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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6화 〉국방군 장교단의 의무: 4화 (126/225)



〈 126화 〉국방군 장교단의 의무: 4화

아틀라인, 그로즈니, 제임스,  세 사람이 현재 아틀란티스 영내에서 펼쳐지는 반 루시드 저항운동의 삼대 거목이라고는 하나 적어도 수천 광년에 달하는 물리적 간극이 그 사이에 있었기에 통신망을 어떻게 유지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직접적인 만남을 활발하게 이어나가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

그랬기에 아틀라인과 그로즈니 역시 그러한 점을 고려하여 접선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는데, 칼디르는 이를 아주 간단히 해결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워프 함선이라도 상대방의 본거지에까지 닿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지만, 자기는 그냥 옆방 문 열듯이 통로를   있다는 것이었다.

“육군원수 각하와 만나 뵐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기장님. 하지만 구태여 워프 함선을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 옆에 생긴  포탈로 들어가면 육군원수 각하께서 거처하시는 사령부 건물이 나올 테니까요.”


“그게 사실인가? 아... 포탈 너머로 보이는 저 건물은... 자네 말이 사실인 것 같군.”


그래서 아틀라인, 그로즈니, 칼디르의 만남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원래는 워프 함선 다수를 동원하여 중간에 있을 루시드 해군의 포격도 좀 맞아가며 그로즈니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든 간다는 식의 계획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앞당겨지게 되자, 서기장과 칼디르를 포함한  무리의 사람은 아직 준비되지 못한 의전은 그대로 생략한 채로 그로즈니의 집무실로 향했다. 애초에 서기장이 의전이니 뭐니 하면서 거들먹거리는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거니와, 괜히 원래 일정에 맞추어 준비 중이던 환영 행사를 후닥닥 밀어붙이면서 소란이라도 일어서  소식이 루시드 인들의 귓속에 들어가게 된다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서기장 동지. 그동안 연락은 여러 번 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만나 뵙는 건 오랜만인 것 같군요. 어떻게...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육군원수, 그대야말로 그 강건하던 몸이 그 새 어딘가 상하지는 않았는가? 만일 그런 일이 있었다면 국방군으로서는 더 없는 손실일 텐데.”


“저는 언제나 최상의 상태입니다, 서기장 동지. 몸이 상한다고 한다면... 지금도 최전방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을 병사들이 더 걱정될 따름이지요.”

“병사들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는 그 마음은 여전하시군. 일단 어디 다친 곳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혹시나 그대가 쓰러지게 된다면 국방군 장병의 사기는 땅바닥을 찍게 될 테니 모쪼록 건강은 좋을 때 챙겨 두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자, 이쪽에 앉으십시오, 서기장 동지.”


서기장을 따라나선 인파는 많았으나, 그로즈니의 집무실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서기장과 칼디르  둘뿐이었다. 이쪽에서 추가로 배석한 카이프까지 더하면 이  안에 있는 사람은 네 명.

칼디르와 나머지 둘은 초면이었지만, 서기장과는 꼬박 몇  만에 성사된 만남인지라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오랫동안  루시드 저항운동을 함께 이끌어온 동지끼리 잠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은 뒤에,  사람의 시선은 모두 칼디르 쪽으로 모였다.

애초에 이번 만남은 칼디르가 아니었더라면 계획표에 집어넣을 일도 없었고, 요소요소에 널려 있는 루시드 군들의 방해로 인해 실행에 옮기기도 어려웠을 만남이니만큼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것이 당연했다.

칼디르는 새삼스럽게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세 사람의 지위를  번 곱씹어본 다음, 우선 자신을 여기에 초대해주어 감사하다는 상투적인 인사말로 운을 뎄다. 그리고 이토록 빠르게 초대를 받게 된 것이 상당히 뜻밖의 일로 느껴진다는 뜻의 말을 에둘러서 했다.

내가 건네준 자료들을 우선 검증해보고 나서 가능할  같다 싶으면 비로소 내가 만든 물건을 건네받고 내게 어떠한 보상을 해줄 것이라고 하기에, 내 자료에 나온 수치들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테니 그동안 공주님이랑 슈가와 함께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혹시 내 예상보다 빠르게 내 자료를 가지고 유의미한 성과를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모인  사람의 얼굴이 이토록 어두울 리가 없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 가지뿐이다. 성급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다가 잘되지 않았겠지.

현재 아틀란티스의 공업력과 기술 수준으로는 내 작품들을 그대로 구현해낼  없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한 대안도 설계도 파일에 함께 첨부한 바 있었는데, 보아하니 오랜 전쟁으로 인해 마음이 조급해진 나머지 그 대안조차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 모양이다.

“칼디르. 실은 자네가 넘겨준 자료 파일을 여러모로 검토해본 결과, 그 유용성은 높지만, 현재 우리 기술 수준으로서는 대량 생산이 곤란하다는 결론이 나왔네. 특히 자네가 파일 내에서 ‘아틀라늄’이라고 칭한 금속 물질을 가공할 만한 기술력이 우리에게는 없네.”

아니나 다를까, 그로즈니가 딱 칼디르가 생각한 것과 동일한 말을 해주었다. 그가 제아무리 명장이라고 한들, 루시드 제국과 전쟁을  지도 20년을 넘어 어느덧 23년 차에 이른 이상 이제는 이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떠한 계획이든지 급하게 밀어붙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틀라늄. 오로라와 플랑을 만들 때도, 가상 적국들을 상대로 살포한 나노 바이러스를 제조할 때도, 보병용 레이저 건부터 시작해서 행성급 전함에 이르는 병기들을 창조할 때도 아낌없이 퍼부었던 바로  특별한 물질.


그 물질의 존재는 그다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물질이 유용하다는 데는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내걸 수 있다.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압력에도, 거대한 초신성의 폭발에도, 적군의 무자비한 전략 폭격에도 끄떡도 하지 않을 그 특별한 물질은 군사용 병기를 제조하는  특화된 물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떠한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을 물질이니만큼 그것을 제련하여 병기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의 난이도는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로즈니와 아틀라인도 아마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을 것이다.


이 기적의 물질을 제련하는 방법을 알고, 그 방법을 실행에 옮길 힘까지 모두 갖춘 존재는 우리 우주 안에서는 둘 뿐이다. 첫 번째는- 매우 당연하지만- 칼디르 그 자신. 그 물질을 깨어 부술 힘이 없다면 어찌 제련하여 어떤 병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원료로 전용할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현 세계의 패권국인 카테스 제국...!


칼디르는 잠시 설명충 노릇을 자처하여 자신이 이 물질을 발견하게 된 경위와 물질의 특성에 관해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아카식레코드 능력자라 이 물질이 어디에 많이 있는지, 어떻게 가공해야 하는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이름을 따서 아틀라늄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는 식의 설명에 그들은 어느 정도 납득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제작했다는 병기들의 실물을 넘겨받을  있겠나? 서기장 동지의 말씀으로는 자네가 50조 명을 무장시킬 수 있는 병기를 어딘가에 쌓아놓았다고 했는데, 그 말에 거짓이 없다면 국방군은 즉시 빈약한 무장 수준을 현격히 개선하고 이 땅에서 루시드 인들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네.”


그로즈니는 이제 칼디르에게 ‘해설을 봐도 모르겠으니 이제 그만 정답을 알려 달라’고 대놓고 탄원하고 있었다. 하기는 여태까지 발생한 인명 피해만 4천조 명에 이르고, 루시드 인들과의 싸움을 이어나가는 이상 추가적인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나오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육군원수의 말이 맞네, 칼디르. 자네가 거짓말을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실물을 보여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서기장도 옆에서 그로즈니의 말을 거들어주었다. (카이프는 그저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뭐, 그들이 굳이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어도 마땅히 사람들이 스스로 몸을 지킬 힘을 제공해줄 생각이었다.

아틀라늄 가공 기술을 전수하는 작업도 중요했지만, 일단 이건 나중 일로 미루도록 하자. 어차피 이건 단시간에 끝낼 수도 없고 돈도 많이 깨질 일이었으니까.


“서기장님, 그리고 육군원수 각하. 저는 두 분의 앞에서 감히 거짓을 말씀드린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며,  분이 제 작품을 친히 보아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그런데...”

50조 명에 달하는 대병력을 완전 무장시킬 수 있을 만큼의 병기. 이게 말이 쉽지, 쭉 늘어놓고 보면 행성계 수십 개는 족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은 되었다. 칼디르는 그 많은 물건을 ‘제3 소우주’라는 이름의 초대형 인벤토리(그 크기가 우리 우주만큼 커다란!) 안에 넣어두어 루시드 군에게  존재가 발각당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꺼내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선택지가 아닌가? 물론 그 모든 병기는 완전 무인 운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에 급작스럽게 전투에 돌입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만한 분량의 병기를 한꺼번에 놓아둘 만큼의 공간이 적어도 우리 은하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건의하고자 합니다. 그 많은 병기를 한꺼번에 옮기기보다는 조금씩 옮겨서 사단 단위로 무장을 개편해나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편이 신병기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을  때도 나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드린 말씀을 믿지 못하시겠다면 웜홀을 열어 제 작품들이 잠들어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사단’이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병력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텐데, 아틀란티스 국방군의 편제는 다른 나라들보다 좀 많이 두꺼워서 보병 사단 기준으로 무려 백만 명에 달하는 편제였다. 그리고 하위 편제 10개가 상위 편제 하나가 되니까 군단은 천만, 야전군은 일억, 최상위 편제인 집단군은 십억 명...이 되었다.


일을 급하게 밀어붙였다가 돌이킬  없는 선을 넘게 되면 곤란하니, 사단 단위로 무장을 재개편해나가자는 칼디르의 제안은 대단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 칼디르가 뻥카를 치는  수도 있으니 서기장과 그로즈니는 웜홀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칼디르의 작품들을 직접 살펴보고 결정하는 편이 좋겠다며 눈빛으로 합의를 보았다.

“잠깐. 지금 이것이 함정이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웜홀을 넘어갔는데 건너편에서 루시드 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쩔 텐가?”


침묵을 지키던 카이프가 중간에 딴지를 걸었지만, 그녀를 믿고 웜홀을 넘어 그로즈니의 사령부로 건너온 서기장의 존재로 인해 간단히 논박되고 말았다. 결국, 그를 포함한  명은 칼디르가 열어준 웜홀 너머로 건너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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