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로피컬 아일랜드 (31)화 (31/49)

별하는 입을 헹구고 갈증을 없앤 뒤 먼저 가벼이 툭 뱉듯이 말했다.

“다행히 히트 안 왔어. 이제 움직여도 될 거 같아.”

차분한 목소리에는 확실히 이전의 흥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기되어 있던 안색도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파비안은 물기가 묻은 제 입술을 닦았다. 젖은 손으로 흐트러진 금발을 나른히 쓸어넘기며 고개를 까딱였다.

“원하는 대로.”

동굴에서 안전하게 하룻밤을 보내고 섬의 물줄기 경로를 대략적으로나마 발견한 것에 큰 의의를 두고 길을 나선 그들은 어제와 같은 경로로 절벽을 따라 쭉 전진했다.

험한 산중의 길을 걷는 중에도 작은 생물체의 새파란 깃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맹수에게 잡아 먹혔다면 흔적이 남았을 테지만 집으로 돌아간 건지 동굴과 그 주변이 깨끗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준 터라 아쉬움을 크게 느끼면서도, 겁을 먹은 채로 버티는 것보단 집으로 돌아간 게 훨씬 마음 편했다.

별하는 한 걸음 앞에서 길을 헤쳐 나가는 파비안 쪽으로 눈도 두지 않고 전방만 보고 걸었다. 아직 궁금증이 풀리지 않아 머릿속을 뱅뱅 도는 의문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또 어떤 난관을 마주하게 될지 감히 예상할 수 없었다. 곧 미지의 ‘그것’과 마주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괜찮아, 별하?”

파비안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등지고서 물어왔다. 별하는 멀찍이 떨어져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지발가락에 감긴 붕대를 내려다보며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

파비안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바로 머리 위에 떠 있는 엷은 겹구름을 올려다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섬이 이렇게 넓었었나 싶을 정도로 절벽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 의문이 들 무렵 앞장서서 걷던 파비안이 느린 걸음을 멈췄다. 저만치 뒤에서 따르는 별하에게 턱짓했다.

“길을 잘못 들었군.”

별하는 숨을 얕게 몰아쉬며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참을 걸어서인지 입술은 메말랐고, 안색도 핏기가 없었다.

“왜? 막혔어?”

“아니. 막힌 건 아니야.”

“……? 그럼?”

파비안은 대답 대신 옆으로 비켜섰다. 별하는 파비안의 뒤로 난 숲을 내다보았다. 지나온 숲과 같은 형태의 수목들이 역시나 우거져 있었는데 그들이 발을 딛고 선 지면보다 좀 더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옆의 절벽 길이 아닌 발 아래로도 절벽이 나 있었다.

어느 틈에 이 높이까지 올라온 건지 신기할 정도로 아래쪽 밀림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가 내다보였다.

별하는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아연히 바라보았다. 파비안은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았다. 혹 절벽 아래로 떨어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그럼 이제, 우리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별하는 파비안을 돌아보았다. 파비안은 옆의 절벽과 아래의 절벽을 찬찬히 돌아보며 답했다.

“글쎄.”

“여기가 맞긴 한 걸까?”

별하의 자신 없는 물음에 그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녀석의 체취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근처에 길이 있는 건 분명해. 눈에 띄지 않을 뿐.”

별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가 느릿하게 뱉어냈다. 잠시 대화가 멎은 찰나의 순간 별하와 파비안의 눈길이 마주쳤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른 떨어졌다가 수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

“…….”

별하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끔벅거렸다. 그 때 이마에 작은 물방울이 톡 튀었다.

“……?”

그는 블루칩이 돌아온 건가 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내리쬐는 중천에는 블루칩은커녕 작은 벌레도 없었다. 희뿌연 구름이 뭉게뭉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번에는 콧등에 톡 물방울이 튀었다. 다시금 눈가에서 물방울을 느꼈을 때 파비안도 제 뺨에 떨어진 물방울을 느끼고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곧 쏟아지겠군.”

“…….”

별하는 소리 없는 한숨을 나직이 불어냈다. 파비안의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비를 피해야 할지 이대로 맞으면서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는 그 때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서둘러 나무 아래로 몸을 피했지만 까칠한 침엽수는 지붕으로서 한계가 있었다. 가느다란 잎에 매달린 빗방울들이 여기저기서 떨어졌다.

“한동안 내릴 것 같은데 피할 곳을 찾아야겠어.”

별하는 새하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함께했다.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숲으로 들어가 비를 피할 곳을 찾았다. 5성급 호텔까지는 바라지도 않았고, 침엽수보다는 잎이 너른 나무 한 그루만을 바랐다.

빗줄기의 기세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성해졌다. 옷이 더 젖기 전에 찾고 싶었으나 주변 시야가 좋지 못하고 땅도 질어 움직이기가 영 불편했다. 그나마 수풀이 우거진 나무 아래로 들어가려는 그 때였다. 삐비비― 어디에선가 익숙한 소리가 별하의 귓전을 스쳤다.

“이 소리는…….”

파비안 역시 그 소리를 들은 듯 별하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삐비비― 별하와 파비안은 뿌연 장막을 뚫고 소리가 난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절벽 길 아래쪽에 거친 단면의 암석들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어스름한 음영이 드리워져 있었다. 동굴이었다. 이전의 동굴과는 달리 깊지 않은 그곳은 거대한 암석들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틈새였다.

이끼로 뒤덮인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늘진 안쪽에서 시커먼 뭔가가 후다닥 달려 나왔다. 빠비아안―! 미친―! 집으로 돌아갔다고만 생각했던 블루칩이었다. 작은 생물은 양날개를 미친 듯이 휘저으며 별하에게로 달려들었다.

파비안은 얼른 라이터를 켜 동굴 안쪽을 살폈다. 겁쟁이 블루칩의 출현으로 미루어 짐작해 맹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또 다른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었기에 만전을 기했다. 라이터 불빛만으로도 막다른 끝이 보이는 동굴을 샅샅이 확인한 그는 별하가 선 밖으로 걸어 나왔다.

“비가 그칠 때까지는 잠시 쉴 수 있겠어.”

“으응…….”

빠비안! 어이이―! 블루칩은 제 전용 소파에 자리한 후에도 흥분을 쉬이 감추지 못하고 날개를 들썩거렸다. 몸을 흔들기도 하고 부리를 치켜세우며 열심히 애교를 부려댔지만 별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비 내리는 동굴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파비안은 걱정스러운 듯 가까이 다가왔다.

“별하……?”

별하는 고개를 푹 숙여 황급히 내저었다. 비틀거리는 그를 붙잡으려 파비안이 손을 뻗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어깨에 닿기도 전에 별하는 전기에 통한 듯이 그를 쳐냈다. 얼마나 매몰차게 쳐냈는지 별하의 손가락까지 욱신거렸다. 거친 빗소리가 동굴 안으로 비집어 들었다. 별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뒤늦게 고개를 들어 파비안을 올려다보며 작게 울먹였다.

“미, 미안해. 파비안……. 나 히트 왔어…….”

074.

파비안의 만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는 있었으나 예상보다 빨리 온 히트에 그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별하는 말을 잃은 이를 쳐다보며 헝클어진 숨을 가쁘게 불어냈다.

“참아보려고 했는데, 해봤는데 안 돼……. 너무, 힘들어…….”

“…….”

“정말 미안…….”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까만 두 눈동자가 물기에 젖어 반짝거렸다. 창백한 피부는 어느덧 달아올라 두 뺨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벌어진 입술 역시 새빨갛게 색이 올라 진한 단내를 퍼트렸다.

별하의 급변한 페로몬을 맡은 파비안의 숨결이 대번 거칠어졌다. 그는 지그시 턱을 물고 눈길을 내렸다. 곧장 소나기가 쏟아지는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이를 별하가 붙잡았다.

“가, 가지 마.”

파비안은 이내 멈춰 섰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셔츠가 달라붙은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리며 헝클어진 숨을 뱉어냈다.

“……멀리 가지 않을게.”

담담히 대답하는 파비안의 주먹 쥔 손등에 뼈와 힘줄이 도드라졌다. 별하는 동굴 벽을 짚으며 비틀비틀 일어났다. 별하의 어깨 위에서 눈치만 보던 블루칩이 근처의 바위에 조용히 날아가 걸터앉았다.

“파비안.”

별하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그를 부르며 한 걸음 다가섰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파비안의 뒤에 서서 다시 한번 더 그를 불렀다.

“파비안…….”

강렬한 더위를 느낀 듯 제 남방을 움켜쥐어 아래로 잡아당기며 속삭여 물었다.

“나랑 섹스해 줄 거지……?”

“…….”

“임신 안 하게 밖에다 사정하면 되잖아. 전처럼…….”

우두커니 서서 빗줄기를 응시하던 파비안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흐트러진 호흡을 다잡는 흰 얼굴은 핏기 한 줌 비치지 않아 창백할 정도였다. 그는 미치도록 달콤한 페로몬을 여지없이 풍기며 저를 유혹하는 별하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자신할 수 없어. 이번에는.”

별하의 페로몬에 반응한 파비안에게서도 더없이 향긋한 페로몬이 발현했다. 별하는 그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주 댄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서 낮게 헐떡였다.

“그럼 안에다…… 사정해도 돼.”

“별하.”

“혹시라도 임신하게 되면 내가, 잘 키울게. 파비안의 아기…….”

속삭이는 목소리가 몹시 나긋했다. 파비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제 품에 들어온 이의 젖은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억제제도 없이 히트를 맞이한 별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파비안의 허리를 끌어안고서 그의 가슴에 뺨을 비비다 고개를 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촉촉한 눈매에 흥분감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파비안, 네 페로몬 너무 좋아. 계속 맡고 싶어…….”

파비안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작게 킁킁거렸다. 쭉 뻗은 그의 목덜미를 맴돌던 열기가 턱에서 뺨으로 이동했다. 파비안이 턱을 들어 올리자 별하는 발뒤꿈치를 바짝 치켜들고서 그의 턱끝과 뺨 아래쪽에 입술을 눌렀다. 쪽쪽―

“…….”

파비안은 별하를 끌어안으려 손을 들었다가 빈 주먹만 움켜쥐었다. 따뜻하고도 달콤한,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이를 저 역시 간절하게 원하면서도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듯, 별하를 마주한 오드아이에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그를 담은 검은 눈동자는 흥분감에 잠겨 있으면서도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빛나고 있었다.

별하는 파비안에게 몸을 밀착해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아, 파비안. 난 다른 숨겨둔 사람이 없어.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거야. 너밖에는.”

“하아…….”

호흡이 섞일수록 파비안의 인내심에도 큰 균열이 일었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던 호흡과 체온이 눈에 띄게 일변했다. 파비안의 상태를 전해 느낀 별하는 그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달뜬 숨을 흘렸다.

“너도 알잖아. 우리가 어떻게 되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란 거…….”

“…….”

파비안은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기댄 별하의 뺨에 제 뺨을 문지르다가 그곳에 입술을 붙였다. 별하는 얼른 파비안의 입술을 좇아 입맞춤을 했다. 마른 입술이 짧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곧 다시 맞닿는 순간 강하게 밀착하며 점막이 벌어졌다. 아직 얼얼하게 부어 있던 살덩이들이 포개지며 금세 성급하게 얽혀 들었다.

“으음…….”

입을 크게 벌려 다급히 키스하는 그들의 열에 들뜬 숨소리가 작은 동굴을 울렸다.

별하는 파비안을 벽으로 밀치듯 몰았다. 바위에 앉아 있던 블루칩이 화들짝 놀라 급하게 날갯짓을 하며 빗방울이 비켜 드는 동굴 입구로 피신했다. 저는 신경도 쓰지 않고 키스에 몰두한 그들을 보며 혀를 쯧, 찼다.

별하는 헐떡이며 파비안의 혀를 빨았다. 흥분에 못 이겨 그의 셔츠를 찢을 듯이 급하게 벗겨냈다. 파비안은 별하가 쉬이 키스할 수 있도록 바위 근처에 몸을 낮춰 앉았다. 청바지 버클을 풀어 내리며 밖으로 드러난 별하의 등허리에 팔을 감아 제게로 끌어당겼다.

“읏.”

파비안의 다리 위로 올라탄 별하는 그의 어깨를 짚으며 턱밑을 내려다보았다. 상기된 호흡을 나누며 서로의 눈을 홀린 듯 바라보던 그들은 다시 조급하게 맞닿았다. 젖은 옷가지를 가까스로 벗어내고 말간 육체로 밀착했다.

팬티를 미처 다 벗지 못한 별하는 한쪽 다리에 그것을 걸친 채로 파비안의 우뚝한 페니스 위에 엉덩이를 내려앉았다. 애무나 전희가 없어도 이미 흥건하게 무르녹은 다리 사이로 투명한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꼿꼿이 발기한 귀두에 대충 뒤를 맞추고 엉덩이를 내리자 주름 속으로 질척하게 미끄러졌다.

별하는 오므라든 둔부를 억지로 이완시켜 파비안의 열기둥을 어서 받아들이려 애를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구멍이 단단히 옥죄인 채로 풀리지 않았다. 파비안은 슬며시 허리를 들어 가로막힌 듯한 내벽으로 페니스를 박아넣었다. 어느새 살짝 부푼 귀두가 주름을 간신히 뚫고 들어가자 별하는 허리를 떨며 신음을 뱉어냈다.

“하으, 읏…….”

페니스가 서서히 박혀 들자 뒤가 속수무책으로 벌어졌다. 움찔거리는 별하의 허리를 끌어안은 파비안은 고통에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별하, 으음. 조금만 참아줘.”

제 앞날을 예감한 별하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순간 말뚝 같은 열기둥이 치솟듯 내벽을 꿰뚫었다.

“―!!”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피에 점령당한 별하는 신음도 내지 못하고 바르작거렸다. 단번에 안쪽을 꿰뚫었던 페니스가 느릿하게 빠져나갔다가 다시금 강건하게 치솟았다. 내벽과 구멍 주름이 한계까지 벌어지는 아픔에 신음이 끊어지듯 새어 나왔다.

“흐, 으읏, 읏…….”

파비안은 별하의 벌어진 엉덩이를 쓸며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편해질 거야. 별하…….”

어르듯 속삭이며 재차 허리를 쳐올려 우악하게 안을 파고들었다. 빠듯하게 맞물린 성기가 거칠게 비집어 들다가 금방 스며 나온 윤활액으로 매끄럽게 움직였다.

몸이 두 동강으로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던 별하는 이윽고 뒤따르는 선득한 감각에 허리를 움직였다.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두 육체가 부딪칠 때마다 교접된 곳이 깊고 강하게 얽혀들었다. 파비안은 별하의 한쪽 허벅지를 잡아 올려 벌어진 사이로 빠르게 허리 짓을 했다.

“읏, 흐읏……!”

질퍽한 살 마찰음이 지면으로 곤두박질치는 빗소리와 뒤섞여 동굴을 울렸다. 맞물린 곳이 젖어들수록 별하와 파비안의 입술 사이로 흥분에 도취된 신음이 빠져나왔다.

별하는 이끼가 깔린 바닥에 한쪽 무릎을 붙이고서 파비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뱃속 깊은 곳이 수없이 열리는 감각에 고통스러운 듯 허리를 비틀면서도 거부하지 않았다. 신음을 흘리던 위쪽 점막도 다시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별하는 파비안의 목에 팔을 감아 끌어안으며 긴박하게 헐떡였다.

“파비안, 아, 안에……. 으읏…….”

사정감을 느낀 듯 내벽이 불규칙하게 조여들었다. 파비안은 상기된 한숨을 뱉었다.

“하아……. 이제 시작이야, 별하.”

속삭이며 살짝 허리를 들어 별하의 안쪽에 난폭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별하는 다리가 들린 채로 아래서 쳐올리는 허리 짓에 맞춰 몸이 퍽퍽 떠올랐다. 성난 열기둥의 크기와 무지막지한 기세에 떠밀린 그는 불시에 정액을 쏘아 올렸다.

“파비, 흐으……!”

파비안은 전신을 달달 떨며 정액을 흘리는 별하에게로 쉬지 않고 밀고 들어갔다. 막 사정을 끝낸 이를 갈잎이 쌓인 이끼 위로 눕혀 다리를 잡아 벌렸다. 곧장 몸을 포개며 땀이 배인 피부 곳곳을 혀로 쓸었다. 가슴과 목덜미, 턱을 지나 숨을 얕게 헐떡이는 입술을 집어삼켰다. 혀를 섞는 순간 구멍에 걸쳐놓은 페니스를 단박에 찔러넣었다.

“으음……!”

별하는 파비안에게 입을 틀어막혀 신음을 뱉지 못했다. 목으로 도로 삼키며 가랑이를 쳐올리는 위력에 흔들렸다.

파비안의 오드아이는 강렬한 색에 물들어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다. 오로지 제 아래 깔린 별하에게 흠뻑 빠져, 발기한 성기로 그의 뜨거운 곳을 헤집었다.

히트 중인 별하는 그보다 더 감사나운 본능에 지배당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 지금 그에게 섹스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젖은 눈동자는 초점이 거의 풀려 있었고 파비안의 페니스가 제 안에 틀어박힐 때마다 흥분에 찬 신음을 참지 못했다.

“흐읏, 으응, 읏…….”

“별하…….”

파비안은 별하의 허벅지를 넓게 치켜들고서 탄력적으로 허리를 놀렸다. 내벽을 찌르는 페니스의 귀두가 점차 부풀어 올라 서로 일시에 강한 통증을 전해 느꼈다. 러트에 동반하는 노팅이었다. 별하는 파비안의 등을 와락 끌어안으며 그의 목덜미를 핥아 올렸다.

“하아아……. 파, 파비안……. 어서 안에, 으읏, 읏, 빨리 싸줘…….”

파비안은 별하와 가슴을 맞대어 끌어안았다. 전신의 근육을 세워 스스로 다리를 벌린 별하에게 급히 파고들었다.

“파비안, 안에서……. 읏, 하으읏…….”

“별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더 깊은 곳까지.”

별하는 일부러 뒤를 조여 파비안의 기둥을 자극했다. 파비안은 별하의 어깨와 목덜미, 귓불을 잘근거리며 허리에 강한 힘을 실었다. 별하의 몸이 위로 퍽퍽 밀려 나가자 어깨를 끌어안고서 달려들었다.

“으응, 흐으읏!”

별하는 다시 기습적으로 사정했다. 복부 사이에 낀 페니스에게 맑은 정액이 후드득 튀어나왔다. 파비안 역시 사정감을 느끼고 서둘러 페니스를 밖으로 꺼내려 했지만 부풀어 오른 귀두가 입구에 걸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벽이 빠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 별하가 흐느끼듯 신음을 토해 냈다.

“빼, 빼지 마. 파비안, 흣…….”

075.

“별하, 지금 사정하면……. 하아…….”

별하는 파비안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맞닿은 허리를 끄덕이며 애원하듯 재촉했다.

“이, 임신시켜 줘……. 파비안 너랑 닮은 아, 으읏, 기 갖고 싶어…….”

파비안은 별하의 젖은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별하는 이미 내 아기야.”

“파비, 어서. 어서…….”

작은 코를 깨물 듯 키스하고는 입술을 눌러 막았다.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내미는 별하의 점막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힘차게 쳐올렸다. 퍽퍽퍽― 서로의 육체를 통해 전해지는 날 선 쾌감과 뜨거운 체온, 달콤하게 오가는 호흡을 좇아 수없이 부딪쳤다. 별하가 연이은 절정에 도달했을 때 파비안은 결국 그의 뱃속에서 참고 참았던 열기를 단숨에 터트렸다.

“하, 으읏…….”

“읏.”

별하는 제 안쪽으로 흘러드는 파비안의 뜨거운 정액을 느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파비안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별하를 내려다보았다. 엷은 음영을 사이에 둔 눈동자들이 상대의 윤곽을 부드럽게 더듬었다.

잠시 시간이 멈췄던 공간에 빗소리가 나직이 밀려들었다. 별하는 이끼와 갈잎 위에 누워 있었지만 상위를 점령한 이에게 눌려 등이 몹시 배겼다. 몸을 슬쩍 뒤척이자 벌어진 안쪽이 움찔움찔 조여들었다. 그러자 파비안은 안쪽에 박힌 페니스를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으응…….”

안쪽에 흩뿌린 정액과 뒤섞인 체액으로 열기둥은 매끄럽게 진퇴를 반복했다. 별하는 금방 반응을 보였다. 파비안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목덜미를 핥고 깨물었다.

“파비안, 네 냄새 너무, 으읏, 좋아. 미칠 거 같아…….”

파비안은 별하의 등을 한 손으로 떠받치고서 벌어진 음부를 느릿하게 들락거렸다. 내벽을 점령한 그의 페니스는 완전한 노팅 상태였다. 예민한 내벽을 쑤시듯 벌려 깊숙한 곳까지 박혀 들었다가 감겨드는 감촉을 즐기듯 천천히 빠져나갔다.

발정기를 맞은 성기가 깊게 교접할 때마다 별하의 목 안에서 억누르지 못한 신음이 빠져나왔다. 파비안은 그의 목울대를 혀로 굴리며 흐트러진 숨을 흘렸다.

“별하의 체취는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로워.”

“파비안…….”

“네가 그 어디에 있든 찾아낼 수 있어.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꿈에서도.”

별하는 잠시 허리 짓을 멈춘 파비안을 올려다보며 달아오른 입술을 벙긋거렸다.

“파비안, 어서…….”

파비안의 입맞춤이 목덜미를 지나 뒷덜미까지 닿았다. 당장 깨물 듯 주변을 맴돌면서도 강한 통증을 일으키거나 하는 폭력적인 행동은 없었다. 다만 잠시 부드럽게 이어지던 몸짓이 점차 거칠어졌다. 별하의 양무릎을 접어 올려 흠뻑 젖은 곳에 하반신을 강하게 부딪쳤다.

굵직한 기둥이 구멍을 빠르게 들락거리자 안쪽에 고여 있던 희뿌연 정액이 맞물린 틈으로 새어 나왔다. 금방 거품이 되어 파비안의 고환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하앗, 읏, 으응, 흣…….”

“하아…….”

파비안은 별하와 점막을 겹칠 때마다 쌓여가는 흥분감에 도취되어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허리가 풀려 엎어진 별하의 뒤를 덮쳐 쉬지 않고 허리를 놀렸다. 처음 섹스를 했을 때보다 더 강대해진 크기를 자랑하는 페니스는 별하의 뱃속을 관통할 기세였다. 통증을 억누르는 호르몬이 분비되는 중에도 뒤가 찢어질 듯 벌어지는 아픔을 느낀 별하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으읏, 흐으…….”

그러다가도 눈앞이 일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번득이는 쾌감에 진땀을 흘렸다. 별하의 엉덩이가 발갛게 부어오를 정도로 끈질기게 부딪쳐 오던 파비안은 곧 사정할 듯했다. 엎드린 별하를 일으켜 세워 제 다리 위에 앉혔다.

“파, 으읏.”

그는 별하의 허리를 끌어안고서 뒤를 부딪쳤다. 곧 뜨겁게 무르녹은 내벽 깊숙한 곳에서 다시금 사정했다. 사정한 뒤에도 거센 몸짓은 그치지 않고 쉼 없이 이어졌다.

별하는 동굴 밖의 비 내리는 풍경을 내다보며 계속해 흔들렸다. 정액이 더는 나오지 않을 때까지 파정과 오르가즘을 거듭했다. 나중에는 사정하지 않은 채로 몇 번이나 절정을 맞이하다 파비안의 품속에서 기절하듯 의식을 잃었다.

파비안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페니스를 별하에게 묻은 채로 느릿하게 파고들었다. 의식을 잃고서도 아픔을 느낀 듯 얄팍한 허리가 움찔거렸다. 지쳐 쓰러진 이를 탐하는 데에 죄의식을 느낀 파비안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

일어날 생각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별하의 다리를 들어 천천히 페니스를 꺼냈다. 기둥은 부드럽게 빠져나왔으나 역시나 귀두가 걸렸다. 파비안은 빠지지 않은 그것을 다시 안쪽으로 깊게 밀어 넣었다.

“으응…….”

잠든 별하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는 그 상태로 별하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더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느직하게 밀려드는 흥분을 더 억누르지 못하게 됐을 때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 페니스를 내벽에 문질렀다. 부드럽게 빠져나갔다가 뜨거운 점막을 느릿하게 찔러 들며 별하의 안에서 다시 사정했다.

“흐음.”

페니스는 여전히 굳건했으나 정액을 배출하면서 귀두가 잠시 수그러든 틈에 그것을 꺼내려 재차 시도했다. 사정 전과 마찬가지로 입구에 걸려 빠져나오지 않았다. 젖은 엉덩이골을 살짝 눌러 벌리자 희뿌연 체액과 함께 노팅 중인 귀두가 가까스로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찌릿한 아픔을 느낀 별하가 눈을 번쩍 떴을 때는 캄캄한 동굴에 모닥불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어느덧 빗줄기가 멈춘 동굴 밖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낡은 남방이 덮인 제 나신을 내려다보았다.

“…….”

옷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물기나 습기는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비안의 정액으로 흥건했던 다리 사이도 보송보송할 정도로 쾌적했다. 깨끗한 물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아낸 것처럼.

별하는 전신을 감도는 묵직한 위화감을 느끼며 마른 입술을 달싹였다.

“파…….”

갈라진 목에서 잔뜩 잠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자신이 잠든 사이 돌연 사라진 파비안을 찾기 위해 일어나려는데 뒤쪽에서 희미한 체열이 느껴졌다. 그였다. 파비안은 바지를 걸친 채로 이끼 위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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