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화
이어서 두 번째 몬스터와 세 번째 몬스터도 마병단원들의 유인에 이끌려 그들의 앞에 당도하기 시작했다. 유더는 자신의 검과 약간의 힘을 번갈아 이용하며 몬스터들의 발악이 키시아르에게 닿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 냈다.
키시아르는 다섯 번째 몬스터까지는 검을 몇 번 휘두르지도 않고 일방적이고도 압도적인 힘으로 베어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덕분에 마병단원들은 실전에서 처음 해 보는 유인전 대형에 익숙해질 여유를 얻었다. 처음에는 약간 성급하게 움직이거나 시기를 맞추지 못하던 이들이 하나둘 침착해지며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국군과 합격자들 또한 키시아르의 압도적인 검술과 그 손에 들린 신검을 보며 얻은 희망을 통해 자신감과 냉정함을 되찾았다. 다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초조함이 사라지고 나니 포위망을 흐트러뜨리지 않고서도 붙잡은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을 지부 건물 안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처음 해 보는 일임에도 하나씩 꼼꼼하게 진행할 시간을 얻었기에 가능했던 쾌거였다.
급히 빠져야 할 만한 부상자는 아직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하늘에서 몬스터가 떨어지는 걸 본 사람들이 분명 많을 테니 곧 지부 쪽으로 몰려오겠지만 이대로라면 일반인이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는 일은 없을 듯했다.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상황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흥분하고 당황한 채 움직이느냐, 냉정과 침착을 지키면서 움직이느냐는 아주 많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유더가 보기에 키시아르는 그 점을 잘 알고 누구보다 확실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맨 처음 했던 말부터가 이미 노림수였지. 몬스터가 발생할 때 균열이 잠시 나타나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그 균열의 이상 부분은 일부러 축소하고 모두가 잘 알고 익숙할 쪽만 강조해서 혼란을 단숨에 가라앉혔으니까.’
일반적으로 몬스터가 발생할 때 찢고 나타나는 균열은 몬스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바로 소멸한다. 대개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균열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재앙 직전 모습을 드러내는 균열들은 몬스터를 뱉어 내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한참 동안 존재하는 이상성을 보인다. 서부 때는 그러다 사라진 이후 몬스터가 주변에 폭발적으로 발생했었고, 이번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몬스터를 뱉어 냈다는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균열과 같다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균열’이 나타난 후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다. 키시아르는 일부러 그 점을 강조하여 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부분 때문에 지나치게 불안해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지금 당장 답을 얻을 수 없는 현상에 신경 쓰기보다 현재를 익숙하게 받아들이며 평소의 힘과 대응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그 모든 걸 말 한마디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다는 건 집단을 이끄는 데 어지간히 이골이 난 사람이라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안심하게 만든 뒤엔 일부러 더욱 눈에 띄도록 힘을 많이 넣어 몬스터를 정리하기까지 했지. 그것이 필요 이상 과하게 힘을 버리는 행위가 되더라도, 여기 있는 이들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 판단했을 테니까.’
키시아르의 검술과 능력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도 유더만큼이나 상당한 힘을 이미 먼저 사용하고 여기에 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압도적이고 과한 힘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몬스터의 성질과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조금 느리게 가는 쪽이 그 자신을 위해서는 더 안전한 판단이었으리라.
하지만 키시아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 있는 단원들과 다른 이들을 위하여 보다 위험한 방식을 택하되 본디 해야 했을 몬스터 파악과 스스로의 안전 확보는 유더에게 맡겼다.
유더가 그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움직여 주지 않는다면, 하다못해 힘이 조금이라도 못 받쳐 준다면 곧바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또한 했을 텐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유는 확연했다.
‘내가 키시아르를 확실히 받쳐 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반대로… 키시아르 쪽도 내가 몬스터를 상대로 직접 힘을 발휘하지 않도록 만들어 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유더는 키시아르에게 날아드는 눈먼 파편들을 걷어 내며 온전히 전투에만 집중 중인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위험한 상황에서 고작 검 한 자루를 들었을 뿐임에도 키시아르는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인간보다 훨씬 큰 몬스터를 상대로 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와 어마어마한 힘이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자유로워 보인단 것이 이 일을 쉽게 하고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유더는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현재 얼마나 이 일에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발휘 중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한 번, 한 번의 움직임에 실린 힘이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대단한 힘, 엄청난 오러 정도로밖엔 안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다르다. 키시아르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듯 모든 힘을 짜내어 마음대로 공격할 수 있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몸에 내재된 힘들의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그릇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을 지켜야만 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유더조차 감히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며 오러를 두른 검을 휘두르는 사내의 모습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해방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오랫동안 목줄에 감겨 있던 맹수가 드디어 잠시 풀려나 마음껏 뛸 기회를 얻은 것만 같았다.
유더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키시아르 라 오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순수하게 스스로 적을 상대하는 일에만 집중해도 좋다고 판단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더에게는 흔할 만큼 익숙한 경험이지만 그에게는 아닐 터였다.
매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연습하며 치열하게 쌓아 올려 완성된 그의 검술은 찬란한 오러가 아니라도 그저 순수하게 아름다웠다.
손에 들린 신검도 공격할 때마다 은은하게 웅웅거리며 공명하는 모습이 마치 오랜만의 긴 전투에 흥분한 맹수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유더는 키시아르가 계속해서 온전히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면 제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저 몬스터는 나도 처음 보지만… 그렇다고 파악이 어려운 건 아니야.’
그들이 상대 중인 몬스터는 덩치가 상당히 컸다. 진흙 덩어리가 흘러내리는 공처럼 생긴 몸통에 팔인지, 다리인지, 꼬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징어나 문어 같은 촉수인지 모를 것들이 길게 솟아 있었다. 중요한 점은 그 다리들이 아무렇게나 솟은 듯 보여도 4~5군데 정도 뭉쳐 있다는 점이었다.
몬스터에 대해 파악할 때는 이런 공통된 부분을 먼저 보아야 한다. 눈코입이 어디에 붙었는지, 생김새 중에서 특이한 부분은 뭔지를 알면 공략할 부분이 차례차례 파악되는 법이었다.
‘저놈은 개체별로 눈코입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다리에 비해 쓸모없는 기관이라 봐도 되겠지. 그리고 아까 키시아르가 반으로 갈라 버린 몬스터 사체를 보면…….’
유더의 시선이 키시아르가 쌓아 놓은 몬스터 사체를 향해 돌아갔다. 그중 맨 처음에 죽여 정확하게 반으로 갈린 사체 내부에는 4개의 다리 뭉치로부터 이어진 물렁한 뼈와 비슷한 무언가가 내부의 어떤 부분에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그것도 반으로 갈린 상태라 본래의 형태를 유추하기가 좀 힘들었으나 눈에 힘을 주어 자세히 보니 구조를 알 듯도 했다.
힘을 한창 사용 중이라 금빛을 내며 빛나는 중이던 유더의 눈이 그 부분을 낱낱이 훑었다.
좀 더 자세히 만지며 살펴볼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지금 그럴 시간은 없다. 그래도 경험상 그곳이 약점에 가까운 부위일 확률이 높다는 건 확신 가능했다.
‘키시아르가 반으로 갈랐음에도 단번에 안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를 보면 저 핵이 위치한 곳을 단번에 손상하지 못했던 걸로 보이는군. 무조건 중앙을 노리기보다는 저 다리 뭉치들을 선처럼 이어 그게 겹칠 만한 부분을 특정해 노려야 해. 몬스터의 다리 위치가 제멋대로이니 핵의 위치도 당연히 그럴 테니까.’
유더 아일의 공격은 몬스터에게 거의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가 몬스터를 수없이 죽일 수 있는 마병단장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이들은 접근조차 싫어하는 몬스터를 상대로 약점을 파악하고 해치울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관찰하고 또 관찰하는 집요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점을 알아내고 나면 그 다음은 간접 공격이 가능한 무기를 준비하고 공격에 유리한 지형을 자신의 힘으로 완성해 몬스터를 그곳으로 밀어 넣는다. 어마어마한 능력과 철저한 준비성으로 완성된 덫과 같은 방식이었다.
지금 그 방식을 쓸 수는 없지만, 이 정보가 키시아르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될 터다.
“단장님! 몬스터의 다리 뭉치 사이를 노려야 합니다. 다리 뭉치들을 이어 주는 핵심 부위가 몸통 내부에 존재하니, 그곳을 먼저 확인하고 공격하십시오.”
유더는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키시아르가 상대 중인 몬스터를 향하여 힘을 실은 검을 휘둘렀다. 땅에 다리 일부가 잡혀 몸부림치는 짧은 틈에 불의 힘을 실은 검으로 파고 들어가 몸통을 밀어 내듯 찌르자 털인지 비늘인지 모를 것이 후두둑 타오르며 새카만 낙인을 만들었다.
끔찍한 비명이 대기를 울렸다.
‘됐다.’
목적을 이룬 유더가 뒤로 훌쩍 물러남과 동시에 키시아르가 교대하듯 나아가 정확하게 낙인이 찍힌 부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사람의 시선이 일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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