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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90화 (790/805)

790화

“이제 능력 조절을 필요한 만큼 잘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또 새로운 벽이 보이네. 어휴. 훈련의 길은 끝이 없어.”

확실히 뢰네브와 큐레이지나의 능력은 여기서 놓치기 아까운 수준이었다. 칸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슬쩍 물어보니 두 사람 모두 마병단에 계속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했어. 큐레이지나 씨의 죗값 부분은 듣자 하니 거의 감형될 것 같다며? 그 부분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진 단에서 일반 고용 하는 형태로 계약하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생활을 지원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음.”

“가능하면 수도 본부 쪽으로 와 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여기 있는 동안 꼬셔 보려고. 이건 순전히 내 감이지만 싫다곤 안 할 것 같아.”

이젠 이쪽에서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한 일 처리를 계획해 주는 그녀를 위해, 유더는 일을 하는 도중에도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새로운 훈련 메뉴를 짜 주겠다고 약속했다.

“와…아. 정말? 하하… 유더가 나만을 위해 특별 훈련 메뉴를… 정…말 좋네. 으응. 으으으.”

칸나는 기뻐하면서도 어쩐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 후에도 두런두런 이어지던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하에 들어서면서부터 약속이나 한 듯 끊겼다.

“…안녕하세요, 두 분. 들어가시려는 거지요?”

방금까지 이야기했던 대상인 뢰네브가 지하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입구의 앞에 앉아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안락한 흔들의자에 앉아 삼색 털실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건 뢰네브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 마병단원들이 머리를 짜낸 끝에 선물한 물건들이었다.

불법 격투장에서 그녀가 머물렀던 방에 있던 화려한 물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물건들이지만 뢰네브는 정말로 기뻐했다고 들었다.

“아까도 봤지만 고생이 많으세요. 힘들진 않으세요?”

“아뇨, 전혀. 이 정도는 자면서도 유지할 수 있어요.”

칸나의 물음에 뢰네브가 고개를 저으며 고른 이가 드러날 만큼 환하게 웃었다.

“돕고 싶어서 돕는 거니까 걱정 마시고 두 분 모두 다녀오세요.”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그녀의 곁을 지나 ‘경계’를 넘었다.

그와 동시에 각성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완전히 뒤바뀌며 몸이 훅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뢰네브가 펼친 각성자 능력 제한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한때 귀족가의 저택이었던 곳답게 엄숙하면서도 우아한 양식의 복도와 닫혀 있는 여러 개의 문. 그 안에 이번 전투에서 잡아들인 이들이 나뉘어 갇혀 있었다.

감시나 조사를 위해 지하에서 교대로 머물고 있는 몇몇 단원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칸나는 먼저 나서서 그들과 인사를 한 뒤 유더를 이끌고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방으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호산라가 있는 장소였다.

“다녀와 유더. 난 바깥에서 기다리다가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신호를 보내고 들어갈게.”

든든한 칸나의 말을 뒤로하고 유더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가느다랗게 ‘들어와도 됩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오셨, 군요.”

호산라는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나 인사를 했다. 칸나에게 들어 이미 유더가 저녁에 올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얼굴이 몹시 딱딱했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을 보자니 어색함과 긴장감을 넘어 어떤 비장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긴. 깨어난 초반 이후로 단둘이서 얼굴을 본 적이 딱히 없긴 했지.’

그런데도 호산라는 유더를 만나기를 요청했다. 거기엔 분명히 이유가 있을 터다.

유더는 조용히 나아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적당히 멀면서 시선은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 만한 위치였다.

“수도에서부터 여기까지 이동해 오느라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 상태는 어떻습니까.”

“…왜, 왜 갑자기 그런 말투를 쓰는 거죠?”

“좋든 싫든 당신에게 마병단이 도움을 받았으니 그에 대해 적당한 예의는 갖추고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기껏 예의를 갖추어 말을 꺼냈는데 호산라는 엄청난 취조라도 시작된 듯 기겁을 했다.

“그러지 마세요. 그, 냥 하던 대로 해 주세요.”

“뭐, 그쪽이 더 편하다면야.”

그제야 호산라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상태는?”

“괜…찮은 편이에요.”

“본인이 느끼기엔 현재 능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 생각하지?”

“……자, 잘 모르겠네요. 계속 회복된 것 같긴 한데 능력이란 게 개수가 있어서 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유더는 자신의 능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초보 각성자를 대하듯 열 개의 손가락을 쭉 펴 보여 주었다.

“좋아. 그러면 예전에 이동할 수 있었던 거리의 최대치가 손가락 열 개만큼이라고 쳤을 때, 지금은 비교해서 어느 정도를 갈 수 있을 것 같은지 대충 짚어 봐.”

유더의 손을 아주 두렵게 바라보던 호산라가 천천히 스스로의 손가락 일곱 개를 폈다.

“…이 정도.”

‘10중 7 정도인데 그 정도라. 이 이상 더 회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현 상태로도 준비만 잘한다면 아주 대륙도 횡단하겠어.’

유더는 겉으로 그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이상이 느껴진다면 바로 이야기하도록 해. 그건 그렇고, 날 만나 뭔가 말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아…….”

드디어 본론이다. 호산라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은 채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들었다.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제가 마병단 분들을 도와 여기까지 오려고 한 건… 나한님과 현자…님 사이에 큰일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인 거죠?”

유더는 호산라가 현자를 예전처럼 망설임 없이 ‘현자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의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진짜라고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진짜라고 말해 주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지? 누가 말하든 믿고 싶으면 믿고 아니면 아닐 텐데.”

무릎 위에 올린 호산라의 주먹이 긴장으로 떨렸다. 그래도 나오는 목소리는 오랫동안 연습한 것처럼 분명했다.

“아니요. 당신은, 절 살렸어요. 그러니까 차이가 있어요.”

“그걸 기억하나?”

“기억해요. 당신이 제 몸에 뭔가를 했잖아요. 굉장히 아팠지만… 뭔지 모를 그것 때문에 갑자기 몸에서 힘이 살아나고 정신이 들었던 건 알아요.”

호산라는 생각보다 자신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던 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어도 상관없었을 텐데 어쨌든 살렸다는 건 그럴 이유가 있었단 거겠죠.”

“…….”

“전… 아마도 제 능력을 쓸모 있다고 여겨서 살려 준 걸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젠 능력을 회복해서 마병단에게 가치를 보여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니까…….”

좀 잘 말하나 싶더니 유더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또다시 힘겹게 기가 죽기 시작하는 그를 보며 유더는 의자에 조금 편안히 몸을 기대었다.

“그러니까, 내가 네 능력을 높이 쳐서 살려 놓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보다는 더 안심이 된다. 그러니 쓸모를 보여 준 대신 진실을 거래하고 싶다. 뭐 그런 뜻인가?”

호산라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바라는 대로 질문에 답하자면 네가 들었을 소식들은 모두 사실이야.”

“아…….”

잔뜩 긴장했던 호산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안타까운 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정말로…….”

“…….”

“저. 나한님은 아직 살아 계신 건가요? 현자……님 쪽은 어떤가요?”

유더가 보기에 호산라는 그 답을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정말로 유더에게 확신을 얻고 싶을 뿐이었다.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 나한은 남부로 향한 걸로 추정되지만 상태가 그리 좋진 않을 거야. 마지막으로 그를 본 목격자들의 말로는 부상이 몹시 심했다고 했거든. 현자는 그때 수도에서 나한과 맞붙은 뒤 디아카 공작과 황태자의 도움을 받아 마찬가지로 남쪽으로 향했다고 하니 아마 곧 오겠지.”

호산라가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올 만큼 꽉 깨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요. 현자님은 우릴 위해 헌신하는 분이셨는데… 어째서 나한 님을…….”

“그 답까지 내가 해 주기는 좀 그렇지만, 굳이 확인이 필요하다면야.”

호산라가 현자의 세뇌에서 많이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과연 이 말까지 제대로 인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유더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똑바로 말해 주었다.

“현자와 나한이 바라는 건 애초부터 서로 달랐을 거야. 그럼에도 아무 말 없이 현상 유지를 해 오다 진짜 목적을 움켜쥘 수 있게 될 때가 오자 진실이 드러났을 뿐이겠지.”

“…….”

“언제가 되었든 지금과 같은 때가 왔을 거다. 이것만은 장담하지.”

이전 생에도 나그란의 별은 분열 후 서로 싸워 패망하는 결말을 맞이했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호산라는 그 말의 이면에 담긴 뜻을 알지는 못했으나 유더의 말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확신만은 느낀 것 같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옷자락을 움켜쥐며 겨우 쉰 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가, 제가 마병단을 더 돕는다면… 그러면 마병단은 나한 님을 살려 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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