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트로피컬 아일랜드 (3)화 (3/49)
  • 끼룩― 끼룩―

    저와 같은 생존자이자 조난자였다.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더는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다 가진 알파이니 저보다 어련히 더 잘할까 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천사 같은 외모를 유지하는 인물을 조용히 내려다보다 이내 휙 돌아섰다. 이런 질기고 튼튼한 생명체를 걱정하느니 좀 전까지 하다만 작업을 이어가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젠장, 낮게 혀를 차며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거친 기척이 덮쳐들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던 새들이 물살을 일으키며 떼거지로 달려왔다. 무방비하게 쓰러진 인물을 금방 에워싸고 뜯어먹으려 했다. 레인 코트 속 알맹이를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 열심히 부리질들을 했다. 물에 흠뻑 젖은 플래티넘 블론드를 주둥이로 콕콕 찝어대거나 손등을 쪼아도 거만한 알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끼룩― 끼룩― 끼룩―

    “…….”

    못 본 척 제 갈 길을 가려던 별하는 신이 난 불청객들을 향해 목청껏 고함을 쳤다.

    “꺼져! 이 징그러운 새끼들아!”

    야자수 그늘에 벌러덩 드러누운 별하는 거친 호흡을 불어냈다. 정신을 잃은 커다란 알파를 이곳까지 끌고 올라오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힘에 겨웠다. 핏기 없는 얼굴로 늘어진 모습이 괜히 얄미워 알파의 하나 남은 구두 끝을 툭툭 건드렸다. 반응은 일절 없었다.

    “하아…….”

    별하는 땀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에 널브러뜨려 놓은 작업을 다시 속행했다. 해가 살짝 기울어 양각 문자 주변으로 그늘이 지는 것을 이리저리 확인해 가며 글자를 더 크게 키웠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문득 갈증이 일었다. 급격하게 허기가 느껴져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일단 코코넛으로 배를 채울 생각으로 주변 야자수를 올려다보며 적당한 것을 찾았다.

    어렵지 않게 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고 모래밭에 내려와서도 의식적으로 그곳을 쳐다보지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로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코코넛을 열어 갈증과 허기를 달랬다. 먹을 게 급했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라도 없었다면 진즉 천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운명이었기에 감사했다.

    구조를 요청하는 바닥 글자는 대충 마무리를 지었고, 이제부터는 길을 찾을 생각이었다. 괜히 먼 바다를 내다보며 이런저런 잡생각을 떠올리던 별하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야자수 그늘로 향했다.

    알파는 여전히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기회를 노리던 새들이 이제 날아가고 없었지만 조금도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

    별하는 하는 수 없이 코코넛 하나를 들고 다가갔다. 완전히 내리감긴 알파의 눈꺼풀은 미세한 움직임도 없었다. 창백한 피부와 하얗게 마른 입술을 내려다보며 소리 없는 한숨을 뱉었다.

    잘 익은 코코넛 하나를 쪼개 알파의 입가에 대고 살짝 기울였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단물이 턱으로 흘러내렸다. 별하는 알파의 도톰한 입술 아래 턱을 슬쩍 당겨 다시 코코넛을 기울였다. 전보다 쉽게 단물이 흘러들긴 했지만 굵직한 목울대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잡는 중에 알파의 고개가 움직여 입 안에 든 단물이 턱을 타고 모래 위로 흘러내렸다.

    “쯧. 아깝게.”

    알파의 코를 막아볼까 하다가 지금 상태도 좋지 않은데 괜히 잘못될까 싶어 시도하지 못했다. 까딱해 죽으면 크나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일단 수분 섭취가 시급해 보여 어떻게 먹일지를 궁리했다. 바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지만 애써 무시하고 알파의 머리 뒤를 손으로 받쳤다. 고개를 살짝 숙이도록 움직여봐도 목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처럼 거만하게 움직이라고.”

    알파의 목덜미가 뜨거웠다. 열사병에 걸린 건가? 어쩐지 불안해진 별하는 그의 이마와 목덜미를 더듬으며 체온을 쟀다. 역시나 열이 높았다.

    어떤 난관을 헤치고 이곳까지 온 건지 몰라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저와 같았을 거란 생각에 복잡 미묘한 동지애를 느꼈다.

    거북스럽고 꺼려지고, 약간은 수치심까지 느껴졌지만 지금은 생명을 살리고 봐야 했다. 별하는 코코넛을 제 입으로 가져가 단물을 들이켰다. 알파의 입가로 다가가려 허리를 숙였다가 거부감을 참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켜버렸다.

    “빌, 어먹을.”

    그는 다시 단물을 입에 한가득 담았다. 빈주먹을 쥐었다 폈다, 다리를 접었다 떨었다 하다가 눈을 꼭 감고 알파에게 입을 맞췄다.

    “음.”

    물컹한 감촉을 느낀 순간 단물을 상대에게 밀어 넣었다. 입술 밖으로 흐르지 않게 바람을 불어 압력을 가하자 알파의 입 안에 고인 단물이 안쪽으로 넘어갔다.

    “―!”

    살았다.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뭉클해진 별하는 재차 단물을 머금어 그 행위를 반복했다. 겨우 넘어가던 액체가 다섯 번째에 증발하듯 사라지는 순간 그의 상기된 두 뺨에 낯선 기운이 드리웠다.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당혹감에 얼른 알파에게서 떨어졌다.

    어떤 강렬한 냄새를 감지했던 것이다. 콧속을 비집고 들어온 그것은 뇌를 쑤시듯 거칠게 파고들었다.

    “말도 안…….”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돌아서려는 그 때 강한 위력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순간 별하는 저에게 꽂힌 두 눈동자와 맞닥뜨렸다. 거부의 의사를 표하기도 전에 붙잡힌 발목이 우악스럽게 끌려갔다.

    “으읏!”

    언제인지 모르게 정신을 차린 알파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별하의 몸 위를 장악했다.

    “빌어먹, 안 돼!”

    알파의 러트였다.

    006.

    막무가내로 덮쳐든 알파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코코넛에 문제라도 있었는지 젖은 블론드 사이로 보이는 회색빛 눈동자가 광기로 번득이고 있었다.

    당황한 별하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예고도 없이 러트가 발현된 알파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비, 비켜! 미친 알파 새끼!”

    별하를 가뿐히 제 아래에 가둔 알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팔 한쪽이 찢겨져 나간 레인 코트를 벗어 던지고는 별하의 청바지에 손을 댔다.

    “윽, 무슨! 그만둬!”

    아래 깔린 별하는 헛발질을 하며 거칠게 저항했지만 상당한 체격 차이만큼 완력에도 차이가 나 당해내지 못했다. 그는 하얗게 질색한 얼굴로 알파의 보이는 곳곳을 때렸다. 단단한 어깨와 가슴, 복부를 주먹으로 내리치다가 두 팔이 동시에 붙잡혀 끌려 올라갔다.

    “이런 미, 친 알파!”

    “하아…… 하아…….”

    알파는 별하의 바지를 찢을 듯 우악스럽게 끌어내려 벗겼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거부하는 별하의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만들었다.

    옷을 벗지 않으려는 자와 벗기려는 자의 승강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별하는 금방 팬티까지 빼앗겨 짐승이 된 알파의 눈앞에서 아랫도리를 훤히 내보였다.

    “안, 그만, 으읏.”

    이런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별하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어느새 발기해 있는 제 페니스였다.

    별하는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었지만 알파가 눈을 뜬 순간부터 풍기던 자극적인 체취를 계속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오메가 진단을 받았던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이정도로 강한 자극을 주는 페로몬을 맡아본 적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성으로는 거부하고 있었지만 육체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허기만 느낄 뿐 멀쩡하던 몸에 급속도로 열이 올랐다. 코끝이 찡할 만큼 뜨거운 숨결이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왔다. 뇌수가 끓어오르는 듯한, 척수를 불에 지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동시에 고환이 오그라들며 회음부가 아플 정도로 욱신거렸다. 뒤쪽에서 눅진하게 젖어드는 열감마저 느낀 별하는 다급히 헐떡였다. 낯설지 않은 통증들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그야말로 공포에 사로잡혔다.

    히트였다.

    발정이 오고 있었다.

    별하의 페로몬을 감지한 알파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제 바지 버클을 열었다. 젖은 팬티 안에 불룩하게 솟은 물체는 분명 페니스였다. 얇은 천조각 너머로도 말이 안 되는 크기를 실감할 수 있는 형태였다.

    별하는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지금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망치려면 지금이다. 제 위에 올라탄 알파의 후면을 무릎으로 찍어 올렸다. 팔을 묶은 악력이 느슨해지는 순간 알파의 좌측면을 주먹으로 힘껏 내질렀다. 퍽! 퍽!

    “죽어! 죽어! 미친놈아!”

    “하아…… 하아…….”

    눈을 가린 금발 아래 알파의 만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힘이 실리지 않은 주먹질에 사활을 건 별하에게서 돌연 느직이 떨어졌다.

    별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망치려 했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독한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땀에 흠뻑 젖은 전신이 괴로울 정도로 뜨거웠다.

    “으윽…….”

    부드러운 모래밭 위에서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킨 별하는 흡사 갓 태어난 초식동물처럼 떨고 있었다. 치솟은 생식기를 드러낸 알파에게는 일말의 자비 따위 없었다. 별하의 오므린 다리를 움켜잡아 제게로 끌어당겼다. 맥없이 끌려오는 이를 제 영역에 가두고 너절한 상의까지 찢을 듯 벗겨냈다.

    “읏.”

    별하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필사적으로 알파의 손길을 거부하면서도 이미 그의 아래쪽은 스스로의 체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쿠퍼액에 음모가 젖어들었고 가랑이 사이는 질척했다.

    알파는 나신이 된 별하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오메가의 체향에 취해 목덜미를 핥고 빨았다. 땀방울이 흘러내리던 목덜미가 금세 알파의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이를 세워 움찔거리는 피부를 깨물자 별하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병, 신 같은…….”

    알파는 별하의 목덜미와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을 빨며 흥분한 숨결을 흘렸다.

    “하아……. 거부하지 마.”

    “읏, 나가 죽어. 죽여버리겠어, 좆같은 알파…….”

    알파는 꿈쩍도 하지 않고 별하의 몸을 탐닉했다. 피부를 들춰 근육과 그 아래 흐르는 핏줄까지 먹어치울 듯 집요하게 물고 빨았다.

    새하얗게 질려 있던 별하의 피부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눈가는 촉촉해지고 입술에는 새빨간 열꽃이 피어올랐다. 알파의 페로몬이 진해질수록 몸이 그에 반응해 씨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별하는 고통스럽게 몸을 뒤틀며 마지막 남은 이성이 사라지기 전까지 저항했다.

    “오메가만 아니, 하아……. 아니었다면 너 같은 건…….”

    알파가 적갈색의 가슴 돌기를 머금자 별하는 말을 맺지 못하고 턱을 물었다. 혀로 간질이듯 문지르다 혀끝을 세워 젖꼭지 아래를 핥아 올렸다. 혀를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치아가 피부에 눌러 들어 별하는 바들바들 떨었다. 알파의 머리 위에서 하늘거리는 야자수 이파리를 노려보며 새어 나올 것 같은 신음을 눌러 참았다.

    가슴 돌기가 뾰족하게 불거져 나올 때까지 괴롭히던 알파는 명치와 복부를 지나 젖은 음모를 혀로 쓸었다. 움찔거리는 별하의 페니스에 키스를 남기고는 의식적으로 오므린 허벅지를 가볍게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읏…….”

    별하가 급히 무릎을 모았지만 넓게 벌어진 공간을 알파가 이미 차지한 후였다.

    알파가 손을 뻗어 별하의 뒤를 만졌다. 삽입하기 적당한 상태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젖은 구멍을 확인한 후에는 상대의 허락을 구할 새도 없이 들이닥쳤다.

    “아, 으윽……!”

    한참 전부터 뜨겁게 욱신거리던 곳에 열기둥이 파고들자 별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둔부에 힘을 넣어 알파의 거대한 페니스의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우악스런 허리질에 내벽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알파의 허리를 붙들었다.

    “그, 으, 그만…….”

    막무가내로 삽입한 알파도 통증을 느낀 건지 턱 근육이 도드라졌다. 그럼에도 별하에게 파묻은 생식기를 꺼내지 않았다. 허리를 움직여 더 깊숙이 묻으며 아프게 조여드는 내벽을 음미했다.

    고통스럽게 헐떡이는 별하의 다리를 더 넓게 벌린 알파가 페니스를 슬쩍 꺼냈다. 젖은 점막이 달라붙기 전에 다시 허리를 크게 쳐올려 별하의 뒤를 갈랐다.

    “흐읏……!”

    “으음…….”

    참았던 신음이 터졌다. 좀 전까지 다리를 버둥대며 거부하던 별하는 제 벌어진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며 헐떡였다. 알파와 부딪치듯 아랫도리를 밀착해 강제로 안쪽이 벌어질 때마다 등줄기를 관통하는 날선 감각을 느꼈다.

    발정기에만 스며 나오는 체액으로 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은 미약했다. 대신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쾌감이 덮쳐들었다.

    알파 역시 짐승처럼 헐떡이며 쾌감에 몸부림치는 이에게 격렬히 파고들었다. 아까까지 사체로 보였을 정도로 무력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위력으로 별하를 억눌러 마음껏 욕정을 풀었다.

    뒤섞인 체액이 엉덩이 뒤로 흘러내렸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생식기가 빠졌다가 깊게 맞물릴 때면 별하의 목 안에서 괴로움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읏, 흐응, 으읏…….”

    알파는 다급하게 오르내리는 별하의 목울대를 깨물며 그의 다리 뒤로 팔을 넣었다. 허리와 둔부에 힘을 실어 더 빠르게 내벽을 찔렀다. 모래밭에 묻혀 든 별하는 허리를 비틀며 알파의 탄탄한 장골을 잡아 움직임을 저지했다.

    “자, 잠깐, 읏, 흐읏, 아앗.”

    “하아…… 하아…….”

    순간 눈길이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와 맞닿은 금발 아래 엷은 눈동자가 각기 다른 색으로 번득였다. 별하는 제 안쪽에서 다시금 팽창하는 페니스에 신음하며 급하게 열기를 밖으로 쏟아냈다.

    “읏!”

    사정과 동시에 내벽이 조여들자 알파는 압박감을 못 참고 페니스를 꺼냈다. 노팅이 시작된 귀두가 오므라드는 주름에 걸려 서로 아픔을 느꼈다.

    “흐으, 읏.”

    “으음.”

    꽉 들어찼던 안쪽이 텅 비는 감각에 별하는 오들오들 떨었다. 진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알파가 그를 품에 안으며 얼룩덜룩한 목덜미를 애무했다. 노팅 중인 상태에서 뒷덜미를 물었다간 원나잇 상대를 영원한 반려자로 맞이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알파는 그곳으로 더 다가가지 않았다.

    별하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오만한 알파와 맺어진다고 해도 남의 일처럼 느낄 뿐이었다. 지금은 오직 육체에 지펴진 불길에 활활 타오르고 싶은 본능밖에 없었다. 알파의 페니스를 원했다.

    아직 발정이 오지 않은 어릴 적, 친구와 장난을 친 적은 있지만 기억에 남을 만한 섹스는 아니었다. 상대 역시 발정이 오지 않은 알파였던 탓도 있지만 형식적이기만 한 삽입은 아픔만이 전부였다.

    그 후로 섹스에 대한 판타지는 전무했고, 발정이 찾아온 사춘기에는 오메가의 무력한 처지와 알파에 대한 강한 적대심이 무엇보다 우선해서 발정억제제를 복용해 왔었다.

    제대로 된 발정기와 섹스를 처음 겪은 별하는 혼미한 상태였다.

    007.

    성인 알파, 그것도 TV에서만 보던 우월한 하이 알파와 몸을 겹친 지금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극렬한 갈증을 느꼈다. 코코넛 따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알파와 이어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감각에 몸서리를 쳤다.

    알파는 별하의 발기한 페니스를 핥았다. 움찔거리는 기둥을 입 안에 빨아들이듯 물었다가 고환을 혀로 쓸었다.

    “읏…….”

    다리를 접어 올려 땀과 애액에 젖은 뒤를 벌리자 불그스름하게 부어오른 구멍이 드러났다. 한 번의 삽입으로도 강한 자극을 받은 점막이 빠끔거리며 우므러들었다.

    알파는 곧장 그곳을 눌렀다. 뒤섞인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주름을 혀로 핥아 올리며 흡입하듯 빨아댔다.

    “읏, 하읏!”

    별하는 신음을 감추지 못했다. 뇌를 장악한 흥분감에 허우적거리며 알파의 페니스를 더듬었다. 한 손으로 잡기 힘들 만큼 크고 강건한 기둥을 제게로 이끌었다.

    “어서, 흐읏, 제……길…….”

    “하아…… 하아…….”

    알파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이전보다 더 급박하게 별하의 몸을 열어 안을 꿰뚫었다. 교접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납게 허리질을 하며 제 아래 깔린 이를 짓눌렀다. 격정에 사로잡힌 두 육체가 퍽퍽 부딪쳤다.

    별하는 몸이 활짝 열릴 때마다 번뜩이는 감각에 덜덜 떨었다. 난폭하리만치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알파의 어깨를 붙잡고 낯선 감각이 주는 공포감과 그보다 선명한 쾌감을 견뎠다.

    겹쳐진 육체 사이로 땀방울이 튀었다. 뜨겁게 가열된 체열이 서로의 피부를 달궈나가며 절정으로 몰아갔다. 젖은 숨결과 신음을 나누며 상대의 육체에 온전히 빠져들었을 때, 알파가 잠시 허리질을 멈추고 눅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하아……. 억제제는.”

    “으응…….”

    헐떡이며 뒤를 조이던 별하가 축축한 눈을 들어 올렸다. 제게 꽂힌 눈동자를 마주하며 숨을 몰아쉬다 흐릿한 정신을 억지로 더듬어 일주일 전 복용한 발정억제제를 떠올렸다.

    당시 발정이 오지 않았지만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혹시나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평소보다 두 배로 복용했었다. 며칠 몸살기가 돌았지만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지금의 이런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별하는 허리 뒤를 들어 알파와 깊게 밀착하며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안에, 안에다 싸…….”

    알파의 눈길이 별하의 젖은 눈동자에 파고들었다. 좁다랗고 아담한 콧방울과 그 아래 새빨간 입술을 내려다보다 점막을 살짝 맞댔다. 더 깊은 접촉은 없었지만 가깝게 마주한 틈으로 서로의 숨결이 오고 갔다.

    알파는 흥분에 일그러진 별하의 얼굴을 직시하며 크게 허리질을 했다. 곧 사정하려는 듯 내벽 깊은 곳을 찔러 들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체액이 모래 위로 뚝뚝 떨어졌다.

    “흐읏, 읏……! 으응, 읏!”

    알파는 숨도 쉬지 않고 부드러운 안쪽을 점령해 나갔다. 큼지막하게 부풀어 오른 귀두가 연약한 점막을 계속해 찌르자 별하는 선득한 쾌감에 흐느꼈다. 말초신경이 곤두서 피부 위로 소름이 돋는 순간 그의 페니스에서 묽은 체액이 튀어 올랐다.

    “흐으읏……!”

    반사적으로 뒤가 힘껏 조여들어 알파도 곧바로 사정했다.

    “으음.”

    “앗, 싫―”

    내벽으로 흘러드는 뜨거운 정액의 느낌이 선연했다. 별하는 신음하며 둔부를 움찔움찔 조였다. 서로의 흐트러진 호흡이 난잡하게 뒤섞였다.

    절정을 맞이하고 사정한 후에도 두 육체는 떨어지지 않았다. 노팅 중인 알파는 별하에게 페니스를 묻은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최대치로 부풀어 오른 모양새가 몇 시간은 지속될 듯했다.

    별하 역시 알파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격한 오르가즘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듯 눈의 초점이 흐릿했다. 반들반들한 두 뺨에는 홍조가 떠올라 있었고 벌어진 입술은 어느 때보다 새빨갰다.

    그는 제 안쪽을 장악한 열기에 도취돼 흥분을 쉬이 가라앉히지 못했다. 더 이상 잡아매지 않는 다리를 스스로 넓게 벌려 허리를 되틀었다. 저를 빤히 내려다보는 알파의 허리에 다리를 감으며 낮게 헐떡였다.

    “더…….”

    완만하게 기울어진 태양에 붉은 빛이 감돌았다. 별하는 모래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손 안 가득 들어찼다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를 몇 번이고 움켜잡으며 씨름했다.

    젖은 뒤쪽을 느릿하게 철벅철벅 쳐올리던 알파가 별하의 등을 제 가슴으로 누르며 허리질에 박차를 가했다.

    “으으, 읏…….”

    잔뜩 잠긴 목 안에서 가까스로 참고 있던 신음이 끝내 비집어 나왔다. 알파는 엎드린 별하의 뒤에 완전 밀착해 끈질기게 안을 파고들었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몇 시간을 수없이 드나들며 맞물렸지만 감각은 무뎌지지 않았다.

    서로의 급소를 자극당할 때마다 사정했다. 몇 번을 사정한 건지 셀 수가 없었다. 정액이 묽어질 대로 묽어져 뚝뚝 떨어져도 오르가즘은 찾아왔다. 내벽 안쪽에도, 끊임없이 들러붙은 가랑이 사이에도, 마른 모래 위에도 체액으로 질척했다.

    사정을 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에는 다시금 달려들었다. 알파는 여전히 우직하게 부딪쳐 왔지만 거대한 페니스를 장시간 받아들인 별하는 겨우 버티고 있었다. 알파의 정액으로 아랫배는 불룩하게 튀어나왔고 구멍은 정액 범벅이었다.

    알파에게 빨린 젖꼭지도 부어올라 쓰라렸다. 노팅이 끝나지 않는 페니스에 몇 시간을 시달린 내벽은 작은 움직임에도 경련했다. 붉은 열꽃으로 뒤덮인 온몸이 진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파도소리가 잔잔히 밀려드는 아름다운 해변에 음욕에 빠진 신음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별하는 제 뒷목을 깨무는 알파의 페니스를 온힘으로 조이며 사정을 유도했다. 알파는 웅크린 별하를 끌어안고 마지막 절정에 치달았다.

    “으응, 읏, 흐읏…….”

    “음, 흐음.”

    알파의 사정이 끝나는 즉시 별하는 모래 위로 쓰러졌다. 이제야 노팅이 끝난 듯 꿈쩍도 하지 않던 페니스가 미끄덩하게 빠져나갔다.

    “흐으…….”

    안쪽에 들어차 있던 정액이 흘러나왔지만 별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급습하는 피로감에 백기를 들고 눈을 감았다. 알파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팽팽하게 이어가던 의식은 틈이 생긴 순간 가는 고무줄처럼 뚝 끊어졌다.

    * * *

    끼룩―

    야자나무에 걸린 형광 노란색의 레인 코트가 바닷바람에 펄럭거렸다. 그늘진 모래밭에 멍하니 앉아 있던 별하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옷을 멀쩡하게 입고 있었고 팔다리도 제대로 붙어 있었다. 신경을 주무르는 통증들만 아니었다면 범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고만 여겼을지도 몰랐다.

    숨을 쉴 때마다 뒤쪽에서 번지는 열감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큰 정신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알파의 페로몬에 휩쓸려 히트가 왔다고 해도 그리 순순히 붙어먹어 버린 자신을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강력한 페로몬이었다고는 해도 일말의 관심도 없는 거만한 알파 따위와 그런…….

    임신 성공률이 특히나 높은 하이 알파의 정액에 푹 절여질 정도였으니 재수가 없으면 임신이 될 수도 있다. 별하는 괜히 묵직하게 당기는 듯한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뒤늦게 불안감을 느끼고 얼른 뒷목을 더듬었다. 천만다행으로 물리진 않았지만 우울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욱신거리는 뒤를 애써 모른 척하며 멀쩡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우선은 주린 배부터 채운 뒤에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고심할 생각이었다.

    몹시도 뻐근한 몸을 일으키려는데 옷가지에 쓸린 젖꼭지가 찌릿하게 아렸다.

    불쑥 알파의 자극적인 페로몬이 떠올라 마른침이 멋대로 꼴깍 넘어갔다. 저를 우악한 힘으로 짓눌러 뒤를 세차게 찔러 들던 감각이 되살아나 낮게 혀를 찼다.

    “빌어먹, 으음.”

    잔뜩 잠긴 목에서 통증이 일었다. 얕은 호흡을 뱉으며 육체의 통증을 인내하는 그의 옆 시야로 뭔가가 걸려들었다.

    별하는 고개를 돌려 지근거리를 확인했다. 바짝 마른 제 운동화와 양말, 고이 접힌 체크무늬 남방 옆자리에 커다란 코코넛 대여섯 개가 쌓여 있었다.

    “…….”

    출처는 단 한 곳뿐이었고 별하의 심경은 더 암울해졌다. 마치 구석기 시대의 화대처럼 느껴지는 코코넛을 모래밭 깊숙한 곳에 파묻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미친 짐승 같은 알파의 흔적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으려 강한 햇빛이 내리는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별하는 이렇게나 평화로울 수 없는 바다를 망연히 빙 둘러보다가 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현 시각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시간 감각이나 현실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미지의 4차원에 들어온 듯 무감각했다.

    조난을 당한 게 맞나? 어제 정말 처음 만난, 아니, 두 번째 만난 알파와 섹스를 했었나? 크루즈에서 잠시 머물렀던 기억은 혹시 데자뷰가 아닐까? 어쩌면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날, 겨우 잠든 꿈속에 아직도 갇힌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아…….”

    별하는 이제는 머리까지 지끈지끈했다. 낯선 곳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잠시 인간적 체면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