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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59화 (759/805)
  • 759화

    남부에 온 이후 구해 준 지하 격투장 출신 각성자들이 이 일에서 단원들보다 훨씬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모두는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움이 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 두 사람, 뢰네브와 큐레이지나가 지치고 쑥스러운 얼굴로 키시아르의 앞에 나섰다.

    “두 사람이 해 준 일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 들었네. 어제의 혼란스러운 일들 와중에도 흔쾌히 가진 능력을 발휘해 단원들을 도와주었다지. 고맙네.”

    어젯밤, 몬스터 때문에 벌어진 혼란을 수습하자마자 뒷정리를 시작한 마병단원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바로 다름 아닌 포로들의 분류와 통제였다. 잡혀 들어온 이들이 워낙 많았던 데다 부상을 입은 자도 상당했던 데 비해 마병단 지부 내의 의료 인력은 없다시피 했고, 지부 건물도 그 모든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빠듯하기 그지없었다.

    잡혀 들어온 이들의 대부분이 각성자인데, 그들을 통제하고 감시해야 할 단원들은 수가 너무 적은 데다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잔뜩 지친 상태였다. 그들과 협력 관계인 제국군 특수 부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잡힌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능력 제어 장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 그것과 비슷한 일을 홀로 해낸 사람이 바로 각성자의 능력 무효화 힘을 지닌 뢰네브였다.

    뢰네브는 자신의 힘을 사용하여 지부 건물 지하 전체를 능력 무효화 구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격투장에서 온 다른 각성자들과 2기 단원 지원 합격자들은 그녀가 만들어 낸 무효화 구역 출입구 밖을 지키는 일과 부서진 외부 구역을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 모두 맡은 일을 충분히 훌륭하게 해내었지만 그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이가 큐레이지나였다. 그녀는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을 쓴 채 무효화 구역 바깥을 순찰하면서 탈출하려는 이들이 없는지 면밀하게 살폈다. 그 결과 다른 이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탈출 시도자 몇 사람을 찾아내어 도로 통제 구역 안에 돌려보낼 수 있었다.

    사실 큐레이지나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난리를 틈타 몰래 도망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지 않고 마병단과 뢰네브를 도왔다는 점에서 그녀의 진심은 또 한 번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그들 덕분에 마병단원들이 그나마 푹 쉴 수 있었다.

    키시아르의 칭찬을 들은 뢰네브와 큐레이지나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녀들의 모습은 유더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특히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눈빛이 좋아지고 머리카락까지 단발로 싹둑 자른 뢰네브는 격투장에 있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누가 먼저 대답해야 할지 주저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용기를 내어 입을 연 이는 뢰네브였다.

    “감사합니다. 당연히 도와 드려야 한다 생각해서 한 일이었을 뿐인데…….”

    “저도… 그렇습니다. 죄인으로 조사를 받고 있던 저를 믿고 마병단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 하겠죠.”

    “이런. 그리들 말해 주니 이쪽에서는 더욱 고맙다고 할 수밖에.”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은 뒤 키시아르는 뢰네브가 구현해 둔 능력 무효화 공간 쪽을 흘긋 살폈다.

    “혹 저 공간은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물어봐도 되겠나?”

    “음… 지금 같은 몸 상태라면 아마…….”

    손가락을 꼽아 보는 뢰네브를 지켜보던 주변의 단원들이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나누었다.

    “아니, 저게 무슨 소리야? 하룻밤 내내 저걸 펼친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설마 더 유지할 수 있단 거야?”

    “아무리 그래도 며칠은 힘들지 않을까? 하루 정도 더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아니다. 그것도 힘들 것 같은데.”

    “최대 강화 상태로 일주일 정도는… 연속으로 유지해도 문제없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잠을 잘 때는 좀 약해질 거라 도와주시는 분들이 좀 계셔야겠지만요.”

    “…….”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일주일을 입에 담은 뢰네브의 말을 들은 이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지진이 난 듯 떨렸다.

    “일주일……?!”

    감탄과 경악을 담은 눈빛이 일제히 뢰네브에게 향하자 뢰네브의 얼굴이 긴장으로 조금 창백해졌다. 혹시나 자신이 이상한 말을 해서 마병단원들에게 반감을 산 건 아닐지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더는 오랫동안 혼자 있었기에 아직 타인의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녀를 슬쩍 몸으로 가로막으며 입을 열었다.

    “능력은 많이 써 볼수록 는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겠지. 너희도 잠자는 시간을 아껴서 수련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어때.”

    “어떻긴 뭐가 어떠냐는 거야? 그냥 감탄했을 뿐이지, 수련을 더 하고 싶다고 한 게 아니야!”

    “그래? 뢰네브처럼 강해지고 싶지 않다 그건가? 앞으로도 상대해야 할 적이 많을 텐데, 어제 정도의 실력으로 정말 만족할 거라고?”

    어제 일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악마 같은 소리를 하느냐며 아우성치던 단원들이 그 말에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 역시 어제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게 키시아르와 유더가 있었기 때문임은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수련했음에도 한계를 느끼게 하는 상황은 늘 닥쳐온다. 아무리 강해져도 위에는 더 높은 위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이전의 마병단원들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선 실력자를 보았을 때 허탈해하며 지레 포기하거나, 어쩔 수 없다 여기며 질시하곤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입술을 비죽이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결국 유더의 말에 동의했다.

    “…당연히 만족 못 하지. 우리도 더 강해질 거야.”

    유더는 그들의 얼굴에 깃든 각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일을 하면서도 수련할 수 있는 방법 몇 개를 가르쳐 줄 테니까 잊지 말고 그대로 해.”

    “으으… 으으으……. 알겠다… 알겠다고……!”

    고통스러워하는 단원들을 뒤로하고 물러선 유더는 아주 작은 소리로 감사를 표하는 뢰네브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 ……감사합니다.”

    “…….”

    유더는 무어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다 시선을 돌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맞닿은 키시아르가 싱글거리며 화제를 자연스럽게 도로 되돌렸다.

    “분위기가 참 따뜻해졌군. 내가 저 공간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겠는지 물어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네. 며칠 기다리면 수도에서 지원이 올 예정인데, 그때까지 혹 지금과 같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묻고 싶었거든.”

    “아…….”

    뢰네브의 얼굴에 재차 혈색이 돌았다. 그녀는 키시아르가 무어라 말을 더 하기도 전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 의사를 밝혔다.

    “할게요. 아니, 하, 하겠습니다!”

    “괜찮겠나?”

    “이미 수없이 해 본 일인걸요. 이 정도는 힘들지도 않아요. 절 구해 주신 분들께 도움이 된다니 반드시 하고 싶습니다.”

    뢰네브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반드시 그 일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키시아르는 그녀 외에도 큐레이지나와 다른 합격자들에게 부족한 일손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함께 했다. 돕는다면 당연히 일한 만큼의 대가 또한 줄 예정이었다.

    큐레이지나는 두말없이 수락했고, 합격자들은 하나같이 감동한 얼굴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특히 나그란의 별 출신이었던 이들의 감격은 무척 남달랐는데, 키시아르가 그들의 이름과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과거의 동료를 붙잡았다는 씁쓸함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미소를 얻었다.

    유더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받은 도움에 대한 대가를 돌려주겠다는 말이 없었어도 그들이 모두 마병단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동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뢰네브와 큐레이지나 또한 아직 이전처럼 친밀해 보이지는 않아도, 서로가 잘 되길 바랐던 진심이 변하지 않은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지하 통제 구역을 확인한 뒤로는 수리 중인 외부 상황을 살폈다. 그곳에서는 지하에 없던 이들이 모여 열심히 무너진 담과 벽, 지붕을 고치는 중이었다.

    유더는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덩치 큰 이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머리에 달린 사슴 같은 뿔과 거대한 날개가 돋보이는 그는 바로 엘포킨스였다. 나무판자를 한 아름 안고서 땅과 지붕 위를 오가며 날아다니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날아다니는 게 이젠 제법 자연스러운데.’

    마병단에 온 지 며칠도 안 되었는데 그는 벌써 정식 단원이 될 자격을 얻었고, 지부 단원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저자에게도 일손을 도와 달라는 제의를 넣어야겠군.”

    유더의 곁에 선 키시아르가 그의 시선을 따라 눈을 움직이며 말했다.

    “네. 힘도 세고 날개도 잘 쓰니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저대로라면 실력도 금방 좋아지겠지요.”

    “어! 유더 아일 님!”

    그때, 지붕 위에 자재를 전부 나른 엘포킨스가 유더를 발견하고 밝아진 얼굴로 날아 내려왔다. 그는 유더의 앞에서 한껏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다 겨우 입을 열어 인사를 했다.

    “안녕…하셨죠?”

    “그래. 그런데 왜 날 유더 아일 님이라고 부르지? 앞으로는 같은 단원이 될 테니 그냥 유더라고 불러.”

    단원들이 분명 가르쳐 주었을 텐데 이상하다 싶었지만 그 말을 들은 엘포킨스는 더욱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니, 그게……. 그건 알지만… 저 따위와는 다르게 너무 대단하신 분이잖아요……. 제가 감히 그래도 될지…….”

    “대단할 것 없으니까 그렇게 해.”

    “그치만 어떻게 그럽니까…….”

    “하하. 그러면 차라리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겠나? 어차피 새로 들어올 이들과 1기 단원들 사이의 호칭은 공식적으로 그렇게 정립할 예정이었으니까.”

    키시아르가 끼어들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 그렇군요! 선배님! 정말 멋진! 호칭이십니다! 다, 다, 단장님!”

    선배님이란 호칭이 대체 뭐가 멋진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엘포킨스는 무척 좋아했다. 그는 키시아르의 도움 제안도 곧바로 수락했고,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열 번쯤 남긴 뒤 날개를 펄럭대며 도로 일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눈에 띄는 겉모습 때문에 주눅 들어 있던 웅크린 모습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커다란 개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간밤의 악몽이 남긴 그림자도 유더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질 듯했다.

    “…….”

    그 이후에도 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제 있었던 일들과 관련해 마병단 남부 지부로 밀려드는 수많은 연락들 사이에는 마이라 1공녀의 연락 또한 있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기사 라델의 소식을 듣고 무척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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