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1화
“그 사람의 이름도 알 수 있겠습니까?”
유더의 질문에 키시아르는 흔쾌히 바로 답을 알려 주었다.
“메그나 컬리에바.”
유더의 눈썹이 움찔 움직였다.
“이름 형식이… 여성이십니까.”
“그래. 맞아. 올해 37세고, 가난했던 컬리에바 남작가에서 난 인재이자 남부의 자랑 중 하나지. 뭐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이상…하긴 하지. 이전 생에서 지노 장군의 뒤를 이었던 놈은 남자였으니까.’
이전 생의 지노 장군은 죽은 게 아니라 자리에서 물러난 뒤 모습을 감추었다. 그건 즉 그의 뒤를 이을 이를 고를 때까지는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리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키시아르조차 알 정도의 애제자이자 후계자로 공인된 이가 아니라 다른 놈이 생뚱맞게 그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도 그 부분이 화제가 되지 않고 소드마스터가 아니란 부분에만 관심이 쏠렸었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유더는 그 점을 조심스레 설명했다.
“이전 게임에서 지노 장군의 뒤를 이었던 남부의 장군이 그분일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좀 놀랐습니다.”
“그래? 어떤 사람이었지?”
“남자였고, 소드 마스터가 아니어서 당시 꽤 화제였습니다. 마병단에는 그리 협조적이지 않아서 사이가 별로였고… 이름은… 발포스 장군이라 불렀던 것만 기억나는군요.”
워낙 하찮고 접점도 없는 놈이라 여겨 기억에 묻어 두었던 이름이 겨우 조금 떠올랐다. ‘발포스…….’ 하며 중얼거리던 키시아르가 이내 뭔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들었다.
“혹 그자인가? 갈렉상트르 발포스. 그도 지노의 제자야. 부관은 아니지만 남부군에 소속되어 있지. 회수 임무를 위해 산맥에서 만났을 때 얼핏 얼굴을 본 기억이 나거든. 내가 짐작할 만한 이는 그자뿐인데, 맞나?”
유더는 그제야 희미했던 기억 속의 이름을 완전히 떠올렸다.
‘그래. 그놈이다. 혀가 꼬일 것 같은 이름이니 잊을 만도 하군.’
“네. 맞습니다. 그런데 만나셨었다니… 언제 말입니까?”
“넌 못 봤을 거야. 전술 게임을 두러 가던 도중에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거든.”
붉은 돌 회수 임무를 하던 때, 키시아르는 간만에 만난 지노 장군과 회포를 풀기 위해 단둘이서 자리를 비워 전술 게임을 두고 온 적이 있었다. 과연 그때 봤을 뿐이라면 유더나 다른 단원들은 모를 만도 했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확실히… 이야기를 듣고 나니 좀 이상하긴 하군.”
키시아르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지노는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더라도 뒷일을 아무렇게나 처리하고 갈 사람은 아니야. 무려 40년 넘는 세월을 남부에만 바쳐 왔으니만큼 누구보다 그 문제에 신경을 썼겠지. 그렇지만 갈렉상트르 발포스는 지노의 제자 중에서도 꽤 문제아로 유명했거든.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아는 이들은 알지.”
지노 장군의 제자는 메그나와 갈렉상트르뿐만이 아니다. 키시아르와 케일루사 황제조차 넓게 보면 지노의 제자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굳이 따져 메그나가 아니라도, 뽑아 추천할 만한 제자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평도 좋지 않은 갈렉상트르였는지가 키시아르의 의문을 자극한 듯했다.
“아까 다음에 부관을 데려오겠다고 말까지 하고 간 걸 보면 지노의 신뢰가 메그나에게서 떨어진 것도 아닐 텐데……. 여러모로 흥미롭군.”
“갈렉상트르가 이번에 여기에 왔는지 알아봐야겠군요.”
“그걸 조사하는 건 쉽지. 굳이 우리가 조사하지 않아도 알아서 말해 줄 이가 많지 않나?”
키시아르가 씩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불려 올라온 제국군 각협 부대의 대장 선즈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 앞에 섰다.
“아까 지노 장군과는 잘 만났나?”
“아…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저희 부대원 모두가 장군님과 따로 편하게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즈의 표정이 확 풀렸다. 그와 각협 부대원들은 지노 장군이 왔음에도 그를 따르지 않고 남부 지부와의 직접적 협력을 위해 그대로 머무르는 상태였다.
키시아르는 그런 그들을 위해 지노 장군이 돌아가기 전에 따로 만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 주었었다.
“잘되었군. 협력하는 사이에 그 정도는 당연한 일이지. 장군이 자네들의 활약에 크게 기뻐하더군.”
“하하……. 예. 저희에게도 그리 말씀하시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선즈는 우상과도 같은 지노 장군의 칭찬에 몹시 행복해 보였다. 키시아르는 그 틈을 타 아주 교묘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장군이 다음에는 부관을 데려오겠다던데, 그쪽은 자네들과 친한 편인가?”
“아… 컬리에바 부관님 말씀이시군요! 정말 대단한 분이시죠. 사실 그분이 아니셨다면 저희 부대가 이렇게 빠르게 형태를 갖추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
“각성자는 아니시지만 저희의 필요성과 잠재력을 누구보다 빠르게 확인하고 차별 없이 대해 주신 시작점이 그분입니다. 부대 창설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분이 제일 먼저 저희와 장군님의 선택을 지지해 주셨고, 반대하는 다른 분들을 설득하셨습니다.”
선즈의 말에 의하면 메그나 컬리에바는 지노 장군이 붉은 돌 근처에 오래 주둔하고 있는 동안 남부를 지켜 온 사람이었다. 그 일이 마무리된 뒤 메그나는 지노 장군에게서 들은 각성자 병사들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선즈와 에몬 등을 직접 만나 실력을 시험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지원군이 되어 남부군의 전력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람이 남부군에 있었던 줄은 몰랐군…….’
“과연, 나도 컬리에바 부관을 꼭 만나 보고 싶어지는군. 그러면 갈렉상트르 발포스는 어떤가? 그도 장군의 제자이자 자네들과 오랫동안 산맥에서 한솥밥도 먹은 사이일 텐데.”
“아……. 발포스 특무관님 말씀이시군요. 그분도 이번에 오시기는 했지요…….”
선즈의 표정이 아주 애매해졌다. 본래 선량한 놈이라 여간해선 그런 표정을 짓는 이가 아닌데, 누가 봐도 떫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방금 메그나 컬리에바에 대해 말할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키시아르가 유더와 비밀스레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 그자도 왔군. 이거 털어 보면 뭔가 나오겠는데.’
‘같이 하죠.’
선즈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순식간에 눈빛으로 의견 교환을 마친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선즈를 대했다. 시작은 유더부터였다.
“혹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음… 아뇨, 그렇다기보다는……. 윗 계급 분이시니 함부로 말씀을 드리기가… 뭐라고 할까, 조금 어렵다고 할까요……. 하하. 그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요.”
“그럴 수 있지. 이해하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시아르의 짐짓 다정하고 위엄 넘치는 끄덕임을 보며 선즈가 안도했다.
“하지만, 잘 알지 못하기에 오히려 객관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건 비밀이네만, 장군도 그 두 사람에 대해 꽤 염려하는 중인 것 같더군.”
“자, 장군님께서 말입니까?”
선즈는 ‘두 사람을 염려한다’는 부분보다 장군의 이름 그 자체에 더 깜짝 놀랐다.
즉, 메그나와 갈렉상트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염려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쪽에 대해 잘 모르니 두 사람에 대해 최대한 중도적 시선을 가진 이의 평을 먼저 듣고 싶었네.”
선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제가요?’ 하고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유더는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내기 전에 또다시 나섰다.
“선즈, 당신은 저를 비롯한 마병단과 오랫동안 교류를 해 왔고 각성자이기에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동료이기도 하지요. 아닙니까?”
“아… 마, 맞습니다. 그렇죠?”
유더가 무표정한 얼굴로 동료란 단어를 꺼내자 선즈는 답지 않게도 상황조차 잊고 상당히 감동했다.
“그러니 당연히 같은 각성자의 시선으로 본 그분들의 사정이 어떤지 궁금한 마음도 이해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단장님께선 다른 분들께도 똑같은 질문을 하실 테니 당신에게 들은 이야기로만 편파적인 판단을 내리실까 염려하진 않아도 됩니다.”
“으음…….”
선즈가 머리를 긁적거리다 결국 마음이 움직인 듯 크게 숨을 토해 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그저 남부군의 말단 병사 입장에서 보고 들은 일견에 불과하다고만 여겨 주십시오.”
“알겠네.”
드디어 선즈가 갈렉상트르 발포스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발포스 특무관님이… 컬리에바 부관님을 싫어하시는 건 저희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산맥에서 함께 굴렀던 녀석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직접 그 뜻을 드러낸 적이 많았나 보군.”
“예. 산맥에 있는 동안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었을 겁니다. 그분은 취할 때마다 컬리에바 부관님이 귀여움받는 제자란 이유로 지루한 자리를 피해 남부에서 편히 살고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죠. 장군님의 부관 자리도 본래는 그분의 것이었다고 자주 아쉬워하셨습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