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9화
“모두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드디어 단장 키시아르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수도에서 온 인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현재 마병단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들의 대부분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자리였다.
키시아르는 모인 이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건강한 모습들을 보니 기쁘군. 이번에 다소 ‘특별한’ 이동 방법을 사용했는데 오는 동안 이상 상황은 없었나?”
특별한 이동 방법이라는 건 당연히도 호산라의 힘을 뜻한다. 그 뜻을 알아차린 에버가 대표로 나서서 대답했다.
“네. 모두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장소 또한 단장님께서 미리 수배해 주신 곳에서 오차 범위가 크지 않았기에 무사히 안내자와 접촉할 수 있었습니다.”
키시아르는 수도에서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극소수의 인원들에게만 공유했고, 미리 많은 인원이 갑자기 나타나도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장소를 물색해 두었다.
해당 장소에는 미리 명을 받은 나단 주커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병단 소속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샬로인 내 다른 세력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대처력을 갖춘 최고의 안내자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예정보다 조금 먼 곳에 떨어진 단원들을 그 정도로 빠르게 알아차리고 바로 찾아내 남부 지부까지 안전하게 이끌고 올 수는 없었으리라.
“잘되었군. 특별한 이동 방법을 체험해 보았으니 이전과 비교해 느낀 점이 있을 듯한데, 소감은 어떤가?”
“솔직히 말해… 정말 상상 그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이었습니다.”
에버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 많은 인원을 순식간에 이동시키고도 몇 시간 정도 회복하고 나면 괜찮아지더군요. 호산라 본인의 말로는 예전에는 더 많은 인원을 더 먼 거리로 옮기고도 멀쩡했었다는데, 이동 능력에 한해서는 현존하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힘이라 느꼈습니다.”
호산라는 나한의 소식을 듣고 기적처럼 힘을 회복했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기에 예전보다 더 힘들게, 그리고 더 짧은 거리만 이동이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병단은 고작 4일 만에 수도에서 남부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그 4일의 시간도 중간중간 호산라가 후유증을 견디느라 쉬어야 했기에 걸린 것뿐이었고, 실제 이동에 소요된 시간은 총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에버의 말마따나 이동에 한해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능력이었다.
“심지어 오는 동안 능력이 점점 더 회복되어서인지, 처음보다 마지막 이동 때 회복에 걸린 시간도 훨씬 짧았습니다. 처음엔 능력을 쓰고 나서 업혀 다니던 이가 남부 지부에 올 때는 스스로 걸었으니까요. 알릭 마법사님의 능력 제어구를 채워 두고 누구도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가린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탈출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는 필요할 듯합니다.”
“그런가. 에버 부단장의 염려에 대해 칸나 부단장의 의견은 어떻지?”
키시아르의 화살이 얌전히 듣고 있던 칸나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호산라가 도망칠 의도를 품으면 언제든 눈치챌 수 있는 힘을 지녔기에 가케인과 함께 그를 호송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남부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서 다른 의도가 읽히지는 않았나?”
“아, 네! 지부에 도착했을 때 호산라에게선 긴장 외의 다른 건 읽히지 않았습니다.”
칸나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등을 쭉 펴고 신중히 대답했다.
“일단 현재까지는 나한에 대한 걱정, 그리고 현자에 대한 의구심이 그가 품은 가장 큰 감정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에버 부단장님의 말씀대로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되겠지요. 마음이 약한 이라 여기서 다른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을 만나고 나면 생각이 또 변할 수 있으니까요.”
“현자에 대한 의구심 쪽은 달가운 이야기군. 자신이 세뇌당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자각한 것 같나?”
“나한과 현자의 대립 사건을 들은 뒤부터 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태도가 점차 바뀌는 것으로 보아 그렇다고 느껴집니다.”
칸나의 설명에 의하면 호산라는 최근 들어 현자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현자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이후에는 두통이나 다른 고통을 호소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을 만나 직접적인 질문을 듣고 자극을 받았을 때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그래도 잦은 빈도였다.
하필 그즈음에 능력이 회복되기도 했기에 칸나는 처음에 그것이 소실된 능력 회복에 따라 나타나는 증상이라 여겼다고 했다.
“하지만 능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에도 계속 그러는 것을 보면 세뇌 능력이 깨져가며 나타나는 후유증 쪽이 더 맞겠다고 여겨졌습니다. 둘 다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 확실히 변화가 있기는 한가 보군. 그렇다면 각성자의 능력이 제한되는 지하 영역에 들어간 이후에는 해당 부분의 변화가 더 커질 수도 있겠어.”
“아… 말로만 들었던 그…… 각성자 능력 제한 구역 말인가요?”
“그래. 우리 모두를 감시 업무에서 대폭 해방해 준 고마운 곳이지.”
키시아르의 말에 모두가 슬쩍 웃었다. 얌전히 키시아르의 곁에 앉아 회의 전체를 지켜보던 유더는 그 웃음들 속에 숨겨진 그간의 어려움을 짐작했다.
그동안 마병단원들은 잡아들인 각성자들의 감시에 몹시 많은 힘을 써야 했다. 감시할 이가 늘어날수록 본래 하던 업무나 훈련에 들일 여력이 그만큼 줄어드는데,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 은근한 골칫거리였다.
해당 방면에서 앞으로 해결책이 되어 줄 알릭의 제어구는 아직 연구 중이라 본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보니 여러모로 알게 모르게 불편이 컸을 텐데, 남부에서는 그 부분이 해결되었으니 아주 기쁠 터였다.
“뢰네브라는 훌륭한 각성자 덕에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만나게 되면 다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 주게.”
“실제로 볼 생각을 하니 정말 신기하네요. 그런 능력이 있다니……. 남부엔 정말 대단한 각성자들이 많군요.”
자신도 극히 드문 능력을 가진 각성자면서 도리어 남을 신기해하던 칸나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알릭 마법사님께 그 공간을 보여 드리면 제어구 개발에 더 많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미 단장님께서 그렇게 하실 예정이실 것 같기는 하지만요…….”
말하고 나니 자신들의 단장이 보기와 달리 엄청나게 철두철미한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는지 조그만 한마디가 뒤에 붙었다.
키시아르는 그런 그녀를 무안하게 만들지 않고 웃으며 칭찬했다.
“물론 그럴 예정으로 그를 불러들인 것도 맞지만, 말하지 않아도 뜻을 알아 주는 부단장이 있어 더욱 든든하군. 기왕 말이 나왔으니 알릭이 그곳을 견학할 때 동행자를 자네에게 맡겨도 되겠나?”
“네. 알겠습니다! 과연 신검의 새로운 주인이시며 검의 극의를 보여 주신 분다우세요!”
칸나가 힘차게 대답하자 회의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 키시아르가 응? 하고 반문한 뒤 낮게 웃으며 눈을 휘었다.
“그건 아부인가?”
“아부가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린 것이죠. 부단장인 저희조차 단장님께서 오러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보았다니 솔직히 처음에는 정말 아쉬웠거든요.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뒤늦게 축하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 말뜻은 키시아르가 소드마스터라는 사실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한 치의 의심 없이 믿겠다는 의견 표명과 같았다. 단장이 그동안 자신들에게조차 힘을 숨겼다는 사실에도 단원들은 누구 하나 부정적인 뜻을 표하는 이가 없었다. 그동안 왜 그런 대단한 능력을 숨겼느냐고 묻는 질문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장이 편안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해서 진짜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이는 아니다.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단원들은 자연스럽게 선을 지켜야 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느슨하지만 지킬 것은 알아서 지키는 이 분위기야말로 키시아르가 만들어 낸 마병단의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라 할 만했다.
“음, 대놓고 듣는 칭찬은 역시 맛이 좋단 말이지.”
어디 더 해 보라는 듯 키시아르가 뻔뻔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칸나의 뒤를 따라 다른 단원들도 정말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는 듯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들은 이야기만으로는 정확히 상상이 안 되는데 대체 그때 어떤 방식으로 오러를 사용하셨던 건가요?”
“혹시 오러를 각성자의 힘과 함께 쓰는 것도 가능하신 겁니까?”
“하, 저도 남부에서 함께 싸웠어야 했는데…….”
단장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과 자부심이 뒤섞인 목소리들은 이내 잔뜩 커져 순식간에 아이들처럼 왁자하게 변해 버렸다.
그들 중에는 검 이야기에 얼굴이 상기된 가케인도 있었다.
“기회가 되면 저희에게도 단장님의 검 실력을 견식할 기회를 부탁드립니다!”
“하하. 알겠네, 알겠어. 오늘 저녁에 보여 줄 테니 다들 진정하게.”
“정말입니다? 약속하신 겁니다!”
흥분으로 빛나는 단원들을 진정시킨 키시아르가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화제를 넘겼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할 일을 해야겠지. 남부의 현 상황과 더불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려 줄 테니 집중하게. 지금부터 말하는 모든 것은 외부에 실수로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하고.”
부드러웠던 분위기에 일순 바짝 군기가 들었다. 모두 자세를 바로 하고 키시아르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유더는 이미 직접 겪고 의견까지 내어 잘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기에 그 내용에는 그렇게까지 집중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티가 나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느껴지는 동료들의 얼굴을 지켜보다 시선을 돌려 막힘없이 설명과 지시를 이어 나가는 키시아르에게 눈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