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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화 〉꿈과 희망의 공순이: 5화 (144/225)


  • 〈 144화 〉꿈과 희망의 공순이: 5화

    그로즈니가 케인스의 칼디르 지지에 자극받아 원수급 회담을 칼디르를 위한 무대로 만들어주고, 거기서 그녀의 육군 병기를 정식으로 채택한다는 결정이 떨어진  카이프는 이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한 실전 투입에 또다시 앞장섰다.


    “내가 앞장서겠소. 거참, 중간이름 달고 내가 귀족 가문 출신 도련님입네 하고 뻗대던 분들이 보급선 혼란 문제니 뭐니 장황하게 떠들어만 대고 직접 나설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육군원수께서도 귀족 출신이신데 그건 너무하신 처사가 아니요?”

    “육군 원수 각하께서는 적어도 여러분처럼 사령부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고, 보병 돌격진의 선두에도 서시지 않으셨소이까? 내 말이 틀렸소? 허허... 일단, 내 이번에도 몸소 성과를 거두고  터이니 이번에도 그 유용성이 입증되면 그때는 여러분도 이 신무기들을 전면적인 공세에 투입하는 데 동의해주셔야  거요. 알아들으셨소?”


    8호 전차는 ‘티렉스’라는 이명 때문에 아군이 엄청난 성능의 초중전차를 보유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이유로 ‘마우스’로 개명 당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갑 사단 10여 개를 이끌고 선봉에 서게  카이프는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굳이 귀족 출신 원수들을 상대로 어그로를 잔뜩 끌고 난 뒤에 출격하는 걸 보면.


    이런 걸 보면 낮은 신분에서 출발하여 실력만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높은 신분 출신으로 처음부터 남과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했던 이들을 무의식중에 깎아내리고자 하는 심리가 깔린 모양이었다. 그걸 그냥 허탈하게 웃으면서 받아주는 다른 사람들도 인내심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특히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스플뎀을 맞은 그로즈니.

    “칼디르 자네로부터 무기를 공급받을 만한 공간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테니, 자네는 그저 내가 다녀오는 동안에도 더 많은 ‘애마’들을 준비해주게나. 알겠나?”

    “예, 원수 각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원수 간의 인간관계는 저들끼리 알아서 하도록 하고... 원래는 제국이 자랑하는 6호 전차 티거를 애마로 삼아왔던 그가 티렉스를 애마로 호칭한다는 것만 봐도 이 물건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는 증명이었고, 칼디르는 그런 카이프에게서 포섭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국방군의 No.2를 ‘무장 친위대’의 아버지로 삼을 수 있다면 이는 더없이 좋은 일이 될 터, 앞으로도 꾸준히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칼디르가 생각하기에, 카이프는 현 국방군 수뇌부 중에서 ‘이른 시일 내로 포섭이 가능한 사람’  ‘가장 유능하면서도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다.

    칼디르의 무기를 정식으로 채택하는 문제에서 보여준 과감성은 조금만 엇나가면 미치광이 졸장으로 전락할  있는 원인이  수 있었지만, 그는 적어도 공명심에 눈이 멀어 자살에 가까운 공세를 시도할 인물은 아니었다. 보기보다는 신중하게 적을 밀어붙여 여러 행성계를 탈환하며 오래오래 살아서 파시즘 정권이 성립될 때까지 살아남아  사람이었지.


    설마하니 자기보다 수십 살은 어린 15살짜리 꼬마가 자기를 사상적으로 감화시키거나,  정권의 장수로 활용하기 위해 포섭하려 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을 테니 은근슬쩍 그의 일상에 파고들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는 비단 카이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요, 기성 정치가와 장성,  외 모든 인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칼디르 아스트라... 그런 이름을 가진 항공기 설계자는 들어본 일이 없지만, 이 전투기를 타보니 마치 천사가 뒤에서 밀어주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맞습니다. 루시드 군 항공기 중에서 그래도 최신식 워프 엔진이 부착된 제로센과 같은 기체들조차 저희가 저번에 몰고 나간 이 전투기를 감히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전투기도 그렇지만, 폭격기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어지간한 구축함만 한 크기의 폭격기가 기동성은 엄청나게 좋더군요. 나름 루프트바페의 에이스라고 자부해오던 저와 제 친구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육군 병기 외에도 워프 전투기 ‘슈발베’와 워프 전략 폭격기 ‘그라이프’ 등과 같은 공군 병기의 경우, 카이프의 보조로 따라나섰던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파일럿들이 긍정적인 조언을 해준바 역시 국방군의 보조 무기로 채택되어 첫 번째 실험 때보다 더 많은 수가 카이프의 기갑 군단에 따라붙을 수 있게 되었다.


    루프트바페는 전략 폭격기 명목으로 받아온 그라이프의 대수도 많겠다, 그중 일부를 수송기로 전용하여 카이프의 기갑 군단을 좀  빠르게 산지 직송해주는 역할도 도맡아 해주면서 그에게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아직도 루시드 군의 군홧발 아래 신음하는 수많은 행성을 탈환하는 일에 가속도를 붙여 주었다.

    이번 공세 역시 전체 전선에서 루시드 군을 압박하는 대규모 공세는 아니요, 실제로 그러한 규모의 공세 작전에 적극적으로 투입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한 사전 시험에 지나지 않았으나, 카이프가 어디 목표로 설정한 선까지 도달했다고 바로 멈춰 서버릴 남자던가? 사전 시험이고 뭐고 다 잊고 자기가 지칠 때까지 밀어붙일 인간이었지.

    “그래! 폭격기로 저 애미 뒤진 루시드 놈들의 대갈통을 터뜨려 놔라! 전투기로는 하늘에 놈들의 항공기 똥구멍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짓이겨 놓고!”


    목적지에 당도하여 폭격기에서 내린 후, 카이프는 원래 용도 그대로 폭탄과 미사일을 잔뜩 실어 와서 루시드 군을 향해 퍼부어대는 폭격기 편대를 향해 환호성을 보내주다가, 잠시 뒤에는 공군이 그렇게 루시드 지상군을 제거해버리면 기갑 군단이 활약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바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공군의 폭격으로 지상 목표물이 남아나지를 않으면 지상군은 도대체 어떻게 활약을 하지? 니미럴 루프트바페는 공중 목표물만 노려라! 물론 저 혼자 공적을  처먹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요, 그냥 심사가 더럽게 꼬인 사람다운 발언이었으므로 파일럿들은 통신망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으아아악!  미친 새끼! 보고에는 분명히 1개 기갑 사단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저, 저, 저 숫자는 도대체 뭐야?”


    “도망가라, 도망가! 우리에게는 저 전차를 격파할 방법이 없다!”

    불쌍하게도 카이프의 실험 대상으로 선정되신 루시드 군은 마우스가 아니라 티거나 판터, 아니, 그보다 더 찌질한 3호나 4호 전차에도 갈려 나가기 바쁜 족속들이었기에 모처럼 신형 무기를 전보다 대량으로 투입한 의미가 없었다.

    루시드 군이 마우스 군단의 공세에 직면하여 기껏 점령한 땅을 내놓고 물러가면 이게 마우스의 성능이 뛰어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입으로만 명예니 옥쇄니 하는 소리를 떠들어대기를 좋아하고 실상은 그 누구보다 도망가기 바쁜 족속들이라 빛의 속도로 밀려나는 건지 알 방법이 없다는 소리였다.

    공군도 그러했다. 원래도 루프트바페에는 100대가 넘어가는 격추 수를 보유한 에이스 파일럿이 득실득실 댔고, 어느 편대는 상당한 명예로 여겨지는 기시삽자 철십자 훈장을 일개 편대 마크로 여길 정도의 실력을 자랑해온바, 칼디르의 항공기를 도입하기 전이나 후나 제공권을 일방적으로 쥐고 흔드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적황군의 일원으로서 감히 전장을 뒤에 두고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너희 같은 비국민은 살아 돌아갈 자격이 없... 악!”


    “이 시발 새끼, 애국하고 싶으면 네놈 혼자서 지옥에 가서 실컷 하라고! 천황이고 지랄이고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지...!”

    루프트바페의 에이스 파일럿들을 앞세운 기갑 군단의 공세 앞에 노출되어 전의를 잃고는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자기네 병사들을 향해 권총을 쏘아대며 싸움을 독려하는 일부 루시드 군 장교가 보였으나, 궁지에 몰린 쥐새끼들은 고양이를 물어뜯었다.

    전장에서는 앞에서만 총알이 날아오지는 않는다는 격언을 무시한 자의 최후는 참으로 처참했다. 두개골이 터져서 뇌수와 피가 섞인 오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형태의 죽음이라니,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다.

    그보다 용기가 없었던 장교들은 병사들더러 후퇴하지 말고 여기서 자리를 지키다가 ‘옥쇄’할 것을 강요하고는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서는 몇몇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옥쇄’는 결국, 병사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놓고 도망 칠 시간을 벌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었다.


    원수급 회담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육군과 공군에 비하면 해군의 경우는  길이 좀 먼 것 같았다. 테라 마리네에 그로즈니의 고손자 되시는 오토 모리츠 아틀라스 비스마르크가 제독으로 계시는 바, 그로즈니의 입김을 어느 정도 받을 수밖에 없을 텐데도 그러했다.


    거대 병기라고 해봐야 200t짜리 마우스로 끝인 육군이나, 전장 200m짜리 전략 폭격기가 고작인 공군에 비해 해군 소속으로 넘어갈 병기 중에는 지구보다 훨씬  행성급- 정식명칭 그로스 테라(Groß Terra)급- 전함 같은 물건도 있었으니 검증에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긴 할 것이다.


    “아아니, 아무리 우리가 함선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카이저를 섬기는 긍지 높은 테라 마리네가 평민 계집이 만든 신뢰성 없는 함선을 채택해서야 쓰겠...나...?”

    ...라고 말하며 단칼에 쳐내기에는 그들이 보기에도 칼디르가 만들었다는 함선이 너무나도 크고 아름다웠기에 그들은 검증 작업에 꽤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칼디르를 소개해준 그로즈니와 카이프의 얼굴을 봐서라도 쉽게 내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로즈니는 몰라도 카이프의 호의를 무시했다가는... 무슨 욕을 들어 처먹으려고?

    “오토 제독이 먼저 나서준 데다... 카이프 놈도 칼디르라는 처자를 천거해주었으니, 우리도 그저 못 이기는  받아들여 주면 체면이 살지 않겠소?”


    “맞는 말인  같소. 그자가 천거한 사람을 아예 무시했다가는... 마침 테라 마리네도 대형 함선이 극도로 부족하던 참이었는데, 진실로 그 처자가 만든 함선의 유용성이 입증된다면 정식으로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겠소?”

    뭐, 그들도 결국에는 칼디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끝까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버티려는 자들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칼디르는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서 직접 그들이 품고 있는 의심과 불신을 풀어주는  온갖 노력을 서슴지 않았고, 여기에 그녀와 같은 과인 국방군의 공돌이들이 합세해주어 제독들을 설득하는 일은 쉬웠다.

    그래도 의심을 풀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칼디르는 손수 그로스 테라급 전함을 초고층 빌딩만  크기의 블록 단위로 해체한 뒤 다시 재조립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행성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건조된 함선임을 보여주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넘어오지 않는 이들은... 훗날을 위해 그 이름과 얼굴을 기억해두었다. 이것이 어디에 쓰일지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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