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733화 (733/805)

733화

“나단. 드디어 왔구나.”

“예. 부관 나단 주커만, 지금 돌아왔습니다.”

인사를 나누는 주군과 신하의 모습은 너무나 담담했다. 이곳이 몬스터와의 위험천만한 전투가 벌어지는 도시 한복판인지, 아니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실내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단 주커만이 방금 무슨 짓을 하며 나타났는지 목격한 이들은 모두 소리 없이 제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나단 주커만이 날려 보낸 공격은 평범한 기사가 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 방금 주커만 경이 했던 그 공격, 오러처럼 보이지 않았어? 설마……! 주커만 경도 우리처럼 각성자였던 건가……?”

“보통은 여기서 마스터였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야?”

뒤늦게 술렁이는 마병단원들에 이어 제국군 또한 상기된 얼굴로 말을 주고받았다.

“저 기사님의 실력이 심상치 않다는 건 지하 격투장에서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 하지만 설마 오러를 쓸 수 있는 기사였다니…… 설마 진짜 마스터일까?”

“그런 거라면 정말 난리가 나겠는데.”

“뭐가 됐든 중요한 건 하나야. 이제 우리가 저 몬스터를 더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지!”

그 말대로였다. 나단 주커만은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키시아르와의 교대가 아니라, 유인전 대형을 힘겹게 유지 중인 마병단원들의 지원이었다.

그의 검은 더 이상 푸르게 빛나지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 한 사람의 힘이 더해졌을 뿐임에도 마병단원들은 이전에 비해 훨씬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편해졌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드디어 상대할 몬스터가 두 마리밖에 남지 않았을 때, 키시아르와 나단은 약속이나 한 듯 각기 한 마리씩 맡았다. 검을 보는 눈이 제법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두 사내의 검로가 상당히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나단 주커만이 주군에게 검을 배웠기 때문이지만 거기까지 눈치챈 이는 없었다.

유더 아일은 나머지 마병단원들과 함께 두 검사의 곁에서 여러 속성을 한꺼번에 아낌없이 사용하며 힘을 보탰다. 멀리서 지켜보는 이들은 그 한 사람이 나머지 마병단 전부를 합친 것보다 더 확실하게 몬스터의 빈틈을 벌리고 유인해 내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아슬아슬하게 몬스터 두 마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기어이 공격해야 할 부위에 낙인을 찍는 데 성공한 유더 아일이 바람을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몬스터들의 다리가 그의 발목을 붙잡으려는 듯 쭉 늘어나다 꿈틀 경직했다.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두 마리의 몸통을 꿰뚫어 베어 버린 탓이었다.

한 마리는 그 즉시 유더를 향해 뻗었던 다리에서 힘을 잃고 가지치기된 나뭇가지처럼 떨어졌으나 다른 한 마리는 달랐다. 그놈의 다리는 다른 몬스터들과 달리 마지막 순간 비정상적으로 길이를 늘이며 발악하듯 유더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키시아르가 스치는 공격을 당했던 때와 비슷한 상황. 그러나 이번에는 키시아르가 그것을 막아 내기 위해 나설 만한 시간이 없었다.

모두가 유더의 작은 부상을 예감했던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엇……!”

유더 아일이 아래로 바람을 쏘아 보내며 공중에서 순식간에 몸을 틀었다. 몸의 위치가 바뀌자 발목을 노렸던 몬스터의 다리는 속절없이 유더의 검을 휘감고 말았다.

유더는 그것을 꽉 쥔 채, 등골이 섬찟할 만큼 사나운 눈으로 소리쳤다.

“마병단! 일제 공격!”

모든 마병단원들이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일제히 반사적으로 힘을 발했다. 잠을 자다가도 특정 명령어에는 반응할 만큼 굴려진 이들의 슬픈 반사작용이었으나 결과만은 확실했다.

무슨 능력인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힘들이 마구 뒤엉킨 채 몬스터의 전신에, 유더의 검을 휘감아 붙잡은 다리에 직격했다.

그리고 키시아르 라 오르 또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오러를 쏘아 보내 몬스터의 마지막 남은 육신 또한 갈갈이 찢는 데 성공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휘황한 빛이 휩쓸고 지나간 뒤.

자욱한 먼지와 몬스터의 체액으로 뒤덮인 곳에서 힘 있는 한마디가 들려왔다.

“…마지막 몬스터까지 모두 처리했음을 확인했다. 모두 수고가 많았네.”

“아……!”

키시아르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그제야 제자리에 널브러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누군가는 무기를 들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와아아아!”

“해냈다! 진짜로 우리가 해냈어!”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일반인의 피해 또한 전무했다. 그 흔한 건물 붕괴나 2차 피해도 나오지 않았다.

도시 한복판에서 몬스터를 상대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모두가 환희했다.

“…….”

유더는 한 손에 쥔 검을 늘어뜨린 채 기뻐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키시아르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새카만 몬스터 체액과 먼지로 범벅이 된 금빛 머리칼, 그리고 아직까지도 땀이 맺혀 있는 목덜미. 모두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아까까지는 머리가 새하얗게 될 만큼 화가 나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이전에 수확철 축제 때 생각이 났다. 그때의 키시아르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곁에 아무도 두지 않은 채 홀로 서 있었다. 지독히 고독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표정은 마치 단단한 가면 같아 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저 뒷모습은 같은 사람이면서도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그는 자신을 믿고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 큰 나무처럼 서 있었다. 더럽고 엉망이 된 몸과 의복이 화려한 예복보다 더욱 잘 어울려 보였다. 뒷모습만 보일 뿐이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지시를 내리고 호흡할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어깨와 등을 통해 충분히 그의 감정을 추측 가능했다.

육체적으로는 지쳤으나 감정적으로는 스스로의 손으로 일구어 낸 전투의 결과를, 승리를 분명히 체감하고 있는 사람의 등. 끓는 피가 식지 않는 그 기분은 유더에게도 아주 익숙했다.

“……후우.”

유더는 깊이 숨을 내쉬며 더러워진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도시 한복판에 이상 균열 현상과 몬스터라. 아무래도 한동안 이곳을 떠날 수 없을 것 같군요.”

“…예. 아무래도 예정보다 더 긴 체류가 될 것 같으니 북부에 연락을 할 생각입니다.”

유더는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찬가지로 몬스터의 체액을 뒤집어써 꼴이 상당히 더러워진 나단 주커만이 조용히 그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 속에 지나가고 있을 생각들은 알 수 없지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유더는 그가 몸소 양보해 준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걸 사과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뭐가 말입니까.”

“제가 있었음에도 단장님께서 부상을 입으셨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있던 게 유더가 아니라 나단이었어도 키시아르가 그렇게까지 무리하여 몬스터를 막아 내려 했을까? 유더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건 순전히 제 탓이었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팔에 공격이 닿던 순간의 기분을 떠올렸다. 끔찍했다. 몬스터에게 직접 공격을 거의 할 수 없다는 게 그토록 화가 났던 적은 이번 생에서 처음이었다.

나단 주커만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그는 단원들과 다른 이들에게 계속 후속 지시를 내리고 있는 키시아르의 한쪽 소매가 검게 녹아내린 모습을 확인한 뒤 도로 유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가 그것 때문에 실망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그럼 아닙니까?”

“글쎄요. 지금 주군의 모습만 보면 아일 경을 먼저 보내 드릴 때 제가 기대했던 바는 이미 충분히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만.”

키시아르가 부상을 입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 유더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그게 나단 주커만 나름의 위로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 해도 부상은 부상입니다. 지시를 마치시는 대로 나머지 뒷정리는 제가 할 테니 주커만 경은 단장님을 모시고 들어가 먼저 상태를 돌보실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 말씀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요.”

유더가 또다시 무슨 말이냐고 묻기 전, 나단 주커만이 이번에는 먼저 답을 알려 주었다.

“주군께선 아마 그 말을 정확히 반대로 제게 지시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마지막에 공중에서 급하게 방향을 바꾸었을 때 분명 오른손이 좀 틀어진 것을 보았는데 아프지 않으십니까?”

유더는 검을 집어넣고 나서도 미약하게 시큰거리는 감각을 선사 중인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말대로 마지막 순간, 바람의 힘을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공중에서 몸을 반대로 틀었을 때 검을 들고 있던 오른손이 약간 뒤틀렸다. 아마 그 직후 몬스터의 다리에 붙잡힌 검을 빼앗기지 않고 계속 붙잡아 두기 위해 완력을 사용하면서 무리가 더 심해졌겠지만 유더는 그것을 그리 심각한 부상이라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나단 주커만의 말대로 유더가 막 입을 열려 했던 찰나, 귀신같이 고개를 돌린 키시아르가 입을 열어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단. 유더를 데리고 안으로 먼저 들어가 오른손의 상태를 살피게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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