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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47화 (747/805)

747화

키시아르가 적은 추가 파견 목록에는 단원들의 이름 외에도 많은 이름이 적혔다. 이논, 헬렘, 거기에 더해 타이스 율만의 제자 알릭까지 있었다.

“알릭은 왜 부르시는 겁니까?”

“그가 만든 능력 제어구가 쓸 만하다는 소식을 서부에서 확인한 이후 그쪽에 따로 연락하여 다른 일은 모두 잠시 중단하고 그것부터 우선 만들어 달라 요청했었거든.”

“그러셨습니까?”

“그곳에서 계속 만들게 하고 물건만 전달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겠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아예 제작자를 부르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네. 재료라면 여기서도 수급할 수 있으니까.”

유더는 서부에서 능력 제어가 잘되지 않아 타인과의 접촉을 어려워하던 마티에게 알릭이 준 제어구 1차 시제품 중 하나를 건넸던 기억을 떠올렸다. 유더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그 물건은 다행히 마티에겐 만족할 수준의 도움이 되었었다.

키시아르 또한 그 보고를 듣고 잘되었다며 간결히 넘어갔던 기억이 나는데, 설마 이후에 그걸 잊지 않고 알릭 쪽으로 따로 연락을 넣었을 줄이야. 늘 철저하게 판 전체를 내려다보며 수를 준비하는 그다우면서도 새삼 통찰력이 놀라웠다.

알릭과 그가 만든 각성자용 제어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각성자들을 상대하고 조사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이번 일의 대응은 일단 1차적으로 끝난 셈이겠군. 생각보다 더 많은 추가 파견을 부르게 되었으니 이동 속도가 관건이겠어.”

키시아르가 적은 서신을 확인한 뒤 마지막 부분에 암호로 서명을 적고 마침표를 찍었다. 이제 그 서신은 창문에 앉아 얌전히 기다리는 전서조의 다리에 묶인 주머니에 들어가 수도로 향할 터였다.

유더는 마음껏 먹이와 물을 먹은 뒤 밤하늘을 향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전서조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남부에 도착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일들은 산개하여 터트린 폭탄처럼 동시다발적이었으나 그러면서도 서로 묘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남부를 좀먹어 나가려 한 지하 격투장. 이전 생에도 제국 정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헤른 공작가 후계자 후보의 죽음과 위험. 몇 년 뒤에나 닥쳐올 재앙이라 믿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상 균열과 몬스터.

예정된 운명마냥 내분을 일으키며 마병단까지 여파를 미치는 중인 나그란의 별.

그리고 그 모든 일에 거미줄처럼 은밀히 얽혀 있던 남국인들.

유더의 생각에 이 모든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걸 따지자면 단연 이상 균열과 남국인들이었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이전처럼 되지 않게 할 답안을 찾았거나 혹은 이미 반쯤은 해결했지. 그렇지만 그 둘은 달라.’

이번에 균열을 불러낸 듯 보이는 남국인들은 모두 죽거나, 혹은 잡혔다. 대장 격이었던 아톤 놈도 이미 마병단원들을 보내 이곳까지 잘 실어 온 상태로, 아직 기절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해 취조는 내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이상 균열 현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터라 자신할 수 있나?

만약 이미 이전 생과 같은 재앙이 일어날 불씨가 던져졌고, 오늘의 그건 그저 시작점일 따름이라면?

그렇다면 유더가 상대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인간의 범위가 아닐 터였다.

오직 자신만이 기억하고 있는 남부의 대지진. 그 엄청난 재앙을 어떻게든 막아 내야 할 테니까.

“전서조는 이미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갔는데, 아직까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고 있을까?”

복잡하게 움직이려던 머릿속이 등 뒤에서 나직하게 들려온 부드러운 목소리에 일순 멈추었다. 유더는 창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책상에 등을 기대어 앉은 채 유더를 보고 있던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여태 철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기를 잃지 않았던 눈가에 드디어 약간의 피로가 엿보였다.

유더는 조금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복기하고… 이상 균열 현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오늘 일어난 그 많은 일 중 이상 균열이 가장 신경 쓰였다는 뜻이겠군. 그게 앞으로 일어날 거라던 ‘재앙’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나?”

역시 키시아르를 상대로는 이야기를 굳이 길게 할 일이 없었다.

“네. 지나친 걱정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균열을 불러내는 듯 보인 건 확실히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지. 한번 가능했다면 그다음도 얼마든지 가능할 테고.”

키시아르가 품 속에서 검은빛을 띤 돌을 꺼냈다. 아까 스스로 죽음을 택한 남국인 상인들의 소지품 속에서 얻어 낸 물건이었다.

“아까 대충 살펴보니 이건 고대 용의 뼛조각 같더군.”

“용의 뼈… 말입니까?”

“타이스 율만이 붉은 돌의 힘을 담기 위해 만들었던 매개체를 기억하고 있겠지? 거기에 들어갔던 고대 용의 심장 조각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지만 등급이 떨어지는 물건이야. 간략히 말하자면, 힘을 담는 성질을 지닌 재료 중 하나란 소리지.”

타이스 율만은 고대 용의 심장 조각, 고대 요정의 가루, 그리고 시나티움이라는 재료를 섞어 붉은 돌의 순수한 힘을 옮겨 담아낼 매개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고대 용의 심장 조각과 고대 요정의 가루는 힘을 담을 수 있는 성질을 지닌 최고급 재료였다.

“심장 조각에 비해서는 등급이 떨어진다 해도 용의 뼈 또한 그리 흔한 물건은 아니야. 대부분 마도구를 만들 때 핵으로 사용하니 보통 사람은 원재료를 보기조차 힘들어.”

“힘을 가둘 수 있는 물건이라면 그 안에 지금도… 뭔가 들어 있는 겁니까?”

키시아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네. 아무 기운도 들어 있지 않고 모두 텅 비어 있더군.”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지. 안에 들어 있던 기운을 이미 모두 소진했거나, 혹은 뭔가를 넣을 예정이었거나.”

중얼거리며 검은 돌을 만지작거리던 키시아르가 솜씨 좋게 공중으로 가볍게 던졌다가 도로 손에 쥐고서 품에 넣었다.

“자세한 건 파견 인원들이 도착한 뒤 알 수 있겠지.”

“…….”

눈앞에서 검은 돌이 사라지고 나서도 균열과 대지진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혹 전투에 정신이 팔려 놓치고 있던 부분은 없을까. 과거의 기억 중 현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걸 더 뒤져 봐야 하지 않을까. 초조한 머릿속에서 수없이 많은 계획과 기억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뒤엉키기를 반복했다.

가라앉은 표정을 지울 줄 모르는 유더를 곰곰이 바라보던 키시아르가 별안간 먼지투성이가 된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었다.

이어 자연스럽게 셔츠 목 부분까지 풀기 시작하는 남자를 조금 뒤늦게 발견한 유더는 약간의 당혹감을 삼키며 물었다.

“단장님? 갑자기 왜…….”

“응? 씻어야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하지 않았나. 계속 먼지투성이로 있을 순 없으니까.”

키시아르가 눈짓으로 책상 너머, 이어지는 방문 쪽을 향해 눈을 장난스레 찡긋거렸다. 유더는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새삼스레 자각했다.

‘아……. 이 방이 본래 건물 주인이었을 귀족의 방이라 욕실과 침실이 함께 붙어 있었지.’

남부 지부 건물은 본디 쓰이지 않은 채 비워져 있던 오래된 귀족가의 저택이다. 낡긴 했어도 과거의 화려한 모습을 짐작할 만한 요소가 곳곳에 존재했다.

키시아르가 임시로 사용 중인 이 집무실도 본래는 원주인의 침실이었는데, 단원들은 가장 큰 침실을 임시 회의실 겸 집무실로 바꾸고 그곳에 붙은 조금 작은 방을 침실로 만들었다. 때문에 보통의 집무실에는 바로 붙어 있지 않을 욕실이 여기에는 문 하나만 사이에 두고 존재했다.

유더는 셔츠 단추를 완전히 풀어 헤쳐 가는 키시아르를 너무 뚫어져라 보지 않도록 눈을 내리깔며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 옷 안에 뭐가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어도, 지금은 거기에 시선을 둘 때가 아니었다.

“제가 너무 늦게까지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정말 그대로 가려고?”

“…….”

막 돌리려던 발이 낮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대로 멈추었다. 마치 발을 묶는 능력에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돌아가자마자 눕지도 않고 또다시 일에 골몰할 생각뿐일 테고.”

“…….”

키시아르가 정말 마음을 읽는 능력이 없는 게 맞는지 그간 여러 번 의심했지만, 이번이 그중에서도 최고였다.

유더가 부정하는 대신 침묵만 지키자 키시아르가 웃음을 흘렸다. 아까 그를 끌어안을 때처럼 한숨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괜찮아.”

“…….”

“날 봐 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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