 때문에 숨을 쉬기도 힘든데 환기도 한 번 하지 않고 페로몬으로 범벅된 공기로만 숨 쉬고 있으니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 지경이었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가는 미끌거리는 씹물+물 혼합액에 미끄러져 넘어질 것만 같았다.
이러한 색스러운 상황 속에서 모처럼 머리 쪽으로 돌아왔던 공주님의 뇌도 다시 보지 쪽으로 출장을 나갈 각을 보고 있었는데, 그 증거로 조금 전에 또 한 판을 끝냈는데도 공주님의 손은 칼디르의 젖가슴을 향했다.
주물럭, 주물럭... 딱딱한 샤워실 바닥에 나란히 누운 채 옆에 있는 칼디르의 젖가슴을 내 가슴인 것처럼 손을 뻗어 만진다... 이건 따로 머리로 생각이라는 걸 하고 실행에 옮긴 행동이라 할 수 없었고, 성욕이라는 것을 가진 지성체라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의 발로였다.
공주님께서 가슴 애무를 해주자 원래도 함몰 유두가 아니라 툭 튀어나온 상태였던 칼디르의 분홍색 유두는 짜릿한 감각에 더더욱 힘차게 일어섰고, 그 끝에서는 신선한 모유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정말 좋았어, 마키야... 너도 이제 기분이 좀 풀렸니?”
칼디르의 기분 좋은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절정의 기운을 가라앉힌 공주님이 칼디르의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이 말씀하셨다. 훅~ 우물우물... 말을 끝내고 나서 바로 그녀의 귓구멍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고 귓불을 이빨로 살짝 깨물고 깨작거린 것은 덤이었다.
“네, 공주님... 오늘은 그동안과는 다르게 저를 부드럽게 안아주셔서 좋았던 것 같아요. 공주님이라면... 평소처럼 제 몸을 거칠게 탐하셨다고 하셔도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을 것 같은데...”
칼디르의 대답에는 거짓이 없었다. 레즈비언의 성정체성을 가지고 가짜 딜도도 아니고 실제 남성의 것을 만진 것에 대한 충격이 컸다고는 할지라도, 그녀는 결국 섹스를 추구하는 색녀였고 공주님과의 질펀한 섹스는 진한 우울감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어쨌거나 나와의 섹스가 분풀이에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겸사겸사 내 끓어 넘치는 성욕과 찜찜한 기분을 푸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고 말이지... 으흐흐... 이제는 설탕이한테 내 처녀막을 빼앗겼다는 사실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서큐버스의 세계에서는 비처녀가 흔하고, 처녀 쪽이 훨씬 드물기도 하니까.
“그건 안 될 말이지, 마키야. 설탕이한테 심한 짓을 당하고 돌아온 네가 심한 짓을 또 한다니, 나도 악마는 아니란다.”
“저, 저는... 설령 공주님께서 악마라고 할지라도 좋아요... 공주님이라면... 기, 기꺼이... 제 몸을 바칠 수 있어요...”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공주님께서는 악마의 일족인 서큐버스의 피를 1/2이나 물려받은 존재였지만, 이 분위기에서 그건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였다. 천사면 어떻고, 악마면 또 어떤가? 꼴리면 그만이지...
아, 시발... 생각해보면 천사 쪽이 타락시키는 재미가 있어서 더 꼴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난 천사 종족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거라도 있다면 우리 마키를 시켜서 찾아낸 다음 우리 부부의 집안일을 시킬 메이드로 고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공주님의 머릿속에서 이미 두 사람은 예쁜 손녀까지 낳은 상태였다. 설탕이...? 음... 상황에 따라서는 첩 자리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다만, 일이 잘못될 것 같으면 시스콘 말기인 여동생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수도 있다... 아무튼, 잠시 딴생각에 빠지셨던 공주님께서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쉿. 우리 이쁜이. 몸을 바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네 몸은 이미 내게 바쳐진 몸인데, 어떻게 두 번씩이나 내게 바칠 수 있다는 거야?”
“그...건... 저는 사실 분신 능력자에요... 다른 사람 앞에서 선보인 적은 없지만... 공주님의 젖꼭지를 빠는 동시에 보지까지 빨아드릴 수 있어요...”
오우, 쉣... 그건 좀 꼴리는데. 잠깐, 우리 마키의 처녀막은 내가 차지한 지 오래인데 그 상황에서 분신을 만들면 그건 처녀일까, 비처녀일까? 또, 칼디르가 분신을 만들어내서 그 분신과 함께 성행위를 즐기면 그건 자위일까, 섹스일까? 이는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 공주님은 칼디르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던 손을 아래쪽으로 내려 보지를 애무하는 일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이는 인간의 본능에 새겨진 일이니만큼 잊어버릴 수가 없기는 했다. 암,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굳이 분신까지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우리 마키는 여태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도 내게 고용된 암 노예로서 잘해낼 거라고 믿어.”
이것은 매도라기보다는 공주님께서 칼디르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었다. 그 내용은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성적 학대를 당했음을 주장하던 거유 미소녀에게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공주님이 얼렁뚱당 생각하기에, 칼디르는 정실부인으로서 오로지 자신만이 바라볼 수 있는 여인이어야만 하고, 단 한 명만 존재해야 하는데 여럿이 나돌아다니면 그건 그다지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레즈비언 하렘을 차리려면 마키에게 분신 생성을 명령하느니, 차라리 불법 노예 시장에 가서 암 노예를 추가로 사오고 말 것이다.
“흐읏, 공주님... 제 보지를 만지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으읏, 저, 여태까지 공주님께 봉사하면서 100% 완벽하게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공주님의 완벽한 암 노예로서 활약해보일게요...!”
“그래, 이렇게 나와줘야 내 여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
환희에 찬 칼디르의 대답을 들으면서 공주님께서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으셨다. 설탕아, 네가 거하게 삽질을 해준 덕분에 내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겼다. 나도 삽질을 많이 하긴 했지만, 으레 어떤 여캐를 공략하든지 간에 삽질을 덜 하는 쪽이 경쟁자를 제치고 원하는 것을 얻기 마련이다.
그래도 아직은 설탕이에게도 마키를 공략할 기회가 남아있을지 모르니 확인차 질문을 해본다.
“그런데 너... 설탕이한테 그런 파렴치한 짓을 당했는데도 아직 마음이 남아있기는 한 거지?”
“네... 네...? 아, 그, 저어... 슈가라면... 저와 아기 때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기도 하고... 지금은 이래도 어릴 때는 순수하게 저를 좋아해 줬던 아이였던지라...”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우리 마키가 저렇게 말하는 걸 봐서는 진짜로 설탕이에게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고, 그 시절의 추억이 있기에 이번 일만으로 설탕이와 우리 마키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관계가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
“설탕이의 순수한 시절이라니,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그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고 싶네. 거기에는 우리 마키가 볼살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빵빵하던 시절의 모습도 들어있겠지?”
“공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가 어릴 때의 사진을... 드릴게요...”
“그때를 기다릴게. 우리 마키는 지금도 충분히 귀엽지만, 어릴 때는 얼마나 귀여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걸.”
그래... 생각해보면 소꿉친구 히로인인 설탕이를 상대하는 일인데, 나도 처음부터 ‘몽마의 권역’이니 뭐니 하는 같잖은 능력에 의존하는 대신, 지금처럼 사람과 사람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통해서 인연도를 올리면서 공략을 해나가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뭐라도 내가 우리 마키와 함께 한 시간보다는 설탕이가 마키와 함께 한 시간이 훨씬 기니까, 추억도 이것저것 쌓아뒀겠지. 나는 어린 시절에 마키와 함께 찍은 사진조차 없지만, 설탕이라면 그런 것쯤은 기본적으로 있을 테고.
도대체 그때 그 시절에 어떤 추억을 쌓았길래 그녀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 추억이라는 게 슈가와의 교류를 통해 어떠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기억일 수도 있으니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도 양심이 있는 년이다. 조금 전까지 내가 마키를 달래주던 상황이었는데, 이것을 한순간에 틀어버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칼디르의 보지를 들락날락하던 공주님의 손가락이 더욱더 빨라지더니, 이내 야릇한 향기를 내뿜는 애액을 한 움큼 끌어내셨다. 몇 시간 동안이나 떡을 친 뒤에 맞이하는 절정인데도 칼디르의 보지에서 튀어나온 애액의 양은 상당했다.
아, 아아... 바들바들... 칼디르가 수줍게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들춰 올린 채로 가볍게 경련했다. 그 경련을 일으킨 범인인 공주님께서 피식 웃으시더니 슬며시 칼디르의 몸 위에 타셨다. 역시 나는 진지한 분위기나 이성적인 판단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는 여자다.
“지금부터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아...? 설탕이와의 추억 따위, 뒤덮어버릴 만큼 애액을 많이 싸게 해줄게...!”
얼굴에 색기를 한가득 띄운 칼디르를 상대로 호언장담한 대로, 그날 밤 공주님께서는 칼디르와의 인연도를 엉망진창으로 올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