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화
“가… 감사합니다.”
세 사람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쿠르가와 선즈, 에몬이 나간 뒤에도 유더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말이 없던 키시아르가 고개를 돌려 먼저 말을 걸었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 정말 다행이군.”
“예.”
“이번에는 운이 좋았으나 다음에 이 같은 일이 또 생겨서는 안 되겠지. 지노 장군의 소중한 새 부하들을 하마터면 내 손으로 잃어버릴 뻔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는걸.”
얼핏 농담처럼 말하고 있지만 내포된 뜻까지 그렇지는 않음을 유더는 알았다.
그는 쿠르가 일행이 발견한 임무의 결과물이나 놓쳐 버린 적에 대한 언급을 우선하지 않았다. 어제의 일이 결과적으로 마병단에게 호재가 되었음에도 드러내 놓고 기뻐하지 않았고, 칭찬은 당사자들에게 남기되 책임은 자신의 몫으로 분명히 해 두었다.
어젯밤 꾼 꿈 때문일까. 그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유더는 새삼 키시아르를 향한 복잡한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 감정을 내리누르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단장님께서 정신을 바짝 차리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음?”
“어제의 선택은 모두 최선의 판단이었습니다. 부상을 입은 건 쿠르가의 수련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강해지면 어제 같은 일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이 와도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없을 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러자 키시아르가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게… 그렇게 되나?”
“예. 부상 부위만 봐도 쿠르가가 남부에 온 뒤 수련을 전보다 게을리한 티가 납니다. 본인이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부상이 낫는 대로 새로운 훈련 메뉴를 줄 생각입니다.”
그들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모두 단장과 마병단을 믿었기 때문이라거나, 키시아르가 그런 그들의 믿음에 충실히 답변해 주었으니 되었다는 식의 구구절절한 말은 필요 없다. 유더는 자신의 방법대로 그와 함께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키시아르의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해 주게.”
“네.”
“그건 그렇고 아까 보고를 들으며 새삼스럽게 생각했지만, 세 사람 모두 정말 훌륭히들 성장했더군. 특히 선즈와 에몬은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만으로는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바뀌었어. 혹시 보좌는 처음부터 그들이 이리될 줄 알고 있었나?”
유더는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래? 이전 게임에서 연이 있던 이들이었기에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 말에 유더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선즈와 에몬을 처음 만난 건 붉은 돌을 회수하러 갔던 때의 일이다. 그들을 거기서 마주쳤기에 유더는 키시아르에게 산맥에 주둔 중인 각성자 병사들에 대한 조언을 건넬 수 있었다.
그 짧은 대화와 이후의 만남 한두 번만으로 곧바로 이전 생의 인연이 있었으리라 추측해낸 건 과연 키시아르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유더가 말하지 않은 이면까지는 알지 못했다.
선즈와 제국군 각성자 특수부대는 이전 생에도 존재했으나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그들과 유더의 인연은 결코 좋은 쪽이 아니었다.
유더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그때는 직접적인 연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끈이 생겼으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병단과 장기적인 협력을 이어 나가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한다는 건 이전에도 제국군에 같은 부대가 존재했으되 마병단과 협력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는 뜻이겠군.”
역시 돌려 말하는 몇 마디만으로도 키시아르는 그 속에서 충분하고도 남는 정보를 추측해 냈다.
“예.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제국군 특수부대는 마병단보다 한참 늦게 결성된 후발 주자이면서 경쟁자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그들의 힘과 성장력을 과소평가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그때의 ‘군주패’가 마병단 대신 그들을 택했으니 진 셈이지요.”
그때의 유더는 마병단에 비해 한참 규모도 작았던 데다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은 비밀 부대 따위를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의 배를 꿰뚫고 무력화했던 건 내로라 하는 유명한 실력자들이 아니라 그리 무관심하게 여겼던 작은 특수 부대의 병사들이었다.
카치안 황제는 지나치게 커진 마병단과 유더 대신 자신의 입맛대로 완벽하게 굴릴 수 있는 특수 부대를 선택하고, 유더를 그 자리에서 철저하게 잘라 냈다. 그가 저지른 일이 분명 큰 죄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오랫동안 고문당한 건 어떻게든 죗값을 더할 정보를 뽑아내고자 했던 의지와 그렇게 함으로써 마병단의 위상을 바닥까지 떨구려 한 목적이 맞물린 일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일이 이제 유더를, 마병단을 대체할 만한 무기가 존재한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입맛이 썼다.
키시아르의 시선이 검게 어두워지는 유더의 눈동자에 머물렀다. 그의 붉은 눈동자도 소리 없이 가라앉았으나 유더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느라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선즈는 그때도 그 부대의 책임자였나? 지노 장군은 거기서 어떤 역할을 했지?”
“제가 알기로는 그때도 선즈가 책임자였습니다.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만, 출신이나 발탁된 배경 등은 비슷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노 장군께서는… 그때의 특수 부대가 생기기도 훨씬 전에 이미 남부군을 떠난 지 오래셨습니다.”
키시아르가 고개를 기울이며 반문했다.
“그가 판 바깥으로 퇴장했다고? 소드마스터가 그리 쉽게 죽을 리는 없을 텐데.”
“저희의 군주패 두 분을 전부 잃은 뒤 그분은 오래지 않아 은퇴하셨습니다. 이후의 행방은 알 수 없었기에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은 그분께서 아직 은퇴하지 않으셨고, 직접 특수 부대를 결성까지 하셨으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군.”
키시아르가 알 수 없는 생각에 잠긴 채 입술 아래를 지그시 문지르다 문득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정말이지, 대단하군.”
“예?”
“나라면 결코 이전 게임의 걸림돌이었던 자들을 이번 판에 이리도 선뜻 다시 끌어올리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그것도 상호 신뢰가 굳건해야만 하는 조력자로서는 더더욱.”
그렇게 말한 뒤 키시아르는 유더를 향해 물었다.
“-괜찮은 건가?”
그 말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더는 그 질문에 담담히 대답할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
이전 생의 적을 이번 생의 친구이자 조력자로 키웠다고 하면 누구나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고 할 터다. 그렇지만 유더는 선즈와 에몬, 그리고 그들의 각성자 동료 병사들을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린 일에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 일이 이렇게 잘 굴러가리라 생각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즈와 에몬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제게 필요했던 건 지금과 같이 서로를 알아 가고 도울 기회였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전 생의 여파로 느꼈던 약간의 복수심과 적대적인 감정은 사라졌다. 어차피 이전 생의 그들 또한 유더 본인을 적대시하여 그런 일을 했다기보다는 성공을 위해 윗선의 명령을 받들었을 뿐임을 너무나 잘 알기도 했던 탓이었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몸담은 마병단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카치안 황제를 따르고 그의 명이라면 누구라도 죽이고 치워 온 유드레인 아일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맞이한 끝은 그저 그 죄의 값을 치르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 생각까지 키시아르에게 밝히지는 않았으나, 유더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했다.
“그러니까 그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유더의 말을 들은 키시아르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
이후의 일정은 예정했던 대로 바쁘게 흘러갔다. 유더는 밖으로 나가 키시아르와 함께 단원들이 밤새 열심히 가두어 둔 포로들의 모습을 살피고 마병단 지부의 상황을 점검했다.
남부에 온 이후 구해 준 지하 격투장 출신 각성자들이 이 일에서 단원들보다 훨씬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모두는 크게 고무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움이 되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 두 사람, 뢰네브와 큐레이지나가 지치고 쑥스러운 얼굴로 키시아르의 앞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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