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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화 〉파시스트 돌격대(SA): 2화 (157/225)



〈 157화 〉파시스트 돌격대(SA): 2화

칼디르가  루시드 저항운동 세력 내부에서 언어의 차이 통신설비의 미비점으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할 중책을 맡은 후, 분명히 아틀란티스 총독부에서 확고하게 지배 중인 영역 내에 있는 행성일 지구에서도 칼디르가 전하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전자신문 형태로  삐라는 문자를 모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구사하지 못하는 언어가 없는 칼디르의 육성이 들어가 있어 정보전달에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눈요깃거리를 제공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정보 수집 경로가 부족했던 많은 아틀란티스 인은 지나가다가 하늘에서 웬 삐라가 떨어졌다 하면 눈치를  보다가 몰래 한두 장씩 주워갔다.


라디오나 TV, 컴퓨터 같은 비싼 물건을 가진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일단 루시드 군의 방해전파를 아주 간단히 뚫고 곳곳으로 송출해주고는 있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인민정부의 뜻(을 빙자한 칼디르의 뜻)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다.


“아,  부분은... 그냥 언어의 뉘앙스 차이일 뿐입니다. 여기에 저의 정치적인 의견이 가미되어있는 것 같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설마, 증거도 없이 서기장님의 직접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시려는 겁니까?”

칼디르의 손에 의해 인민정부의 뜻이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경계하는 이들이 언제 한  그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으나, 그녀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이 일의 총책임자인 아틀라인 서기장이나 부책임자라   있는 케인스 위원장이 칼디르의 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기에 그녀가 이 일에서 손을 떼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설령 총독부와 친 루시드파 문벌귀족들이 이를 저항운동 세력의 짓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막으려고 들지라도,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는 칼디르의 텔라파시가 있어 인민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들의 뜻을 더욱 자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이는 작전의 효율성 증대(와 파시스트 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그대로 이어졌다.

총독부는 전방위로 가해지는 인민정부의 선전에 도무지 대항하지를 못했다. 총독이라는 놈은 공금을 횡령하여 현지 협력자와 도박을 즐기던 끝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꼴아 버리고 자기 부하의 손에 죽느니만 못한 꼴에 처하고, 그전부터 정보부라는 놈들은 정보를 줄줄 흘리고 다니던 멍청이들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나마 친 루시드파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총리대신 빌뇌브가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깨닫고 사비를 털어서라도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수천억 개에 달하는 행성계에 매일 같이 뿌려지는 선전물들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막을 것이며, 사전에 막지 못했을 경우 또 어떻게 수거할 것인가?

“이상하네... 아침에 봤을 때 비행기 같이 생긴  날아다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또 칼디르가 무슨 소리를 해놨나 살펴보실까?”


칼디르와 직접 대면하여 파시즘 이론에 관하여 몇 시간 정도 토론한 경험이 있는 범혁은 총독부가 확고하게 지배하는 영역 내에 있는 지구의 거주민으로서 길 가다가 발에  정도로 널려 있는 선전물들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다가 하나를 슬쩍 챙겨가려 했다.


“이봐! 거기, 덩치! 배포된 불법 선전물을 소지하면 처벌을 받을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 그거 순순히 내려놓고 손을 위로 들어 올리시지!”


그러자 그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뒤를 돌아보니 빌뇌브로부터 명령을 받고 나온 듯 보이는 경찰 몇 명이 범혁을 향해 소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했어도 분명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 골목에 숨어있다가 나온 건가?

범혁은  경관들의 속마음을 읽어보지도 않고도 자기가 무슨 수법에 걸려들었는지를 알아차렸다. 경찰 조직을 이용하여 배포된 ‘불법 선전물’을 어떻게든 수거하려 드는 빌뇌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패한 현지 경찰들이 만만한 놈 호구 잡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적당한 곳에 삐라를 뿌려 놓고 숨어있다가 들이치는 수법.

다만 그들이 돈을 뜯어내려고 선택한 ‘만만한 호구’가 정말 범혁이 맞는다면, 그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쿵... 쿵... 쿵... 190cm, 190kg의 거구를 자랑하는 범혁이 경찰의 지시를 무시한 채 땅을 울리며 걸어오자 경찰들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원근법이 잘못되어 있는 거 아니야? 멀리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놈, 왜 이렇게 큰 거냐...? 영양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이 160cm가 안 되는 아틀란티스의 형편을 감안하면 이제 15살에 불과한 범혁의 덩치는 정말 규격 외의 것이라 할 만했다.


어느덧 범혁과 경찰 무리 사이의 거리가 10m 이내로 좁혀지게 되자, 소총을 들고 있음에도 위협을 느낀 경찰 쪽에서 가타부타 경고도 없이 총을 쏘고 보았다. 타타타타탕-! 몇 명의 경찰이 동시에 소총을 연사로 갈겼으나, 놀랍게도 연사가 끝난 뒤에도 범혁은 멀쩡히 서 있었다.

멸종해버린 지 오래되었다지만- 곰이라는 놈이 그 덩치에 비하면 생각보다 민첩하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게 사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던가? 경찰들이 차마 소총을  갈길 생각도 못 하고 그를 귀신 보듯이 보는 틈을 타, 범혁은 경찰 무리의 코앞까지 다가서서 개중 하나의 소총을 뺏어 들었다.


꾸구구국... 범혁이 한 손으로 개머리판을, 한 손으로 총구를 짚고는 종이 접듯이 절반으로 접어버리더니, 이내 보기 좋게 두 동강 나버렸다. 이, 이것이 방산비리의 위엄인가...? 아, 아니... 그럴 리가... 아틀란티스 총독부의 부정부패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빌뇌브의 직접 지시를 받고 나온 우리 소총마저 저질일 리는 없는데...


범혁이 알루미늄도 아니고 티타늄 합금으로 만든 소총을 맨손으로 두 동강 내버리는 것을 본 경찰들은 그대로 저항 의지를 잃고는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올려 항복의 뜻을 내비쳤다. 일부는 무릎을 꿇을 생각도, 도망갈 생각도  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순사님들,  요즘 나랏일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이번 한 번만 좋게좋게 넘어갑시다. 입고 있는 제복이랑 갖고 계신 무기만  내려두고 가시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범혁의 처분만을 기다리던 경찰들에게 그의 말은 어두운 동굴 속에 깃드는 한 줄기 빛과도 같았고, 그들은 단 한 명도 남김없이 팬티만 빼놓고 옷과 무기를 땅에 놓아둔 다음 그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도망치기 바빴다.


쯧쯧... 사람들한테서 삥 뜯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한 짭새들 같으니라고. 범혁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선전물을 마저 줍고... 뜻하지 않게 생긴 부수입을 챙기는 일도 잊어서는  되겠지. 처음에는 무기를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겠는걸?

“와...하하... 방금 그거, 초능력도 안 쓰고 그냥 힘으로 한 겁니까?”

“말도 안 돼.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권총도 아니고 소총을 부숴버릴 수가 있지...?”

“야. 그게 대수냐? 총알을 피하는 건 또 뭐고? 이야, 참 대단했습니다, 대장!”


이번에는 부패 경찰들 대신 또 다른 이들이 어두운 골목길에서 박수를 치며 나타났다. 그들은 범혁이 나름대로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고른 주먹패들로,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아틀란티스의 정세를 감안하면 배운 것이 없는 것치고는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터였다.


골목길에서 한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주먹패들의 숫자는 눈대중으로 헤아려봐도 수백 명쯤은 되었는데, 범혁이 이렇게 많은 숫자를 끌어모으기까지 수많은 쌈박질이 있을  같았지만, 무시무시한 덩치와는 별개로 독서와 대중연설 같은 비교적 조용한 활동을 취미로 삼아온 그였기에 말빨로 부하 삼은 사람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적어도 김범혁 본인은 그렇게 믿고자 했다. 대개 주먹패들은 범혁이 ‘너,  부하가 되어라!’고 외치면 알아서 그의 밑으로 기어들어 와주었고, 호승심이 있는 이들도 그가 맨손 펀치  방에 20m가 넘어가는 바위를 산산이 조각내버리는 등의 기행을 일삼자 전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가 부하의 숫자를 늘리면서 피를 흘린 일은 없었다.


단순히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뿐이었다면 또 모르되, 범혁에게는 무리를 통솔할 머리도, 총독부의 무력에 맞설 초능력도 있었다. 주먹패들의 ‘대장’으로 추대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15살이라는 나이는 문제가 될  있었기에 그는 사람들 앞에서 곧잘 자기가 35살이라고 뻥카를 치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그의 덩치 때문에라도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도대체 저게 어딜 봐서 15살짜리의 덩치냐? 스테로이드제를 빨고 빡세게 운동해도  정도 근육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나하고 함께 일하기로 했으면 이제 슬슬 이런 일에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천만의 말씀! 언제 봐도 정말 신기할 따름입니다, 대장! 언제까지고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맞는 말입니다! 저 더러운 짭새 놈들로부터  세상을 구원할 협객은 대장뿐입니다!”

다만 범혁은 보기보다는 ‘실력 행사’를 꺼리는 성격이었기에, 주먹패들이 자신을 띄워주는 말에도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며 칼디르가 제작한 선전물을 주워다가 나눠주었다. 범혁은 요즈음 아무리 주먹패들의 본질이 쌈박질이라고 할지라도 머리에  게 있어야 밥값을 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그녀의 선전물을 교육 자료로 애용해왔다.


음, 칼디르가 자기 일을 잘하고 있나... 어디 나도 한 번 펼쳐 보실까. 칼디르가 거처하는 곳과는 수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범혁이 곳곳에 뿌려진 선전물의 배후에 그녀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선전물 구석구석에 ‘칼디르 아스트라’라는 이름이 박혀 있는데 눈깔 병신이 아니고서야 그걸 누가 모르겠나?

“나하고 칼디르하고 처음 만난 게   전의 일이었더라... 이런 일을 하고 있었던 거라면 그동안 나를 찾아오지 않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는 있지.”

그는 오늘도 상당한 품질을 자랑하는 칼디르의 선전물을 훑어 읽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칼디르는 기껏 범혁과 접촉해놓고 지난 몇 주간 아내들에게 둘러싸여 조련 당하고 남는 시간에는 높으신 분들 사이에 섞여 들어가 정치질을 하느라 그를 만나러 오지... 못하는 건지, 않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처음 얼마간은 칼디르에게 섭섭한 감정을 품으면서도 언젠가 데리러 오겠거니 기다리고 있던 범혁은 어느 순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칼디르가 언젠가 다시 지구에 오기 전에 쓸 만한 사람을 구해두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금 이곳에 모인 수백 명의 주먹패가 바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결과였다.

이제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모였겠다, ‘검은 셔츠단’과 ‘돌격대(SA)’ 중에서 무엇을 조직의 이름으로 삼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병림픽을 벌이는 중인데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라도 칼디르와 가급적 빨리 만나게 되었으면 한다. 현재로써는 범혁의 바람은 그뿐이었고, 수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칼디르도 양심상 이쯤에서 그와 다시 접촉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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