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소꿉친구의 전용 생체 오나홀: 1화
아직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틀란티아 공주님께 자신의 15년 지기 소꿉친구인 칼디르의 처녀를 헌납해버리고, 공주님과 공주님께 처녀를 내어준 칼디르 모두에게 분노해 다 죽여버리겠다며 길길이 날뛰던 슈가가 고른 ‘마지막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칼디르가 이 행성요새에 돌아오자마자 죽여서 바람을 피울 수 없는 시체 상태로 만들어서 혼자서만 감상한다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칼을 갈기? 오로라에게 부탁해서 당장에라도 지구에 들이닥쳐서 공주님과 칼디르를 떼어놓기?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기?
놀랍게도, 슈가는 이 셋 중에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오로라가 전해준 칼디르의 소식에 처음에는 너무나도 심한 분노를 나타냈던 슈가는 칼디르의 얼굴을 떠올리며 커터 칼로 그어댄 손목에서 흘러나온 피 때문에 의식이 흐릿해진 건지, 요새 한구석에 처박혀서는 넋 놓고 있다가, 펑펑 울기도 하고,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대는 등 감정선의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으헤헤헤... 헤헤헤... 칼디르다, 칼디르. 그래... 네가 나를 떼어놓고 딴 년이랑 놀아났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랑해, 칼디르...”
이제 슈가는 칼디르의 환영을 보고는 그 환영을 꽉 껴안고서 허공 중에 뽀뽀를 해대기까지 했다. 슈가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펑펑 울어댄다면 그건 칼디르의 환영이 눈앞에서 사라져서, 갑자기 힘을 되찾은 듯 일어나서 웃어댄다면 칼디르의 환영이 다시 돌아와줘서 그렇다고 봐도 좋았다.
칼디르 역시 자기가 이런 슈가를 조금이라도 떼어놓고 다니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약간은 짐작한 듯 소꿉친구를 위해 약을 지어줬지만, 그 약은 슈가가 칼디르의 부재에 대해 상사병을 호소하며 피를 토하고 발작적으로 뒹굴던 육체적 증세를 억제해주었을 뿐 정신병적인 증상을 고치는 것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약이었다.
‘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러 가볼 필요가 있지만... 그동안에 다른 애들은 몰라도 슈가에게 뭔가 큰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대비책을 만들어두고 가는 게 좋겠지.’
아카식 레코드 능력을 쓰지 않더라도 비 능력자들보다도 월등히 뛰어난 칼디르의 두뇌는 높은 정확도로 들어맞는 ‘예측’을 가능하게 했고, 정확한 예측은 국지적인 사건에 한해서는 예지능력으로 미래를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처럼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하여 칼디르 그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에서 특히 슈가의 경우, 자기가 잠시라도 곁을 떠나있으면 뭔가 문제가 생기리라는 것을 예측하였고 그 예측에 따라 슈가를 위한 약을 지어주기까지 했지만, 슈가의 병적인 증세는 칼디르의 예측을 아득히 뛰어넘어서고 있었다.
칼디르에 대한 슈가의 감정은 이미 ‘소꿉친구끼리의 우정’이나 ‘사랑’의 단계를 넘어서서 광적인 집착에 다다라있었고, 그쯤 되자 칼디르를 공주님의 마수로부터 다시 되찾아오기 위해 그럴 듯한 계획을 짜내기는커녕 가만히 앉아서 애를 태우는 등의 행동조차 거의 할 수 없게 되었다.
“으응? 칼디르...? 왜 네 몸이 자꾸 투명해지는 거야...? 안 돼! 나를 떠나지 말아줘! 제발! 우아아앙...”
이제 또 자리에 주저앉아서 애처럼 울어대는 걸 보면 칼디르의 환영이 또다시 모습을 감춰버린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처량해서 15살짜리가 찔찔 짜댄다며 한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렇다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다가가서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힘들게 하는 아우라가 있었다.
심리적인 극한의 극한까지 내몰린 슈가는 이제 오늘의, 아니, 어쩌면 자기 인생을 통틀어서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있는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칼디르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진짜로 한 번 살아보니까... 이제 더는 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칼디르가 없는 삶따위, 내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렇다. 내가 죽어버린다면... 내 목숨이 끊어지게 된다면... 더는 칼디르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손으로 칼디르를 죽이는 것보다는, 칼디르가 돌아왔을 때 싸늘하게 식어있는 내 시신을 목격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그 요망한 계집에게 더 큰 충격을 안겨줄 길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조금 전에는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었는데 이제는 두 발로 설 수 있게 됐다. 그대로 걸어가서 나와 칼디르가 같이 쓰는 방에 돌아가서 책상에 꽂혀있던 종이와 펜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유서를 써내려 갔다.
평소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음에도, 한번 펜을 대기 시작하니 유서는 생각보다도 쉽게 쓰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A4 용지 한 페이지로 그치는 담백한 유서. 대강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칼디르에게 떠넘긴다는 내용의 유서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낸 지 이제 한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에서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한에 몰리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칼디르를 떠올리면서 자위하다 못해 자해까지 하던 슈가가 최후의 수단으로서 유서를 남기고 밧줄을 꺼내 드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헤...헤헤, 사랑했어, 칼디르... 다음 생에는 너와 이어질 수 있기를... 아니, 다시는 너와 만나지 않기를 바라. 이어지지도 않을 사랑 따위, 시작조차 하지 않는 편이 나아.”
쿠당탕! 한 페이지의 유서를 책상에 잘 보이도록 펼쳐놓은 슈가는 방문 밖을 나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천장에 밧줄을 메달고 의자 위에 올라서더니, 각오가 섰을 때쯤 밧줄을 목에 걸고 의자를 발로 쓰러 뜨러 넘겨버렸다.
켁, 켁, 끄에에엑... 꼬박 며칠 동안이나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 초췌해진 상태로 몇 번이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자살이건만, 목을 옥죄어 오는 밧줄에 눈앞이 다 흐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늦게나마 밧줄을 풀기 위해서 손으로 밧줄을 잡아 뜯고, 다리를 버둥거리며 바닥에 닿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머리를 몇 번이나 굴린 끝에 한 선택임에도, 생명체의 살고자 하는 본능은 가히 대단했다. 끄으윽, 끄윽... 숨이 차오르고, 목이 졸려 피가 머리에 몰리는 것이 느껴진다. 살고 싶다. 죽음 직전에 몰리고 나서야, 살고 싶어졌다. 새, 생각해보니까...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칼디르를 다시 볼 수 없게 되는데... 내가 왜 죽고 싶어 한 거지?
슈가가 온몸을 버둥거리면서, 머리 위로 솟아나 있는 하얀색 토끼 귀 역시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발이 바닥에 닿기는 어려워 보였고 밧줄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낡은 밧줄은 금방 끊어져 버릴 것 같아서 일부러 튼튼한 새 밧줄을 구해둔 것이 화근이었다.
살고 싶다. 격하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러니 제발, 내게... 두, 두 번째 기회를...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 건지도 모를 소리를 해대며 버둥거리던 것도 잠시뿐이었다. 한 1분쯤 지나자, 토끼 귀도 아래쪽으로 축 쳐져버렸고... 발버둥 치던 팔다리도 바닥 쪽을 향할 뿐,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서히 흐릿해지는 의식 위로 15년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으리라. 어떻게든 칼디르에게 고백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언젠가는 아이를 낳고 평화롭게 살아가고야 말리라.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지만...
기나긴 주마등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니라, 새해를 맞아 케이크를 준비해놓고 칼디르를 놀라게 해주기 위해서 옷장 속에 숨어있다가 칼디르가 젖 즙을 짜내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달아올라버려서... 슬쩍 팬티를 내리고 내 보지를 스스로 애무한 순간이었다.
“아읏... 여태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아직 아이도 낳지 않는 몸인데... 갑자기 모유가 새어나와버렷... 남들이 보기 전에 짜내야만 해...”
그때 분명 칼디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와이셔츠와 브래지어를 풀어헤치고는, 유리병에다가 한쪽 가슴을 집어넣고는 양손으로 쭉쭉 짜냈다. 하아, 하아아... 덕분에 나는 옷장에 숨어있다가 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자꾸만 거칠어지려는 숨결을 억제하지 못하고 옷장에서 자위해버리고 말았다.
슈가가 본 것은 15살이 되는 새해를 맞아 젖꼭지에서 하얀색 액체가 방울져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칼디르가 초유(初乳)를 짜내는 순간이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칼디르가 본격적으로 뿜어내기 시작한 암컷 유혹 특화 페로몬에 노출되어버린 슈가는 그전부터 칼디르를 향해 품어왔던 연심을 불처럼 활활 태우게 되었다.
아아아, 칼디르의 저 탱글탱글한 젖가슴, 한입 콱 베어 물고 쪽쪽 빨고 싶어... 지금까지 같은 여자애로서 스스럼없이 속옷까지 벗어 던진 채로 한 침대에 한이불을 덮고 자왔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인데, 지금 자기 손으로 자기 젖가슴을 힘껏 짜내며 느끼는 칼디르의 모습은 너무나도 음란했다.
우리 둘이 상대방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녀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칼디르는 그때까지도 딱히 ‘성’에 무슨 관심을 표한 일도 없었고 자위를 해본 적도 없는 아이였다. 이제 이 ‘착유’를 자위에 포함한다면... 칼디르가 인생 첫 자위를 내 눈앞에서 하는 셈이 되겠지.
“으읏... 여기서 계속 가만히 있다가는...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될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내 몸이 더 이상해져버리기 전에... 당장 계획을... 시작해야만 해...”
칼디르는 계속해서 슈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해대며 착유에 집중했고, 한쪽 가슴에서 나온 모유만으로 몇 병을 채운 다음에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다른 쪽 가슴을 짜냈다. 어느 정도 짜낸 다음에야 좀 편안해졌는지, 칼디르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으로 훑어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지금 도대체 뭘 본 거지? 일이 그 지경에 이르자, 신년 깜짝 파티고 뭐고 슈가의 머릿속은 칼디르의 젖가슴으로 가득 차버렸다. 칼디르... 나간 거지? 그런 거지? 그러면... 저, 저거... 내가... 한 모금만 마셔 보자! 딱... 한 모금... 맛만 보는 거야...!
“안, 안 돼... 이런 거, 한 모금만 마시고 참는 거... 불가능해...”
안전해졌다 싶을 때쯤, 그대로 옷장에서 튀어나온 슈가는 칼디르의 초유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미친 듯이 들이켜기 시작하더니 애당초의 결심은 잊고서 수북이 쌓여있던 유리병을 전부 비워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맛있기는 했다. 그렇게 슈가는 다른 건 몰라도 모유에 관해서는 아틀란티아 공주님보다 한 발자국 앞서나갈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