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화
“단장님이 마차에서 주셨던 것이, 그놈과 싸우던 도중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목소리 속에 뜨거운 분노와 약간의 좌절감이 섞였다. 유더는 제가 이토록 그 작은 일에 연연하고 있었다는 걸 기어이 키시아르에게 들켰다는 사실이 약간 수치스러웠다.
만약 다른 게 부서졌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필 사탕이 들어 있던 주머니가 아니라 다른 부위였다면 옷이 넝마가 되어도 상관없었을 테고 지금보다 더한 상처를 입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하지만 아무리 ‘만약 그랬다면’하는 가정을 해 봐도 지나간 일은 바뀌지 않는다. 부서진 건 사탕이었고, 유더는 화가 났고, 제가 느낀 분노만큼의 피해를 적에게도 맛보여 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마어마한 힘을 썼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엄청난 바보짓을 한 셈이었다.
“…….”
키시아르라고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는 유더의 고백을 들은 뒤 오랫동안 침묵했다. 유더는 자신이 마병단장이라도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화가 났단 이유로 임무 도중 힘의 절반 이상을 빼놓았다. 남은 힘만으로도 이후 뭔 일이 일어나든 수습할 자신이 있어서 그랬다는 핑계는 이후 남부 지부 쪽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덕에 명분을 잃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냉정하게 대처하고, 본래의 예정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거라면 그에 따른 변수들도 완벽하게 제어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배우고 가르친 주제에 정작 본인이 그러질 못한 것이다. 만약 유드레인 단장이었던 시절에 다른 사람이 이런 짓을 벌였다면 자신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당연히 그 녀석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무력으로 잘 다듬어 주었겠지.’
그래. 당연히 그쪽이 맞다.
하지만 환장할 지점은 그걸 아주 잘 아는 주제에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성을 배신하는 감정이 울컥 치솟는다는 점이었다…….
유더는 그것을 애써 긁어모아 갈무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순간의 감정에 휩쓸렸습니다. 다음에는 절대로 같은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드디어 키시아르가 입을 열어 긴 한숨과 함께 첫 반응을 꺼냈다.
“…미칠 것 같군.”
유더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얼거림이었다.
여태 냉정하게 잘만 싸워 오던 놈이 갑자기 힘을 마구 써 대고는 그걸 비밀로 하기에 얼마나 심각한 일일까 걱정했을 텐데 진실이 고작 이거라니. 당연히 어이가 없을 터였다.
“그러니까, 내가 마차에서 준 사탕이 싸우던 도중 아톤이란 자의 공격에 의해 예기치 못하게 부서졌다는 것이지?”
유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힘을 그리 쓸 만큼 화가 났고?”
“예.”
“아직도 그 일로 인해 그자에게 유감이 상당할 만큼의 감정이 남아 있고?”
“…요약하자면 그렇게 되겠지요.”
“잠깐 끌어안아도 될까?”
“예?”
의문을 표하자마자 곧바로 키시아르가 팔을 크게 벌려 유더를 끌어안았다. 몸 전체가 파묻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강한 포옹에 순간 숨이 막혔다.
‘무슨…….’
얼굴이 이불과 맨 가슴 사이에 파묻혀 새카만 어둠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놀람과 의문을 담아 작게 숨을 헐떡이자마자 안은 팔에서 힘이 조금 풀렸지만, 그래 봤자 몸이 터질 것만 같은 힘은 건재했다.
그리고 그 압박감 사이로 엄청난 속도로 쿵쿵 뛰어 대는 박동이 느껴졌다. 그게 얼굴에 닿아 있는 키시아르의 가슴 너머 피부 안쪽에서부터 느껴지는 심장 뛰는 소리임을 깨달아 입을 벌린 순간, 유더의 머리 위로 입술이 떨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 같은 입맞춤이었다. 능숙한 색기도, 잘 정제된 여유로움도 없이 계속해서 이마에, 머리카락에, 뺨에 입술을 비비며 키시아르가 깊이 한탄했다.
“정말 어쩌면 좋다. 도무지 이런 기분을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니. 세상을 헛산 기분이군. 미칠 것 같다는 게 아마 이런 기분이겠지.”
“무, 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말이 끊겨서 나온 건 당혹하여 중얼대는 와중에도 자꾸만 입맞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장님.”
밀어 내려 했지만 밀쳐 낼 수 없었다. 아무리 강하게 서로를 끌어안아도 이 정도로 완력의 차이를 느꼈던 적은 없었는데, 여태까지는 키시아르가 조절을 하고 있기는 했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엄청난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통에 유더는 대체 제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했다.
‘대체 뭐지?’
생각을 잇기도 어렵게 또다시 입맞춤이 떨어졌다. 정욕이 아닌 얼떨떨함과 낯선 감정 때문에 유더의 피부 위로도 열기가 훅 올랐다.
결국 키시아르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유더를 놓아 주었다. 전신의 힘이 쭉 빠져나간 채 올려다본 얼굴은 처음 보는 표정을 띤 채 싱그럽게 반짝이며 유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빛만을 가득 끌어안은 것 같은 그 표정에 유더는 잠시 하려던 말조차 잊고 그를 응시했다.
“미안하네. 너무 강하게 안아서 아팠을 텐데.”
“아…뇨. 그건 괜찮았습니다만…….”
“어쩌겠나.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유더는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들은 기분으로 반문했다.
“……제가 말입니까?”
“그러면 누가 있지?”
키시아르가 크게 웃었다.
“내 마음을 앗아 간 이가 내가 건넨 조그맣고 쓸모없는 물건 하나 때문에 처음으로 그토록 화가 났다는데 기쁘고 사랑스럽지 않다고 느낀다면 사람도 아니겠지.”
“쓸모없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유더는 그 와중에도 그 말에 날카롭게 반응했다. 이성을 떠난 반사적인 대꾸였다.
“단장님께서 주신 물건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서져서는 안 되는 물건이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먼저 지켜야만 했습니다.”
“알아.”
키시아르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유더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내가 그 사탕이 아직 남아 있어서 지금 여기서 다시 줄 수 있다 해도 네 기분이 풀리지는 않겠지?”
“…….”
유더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본 뒤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시아르가 여기서 당장 새 사탕을 준다 해도 그의 기분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건 처음으로 느껴 본 이 끈질긴 분노의 원인이 쉽게 접하기 힘든 귀한 사탕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키시아르에게 받은 사탕은 처음에는 그저 상으로 주어진 당혹스러운 물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부 임무를 지난 후부터 그것은 유더에게 전과 달리 여러 기억과 의미를 담은 매개체가 되었다.
그런 물건을 찰나의 방심으로 수습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잃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왜 하필 그런 식으로 움직였을까. 피하는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땅을 굴렀을까. 주머니가 찢어졌다는 걸 바로 알았더라면 그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 저편에 깔린 건 소중했던 기억이 담긴 매개체 같은 물건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실망이었다.
아톤을 때려눕혀도 사라지지 않은 그 분노의 가장 심층에 멍청하게 움직여 두 사람의 추억을 잃어버린 것 같은 스스로를 향한 더 깊은 분노와 아쉬움이 존재했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나고 아쉬워해도 자기 자신을 아톤처럼 묻어 버릴 수는 없다. 그러니 생각할 때마다 분노가 치미는 것도 당연했다.
이 얼마나 서투른 애정의 말로인가.
키시아르는 유더의 그 감정을 본인보다 더 확실하게 꿰뚫어 보았다. 그의 얼굴 위로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을 가득 담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밖에.”
또다시 입술이 머리 위에 떨어졌다. 애틋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그렇게밖에 표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은 짧은 키스를, 유더는 이번에는 당혹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받아들였다.
“많이 속상했겠지. 그래도 이미 그 대가는 충분히 치르게 만든 듯하니 자고 일어나면 이제 더 이상 신경 쓰지 말게. 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고, 그걸로 충분하니까.”
손을 겹쳐 잡은 키시아르의 속삭임을 들으며 유더는 눈을 감았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내내 가슴을 긁어 대던 분노가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모든 것을 잊고 편안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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