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화
“제가 꿈의 내용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날 꾼 꿈에, 이전의 단장님을… 아니, 그분의 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동시에 같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때문에 유더의 지칭은 명확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잠시 흐트러졌다. 스스로도 그게 이상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같지만 같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똑바로 지칭할 수 있을까.
드디어 흘러나온 고백 앞에 키시아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란 기색도, 의문도 보이지 않는 얼굴을 보며 유더는 그가 이 답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임을 깨달았다.
“…역시, 이미 예측하고 계셨군요.”
“그날 아침, 눈을 뜨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를 보자마자 피해 물러났었지. 그다음에는 잠들어 있던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지와 이상한 꿈은 꾸지 않았는지를 연이어 물었고.”
마치 처음부터 이 답을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당연히 꿈의 내용이 나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다만 굳이 손을 언급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유더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키시아르의 손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손에는 평소 자주 끼던 마도구 반지조차 없었기에 그야말로 완전한 맨피부만 드러낸 상태였다. 그간 수없이 보아 익숙해진 그 손이 꿈의 고백을 앞둔 이 순간 기이하게도 낯설게 느껴졌다.
티 없이 매끄러운 손등.
그 사이로 불거진 뼈의 윤곽과 푸른 힘줄.
잘 익은 과일처럼 혈색을 머금은 손끝과 아몬드 알과 같은 모양의 손톱.
모두 이전 생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다.
이전 생의 키시아르가 죽을 때까지 벗지 않았던 흰 장갑 속에는 아마 저 매끄러운 피부 대신 지금의 유더가 감추고 있는 것과 같은 흉한 흔적이 존재했을 것이다. 붉은 돌이 남긴 흉터 같은 그 흔적을 품은 손은 과연 어땠을까.
이제 와서는 결코 답을 알 수 없을 모습이기에 덧그려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유더는 가늘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날 꿈에는, 오직 손만 나왔습니다.”
“몸은 없이 손만 말인가?”
“네.”
“과연 악몽이라 할 만하군. 하지만 그렇다면 그 손의 주인이 다른 사람일 가능성도 있지 않았겠나?”
유더는 아니라고 대답하는 대신 그렇게 묻는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붉은 눈동자 속에 비친 음울한 제 얼굴이 마치 관 속에서 막 걸어 나온 시체처럼 보였다. 이미 목이 잘려 죽은 지 오래일 사형수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유더는 그 얼굴을 응시하며 천천히. 그리고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여 버석하게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 나갔다.
“그분은, 늘 비슷한 장갑을 끼셨습니다. 제가 끼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한 재질로 만든 하얀 가죽 장갑이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본 손도 그 장갑을 끼고 있었죠.”
체온을 느낄 수 없는 차가운 가죽 장갑.
목덜미나 어깨를 내리누를 때 느껴지곤 했던 그 감각을 유더는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잊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랬다 믿었음에도 꿈에서조차 단번에 알아보고야 말았던 감촉이었다.
유더는 꿈에서 저를 어루만지던 서늘한 감각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꿈에서 끝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더라도… 저는 그게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말마따나 차라리 다른 사람의 손이 나타난 꿈이었다면 그리 대단한 악몽이라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죽인 이들의 손이든, 카치안 황제의 손이든 상관없었다. 설령 그들의 손이 단순히 맨손이 아니라 칼을 들고 나타났다 해도 겁먹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건 분명 키시아르의 것이었다.
착각하고 싶어도 도무지 착각할 수가 없는 남자의 손이었다.
유더의 얼굴을 살피던 사내가 조금 더 낮아진 목소리로, 그러나 부드러움을 담아 물었다.
“그 손은 그저 거기에 존재하기만 했나? 아니면 접촉이 있었나?”
“그쪽에서 접촉했습니다.”
유더는 꿈속에서 만난 흰 장갑 낀 손과의 접촉을 설명했다. 얼굴을 이리저리 어루만졌단 부분이 혹여나 이상하게 들릴까 싶어 몹시 신경이 쓰였기에, 할 수 있는 한 표현도 신중히 골랐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해도 결국 피부를 매만진 건 맞으니 결과적으로는 이야기를 듣는 키시아르 쪽에서 제 말이 최대한 이렇다 할 감정 없이 객관적으로 들리기를 바라야 할 듯했다.
“그리고 제가…….”
그다음을 말하는 건 지금까지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다. 유더는 오랜 침묵 끝에 목울대를 한 번 울리고 도무지 무어라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그 꿈의 마지막을 마침내 입에 담았다.
“…그게 누구의 손인지 알아본 순간, 그것이 제게 대답을 돌려주었습니다.”
“손밖에 없는데 대답을?”
“손가락으로 피부에 ‘맞았다’는 단어를 쓰더군요. 그리고는 목을 잡아 어둠 아래로 밀었고……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말로 하고 나니 정말 간단한 꿈이었다. 고작 이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데 이토록 오랫동안 뜸을 들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유더는 그저 말없이 서서 키시아르의 답을 기다렸다.
사내의 등 뒤로 떠오르는 태양이 앞면에 그늘을 만들며 마주한 유더를 뒤덮는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역광이 드리운 그림자 덕에 유더는 키시아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사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스스로의 손을 살펴보려는 행동인가 싶었으나 아니었다. 그는 뻗은 손을 그대로 앞으로 움직여 유더의 이마를 훑었다. 서늘한 온기를 품은 손끝에는 젖은 물기가 속절없이 배어 있었다.
유더는 그제야 제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영문을 알기 어려운 꿈이었겠군. 이야기해 주어서 고맙네.”
얼굴을 가린 짙은 역광 속에서 키시아르의 움직이는 입술과 흔들림 없는 목소리만이 유더에게 분명히 인식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로서도 그 꿈에 대해 크게 짐작되는 바가 없군. 스스로의 모자란 지식이 안타깝게도 말이야.”
“…….”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도 될까.”
유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드물게 잠시 망설임을 내보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꿈에서 그 손이 혹, 네게 나쁜 짓을 하려 한다고 느꼈었나?”
그 손이 제게 나쁜 짓을 하려 한다고 느꼈었던가?
유더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손의 접촉을 인지했을 때부터 깨어날 때까지 줄곧 소름이 돋기는 했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을 치솟게 만드는 감촉이었다. 그러나 그 손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거나 엄청난 원한을 가진 듯 느껴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 손은 주먹을 쥐어 유더를 때리지도, 목을 조르지도 않았다.
그저 느리게 어루만지다 손가락으로 단어를 써서 대답한 뒤에 잡아 밀치기만 했을 뿐이었다.
깊은 거부감은 느꼈지만 거기에… 확실히 살기는 없었다. 입을 가지지 않은 손뿐이라 해도 그 정도쯤은 알 수 있었다.
유더는 깊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래.”
키시아르의 목소리 끝이 살며시 흔들린다 느꼈던 건 착각이었을까. 유더가 무어라 반응하기 전, 그가 다음 말로 넘어가 버렸기에 그것에 대해 더 파악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해서 계속 모르리란 법은 없지. 나도 관련된 정보를 계속 찾아보겠네. 아톤의 다음 조사 때는 나눌 말이 참 많겠군.”
유더는 고개를 숙여 땅을 응시한 채 물었다.
“제가 그저… 말도 안 되는 꿈에 과민 반응 한 것이라 생각지는 않으십니까?”
“심상치 않은 꿈을 꾸고 나면 누구라도 그럴 거야. 나라면 오히려 더했겠지. 내가 바로 얼마 전에 밤잠을 설쳐 가며 온갖 금지 도서를 빌려 대던 걸 벌써 잊었나? 과민 반응이란 그런 걸 두고 언급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걸 과민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말이야.”
키시아르가 얼마 전 자신이 했던 행동을 농담거리로 삼으며 작게 웃었다.
“설명하기 어렵다 해도 마음에 걸리는 점이 분명 존재했으니 여태껏 그토록 고민했겠지.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알고 나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초현상이라 믿었던 이상 균열이나 재앙처럼 간결한 답이 되어 돌아올지 몰라.”
“…….”
“설령 그게 정말로 단순한 꿈에 불과했다면 오히려 가장 좋은 결과일 테고.”
유더는 고개를 들어 키시아르를 다시 보았다. 그사이 해가 조금 더 높아지며 역광이 사그라져 키시아르의 표정이 다시 눈에 보였다. 그가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