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6화
“…아톤의 심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 끝났지.”
키시아르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누가 들었다면 식사는 했는지 물었다고 착각했을 만큼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현 상황에서 가능한 만큼은. 아마도.”
키시아르가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아톤 또한 보통 놈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말을 나누었고 뭘 알아낸 걸까. 그가 알아낸 정보 속에 이상 균열과 관련된 부분은 있을까. 초조함과 궁금함 속에서 유더는 최대한 침착함을 지키려 노력하며 물었다.
“지금 바로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 전에, 보좌 쪽에서 알아낸 걸 먼저 듣고 싶군. 내가 알아낸 정보와 교차 확인이 필요할 테니까.”
아. 유더는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보고하기 전에 먼저 정보 공유를 요청하다니, 보통 하지 않던 실수였다. 기껏 침착하려 노력했음에도 이상 균열을 떠올린 순간 이미 소용없었다는 뜻과 같았다.
“먼저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 쪽은 크게 예상을 벗어나는 정보는 없었습니다만…….”
“죄송할 일은 아니니 사과할 필요 없네. 보좌가 얼마나 이번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키시아르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뜻을 전했다. 유더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키시아르가 유더의 등을 말없이 다시 한번 어루만졌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굳건히 받쳐 주는 느낌이 드는 손길이었다.
“자, 그래서 무얼 알아냈지?”
유더는 자신이 조사한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서 얻어 낸 정보를 요약하여 설명했다.
“우선 기사 라델이 콘체 남작과 남국인들에게 가담하게 된 건 1년 전쯤이며 타인 공작 때와 비슷한 경로였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단 입을 여는 데 성공했으니 다른 동조자들의 이름도 곧 불기 시작할 확률이 높습니다. 나그란의 별 쪽은 역시 생각했던 대로 현자의 사주 때문에 움직인 게 맞아 보입니다만, 남부 거점에 한해서는 남국인들의 손길이 뻗친 탓에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았습니다.”
“즉 남부 거점은 현자와 남국인들, 두 쪽 모두의 의향을 따랐다는 건가?”
키시아르가 여상히 물었다.
“네. 남부 거점 측의 주장에 따르면 본래 목적은 마병단에 잠입하려는 자들을 돕는 것까지였던 듯합니다.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멍청한 짓을 하게 된 건 남국인들의 유혹과 부탁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더군요.”
“합격자들이 알려 준 그간의 사정들로 미루어 생각해 보았을 때, 아마도 전에는 자신들이 도와줬으니 이번엔 그쪽에서 도와 달라고 했겠군. 겸사겸사 현자가 노리는 마병단에도 피해를 입히면 서로 좋은 일이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겠지.”
“정확히 그렇습니다.”
세라는 남국인들에 대해 진술하는 와중 최대한 현자나 자신들의 거점에 대한 부분은 숨기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그란의 별에 몸담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비어 있는 부분을 추측하고 결론짓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키시아르가 눈꼬리를 부드럽게 휘며 중얼거렸다.
“기껏 일을 시켜 두었는데 돌발 행동으로 전부 망친 데다 남국인들이라는 변수까지……. 곧 집에 돌아갈 현자는 상당히 당혹스럽겠어.”
말은 당혹스러우리라고 하고 있지만, 전혀 안타까워 보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부에서 저희를 습격하려다 잡힌 자들까지 포함하면 현자, 그리고 더 나아가 그자와 연결되어 있을 디아카 공작과 황태자 측 세력을 연결시키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리고?”
“남부 거점의 책임자는 이상 균열 현상에 대해서는 진짜로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다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날 남국인들이 처음부터 그리 죽을 계획은 절대 아니었을 것 같더군요.”
유더가 조사 도중 알아내려 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남부 거점 측은 그자들이 마력 매개체를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고, 그저 습격 후 길을 만들어 줄 테니 후퇴하면 된다는 말만 반복하여 들었다고 합니다. 위험에 빠졌던 순간에도 약속한 후퇴 시기는 언제 오는 거냐고 물어보자 곧 가능할 거라고 답하고는… 직후 이상 균열 현상이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는 건…….”
“네. 그자들은 인위적으로 이상 균열 현상을 만들어 내고 몬스터가 떨어지는 혼란기를 틈타 빠져나갈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누가 도시 한복판에 사라지지 않는 이상한 균열이 생기고 거기서 거대한 몬스터가 비처럼 떨어지리라 생각하겠는가. 거기에 때마침 유더와 키시아르가 있는 게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원하던 바를 성취할 수 있었으리라.
‘나조차 이전 생에는 그런 일이 의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전이었다면 상황을 파악하기에 바빠 그놈들에게는 신경도 못 썼겠지.’
“여차하면 나그란의 별을 방패로 두고 빠져나갈 셈이었겠군.”
“여차하면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자신들만 빠져나가는 게 목적이었을 가능성도 높겠지요.”
“하지만 뜻대로 안 되었고.”
돌이켜 보면 당시의 모든 상황이 지나치게 남부 거점 측에 불리했다. 남국인들은 그들을 부추겨 함께 일을 도모했으면서 자신들은 전투 상황 내내 힘을 거의 발휘하지 않고 교묘히 상황을 관조하듯 끼어만 있었다. 누가 보아도 배신의 징조였다.
“그래서… 이건 제 추측입니다만…….”
유더는 말을 꺼내기 전, 주변을 흘긋 돌아보았다.
어느덧 지하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아까 걸었던 곳을 지나는 중이었기에 멀지 않은 곳에서 엘포킨스가 지붕을 뚝딱대며 수리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제각기 바빴기에 그들이 지나고 있어도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몹시 평화롭고 밝아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유더의 눈에는 그 지붕 바로 앞에 불길하게도 존재하고 있었던 검은 균열의 잔상만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유더는 그 잔상을 덧그리며 키시아르만이 들을 수 있도록 낮게 속삭였다. “그자들이 죽은 시점은 붙잡혀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판단된 직후가 아니라 제게서 아톤의 말을 들은 이후였습니다. 기억하십니까.”
“그랬었지.”
며칠 동안 했던 수많은 생각 중 오늘 조사를 하면서 구체화된 추측이 하나 있었다. 지금부터 할 이 이야기야말로 오늘의 본론이라 할 만했다.
“그 둘을 지금까지는 같이 묶어 생각했었지만 오늘 조사하다 보니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더에게서 아톤의 말을 전해 듣고, 그자도 이미 마병단에 잡혔다는 사실을 직감하여 비밀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택한다는 건 얼핏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병단원들에게 잡혀 제압된 직후 죽으려면 얼마든지 죽을 시도를 할 수 있었을 이들이 굳이 그 순간, 정확히 그때 죽음을 택해야 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유더는 기이한 남국의 언어를 외치고는 제 앞에서 자진하던 남국인들을 떠올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가라앉은 눈동자가 그 안에서 어두운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들이 자진을 택한 이유 속에 이상 균열의 진실을 감추려 한 것도 분명 있기는 하겠지만, 그 외에도 어쩌면… 그 죽음 자체가 균열에서 몬스터를 이끌어 내는, 일종의 촉매제와 같은 역할이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래. 남국인 상인들이 죽은 순간, 가만히 존재하기만 하던 균열에서 몬스터가 떨어졌다.
단순히 우연이라기엔 지나치게 시기가 절묘했다. 몬스터를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때는 그 부분을 곧바로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오늘 조사하는 동안 남국인 상인들의 태도와 행동에 중점을 두고 하나하나 찬찬히 돌아보기 시작하자 갑자기 무척 신경이 쓰였다.
아톤은 불균형의 여파를 얹어 검은 달의 땅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 검은 달의 땅이란 것이 이상균열과 몬스터가 발생하는 땅을 뜻한다면, 불균형이란 그것들을 만들어 내는 원인을 뜻할 것이다.
“똑같이 이상균열이 발생했었던 사라인 대삼림에서도 마력이 불균형하게 일그러진 채 순환하지 못하고 고여 있었습니다. 남부에서 그 비슷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그들이 지니고 있던 매개체와 죽음이었다면 어떨까요.”
“…….”
“말하자면 마법진을 발동시킬 때 써야 하는 일종의… 제물처럼 말입니다.”
유더는 서부에서 마법사 연합을 도울 때 그들이 마법진을 보수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마법진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마력이 필요했기에, 마력이 담긴 마정석을 포함해 제법 여러 재료가 필요했다.
뭔가를 불러내고 사용하기 위해 그런 준비물이 필요하다면 ‘검은 달의 땅’을 만들 생각이었다던 놈들도 뭔가 필요했을 것이다.
애초에 이상균열이 누군가의 의도로 발생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지나친 생각이라 해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다.
유더의 말을 들은 키시아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마침내 집무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비로소 입을 열었다.
“나 또한 아톤을 조사하며 비슷한 추측을 했지.”
유더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키시아르의 눈에는 아까처럼 부드러웠던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자가 그러더군. 이미 조건은 모두 충족되었으니 내가 무엇을 하려 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그건…….”
“나는 그 말을 이 남부에 곧 새로운 이상균열과 몬스터가 또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뜻으로 파악했네.”
유더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키시아르의 움직이는 입술만이 눈에 크게 들어와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