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9화 〉파시스트 돌격대(SA): 4화 (159/225)



〈 159화 〉파시스트 돌격대(SA): 4화

범혁의 밑에 모여든 인원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애초에 ‘좆같은 빨갱이 새끼들을 치료(물리)해준다’는 명목으로 모인 사람들이었기에 칼디르가 제공하는 의약품이나 식량, 명령서 따위의 것들을 전달해주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야 이 새끼들아, 너희도 언제까지 깡패 짓이나 하고 다닐 거냐? 좋은 일도 좀 하면서 이름도 날려야지! 그리고 이게 다 ‘나라님’께서 시키신 일이라 충실히 하기만 하면 출세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말씀이야.”

범혁이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원형으로 둘러앉은 주먹패들을 향해 칼디르의 제안을 모두 설명해준 뒤에 그렇게 크게 한 번 소리친 다음에야, 주먹패들 사이에서 생각보다는  만한 일인  같다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래... 대장 말이 맞아! 우리도 언제까지 뒷골목에서 깡패 짓이나 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거잖아?”

“이제는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업보를 청산할 때도 됐지. 천국에 가려면 지금부터 부단히 노력해야지.”

“옳소! 업보도 청산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받고, ‘나라님’으로부터 신임도 얻을 길이라면 당연히 걸어가야지!”

범혁이 가장 먼저 언급한 ‘나라님’이라는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해석하기에 따라 주먹패 무리에게 명령서를 내려보내 준 아틀라인 서기장일 수도, ‘미래의 총통’인 칼디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는 주먹패들의 앞에서 굳이 그런 복잡한 사정을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이들을 설득하는  성공함으로써 리더십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다. 물론 정치깡패의 성격을 어느 정도 띈 채로 모인 이들이니만큼 조금 전에 내뱉은 한마디로 완전히 넘어오지는 않았고, ‘사람들을 도우면서 겸사겸사 빨갱이들도 좀 두들겨 패주자!’는 말까지 한 다음에야 의견을 한데 모을  있었다.


범혁은 그 기세를 그대로 밀어붙여 조직의 이름을 뭐로 정하느냐 하는 문제도 마저 손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정해진 조직의 이름은 ‘돌격대(SA)’. 그리고 그동안에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총기와 제복을 아무거나 골라다 입어서 덩치들의 차림새가 제각각이었는데, 이름도 정한 겸 칼디르로부터 지원을 받아 무장과 복식을 통일할 수 있었다.

“흐흐흐...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제복을 입고 돌아다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때, 내 모습이 어떤가?”

“자네, 보기보다 제복이 잘 어울리는구만. 어디 제복뿐인가? 무기까지 듬직한 거로 들고 있으니 자신감이  솟는 느낌이네.”

이로서 단순한 깡패가 아니라 완연한 정치 깡패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데다 정규군에 공급된 것과 동일한 병기로 무장하여 화력마저 충실히 갖춘 돌격대원들은 자신감을 만땅 충전한 채로 거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남은 하루는 제가 돌격대 일동을 따라다니면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총통님.”

“그래, 여태까지 내 힘과 초능력을 훈련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네가 따라와 준다면야 걱정이 한결 덜하지.”

칼디르가 기꺼이 그들의 뒤를 따라와 주었기에,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쉽게 알  있었다. 그들은 가장 먼저 서기장의 명령서와 부총독 쿠데타 건을 전달해준다는 명목으로 열악한 통신망 탓에 중앙당과는 괴리되어 있던 인민당의 현지 조직과 접촉하기로 했다.


그들과 접촉하여 여러 가지 물자를 전달해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고, 돌격대원=중앙당과 현지 조직을 연결하는 연락책 내지는 중간 관리자 정도로 인식하게 하고, 겸사겸사 실전을 겪으면서 부족한 경험을 쌓는 것이 이번 접촉의 목표였다.


중간 관리자의 지위만 확고하게 굳혀도  조직의 사이에서 수작을 부려볼  있을 법했지만, 칼디르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통신망  통역 문제 개선 작업에 진척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틈새에 파고들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데다, 돌격대의 주 무대였던 태양계를 벗어나서 접촉해야 할 조직의 숫자가 많았기에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빨갱이 새끼들은 점조직으로 모여 다닌다고 하던데, 나중에 어디 가서 어떻게 잡아들여야 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서 좋군.”

극렬 반공주의자를 자처해온 범혁은 공산주의자들의 틈바구니에 직접 숨어들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금 만나러 가는 이들의 신상을 기억해놨다가 나중에 공산주의를 이 땅에서 박멸하는 작업을 진행할 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와 접촉한 인민당의 현지 조직원들은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서기장의 명령서를 받아왔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고 그가 제공하는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뭐, 중앙당의 지원을 받기 힘든 현지 조직의 입장에서 약품과 식량이면 언제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기에 설령 돌격대원들의 정체가 파시스트 성향의 정치깡패였음을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방사능 관련 질병으로 저희 당사에 실려 오는 환자들을 도저히 감당할  없었는데...  정도 숫자의 약품이라면 환자들을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기장 동지의 명령서와 함께 이런 귀중한 물건들을 전달해주시다니... 정말이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무슨 그런 말씀을... 루시드 인들을 상대로 투쟁하는 동지 사이에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범혁은 공산주의자를 상대하며 속으로는 토악질을 참으면서도 겉으로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일  있을 정도의 인내심은 가지고 있는 사내였고, 덕분에 인민당의 배려를 구하여 돌격대의 도움이 필요한 많은 민간인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칼디르가 직접 만든 치료제와 백신은 부작용이 일절 없었고, 덕분에 돌격대원들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당장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당장 부족한 식량을 제공함으로써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숭고함’이라는 가치를 파시스트당의 당세를 키우기 위한 일개 수단으로 삼은 셈이었다.

돌격대원들의 진심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위기에서 벗어난 많은 이들은 그들을 향해 진심 어린 감사를 보냈고, 더러는 돌격대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칼디르의 도움을 구해 최적의 경로로만 움직이면서 이렇게 접촉을 이어나가니, 들인 시간에 비해 많은 사람과 만나고 적지 않은 숫자를 포섭할 수 있었다.

이쯤 되면 부총독 쿠데타 건을 전달해주는 일(다들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너희도  믿기냐? 나도 그래, 시발.)은 뒷전이 되고, 인민당원들과 안면을  것을 계기로 그들이 데리고 있던 민간인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일이 주가 되는 것 같다.


아주 말단에 속하는 인민당원들의 경우, 중앙당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지 오래되어 그 마음이 중앙당에서 상당히 벗어난 상태였으므로 단순히 안면을 트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필수 물자 제공+대중 연설을 통한 이념 주입 신공 전법을 써서 아예 해당 조직 자체를 파시스트당의 일원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말로 해서 안 듣거나, 우리의 호의를 무시하고 물자만 쏙 빼먹고 튀려는 것들은 돌격대원들이 기꺼이 나서서 치료(물리)해주었는데, 돌격대의 대장을 자처한 범혁은 이 과정에서 힘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주먹 한 방에 배때지를 관통해버리거나, 손에 약간 힘을 쥐는 것만으로 목을 뽑아버리거나 하면서 손에 피를 묻혔다.

그래도 그들의 진정한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칼디르의 뜻이 피를 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싸움의 규모가 커지는 일은 없었다.

지금 당장 인민당원들을 대놓고 탄압하는 대신 그들을 흡수하자는 것은 순전히 그녀의 아이디어였고, 이는 그녀가 공산주의를 ‘절대 악’으로 바라봐온 범혁과는 다르게 ‘치유 가능한 전염병’으로 간주하기에 나올 수 있었다.


“아니, 어차피 빨갱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 하니... 다 때려죽이는 대신  조직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이득이잖아?”


범혁이 보기에, 공산주의자를 ‘모조리 죽여 없애야 할 놈들’이 아니라 ‘파시스트당의 치료(물리)를 필료로 하는 전염병 환자’들로 보고 그들을 절멸하는 대신 치유하고 그 조직을 송두리째 흡수하자는 칼디르의 의견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고, 돌격대의 대장인 그가 그녀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기로 함으로서 모든 작업은 수월하게 이루어질  있었다.


그날 하루에만 해도 수십 개는 족히 되는 행성에 돌격대 지부를 창설할 수 있었고, 이는 언어의 장벽과 ‘외계인놈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돌격대장 김범혁의 편협한 인식에 가로막혀 태양계 안에서만 활동할 적에는 상상도 할  없었던 확장 속도였다.

돌격대의 이러한 활동을 막아야 할 의무를 진 경찰 조직은 원래부터 있던 공산주의 조직을 막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던 데다,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고문하거나 삥을 뜯는 솜씨만 유별나게 뛰어났기에 여차하면 실력을 행사할 생각까지 하면서 돌아다니는 돌격대원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성공적이로군...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야. 너를 보고 있으면 여자 중에서도 우리 파시스트당에 도움이  만한 사람을 많이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딱 100번째 돌격대 지부가 만들어졌을 때쯤, 범혁은 칼디르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는 딱히 여자들을 깔본 일은 없었지만, 그녀와 함께 일하다 보니 여자들과도 함께 이 일을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품게 되었다.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제가 책임지고 파시스트당에 입당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부총통님께서는 남성분들만 책임져주십시오.


“뭐, 그렇게 해라. 남자들의 세계에서 통하는 주먹의 법칙이 여자들의 세계에서도 통할지는  모르겠어서... 애초에 난 학교 다닐 때도 여자들하고 어울려본 적이 없거든.”

실제로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히틀러 총통’의 연설 기법에서 영감을 얻은 범혁이 몸소 행하는 연설이나 통렬한 죽빵  방이면 어렵지 않게 부하 삼을 수 있었지만, ‘여성’은 본래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던바, 범혁은 칼디르에게 맡기고 신경 끄기로 했다.

애당초 현시점에서 칼디르가 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남성 초능력자 및 주먹패들의 관리 정도였고, 그의 손에 여성 초능력자까지 들려주어 그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게 되는 것은 그녀가 바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펨섭이라는 사실도 잊은  그렇게 허세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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