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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72화 (772/805)

772화

“문득 네가 좋지 않은 꿈을 꾸었던 그날이 ‘불균형의 여파’로 이상 균열이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났던 날이기도 하다는 게 생각나더군.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아도 풍랑으로 어지럽던 호수에 거대한 돌이 던져진 것처럼, 유더의 가슴속에서 두 번째 충격의 파동이 크게 번졌다.

키시아르의 말이 맞았다. 악몽을 꾼 날은 마병단 지부 위에 이상 균열이 나타났던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과연 어떤 연관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키시아르 본인조차 ‘지나친 생각’이라 언급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입에 담았다는 건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정말로 완벽하게 가능성이 0이라고 생각했다면 입조차 열지 않았을 이였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눈을 바라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악몽이 검은 달의… 손길이라 생각했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펠레타에 막 자리를 잡았던 초기, 자주 나쁜 꿈을 꾸곤 했었네. 그때 그곳의 노인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 밤에 찾아드는 악몽은 검은 달이 숨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안개 같은 손길이니, 피할 수 없다 여겨져도 결국에는 태양이 떠오르며 사라진다는 옛말이 있다고. 그들 나름의 위로였지.”

그건 경전이 설명하는 검은 달의 피에서 발생하는 몬스터 이야기와도 분명 상당히 비슷했다.

한때 세상에 가득했다던 검은 달의 힘은 태양신의 힘을 증명해 낸 이들에게 밀려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의 저주가 담긴 피가 아직 남아 있기에 틈이 생기면 세상 속으로 침범해 들어오며 그것이 곧 몬스터라는 이야기.

모두가 그것을 당연하다 여겼으며 유더 또한 그리 알고 있었다.

유더의 찌푸린 눈썹을 본 키시아르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 볼까. 몬스터가 검은 달의 저주받은 피가 세상에 떨어져 생겨난 존재라면, 그 피를 떨구는 검은 달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이 세상 바깥…에 있겠지요. 존재한다면 말입니다.”

“그래. 검은 달의 힘은 이 세상에서 물러나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 몬스터가 균열을 통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건 초대 타인 공작의 의문대로 세상 밖에도 어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우리가 얼마 전 오래된 무덤 유적에서 찾아낸 찢긴 일지에 의하면 그는 그것에 대해 다소 특수한 표현도 사용했네. 기억하나?”

“정확히 어떤 부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키시아르가 찢어진 종이들을 간략히 훑고 나서 요약해 준 내용 자체는 기억했다. 하지만 특정 표현 하나하나까지는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키시아르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곧바로 망설임 없이 그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어떤 ‘저주받은 것’은 토끼의 귀, 새의 날개, 개의 꼬리, 두더지의 발톱을 가졌다. 또 어떤 저주받은 것은 고양이의 눈, 물고기의 비늘을 가지기도 했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이 존재를 신의 말씀은 검은 달의 세계에서 왔노라 말한다……. 바로 이 부분 말이네.”

키시아르는 ‘신의 말씀’이란 부분에 힘을 주어 말했다. 유더는 비로소 그것을 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오래된 지하 공동묘지 사이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석굴. 몬스터의 사체가 가득했던 장소의 묵은 먼지 냄새가 아스라이 코끝을 맴도는 듯했다.

“신의 말씀은 곧 경전이지.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읽는 표준 경전에는 검은 달의 세계란 단어가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거든. 남부에 온 뒤 정확하게 확인해 보았으니 확실해.”

“어차피 뜻 자체는 저희가 아는 바와 거의 흡사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저 요약하여 표현하다 보니 그리 말했을 수도 있겠지만, 혹 그게 아니라면 어떨까.”

“…….”

“사람들은 경전이 대멸망 이전의 고대로부터 내려온 거의 유일한 기록물이란 사실만을 의미 깊게 생각하네. 하지만 사실 지금의 경전은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오며 3번 정도 개정을 거쳤다는 건 잘 몰라. 사제들은 주로 잔인한 내용을 순화하거나 어려운 단어와 내용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런 일을 했지.”

키시아르는 개정되기 전의 경전 원본은 대신전만이 보관하고 있기에 지금 당장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말뜻은 명확했다.

“검은 달의 세계란 단어도 그러면 그런 과정에서 지금 저희가 아는 뜻으로 바꿔 적히며 없어졌을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래. 뜻은 분명 우리가 아는 바와 비슷해. 하지만 어찌 생각하면 전혀 달라지기도 하지. 네가 아까 대답하였듯 검은 달이 막연히 세상 밖 어딘가에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과, 그 세상 바깥이 아예 검은 달의 세계라 지칭되는 건 다르니까.”

그리 말한 뒤 키시아르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여기까지 안 상태에서 이제 단어를 바꾸어 다시 한번 생각해 볼까. 옛사람들은 검은 달이 숨은 곳. 즉 검은 달의 세계에서 악몽이 흘러나온다고 생각했네. 몬스터가 균열이란 틈새를 타고 떨어진 피에서 흘러나오듯, 악몽도 그렇다고 생각한 거지. 사실 그 외에도 온갖 안 좋은 것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몬스터와 함께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말이네.”

막 발생한 몬스터를 바로 손대면 불운이나 병이 옮는다거나, 광기에 사로잡힌다는 미신은 아주 흔하지 않냐는 키시아르의 질문 앞에서 유더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냥한 몬스터의 부산물을 행운의 표식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듯이, 막 나타난 몬스터가 온갖 부정한 불운을 선사한다는 믿음 또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균열이, 남국인들의 표현에 따르자면 ‘불균형한 땅’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심지어 인간의 뜻으로 몬스터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걸 이제 알게 되었네. 그 상황에서 네게 갑자기 의미심장한 어떤 악몽이 찾아들었다면 둘 사이에도 연관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또한 아주 이상한 건 아니지 않겠나?”

키시아르는 유더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모른다.

아까는 안개와 같은 손길이란 표현이 너무나 꿈속의 흰 장갑과 그것을 낀 손가락의 감촉을 상기시켜 소름이 끼쳤으나, 결과적으로 그 표현 자체는 유더의 꿈과 크게 관련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도 그가 사용하는 표현들은 유더가 꾸었던 꿈의 핵심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더는 깊이 숨을 내쉬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물론 네가 좋지 않은 꿈을 꾼 건 아직 한 번뿐이지. 악몽과 이상 균열 사이에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같은 일이 더 일어나야 해. 나는 그러기를 바라지 않으니 지금의 말은 그저 섣부른 추측 정도로만 여겨 주게.”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에서는 완전한 진심이 느껴졌다. 유더는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의 표정을 본 키시아르의 얼굴 위로 조금 씁쓸한 미소가 흘렀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역시 마음을 많이 어지럽힌 것 같군. 굳이 기억할 만한 이야기라 여기지 말고 신경이 쓰일 것 같다면 그냥 잊어버려. 내가 염려가 지나쳐 괜한 말을 했다고.”

지나친 염려.

그 말을 들은 순간 유더는 마음을 정했다.

무언가를 알아내고 나서 그 꿈에 대해 말하는 게 이성적으로 맞다 해도, 그때는 이미 키시아르가 수없이 자신에 대한 염려를 삼킨 뒤일 것이다. 그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해서 진짜 그렇지 않다는 걸 이미 수없이 보아 놓고도, 또다시 그의 인내심에 기대기만 할 셈인가?

물론 키시아르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아 낼 것이다. 그건 그의 장기였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다.

그에게 수없이 참지 말라고 말해 놓고 결국 또다시 참도록 만드는 게 자신이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유더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잡아 뜯듯 열었다.

“아뇨. 단장님께선 지나치게 염려하신 게 아닙니다. 마땅히 하실 만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것 같지 않은 목소리가 꽉 잠긴 채 어렵사리, 그리고 미약한 떨림을 담은 채 흘러 나갔다. 키시아르는 침묵했다.

“…….”

“제가 꿈의 내용을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날 꾼 꿈에, 이전의 단장님을… 아니, 그분의 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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