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화
“미친……. 어떻게 저런 놈이……!”
“저게 인간이라고?”
‘그럼 인간이 아니면 뭐냐.’
유더는 자신을 인간 아닌 괴물 같다 평하며 치를 떠는 말에도 심드렁한 무표정만 지키며 묵묵하게 앞을 뚫고 나아갔다. 그런 말은 솔직히 하도 들어봐서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을 넘어 제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증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확실히 훈련을 해 본 놈들이라고 지하 불법 격투장의 물렁한 쓰레기 같던 놈들보다는 훨씬 까다롭긴 하군.’
같은 각성자를 상대하는 걸 비각성자 상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각성자들은 직접 마주해 보기 전까진 무슨 능력을 어떻게 써서 싸우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난제였다.
나그란의 별 소속 각성자들은 특히 특이한 능력을 지녀 눈에 띈 탓에 고향을 탈출한 이들이 많은 데다 싸우는 방식 역시 이렇다 할 규칙이 없어 그런 면에서는 더더욱 까다로웠다.
하지만 다양한 능력을 지닌 탓에 상대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각성자를 많이 보지 못한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유더는 상대가 능력을 쓸 낌새만 보여도 높은 확률로 그가 어떤 계열의 능력을 지녔는지 빠르게 판단해 냈다.
‘이건 자연 속성계 쪽이겠군. 불이라면 물로 처리하면 그만.’
불을 쏘기도 전에 물에 배를 얻어맞은 각성자가 흠뻑 젖은 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이놈은 신체를 순식간에 강화할 수 있으면서 왜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않고 계속 능력을 사용한 채로 다니지? 차려진 밥상도 이보단 덜 쉽겠다.’
유더를 옆에서 공격하려던 신체 강화계 각성자가 돌아보지도 않고 휘두른 검집에 강화가 약해져 있던 급소 부위를 정확하게 얻어맞아 뒤로 넘어갔다.
그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각성자가 날개 달린 짐승과 같은 형태로 수화하여 달려들었지만 유더가 날갯죽지 사이로 검집을 푹 비틀어 넣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넌 대체 뭐 하는 괴물이냐……!”
‘소리를 다루는 능력이군. 제법이지만… 흙바람을 마시면서 소리를 지르는 건 힘들다는 것도 이 기회에 배워라.’
날카로운 고함으로 귀와 머리를 띵하게 만들어 주변의 단원들을 고전하게 만들던 자가 순간적으로 흙먼지를 불러일으킨 유더의 바람에 휩쓸려 볼썽사납게 기침을 하다가 검집에 얻어맞아 마찬가지로 쓰러졌다.
각성자의 능력이란 얼핏 보면 같은 능력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똑같은 인간에게서 시작된 능력. 약점도 결국 비슷하게 마련이다.
그 유명한 유더 아일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달려든 나그란의 별 소속 각성자들은 거의 부품이 달린 기계 인형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빠른 손속으로 자신들을 때려눕히는 그의 모습에 눈을 의심했다.
키시아르 라 오르가 미지의 능력으로 단 한 번도 공격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귀신에 홀린 듯한 공포 속으로 밀어 넣었다면 유더 아일의 힘은 그 정체가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어 두려운 압도적인 무력 그 자체였다.
누가 저들을 방탕하고 무능력한 펠레타 공작과 그의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마병단이라고 했는가.
사람이라기보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을 가하는 게 가능한 무기와도 같은 모습에 적들은 점차 사기가 꺾이는 기분을 느꼈다.
저건 도저히 스무 살짜리 애송이의 싸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들과 똑같은 각성자라고 우습게 봤던 이들은 압도적인 실력 차와 불가사의한 노련함 앞에서 의문과 공포를 체험했다.
그중에서도 키시아르를 급습했던 남부 거점의 각성자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더했다. 저런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가 자신의 주인을 습격하려 든 자들을 자비롭게 놓아줄 리 없었다. 펠레타 공작의 곁에 붙어 있는 게 저런 괴물이라는 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리 쉽게 거점을 떠나오진 않았을 터였다.
그들 중에는 나한이 마병단을 상대로 매번 지고 돌아오는 이유를 내통 때문이라 믿던 자도 있었다. 그는 유더 아일과 같은 괴물을 상대로 나한이 진작 잡히지 않고 매번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저 녀석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각성을 했을 텐데 이 차이는 대체 뭐야.’
마병단이 생긴 지 고작 1년도 되지 않았다. 각성을 아무리 예전에 했다 해도 힘을 얻은 지 이제 겨우 2년 정도일 텐데, 저자는 어떻게 이런 싸움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같은 각성자이기에 그들은 오히려 유더 아일의 말도 안 되는 강력함을 더욱 확연하게 인지했다. 그와 비슷한 속성의 힘을 지닌 이들은 그보다 더했다.
강한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에 내심 우쭐했던 자들도, 새파랗게 젊은 유더를 우습게 보았던 자들도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충격을 맛보았다.
“말도 안 돼…….”
그들을 여기로 보낸 현자는 마병단이 이리 강하다고 알려 주지 않았다.
각성자로 이루어진 집단이라면 이미 나그란의 별에서 한 번 겪어 보았으니 두 번 겪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이건 조금도 비슷한 곳이 아니었다. 여긴 입을 쩍 벌린 사자들의 배 속이나 마찬가지였다.
사기가 꺾인 자들이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곳에는 탈출구 대신 포위망을 지키던 마병단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유더가 워낙 압도적으로 휩쓸고 다녀서 그렇지 그들 또한 나그란의 별 소속 각성자들과 비교할 수 없이 노련하고 힘을 다루는 데 능했다.
“이야, 유더를 보다 보니 우린 아주 만만해 보이지? 어?”
“감히 우리 지부에 간자로 들어오려 해? 너희가 들어오려고 했던 곳이 어딘지 똑똑히 보여 줄게. 뭐? 안 본다고? 거절 안 받아. 나갈 기회 이젠 끝났어!”
유더는 자신을 집중적으로 노리던 손속들이 공포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하자 한결 여유로운 걸음으로 땅의 능력을 써서 붙잡아 둔 남국인 상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공중에서 내려서자마자 바로 놈들부터 보러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나그란의 별 중에 겁을 상실하고 유더부터 노리러 온 놈들이 아주 많아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마 키시아르가 붙여 준 동료 단원들이 아니었더라면 붙잡고 나서도 탈출할까 신경이 쓰여 이리 편하게 때려 부수지는 못했을 터다. 처음엔 동료들을 붙여 주지 않아도 될 텐데 너무 걱정이 심한 게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키시아르의 선택은 확실하게 적절한 부분에서 도움이 되어 주었다.
전장의 흐름을 읽는 키시아르의 능력이 그만큼 탁월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싸우고 누구부터 노릴지 읽어 낸 거겠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정확하게…….’
남에게 자신의 행동이 예상 가능한 범주로 읽히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남이 예상 가능한 행동을 한다는 건 곧 언제든 약점을 잡혀 패배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키시아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유더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못해 오히려 기꺼운 기분으로 고개를 살짝 들었다.
멀리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키시아르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마 마주친 게 맞을 것이다.
거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인데도 붉은 시선이 제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아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들의 머리 위에 뜬 균열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불길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까보다 좀 커진 것 같기도 한데.’
“유더!”
유더가 눈살을 찌푸리며 균열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려던 순간, 남국인 상인을 붙잡아 두고 있던 단원 한 사람이 그를 불렀다. 유더는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옮겨 그곳으로 향했다.
술과의 바람 속성 각성자 예르긴 쉴러는 땀을 흘리면서도 남국인 상인을 제압해 두는 힘을 거두지 않은 상태였다. 유더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너한테 다 달라붙길래 언제 오나 했어. 휴, 이제 좀 살겠다.”
“붙잡은 놈은?”
“무기와 소지품을 빼앗고 구덩이 안에 묻어 놨어. 지금 꺼낼게.”
예르긴이 손을 쓰자 곧 안에서 반쯤 기절해 늘어진 자의 얼굴이 보였다. 유더는 그자의 멱살을 잡아 끌어 올렸다. 머리에 쓴 로브가 뒤집어지며 붉은 피부를 지닌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짧게 깎은 머리 아래로 흐릿하게 뜬 눈동자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띠고 번들거렸다.
섬찟한 눈빛이었지만 그런 게 무서울 것 같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유더의 옆에 서 있는 예르긴도 겁을 먹기는커녕 빼앗은 무기나 살피면서 휘파람을 불어 댔다. 유더는 멱살을 그대로 붙잡은 채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며 물었다.
“저 균열. 네놈들 짓이지.”
“…….”
“어떻게 인간이 균열을 불러낼 수 있었지?”
“…….”
무엇을 물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혀가 잘리기라도 한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뭐, 곱게 대답해 줄 거라고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정작 이놈들의 대장인 아톤은 그리 과묵하지만은 않아서, 상당한 헛소리를 지껄여 주었었다. 혹 그놈이 했던 말을 여기서 꺼낸다면 어떨까. 유더는 아톤이 했던 말 중 가장 신경 쓰였던 한마디를 기억 속에서 건져 내어 입에 올렸다.
“이게 ‘불균형의 여파를 얹어’ 검은 달의 땅이 되었다는 네놈들 헛소리의 결과인가?”
“…….”
과연. 그제야 처음으로 여자가 눈을 깜박이며 반응했다. 남국인 특유의 짙은 눈동자 속에 약간의 감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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