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파렴치한 짓: 1화
칼디르가 OKW 건물 안에서 양질의 포르노 영상을 몸소 제작해 보인 뒤, 슈가로부터 배통을 넘겨받아 그 귀중한 작품을 완성시킨 공주님께서는 이에 더없이 만족하시면서 일하러 나가는 칼디르에게 추가 포르노 촬영 명령을 내리시지는 않고 가끔 칼디르가 전송해오는 알몸 셀카나 메시지 등을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셨다.
“오... 이히히히... 우리 마키가 또 사진을 보내줬네. 이번에는 또 어떤 사진일까?”
이번에는 킴... 김범...혁...?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외간남자를 보러 간다고 했지? 근데... 우리 마키가 외간남자를 만나러 간다고 하는데 왜 외간여자를 보러 간다고 할 때보다 더 안심되는 건지 모르겠네.
내 기억 상으로는 우리 마키가 일 때문에 외간여자를 보러 나간 일은 아직은 없는 것 같지만... 만나봐야 할 사람 중에 여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단 말이지?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그년은 안중에도 없고 주변에 죄다 땀내 나는 수컷들밖에 없어서 안심해도 될 것 같네.
칼디르가 여자를 멀리하고 외간남자와 함께 돌아다니는 틈틈이 나무 뒤에서 나머지 옷가지는 고스란히 벗어놓은 채로 알몸에 와이셔츠만 걸친 채로 아랫배에 새겨진 자궁 문신 위에 손 하트를 그리는 등 각종 부끄러운 셀카를 찍어서 보내주는 데다, 메시지와 통화도 꾸준히 보내오고 있으니 공주님께서 불만을 느낄 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 봐봐. 그래도 나무 뒤에 숨어서 찍은 사진이랑은 다르게 이건 완전히 탁 트인 공간에서 맨 엉덩이를 쭉 내밀고 찍었네? 요건 또 어떻고. 보지가 잘 보이게 다리를 쩍 벌리고 찍었잖아? 몸을 거칠게 움직이느라 내가 힘들게 새겨준 키스 마크는 많이 지워진 것 같지만, 그거야 채찍질로 벌충해주면 되는 문제고.
역시 저번에 암캐로서의 본분이 무엇인지 철저히 그 몸에 각인해준 보람이 있었다. 가정에도 충실하게 됐고, 그 가녀린 여자애는 어디 가고 없고 우락부락한 남자들을 곁에 두고 옷을 벗어 던질 정도로 과감해지기까지 했잖아?
우리 마키, 왜 이렇게 알몸 셀카에 열중인 걸까? 이번에도 일찍 들어오기에는 곤란한 사정이 생겨서 미리미리 조공을 가져다 바치기로 한 걸까? 이렇게 열심히 알몸 셀카를 찍으면 내게서 용서를 좀 더 쉽게 받아낼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윽... 뭐, 뭐야... 이건... 내 목에 왜 주사기가 꽂혀있는... 갑자기 졸음이...”
공주님께서 칼디르의 알몸 셀카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어디에선가 마취제 주사가 날아와 그녀의 목에 정통으로 꽂혔다. 공주님께서는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리고 손으로 빼내려고 하셨지만, 그보다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털썩 쓰러지는 것이 더 빨랐다.
“끄으윽... 끅... 비, 비겁환 뇬... 자기 차뤠가 됐다구 바로 마취제를 꽂와서... 재워버리는 궤... 어디 있워...! 이건 그때의 복, 복수다... 끅...”
공주님을 잠재운 범인은 솔트, 플랑과 함께 묶여 있던 슈가였다. (솔트, 플랑은 원래도 잠이 많던 애들이 중간에 한 번 깨어나서는 누가누가 더 오래 자나 내기한답시고 다시 꿈나라로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며칠 새 지속해서 주사 당해 온 마취제의 영향력과 그녀의 몸을 결박하던 밧줄에서 겨우 풀려나와 공주님께 당한 것을 그대로 갚아준 슈가가 바닥을 기어서 어디론가 이동했다. 둔한 움직임을 봐서는 아직 마취제의 약효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뒤에 공주님께서 쓰러진 거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슈가의 손에는 날카로운 부엌칼이 들려 있었다. 그 새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정도로 힘을 회복했는지 슈가는 두 손으로 칼을 잡고는 공주님의 몸 위에 올라탔다.
“으아아아... 약속이고 뭐고... 나르을... 마취제로... 재우다뉘... 재워서 내 칼디르를 독점하려 하다뉘... 죽어버려!”
슈가의 마음속에 잠들어있던 얀데레 인격이 어디 가버린 건 아니었는지 그녀가 내지른 부엌칼이 공주님의 얼굴 바로 위에까지 닿았으나, 피가 튀기는 일은 없었다. 공주님께 당했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질러 버리려 했던 슈가였지만, 아랫배의 자궁 문신이 큥큥하고 울리면서 그녀를 막아섰다.
안, 안 돼... 못하겠어... 자궁 문신을 통해서... 공주님을 향한 칼디르의 마음이 새어 들어오고 있잖아... 칼디르는 공주님을 사랑해... 나, 나도... 공주님을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슈가는 결국, 또 한 명의 히로인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잡아놓고도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해 칼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공주님의 몸 위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플랑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몸을 뒤적거려 마취제 해독제를 찾아내어 자기 몸에 주사했다. 해독제를 맞으니까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이제... 공주님을 솔트와 플랑 쪽에 끌고 가서 내 몸을 묶던 밧줄로 공주님을 한데 묶어 놔야지. 끄응, 공주님... 날씬한 줄 알았는데... 내가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약한 곳에서 자라서 힘이 안 받는 건가? 왜 이렇게 무거운 것 같지... 끄응, 차... 됐다... 드디어 옮겼다... 그리고...
“오늘이 도대체 며칠이지?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다면... 아무리 그래도 며칠을 내리 굶기면서 마취제만 놓아주는 게 어디 있어... 칼디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공주님께서 칼디르와 연락을 취할 때 쓰던 홀로그램 스마트폰은 이제 슈가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잠들어있던 사이 스마트폰에 전송된 칼디르의 알몸 셀카와 메시지, 통화 기록 등을 통해서 칼디르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공주님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를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키스 마크... 많이 지워졌지만... 없어진 개수만큼 알몸 셀카 찍어서 보내드릴 테니 제발 채찍질만큼은... 참아주세요...? 허어, 답 없는 마조 년일세... 내 소꿉친구만 아니었더라면 벌레 보는 눈으로 봐줬을 텐데...”
그나저나 칼디르의 알몸에 키스 마크를 새겨서 직장에 내보내는 건 내 아이디어였을 텐데, 공주님이 어느 틈에 그것을 보고는 옳다구나 싶어서 훔쳐 가기라도 한 걸까? 그걸 인질로 삼아서 알몸 셀카를 받아 내다니... 공주님 머리가 나 보다 더 좋은 것 같네...
“이런 파렴치한 짓... 내가 먼저 칼디르에게 시켜봤어야 하는데... 두 번째는 안 하느니만 못하겠지... 아니, 못할 건 또 뭐람...? 나도 칼디르에게 이것저것 시켜보실까...?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메시지를 많이 남겨놨데...”
칼디르가 남긴 메시지를 좀 더 살펴보니, 관계자에 관한 평가도 있었다: 김범혁.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는 않았으나, 부족한 경험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초능력과 괴력을 소유하였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사람이 많은데 고등학교까지 조기에 졸업하여 지식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음. 또한, 파시즘에 충실하여 향후 배반의 염려 없음.
언젠가 세워지게 될 ‘아틀란티스 라이히’의 부총통 겸 ‘아틀란티스 국민 파시스트당’의 부당수, 그리고 정보기관의 총수와 ‘무장친위대’의 총사령관으로 적합한 인물.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으므로 접근 시 위험(?)에 처할 염려 없음.
아무리 여자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 칼디르의 알몸을 보고도 자지를 껄떡거리지 않을 수 있다고? 거 참, 괘씸한 놈이네. 우리 칼디르가 그렇게 매력이 없는 여자야? 이거... 덩치만 컸지, 순 고자 아니야?
그로즈니나 카이프 같은 사람들이야 칼디르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가정도 있으니까 칼디르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쳐도... (그 반대라면 페도필리아라는 소리가 되는데?) 공주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똑같이 나이 많고 가정도 있는 빌뇌브 같은 사람들이 칼디르를 탐낸 적이 있는데 말이지.
정말 칼디르의 색기 있는 몸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거야? 메시지를 보니까 정말 지 일만 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칼디르는 물론이고 여자 쪽은 아예 눈길도 주지 않네. 뭐... 그러면 칼디르가 자지의 참맛을 깨닫고 이성애자가 될 일은 없으니까 내게도 몹시 나쁜 일은 아닌 셈인가...
그래도 확인 차 내가 먼저 연락을 넣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뚜르르르...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지나간 뒤, 칼디르는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전화를 받아들었다.
“공주님...이신가요...? 아니... 슈가잖아...? 슈가야, 무슨 일이야? 공주님은 또 어디로 가셨고?”
“우리끼리 맺었던 약속을 어기고 나를 마취제로 푹 재워두신 그 괘씸한 공주님이라면, 내가 똑같이 마취제를 꽂아서 재워드렸지. 그건 그렇고, 칼디르. 너 지금 외간남자들이랑 돌아다니면서 재미있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재미있는 짓’이라고 한다면 근육이 대단한 아재들이랑 엮여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뭐 그런 소리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정치깡패로 삼아 파시스트당의 영향력을 넓히는 활동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칼디르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봐서는 아무래도 전자를 지칭한 말로 오해해버린 모양이지만. 뭐에요! 머릿속에 음란한 생각만 가득 차 있는 이 창년이 내 소꿉친구라니...! 볼살이 탱글탱글하니 무진장 귀여웠던 순둥이를 돌려주세요! 뭐,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신에게 빌어봐야 들어줄 리도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해볼까.
“칼디르, 급작스럽겠지만... 내가 두 가지 미션을 제시할 테니 하나를 선택해서 수행해. 첫째, 그 킴...인지 뭔지 하는 남자의 정액을 세 개의 구멍에 한가득 받아서 온다. 둘째, 그 사람이 잠들었을 때 몰래 그 곁에 알몸으로 다가가서 그 사람의 웃옷을 벗기고 오해를 받을 만한 셀카를 찍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두 번째 미션을 고르면 기껏 앞으로는 일찍 퇴근하겠노라는 약속이 무색해지게 늦게 퇴근하여 채찍질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고, 첫 번째 미션을 고르면 그 킴...이라는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꼬이게 된다.
“호, 혹시... 세 번째 선택지는 없는 거야? 난... 죽음을 택할래...!”
“하아... 이미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공주님의 명령을 따라 파렴치한 짓을 몇 번이고 저질렀을 우리 칼디르가 이제야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내게 애원한다...라. 응~ 봐주는 거 없어~ 며칠이 걸려도 미션 하나는 수행해야 집에 들어올 수 있을 줄 알아~”
적어도 자궁 문신까지는 보이게 셀카를 찍어서 슈가가 만족해주겠지... 으으으... 칼디르는 고민 끝에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로 하고는, 자기가 정부 쪽 사람과 연락을 취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범혁을 한 번 살펴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