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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37화 (737/805)

737화

“호수 주변에 들어갈 수 없도록 기사들이 막고 있더군요. 디아카 가의 기사들이었습니다.”

“디아카요?”

“네. 단순한 디아카 가문의 일원이 온 게 아닙니다. 이럴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뿐이죠. 디아카 공작 본인입니다.”

모두 깜짝 놀랐다. 렌보우 자작을 쫓으러 왔는데 별안간 디아카 공작이라는 거물이 등장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에버는 렌보우 자작이 디아카 공작을 따르는 귀족파 인물 중 한 사람이란 정보를 떠올렸다. 황제는 도망친 현자가 렌보우 자작과 만나리라 예상했는데, 그 렌보우 자작이 향한 곳에 디아카 공작이 있다니.

이건 분명 연관 없는 일이라 보기 힘들다는 감이 번득였다.

“에버. 어떻게 할까요.”

에버와 같은 생각을 하는 눈빛으로 가케인이 물었다.

렌보우 자작을 찾아내도 디아카 공작이 같은 장소에 있다면 그들이 접근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렌보우 자작과 현자가 함께 디아카 공작을 만날 예정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접근하기 힘들 뿐이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건 곧 포기할 이유가 없음을 뜻했다.

그러므로 에버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마병단이라면 누구나 여기서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내린 명은 렌보우 자작을 뒤쫓으라는 것이었지만, 그러길 바라신 이유는 현자를 붙잡기 위해서죠. 그러니까 지금 저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디아카 공작도, 렌보우 자작도 아니에요. 현자와 그 일행을 찾는 거죠.”

“…….”

“전 렌보우 자작과 현자가 현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찾기 위해 디아카 공작을 만나러 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현자도 분명 이곳 어딘가에 있지 않겠어요?”

“그걸 찾자는 거군요.”

가케인이 뜻을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에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여기 있는 모두의 힘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물론 처음 예상보다 더 위험해지긴 하겠죠. 그러니 빠지고 싶다면 지금 말해 주세요.”

단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잠시 후 그들의 얼굴 위로 긴장감 어린, 그러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럴 리가요.”

당연하지만 그들 중 빠지고 싶다는 뜻을 밝힌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프루엘레와 레블린은 일반적인 귀족 자제와는 다소 다른 삶을 살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귀족적인 상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 수도에서 내내 살았던 레블린은 현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지 명석하게 분석해 냈다.

“아마 저 기사들이 내내 호숫가를 지키고 있진 않을 거예요. 디아카 공작이 호수를 이용하기 전 수상한 게 없는지 살피기 위해서 잠시 통제한 거겠죠. 이 호숫가는 거의 귀족들이 이용하는 곳이니 아무리 디아카 공작 급의 권력자라 해도 몇 시간이나 마음대로 막아 둘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기사들이 통제를 거두고 나면 다른 사람들도 호숫가에 들어오기 시작할 테니 저희도 그때를 노려 섞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디아카 공작 일행 근처를 지키다 보면 분명 렌보우 자작과 현자란 사람들도 나타나게 되겠죠. 그 사람들의 목적이 디아카 공작과의 만남이 맞다면요.”

모두 레블린의 말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엘더 남매가 사납고 즐겁게 웃으며 레블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렇지. 어차피 디아카 공작이 목표일 것 같다면 여기저기 들쑤시지 말고 최종 목표 지점에서 지키고 있는 게 훨씬 편하니까! 똑똑하네.”

“하하… 칭찬 고마워.”

“그래도 아직 목소리를 더 키워야 해.”

엘더 남매와 레블린이 속닥대며 편하게 반말을 나누었다. 임시 단원으로 생활하는 동안 단 내에 얼마 없는 10대끼리의 동질감으로 인해 친분이 많이 붙은 덕이었다.

에버는 레블린이 많은 일을 겪고 아직까지 큰형의 견제를 받고 있는 입장임에도 지금만큼 밝아질 수 있었던 건 거침없는 폭풍처럼 구는 엘더 남매의 영향이 제법 컸으리라 짐작했다.

미소가 나오는 광경이었지만 시선을 돌려 창밖의 호수를 본 순간 그 웃음은 도로 사라졌다.

“레블린의 말대로네요. 호숫가에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서는 것 같아요. 그럼 우리도 모두 준비하도록 하죠. 인원을 나누어 주변을 감시하고 서로 정보를 전달하도록 해요.”

에버는 일행을 세 조로 나누었다. 우선 가볍게 머리칼과 이목구비를 가리는 모자를 쓴 레블린과 엘더 남매가 철없는 어린 귀족 소년 소녀들처럼 호숫가로 향했다.

시간 차를 두고 그 뒤를 따라 귀족 여성으로 변신한 프루엘레가 고양이 니폴렌을 안은 채 호위처럼 칼을 찬 사복 차림의 에버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남자가 여성 호위를 대동하고서 고양이를 안고 다니는 건 시선을 끌 만큼 이상한 광경이지만, 귀부인이 같은 행동을 하는 건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는 점을 노린 구성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케인은 그림자 분신으로 몸을 가린 채 프루엘레의 저택 근처에 남았다. 호숫가 전체가 보이는 그곳에서는 동료 중 누군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하고 도움을 주기 용이했다.

“겨울이지만 햇볕이 좀 따갑네요. 양산이 필요하겠어요.”

“알겠습니다, 부인.”

에버는 천연덕스럽게 우아한 귀부인을 연기하며 고양이를 쓰다듬는 프루엘레의 머리 위에 양산을 씌워 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큰 호수 주변의 풍경은 그저 한가로웠다. 그들처럼 산책을 하거나, 혹은 자리를 깔고 앉아 한가롭게 오후를 즐기는 귀족들이 많았다.

마병단 본부가 위치한 7구역과는 정말 다른 세계 같았다.

디아카 공작도 분명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텐데, 호수가 생각보다 큰 데다 모습을 가리기 좋은 나무가 많아 생각만큼 바로 눈에 띄지는 않았다. 주변을 살피던 에버는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들고 있던 양산 아래로 눈을 내렸다.

“너무 두리번거리시면 안 돼요. 호위의 기본은 지켜야 할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눈에 많이 띄었나요?”

“벡 님과 같은 분이 눈에 안 띌 리가요. 보는 건 제가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새침하고 고운 목소리지만 그 안에 든 건 프루엘레다. 그 사실을 아는데도 말투조차 너무나 완벽하게 뒤바뀌어 정말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별이 다른 몸으로 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텐데도 프루엘레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해냈다. 몸짓도, 예절도 무엇 하나 진짜 귀부인과 다른 부분이 없어서, 가끔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던 이들도 프루엘레가 몇 번 생글생글 웃으며 대꾸하고 나면 이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에버는 그의 변신 능력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지가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는 몹시 힘들 터다.

‘어서 찾아야 할 텐데.’

에버는 프루엘레의 머리 위에 양산을 깊이 기울이는 척, 자신의 얼굴을 함께 가리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발이 아프진 않으신가요?”

일순 잘 걷고 있던 프루엘레가 움찔 비틀거릴 뻔하다가 멈추었다.

“그건, 왜 물으시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셨잖아요. 잠깐이라면 몰라도 오래 걷기는 힘들겠지요. 필요하시다면 업어 드릴 수 있으니 말씀하세요.”

돌려 말하고 있지만 변신 상태가 힘들까 봐 걱정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프루엘레는 상당히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친절하신 제안이지만… 괜찮아요. 전 그렇게 연약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힘들면 말하라고 하려던 찰나였다.

두 사람의 귓속에 레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리세요? 디아카 공작을 발견했어요. 막내아들인 키올레 다 디아카 경과 함께 온 것 같아요. 북쪽으로 오세요. 울타리가 쳐진 마스쿠 나무가 있는 방향이에요.’

레블린의 능력은 자신이 지정한 특정한 사람에게만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다. 그 능력은 그가 집안의 주박에서 확실하게 벗어난 뒤로 점점 더 발전하여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도 특정한 조건하에서는 뜻을 전할 수 있을 정도가 된 상태였다.

에버와 프루엘레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전보다 걸음을 빨리하여 북쪽으로 향했다.

레블린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며 변화하는 상황을 시시각각 알려 주었다.

‘디아카 공작이 키올레 경과 이야기하는 걸 보니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키올레 경은 지루해 보이는데… 앗. 방금 시선이 마주친 것 같아요. 혹시 저흴 알아봤을지도…….’

‘…아무래도 아니었던 것 같네요.’

‘아! 어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방금 목표인 렌보우 자작이 나타났어요!’

프루엘레가 한층 더 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구두와 드레스 차림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에버는 하마터면 고양이를 안은 채 넘어질 뻔한 귀부인에게 시기 적절하게 손을 뻗어 받친 뒤, 힘을 주어 번쩍 안았다.

손가락에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집중하여 뿜어낼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약간의 낭비를 감안하면 다른 부위로도 잠깐 발휘하는 게 가능하다. 자그마한 귀부인과 그보다 훨씬 앙증맞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얼마든지 안고 뛰는 게 가능하단 뜻이었다.

“어어……!”

“죄송하지만 잠깐만 참으세요. 다치는 것보단 이게 나아요. 니폴렌이 떨어지지 않도록 꽉 잡으시고요.”

입을 뻐끔대던 프루엘레가 겨우 얌전해졌다. 에버는 새빨갛게 변한 그의 귀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기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사람들이 제법 몰려 있는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제일 눈에 띄는 이는 꼿꼿하게 서 있는 귀족적이고도 너구리 같은 인상의 노인이었다.

얼마 전 마병단의 서부 임무 성공 기념 축하 파티에서 몹시 안 좋은 기억을 남긴 이후 여태까지 잊지 않았던 그 얼굴. 분명 디아카 공작이었다.

디아카 공작의 곁에는 짜증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젊은 기사가 서 있었다. 늘씬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지녔으나 그만큼 성격도 좋지 않아 보이는 인상을 지닌 그의 얼굴 또한 에버에게는 상당히 익숙했다.

마병단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유더에게 처참하게 깨진 경력이 있는 키올레 다 디아카는 여러 의미로 마병단에서도 유명했던 탓이다.

하지만 에버는 또 다른 일로 인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그는 갑자기 마병단에 찾아와 유더 아일을 만나야겠다며 다짜고짜 난리를 피우고 간 적이 있었다. 에버와 동료들이 그 사건에 대해 유더에게 서신을 보냈을 때 돌아온 답신에는 다음과 같은 답이 쓰여 있었더랬다.

‘그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다음에는 그냥 내버려 두고 뭐라고 하는지나 알려 줘.’

유더와 키올레 다 디아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답신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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