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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3화 〉총독부의 사정: 2화 (133/225)


  • 〈 133화 〉총독부의 사정: 2화

    총독의 주최 하에 개최된 연회는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고, 결국 발틱 총독이 카이프가 이끄는 신규 기갑사단의 존재에 관해 최초로 보고를 받은 것은 칼디르와 그로즈니의 첫 만남이 성사된 날로부터 2주일이나 지난 시점의 일이었다.


    은하가 아무리 넓다 하더라도 이쯤 되면 아틀란티스 총독부가 정말로 중앙집권적 통치를 지향하는 지배 기구가 맞는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정작  총독부의 수장 되시는 발틱님은  어떤 수단으로도 멈춰 세울 수 없는 기갑 사단의 출몰과 동일 병기로 무장한 병력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그저 한없이 웃을 뿐이었다.

    “푸하하하... 그래, 그러니까 자네 보고의 결론은 그 미치광이 카이프에게 새로운 장난감이 생겼다는  아닌가? 우리 병력은 그 새로운 장난감을 멈춰 세우지 못하고 갈려 나가고 있는 중이고?”

    “그, 그렇습니다, 각하... 놈들에게 이런 무기가 얼마만큼 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으나,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만...”


    “쯧쯧, 조치를 취해야 한다니? 이 사람아, 나처럼 포기하면 편해, 포기하면.  막지도 못할 카이프 놈을 막겠답시고 그렇게 설치는 겐가?”

    “포, 포기하면 편하다니요... 총독 각하!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그나마 정신이 박혀있는 장교 하나가 지금이라도 뭔가 수를 써야 한다고 말했지만, 발틱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해버렸다. 적과 싸워보기도 전에 질 거라고 예상하고 싸움을 포기해버리는 장수라니, 아틀란티스 전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자가 바로 그라는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사정이 있었다. 루시드 제국이 아틀란티스 제국을 침공하기로 한 당시 해군 제독이었던 그를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삼아 내보내고, 아틀란티스 몰락 후에는 총독으로까지 임명해준 것까지는 맞는데, 아틀란티스 전역의 승리는 그의 실력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방어의 사자’ 그로즈니의 정예병이 철통 같이 지키는 방어선- ‘그로즈니 선’이라고 불린 바로 그 방어선-은 ‘대전쟁’ 말기까지도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발틱은 그 방어선을 감히 넘볼 생각조차 못 하고 아틀란티스 내부의 조력자인 빌뇌브의 도움까지 구해가며 가까스로 아틀란티스 제국을 항복시킨 바 있었다.

    “지구에 오신 걸 환영하오, 발틱 제독. 우리 아틀란티스 정부는 루시드 제국에서 온 ‘손님’들을 환영하는 바요.”

    “환대에 감사합니다, 재무대신. 아, 이제는 총리대신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려나? 여태까지 우리는 함께 많은 것을 이룩해왔지요. 앞으로도 우리 루시드 제국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주시기를 기대할 따름이오.”

    “이를 말씀이신가, 당연히 협조해드려야지! 믿고 맡겨주시오!”

    헉, 헉... 제, 제기랄...  자리에 아틀란티스의 황제는 없다만, 빌뇌브 놈이 옥쇄를 훔쳐 갖고 와준 덕분에 종전협정을 체결할 수는 있게 됐군. 이제 자기가 따르는 정부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면 그 끈질긴 그로즈니도 두 손  발을 다 들어버리겠지...?

    발틱이 아틀란티스 전역에서 거두어들인 대내외적으로 ‘우주 역사에 기록될 대승리’라고 선전된 바 있으나, 실상은 이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던 셈이었다. 그로즈니의 방어선을 괜히 돌파해보겠답시고 깔짝대다가 본국의 젊은 남성 인구가 거덜  때까지 닥치는 대로 징병한 끝에 거두어들인 승리. 그랬다. 진실은 피로스의 승리에 가까웠다.

    이 상황은 마치 명나라 정부가 이자성의 반란군에게 신나게 털리는 와중에도 청나라는 오삼계의 정예병이 굳건하게 지키는 산해관을 돌파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빼다 박아놓은 것 같은 상황이었으나, 오삼계가 결국에는 청나라에 투항하고 미드를 오픈한 것과는 다르게 그로즈니는 종전 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불법적으로 체결된 종전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최후의 한 명까지, 최후의 일 초까지 투쟁할 것을 선포했다.


    “아틀란티스 국방군의 원수가 적군에 투항한다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네. 나는 명예로운 국방군 장교단의 대표자로서 지구를 해방하고 제국을 되찾는  날까지 싸울 것이네.”

    “아, 시발... 시발... 시발...! 항복해라! 이만하면 많이 했잖아... 제발...”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로즈니가 결의를 다지며 했다는 말을 듣고 발틱은 방구석에 콕 박혀서 그의 이름을 씹어대기만 할뿐, 겁에 질려서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하고 대대적으로 철수하고자 하는 그로즈니를 감히 추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발틱에게 용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내부 조력자인 빌뇌브와 더불어 그의 방어선을 통째로 쌈 싸먹어 화근을 뿌리 뽑아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고 그로즈니에게 병력을 빼내어 다른 곳에 방어선을 새로 구축할 시간을 내주고 말았다.

    그로즈니는  명성에 걸맞게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대적인 기만작전을 펼친 끝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휘하의 정예병을 안전한 곳- 아틀란티스 행정 구역상으로는 노스랜드와 베스트랜드라고 불리는 지역-까지 후퇴하여 그곳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는  성공했다.


    벌써 10년도  된 옛날의 이야기다. 그 당시 그로즈니가 새롭게 구축한 방어선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남아있고,  방어선을 기반으로 하여 그로즈니의 병력이 때때로 뛰쳐나와 루시드 군의 뚝배기를 깨버리며 영토를 서서히 회복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되새겨보면 발틱이 범한 실수는 우주 역사에 기록될 만한 최악의 실수였다.


    여기에 더해 칼디르가 제작한 아틀라늄제 병기의 공급은 원래도 루시드 군을 상대로 1:100의 교환비를 자랑하던 그로즈니의 정예병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어 발틱의 삽질이 빚어낸 재앙이 또 얼마나 커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천조 명이 넘어가는 인력을 적군의 방어선에 상납한 데다, 적의 배후에 혼란이 일어난 틈을  적장을 잡을 최고의 기회를 놓쳐 수백  명의 추가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 대업을 이룩한 남자, 발틱 유니온 워싱턴은 역사상 최악의 장수로 기억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남자라고  수 있었다.

    “우리가 여기에 꼬라박은 사람의 숫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1,700조 명까지는 세다가 포기한 것 같군. 2천조 명까지는  되는  확실한데, 아무튼 우리 꼴이 말이 아닌데 여기서 피를 더 흘려가며 카이프를 막아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겐가? 뚫린 입이 있으면 말해보란 말이네, 젊은 친구.”


    본국이 그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젊은 남성 인구를 닥치는 대로 징발하다 못해 제대한  한참은 된 40대 이상의 남성들과 군대와는 그다지 인연이 없을 여자들까지 전투병으로 끌어모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데는 그의 책임이 막중했건만, 그는 그렇게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고는 했다.


    “하, 하지만... 각하...! 그로즈니가 이끄는 병력의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총독부가 지배하는 영역 내에 거주하는 아틀란티스 인들의 정세도 격변하게  것입니다! 지금은 패배주의에 젖어 우리 제국에 감히 저항할 생각도 하지 않은 이들의 숫자가 더 많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대대적인 폭동으로 아틀란티스에서 축출될 수도 있습니다!”

    “대대적인 폭동? 아, 그래. 빨갱이 놈들을 말하는 게로구만. 빨갱이 새끼들이 개자식들이긴 하지만, 우리 병사들보다는 잘 싸우지. 총을  발만 쏘면 바로 손을 들어버리는 어딘가의 누구와는 다르게 감투 정신도 확실하고 말이네. 흐흐흐...”


    젊은 장교가 자신에게 떠넘겨지는 책임을 애써 넘기며 조언을 해줘도, 발틱은 이제  술에서 깨어난 사람답게도 숙취를 풀풀 풍기며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굴었다. 그와 함께 따라온 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헤벌레 웃어대는 상관을 바라보며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래, 다들 퍽이나 답답하시겠지. 하지만 대책이 없어서 답답한  이쪽도 마찬가지다. 뭐,  좋은데...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아틀란티스 국방군의 그 무지막지한 괴물들, 신출귀몰한 혁신가들을  보고 어떻게 잡으라는 거냐?


    하물며 그 괴물들과 싸우는 동시에 빨갱이들을 때려잡을 병력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내라는 말이냐? 인력이랑 물자가 땅에서 솟아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사탄이랑 계약이라도 맺어서 지옥에서 인력과 물자를 퍼 올릴 수 있게 된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데  보고 어떻게 하라고!


    “그... 지금 장부상 우리 주둔군의 병력이 200조 명이라고 했던가? 개중에서 실제로 방어선 구축이나 폭동 진압에 투입할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지?”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했을 경우,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장부상에 기록된 병력의 10분의 1 정도입니다.”

    “허어, 군사학에서 가르치기를 병력의 30%만 잃어도 제대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고 했거늘. 우리는 무려 90%의 병력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란 말인가? 그러니 내가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임진왜란 직전 조선군도 장부상으로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했으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한성까지 내어줬던 것처럼, 루시드 주둔군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200조 중에 40조 정도는 이미 뒈진 지 오래고, 그나마 남아있는  중에서 140조는 실제 전력으로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된 상태라니?

    칼디르가 괜히 갖가지 무기를 만들면서 군인들을 무장시키는 데 필요한 물자를 50조 명분만 만들고 나머지 시간을 전함처럼 크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데 쓴 것이 아니었다. 칼디르는 장부상으로만 어마어마하고 실속은 없는 루시드 주둔군의 허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젊은 장교가 언급한 20조의 병력도 말로만 들어서는 많을지 몰라도 우리 은하의 절반을 홀로 차지한 아틀란티스에 흩뿌려두기에는 한참은 모자란다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더더욱 무서운 진실은, 어쩌면 젊은 장교가 언급한 것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병력’으로 쳐줄 수 있는 병력의 규모가 20조보다도 더 적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남아있다는 20조도 노친네, 병신, 계집년들까지 전투병에 욱여넣어 만들어낸 환상이겠지... 발틱은 비록 실력은 없는 장수였지만,  주제를 파악할 정도의 머리는 있는 남자였기에 젊은 장교들의 탄원을 물리치고 또다시 연회장으로 향했다. 일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부정 탄다!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붙들고 있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즐겁게 보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발틱의 신념은 굳건했고,  있는 장교들은 무능한 상관 앞에 좌절하여 고개를 뚝 떨군 채로 연회가 벌어지는 궁궐 밖으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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