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5화
“죽은 이는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지?”
그간 주군의 수많은 이상한 질문에 단련될 대로 단련된 나단 주커만도 이번만큼은 과연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죽은 이는 어디로 가냐니. 대체 무슨 의미로 하는 질문인가. 침묵하던 남국인 기사는 무거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신전에서는 천국, 혹은 지옥에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태양신의 교리에 의하면 모든 것은 죽은 뒤 신의 판단에 따라 천사가 있는 천국, 혹은 악마가 있는 지옥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은 아니며, 각기 그곳에서 주어진 모든 업을 지우고 나면 태양신의 품에 안겨 영원히 불꽃의 일부가 되어 타오르게 된다는 게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키시아르라고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도 굳이 물어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신전에서라고 언급하는 건 나단 네 개인적인 생각과는 다르단 소리겠지.”
“아시겠지만 저는 신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죽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이겠지요. 그 뒤를 알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막의 전사들을 부모로 두었으나 나고 자란 땅은 사막 이북의 제국이다.
그 탓인지 나단 주커만은 예전부터 그런 부분에서는 늘 거리를 두고 살았다. 그에게는 당장 눈앞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주군이 신 따위보다 훨씬 중요했다. 살아있는 순간을 죽은 뒤를 위해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나마 이런 상식이라도 알고 있는 건 주군이 황족이라 어린 시절부터 신전을 상당히 많이 따라다녔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군. 그러면 남국 쪽에서는 그것에 대해 뭔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남국인들의 신앙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보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군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들이 정말로 별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태양의 품에 안기거나, 혹은 별이 되거나. …그렇다면 유령의 존재는 어떻게 생각하지?”
과연 이 세 번째 질문 앞에서는 나단 주커만도 주군에게 의문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 제가 아니라 사제들에게 하셔야 할 질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굳이 물으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그냥, 나도 그다지 죽은 뒤의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쪽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일이 생긴 것도 같아서 말이야.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어떠한지가 궁금했지. 만만한 게 부관이니 먼저 물어볼 수밖에.”
“……어쩌다 보니 사후세계를 알아보아야 할 일이 생기셨다고 하셨습니까?”
“청력도 좋으면서 되묻기는.”
나단 주커만이 굳이 되물은 이유를 알 텐데도 주군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단 주커만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많은 경험이 쌓인 덕분에 이제 여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그가 그리 오래 침묵하는 건 그만큼 이 질문에서 깊은 심각성을 느꼈다는 뜻이었다.
키시아르는 부관의 반응이 그렇거나 말거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답은?”
“……유령이란 걸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으니 마찬가지로 믿지 않습니다. 보았다고 말한다면 착각이거나, 정신에 병이 생긴 탓이겠지요.”
딱 자른 대답을 들은 키시아르의 입가에 흐린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역시 그렇군. 알겠다. 그만 가 보아도 좋아.”
“…….”
키시아르가 대충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렸다.
나단 주커만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주군의 저 이상 행태도 분명 유더 아일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깊은 확신이 들었다.
이 어이없는 질문이 정말로 주군에게 몹시 중요한 상황이라면, 나단은 부관으로서 무어라도 알아내 도와야만 했다.
‘죽은 뒤의 이야기라.’
그는 오랜 기억 속,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얼마 전 예전에 살던 마을을 방문했던 때문인지 그 시절의 일들이 이전보다 선명했던 탓이다.
그는 그중에서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기억을 입에 담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같은 마을에 살았던 남국인 노인 중 죽음 뒤의 세상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든 이가 죽은 뒤 완전한 별이 되는 건 아니며, 생명을 이루는 일부는 찌꺼기처럼 걸러지는데 그것이 밤의 어둠이 된다고 말입니다.”
걸음을 옮기던 키시아르가 발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나단 주커만은 그 이야기가 주군의 관심을 제대로 직격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걸러지는 찌꺼기라.”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서 천국에 못 간다는 이야기의 남국판 연장선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쪽과 비슷하지.”
“예?”
“생각해 보면 이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나? 천국과 지옥에서 모든 업을 지운 생명들은 태양신의 품에 안겨 영원히 타오르게 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우지 못하는 업도 존재한다고 하지. 선업이든, 악업이든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건 생각해 보면 결국 찌꺼기라 할 수 있을 거야.”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던 키시아르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작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이쪽은 그 찌꺼기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까지는 알려주지 않아. 태양신의 품에 안겨 영원한 불꽃,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말할 뿐.”
“그렇군요.”
“…….”
“무로 돌아가지 못하는 업. 어둠에 묻히는 찌꺼기라…….”
침묵 속에서 키시아르는 생각에 잠겼다. 내리깐 속눈썹 아래로 드러난 붉은 눈동자 속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상념이 머물렀다. 나단 주커만은 주군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돌아온 답은 이번에도 그가 예상치 못한 말을 담고 있었다.
“타고 남은 찌꺼기도 한때는 하나를 이루는 일부였지. 그렇다면 그 일부만으로 하나를 추측하고 판단하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건 굳이 말하자면 나단 주커만에게 답을 요구하기 위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키시아르의 시선은 계속해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허공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져야 한다면… 그래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키시아르가 눈을 들어 나단 주커만을 보았다.
“그런가.”
“일부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일부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도 맞다고 봅니다. 제 생각은 그렇다는 뜻입니다.”
키시아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이 또다시 창밖 어딘가를 향했다. 이번에도 그곳에는 변함없이 유더 아일이 있었다.
새카만 단복을 걸친 창백한 사내의 곁에는 어느 집단 소속이라 할 것 없이 수많은 이들이 달라붙어 무어라 열심히 말하는 중이었다. 정신이 없을 만한데도 유더는 당황한 기색 하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례차례 한 명씩 상대하여 말을 나누고 해결책을 내주었다.
일하는 모습만 보면 적어도 수십 년은 그런 일을 한 사람 같은데, 사실은 고작 갓 20대가 된 마병단 1년차일 뿐이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은 생각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라도 그의 앞에서는 그의 말이 대부분 맞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설령 기분 나쁜 조언이라 할지라도 윗사람의 말처럼 수긍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그것이 바로 유더가 지닌 기이한 분위기의 힘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키시아르는 입을 열었다.
“나단. 혹 아까 말해준 그 부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겠나?”
“별이 되지 못한 찌꺼기 이야기 말씀입니까.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다. 이상한 질문이라 생각했을 텐데 말이야.”
나단 주커만은 대답 대신 어깨를 두드리는 주군의 손을 향해 작은 숨만 후 하고 내쉬었다.
“펠레타 주변의 몬스터 도감과 지도를 만들자고 제안하셨던 때보다는 훨씬 쉽습니다.”
그건 나름의 농담이었다. 키시아르도 그때를 떠올린 듯 웃었다.
“그때는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지만 이번은 그저 나를 위함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 그러니 다른 일보다 우선할 필요는 없다. 부탁하마, 나단.”
“예.”
나단 주커만이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키시아르는 자리에 멈추어 선 채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가진 지식으로 추측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감정으로는 추측할 수 있었지. 그 일부도 만약 나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