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화
유더는 고개를 돌려 키시아르를 보았다.
“저 균열로 인해 무슨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저들을 정리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직접 말인가?”
키시아르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유더는 그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어 잠시 침묵하다 반문했다.
“네. 당연히 제가 직접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와 엉망이 된 사람에게 두 번 나가라고 명해야 할 만큼 우리 마병단이 밀리고 있지는 않아. 제압은 동료들에게 맡기고 잠시 쉬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쪽도 좋지 않겠나?”
“…….”
유더의 한쪽 눈썹이 움찔거렸다.
‘…혹시 다치지 말라는 말을 지키지 못한 벌을 이렇게 주려는 건가?’
키시아르의 말대로 현 상황이 그들에게 불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짓을 저질러 저 균열을 불러낸 것인지 알 수 없는 놈들이 멀쩡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상 유더는 뒷짐만 지고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완벽한 기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휴식이 꼭 필요한 상태도 아니다. 앉아서 지켜만 보라니. 다른 때, 다른 상대들이었다면 몰라도 이전 생의 재앙 직전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 벌어진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저 남국인 상인들이 여기서 무슨 짓을 더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감히 단장님을 노리려 한 자들이고, 저 위의 균열과 관련된 게 분명해 보이는 자들입니다. 그 두 가지 이유가 제겐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결코 물러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다면 부디 그 말씀은 재고해 주십시오.”
유더는 다른 이유라는 부분에 특히 힘을 주어 발음했다. 이전 게임에서 어떤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는지 들었으면서 저 이상한 균열을 앞두고 벌을 이런 식으로 주지는 말라는 작은 항의였다.
그러나 돌아온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답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걱정된다고 해도?”
“예?”
유더 외의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낮고 작은 목소리였다.
웃지 않는 키시아르의 눈동자가 유더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감추고 있는 무언가를 꿰뚫어 보려는 사람 같은 눈이었다.
유더가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입을 벌린 채 멈추자, 잠시 후 작게 숨을 내쉰 키시아르의 얼굴 위로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살짝 누그러뜨린 웃음이 스르르 떠올랐다. 그 웃음은 이내 평소와 같은 여유롭고 뻔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농담이었네. 물론 뛰어난 능력에 미모까지 겸비한 내 보좌가 나서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최선이자 최고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 그래도 조금이라도 쉬었으면 하는 마음에 권해 봤지만 뜻이 그렇다면야……. 괜찮겠나?”
엄청난 묘사에 합격자 중 한 사람이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게 정말 펠레타 공작께서 자신의 보좌를 상대로 한 말이 맞는 걸까? 곁에 있던 다른 합격자와 제국군들 또한 똑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마병단원들만은 그 모든 말을 하나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키시아르의 그 같은 말을 한두 번 들어 본 게 아니어서 모두 익숙해진 덕이었다.
유더는 방금 본 미소에 무언가 묘한 기분을 느끼느라 키시아르가 덧붙인 헛소리 같은 묘사조차 금방 인지하지 못했다.
‘뭐였지.’
그는 불규칙하게 뛰는 고동을 내리누르려 심호흡하면서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가 자신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유더 또한 키시아르가 재차 나서려 했다면 똑같이 걱정했을 테니까. 그 마음을 순간적으로 드러내고 만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앞에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손을 얹어 마병단식 경례를 했다. 뻔뻔하고도 여유로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키시아르가 멀리 있는 적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이들은 보좌 유더 아일을 따라 제일 앞으로 나서도록.”
“네!”
대기 중이던 마병단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키시아르가 읊은 이름들은 모두 자연 속성 능력을 지닌 단원들로, 총 5명이었다.
“유더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모두 잘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자네들은 이번 사건의 중요 인물들을 도맡아 처리할 유더의 움직임에 철저히 맞추어 보조한다. 마병단에서 자주 했던 훈련이니 실전에서도 충분히 잘해 주리라 믿어도 되겠지?”
그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금세 깨달은 단원들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머지는 아까 말했던 대로 대형을 갖추어 제압에 들어간다. 주변의 건물들에 이미 파견되어 있는 동료들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지 말고 항상 주시하며 움직이도록.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능력의 섬세한 조절과 속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게.”
“알겠습니다!”
키시아르가 손을 듦과 동시에 마병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키시아르의 곁에는 제국군과 합격자들만이 남았다. 하지만 뒤에 남은 단장을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들의 실력과 단장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형성되어 있는 단원들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유더는 등 뒤로 따라붙는 동료들의 움직임을 돌아보지 않고 바람을 밟으며 뛰었다. 바람의 힘을 크게 쓰면 높이 뛸 수 있지만 적게 쓰면 지금처럼 땅에 발이 닿지 않는 선에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게 가능했다.
방향 조절이 어렵고 장시간 사용 시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적이 바로 앞에 있으며 빠른 처리가 중요한 지금 같은 때에는 이 정도가 가장 적절했다.
“어……!”
마병단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나름대로 빠르게 대응할 준비를 했다 생각했던 나그란의 별 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에 도달한 유더를 보고 기겁했다. 그가 서둘러 검을 휘둘렀으나 유더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 그는 무게가 없는 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 검을 휘두른 이의 머리 위에 자신의 검집을 똑같이 내리쳐 주었다.
“……끄윽!”
‘목표한 놈은 아니지만 일단 한 놈.’
앞길을 막고 걸리적거렸으니 제일 먼저 얻어맞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더는 기절하여 털썩 쓰러지는 이를 돌아보지 않고서 앞만 보았다. 쓰러트린 놈은 굳이 줍지 않아도 뒤를 따르는 중일 다른 단원들이 알아서 수거할 터였다.
바람을 밟고 재차 질주하다 다시 높이 뛰어오르자 순간적으로 적과 아군이 어떤 모양으로 퍼져 있는지 모든 위치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키시아르는 남부 지부 전체를 빙 둘러 단원들을 배치하고 주변 건물에도 단원들을 보내 두었다. 그들은 대피한 일반인 대신 건물을 지키고 높거나 엄폐된 위치에서 각기 능력을 발휘하여 아군을 돕는 역할이었다.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구석마다 보호막을 펼친 단원, 섬광과도 같은 빛을 뿌리며 적이 향하는 방향을 알리는 단원, 힘을 북돋는 바람을 뿌리는 단원들 덕분에 적과 정면에서 대치 중인 이들은 본래 실력보다 훨씬 편안히 능력 발휘가 가능했다.
서로가 서로를 돕지만 방해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적을 포위해 몰아넣는 형태.
마병단이 그간 뼈를 깎는 단체 훈련을 통해 만들어 낸 최선의 협력 전투 형태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걸 보니 가르친 유더의 마음도 상당히 흡족했다.
유더는 뒤엉켜 싸우는 중인 이들 사이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의 머릿수와 위치를 정확하게 확인했다. 남부 거점에서 왔다는 머저리들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그놈들은 평상복을 입은 터라 중부 거점 소속과 구분하는 게 몹시 어려웠다.
‘총 네 명. 전부 흩어져 있군. 한 놈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면 족하다 이건가.’
그럼 뭐 하는가. 유더의 앞에서 그런 잔재주는 의미가 없었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한 사람씩 쫓아가 상대하는 방법을 쓰겠지만 유더 아일은 눈에 모두 보이기만 한다면 한꺼번에 골라서 물을 먹여 주는 게 가능한 이였다.
유더는 발밑을 받친 바람의 힘을 폭발적으로 끌어 올려 몸을 더욱 위로 튕겨 올린 뒤, 떨어지기 직전 잠시 몸이 느려지는 틈을 타 까마득한 아래쪽 땅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금빛으로 빛나고 있던 그의 한쪽 눈동자가 더욱 환하게 점멸하며 남국인 상인 네 명의 발아래 땅이 일순 푹 꺼져 들어갔다.
“……!”
놈들은 과연 이 정도 돌발 상황쯤은 예상했다는 듯 빠르게 반응하여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번의 유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유더의 뒤를 따르던 마병단원들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자들을 각자 하나씩 맡아 제압하기 시작했다.
물을 다루는 이는 적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땅에 물을 쏟아부어 늪처럼 질퍽이게 만들었고, 불을 다루는 이는 유더가 판 땅 주변에 불을 붙여 불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땅을 다룰 줄 아는 이는 그들 중에 없었지만 바람을 다루는 이는 구멍에 갇힌 이가 숨을 쉬지 못하도록 공기의 흐름을 조정하여 가장 손쉽게 목적을 이루었다.
그사이 유더는 천천히 땅에 착지하는 여유를 누린 뒤 자신에게 달려드는 눈먼 공격들을 검집에 넣은 검 하나로 손쉽게 때려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키시아르가 새로이 선물해 주었던 단단한 검집은 굳이 검을 뽑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이미 훌륭한 둔기였다.
맨몸, 그리고 단단한 검집. 그 둘만 있어도 유더는 굳이 능력을 더 발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일 대 다수의 난전에 유달리 능한 그의 전투 감각은 변함없이 빛을 발했다.
그 가차 없는 모습은 아군에겐 기력을, 적에게는 아연함을 선사했다.
“미친……. 어떻게 저런 놈이……!”
“저게 인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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