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총독부의 사정: 3화
춤과 노래도 좋고, 술도 좋으며, 계집은 더더욱 좋지만, 역시 연회장에서 도박판이 빠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도박판은 판돈의 액수가 크면 클수록 재밌어지는 법이요, 그런 의미에서 괴뢰 아틀란티스 제국의 총리대신인 빌뇌브와 총독부의 수장인 발틱이 벌이는 판보다 더 재밌는 판은 전 우주를 샅샅이 뒤져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판돈이 제아무리 크다 해도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 걸린 도박판이라면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게임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도박판을 벌이기 위해 연회장 거대 홀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온 공간에 따로 모인 두 사나이(+쩌리 몇 명)에게 불려 나온 초대녀들은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구경을 할 기회를 얻게 된 셈이었다.
“총리대신과의 게임은 언제나 즐겁고, 또 새로운 것 같소이다. 저 문 바깥에 있는 눈치 없는 것들은 눈치 없이 일거리나 갖다 주려고 드는데... 총리대신과 이렇게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걱정이 싸악 사라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허허, 총독. 아랫것들의 행태에 너무 마음을 두지는 마시오.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겠소이까? 그래도 총독께서 그리 좋아하신다면 다행이오. 하지만 그렇게 흰 말씀을 내뱉는다고 해도 이번 판을 그냥 넘겨드리는 일은 없을 거요.”
“이런... 벌써 노림수를 들켜버렸구만. 아아, 이번 판은 패도 말렸으니 다른 분들에게 용돈이나 드린다는 심정으로 임하겠소.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원.”
발틱이 ‘아틀랜디 담배’라 쓰고 생아편이라 읽는 그 물건을 태우면서 괜히 한 번 해보는 말에 빌뇌브 역시 넉살 좋게 받아주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참석자들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모두 숨겨진 의미가 있다고 보는 편이 좋았고, 역시 단수가 높은 빌뇌브는 발틱의 얕은수에 넘어가 주지 않았다.
“패가 밀리셨다고? 총독께서 선을 잡고 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대개는 ‘뻥카’라고 하는 말을 내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래서 얼마 거시겠소이까?”
“아니, 뭐... 이번 판에는 많이는 못 걸겠고... 가장 낮은 거로 ‘500’ 걸겠소.”
참고로 이 판에 올라와 있는- 가장 낮은 가치를 지닌 검은색- 동전에 인쇄되어있는 ‘10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행성계 100개’였다. 검은색 동전이 5개가 나왔다면 그 안에 들어있는 행성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천 개. 과연...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두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판이었다.
“패가 말리셨다고 해놓고 500을 거시다니, 얼마나 먹으시려고 벌써 이리도 시동을 거시는 건지... 그렇다면 나는 동색 동전으로 500을 걸겠소.”
“과연, 일국의 총리대신 다우신 베팅이오. 역시 남자라면 한 번에 크게 거셔야지. 그래서 다른 분들은 안 거실 거요?”
“저, 저는... 못 따라가겠습니다. ‘다이’하겠습니다.”
“저도 이번에는 빠지겠습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동전을 많이 가져오지 못해서...”
“허참, 게임이 이제 시작되었거늘 다들 이렇게 발을 빼버리시면 곤란한데...?”
검은색 동전보다는 가치가 한 단계 높은 ‘100’ 짜리 동색 동전에 걸려있는 것은 ‘행성계 500개’, 그보다도 더 높은 은색 동전은 ‘행성계 1,000개’, 금색 동전은 ‘행성계 5,000개’, 마지막으로 가치가 가장 높은 분홍색 동전은 ‘행성계 10,000개’였다.
우리 은하에 행성계가 수천 억 개는 족히 되니 판돈이 커지다 보면 가치가 가장 높다는 분홍색 동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오늘도 판이 그 정도로 커지게 될지 구경꾼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무튼, 총리대신께서 그렇게 과감하게 나오신다면 마땅히 따라가 드려야지. 한 단계 더 올려서, 나는 은색 동전 500으로 가겠소.”
“패가 말렸다 하시더니, 반어법이었소이까? 총독께서 거짓말을 일삼는 분이셨다니. 액수를 늘리는 수준에서 끝내시지 않고 아예 동전의 등급을 올리시는 건... 너무하지 않소?”
“쫄리면 뒈지셔야지요. 그래서 가겠소, 말겠소? 그것만 말씀하시오.”
“총독께서 올리신 판이니 나를 원망하는 일은 없으셨으면 좋겠소. 나도 한 단계 올려서 금색 동전 500으로 판돈을 올리겠소.”
초반부터 터무니없이 올라가는 판돈의 액수에 다른 참석자들은 기겁하며 빠졌지만, 두 사나이의 자존심 대결은 이제 시작이었다. 수 싸움이고 나발이고, 이쯤 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빠질 수가 없지.
참석자 중에서 자지들이야 그래도 어느 정도 돈 좀 만진다 하는 부자들이었지만, 쥐뿔도 없는 초대녀들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에 올라버린 판돈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기네는 온종일 몸을 팔아도 행성은커녕 위성 하나 사기도 힘든데, 이 남자들은 행성계 수백 수천 개를 아무렇지도 않게 판돈으로 내놓을 수 있다니.
판돈을 더 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발틱을 따라서 빌뇌브도 아틀랜디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풀풀 날리기 시작한 탓에 방 안 공기는 말도 안 될 정도로 탁해졌다. 이윽고 지독한 아편 연기가 방 전체를 한가득 메웠을 때쯤, 발틱은 결정했다.
“금색 동전 500 정도 가지고 되겠소이까? 분홍색 동전 1,000쯤은 되어야지!”
“총독! 아무리 우리 은하에 별이 많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베팅을 거시면 순식간에 개털이 될 거요! 초장부터 분홍색이라니, 정말로 괜찮으시겠소? 한 번쯤은 물릴 기회를 드리겠소. 이 기회를 놓치면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남자의 싸움에서 물린다니... 안 될 말씀이지. 그대로 갑시다.”
“그 용기가 만용이라는 사실을 곧 맞닥뜨리게 될 거요. 그렇게 나오신다면 나도 기꺼이 따라가 드리리다.”
이제 판돈을 거는 시간은 끝났으니, 패를 까볼 때가 되었다. 개봉 결과... 발틱이 가진 패도 상당히 좋은 패였지만, 빌뇌브의 패는 그냥 세계관 최강자였기에 발틱을 가볍게 누르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길래 누가 스트레이트 플러시 ‘따위’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님께 비벼보라고 했나?
“으아아아!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흐흐흐흐... 그러길래 상대를 보고 덤비셨어야 말이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도박판이라면 아주 그냥 꽉 잡고 있는데, 멋도 모르고 덤볐으니 바닥까지 털릴 각오는 하셨어야지. 보니까 첫판부터 대놓고 패를 주작해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내놔도 눈치를 못 채는 것이, 청정수 중의 청정수이신 것 같은데... 쯧쯧.
“다시, 다시 판 까시오! 이대로 잃고 갈 수는 없어!”
“아무래도 총독께서 뇌가 살살 녹으신 것 같은데... 더 잃기 전에 빠지는 것도 방법이요. 이만 빠지셔도 모른 척 해드리겠소.”
“이제 첫판인데 나 보고 빠지라니, 그게 할 소리요? 묻고 10배로 갑시다!”
발틱이 머리끝까지 오른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10배’를 외쳐 버렸다. 그것은 동전이 지닌 가치를 10배로 올려 판을 새로 시작하자는 말이었고, 빌뇌브는 첫판부터 그 얼굴에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정도로 야들야들한 ‘한낱 애송이’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도박이 이래서 무서운 법이다. 한 번 거하게 잃은 뒤에도 잃은 건 생각나지 않고 앞으로 먹을 ‘수도’ 있는 것만 생각나서 장기가 털릴 때까지 게임을 계속 돌리게 되니 말이다. 뭐, 제대로 호구 잡고 털어먹을 기회를 얻게 된 쪽이야 나쁠 것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소. 내 이번 판에는 도저히 질 수 없는 패를 손에 넣었소. 그런 의미에서, 동색으로 천.”
“도박판에서는 그토록 솔직하게 나오시면 안 되는 법인데... 뭐, 그 놀음에 기꺼이 응해드리겠소이다. 동색 천이라고 하셨지요? 나는 그것을 2배로 올려서 2천 걸겠소.”
“이보시오, 총리대신. 첫판부터 거하게 따셨다고 너무 기고만장해 계신 것 아니오?”
“패를 까보면 알게 되겠지. 그래서 더 걸겠소, 말겠소? 혀가 너무 기시군.”
첫판보다는 다소 소소한(?) 판의 승자는 발틱으로 결정 났다. 발틱은 일단 한 번 따고 나자 전 판에 거하게 잃은 건 생각도 하지 않고 막춤을 출 정도로 기쁘게 날뛰었는데, 사실 이는 그를 이 판에 오래 묶어두기 위한 빌뇌브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먹기만 해서는 적의 의심과 분노를 한 몸에 사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제 손으로 가르는 꼴이 되고 만다. 한 번 먹고 버릴 바에는, 이렇게 내어주기도 하면서 허파에 바람 좀 불어넣어 주는 편이 더 큰 이득을 얻는 길이다.
“10배판이니, 이거 나도 살 떨리는구만... 휴, 베팅 500배... 아니, 금색 500. 그러고 보니 총독, 요즈음 총독부의 재정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쯤에서 포기하시는 것이 어떻소이까?”
“제기랄, 그럴 수는 없소이다! 총독부의 재정 상황이야 내 알 바도 아니겠고!”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반복하는 빌뇌브의 수에 제대로 걸려든 발틱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 자기 돈뿐만 아니라 칼디르 칵테일을 생산하여 총독부의 재정을 보충한다는 핑계로 빼돌린 총독부 명의의 돈까지 마구 내걸기 시작했다.
쩌리들은 두 사나이의 진검승부에 가끔 참여하거나 강 건너 불구경하거나 하면서 소소하게 용돈을 벌어가기도 하고 크게 잃기도 했지만, 발틱만큼 크게 잃은 사람은 또 없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도 아직 나는 저놈만큼 잃지는 않았으니 더 걸 수 있다는 마인드로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간만에 지갑 좀 두둑하게 만들어서 갈 수 있겠구만. 발틱 놈이 내 지갑의 최대 주주이긴 하지만, 이놈도, 저놈도, 요놈도... 제법 쏠쏠하단 말이지.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야시시한 것이 자지가 꼴려서 내 취향에 딱 맞기도 하고. 빌뇌브는 속으로 실실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야, 이년들아! 눈치라는 게 있으면 내 자지를 빨고 대딸도 쳐주면서 기분을 좀 띄워나 줘봐라! 가만히 앉아서 뭣들 하는 게냐!”
“어엇, 그런다고 카드 운이 올라가지는 않소, 총독! 클클클...”
빌뇌브와는 정반대로 잃은 것이 너무 많은 발틱은 그 성정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급기야 옆에 앉아있던 초대녀들에게 괜히 화풀이했다. 입술 촉촉한 년들에게 자지 빨리면서 패를 뽑는다 해도 운이 확 올라가지는 않는 법인데, 왜 그걸 모르는 건지...
그래도 내 자지도 꼴려서 더는 못 버티겠네. 아, 나도 아무 계집의 입 보지에다가 자지를 좀 처박은 채로 카드를 돌려야겠어. 으핫... 그렇지. 자지 기둥 밑쪽을 혀로 핥아지면서 카드를 돌리니 더더욱 게임을 할 맛이 나는구만.
호기롭게 초대녀에게 자지 애무를 명령한 것과는 별개로, 발틱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빌뇌브에게 대가리가 깨져서 뇌수가 질질 흐를 정도로 잃기만 했다. 물론 뇌는 사르르 녹아 없어진 뒤였으니, 발틱의 의지에 의해서 베팅이 중간에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