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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14화 (714/805)

714화

세상의 그 어떤 각성자보다도 강력할 것이라는 평을 받은 유더 아일의 힘도 사실 무한하거나 완벽하지는 않다.

불과 물처럼 상반된 속성은 동시에 사용했을 때 서로의 위력을 반감한다. 동시에 셋 이상의 속성을 사용하면 지나친 능력 소모로 인해 기동력과 판단력이 현저히 느려지게 된다.

여러 속성을 다룰 수 있다지만 그것들을 한꺼번에, 혹은 내키는 대로 대중없이 사용하면 사람인 이상 한계가 찾아오게 되며, 무리한 능력 발휘를 하고 나면 스스로도 그만한 타격과 후유증을 맞곤 했다. 다른 각성자들과 다를 바 없이 말이다.

때문에 유더는 보통 단일 속성을 집중적으로 사용하거나 서로의 위력을 배가하는 속성을 두 개 정도 함께 사용하여 효율을 극대화했다. 오랜 수련과 전투를 통해 스스로 효과를 증명하고 정립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방식에 따르면 단 하나의 속성만으로 적을 확실하게 제압해야 할 때일수록 땅만큼 무서운 힘이 없었다.

땅은 불처럼 닿기만 해도 적을 상처 입힐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물처럼 섬세한 조절을 통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바람이나 금속을 다룰 때처럼 다른 전투 방식에 접목했을 때 기동력을 대폭 높여 주거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유형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땅에, 그리고 그 땅에서 비롯되었거나 연결된 것들에 발을 딛게 마련이다. 이 땅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몬스터조차도 나타날 때는 땅을 딛고서 오지 않던가.

그렇기에 땅은 그 어떤 속성보다도 사용 범위가 넓었고 그것을 이용하여 공격했을 때 실패할 확률 또한 극히 낮았다. 언제나 당연히 존재할 것 같던 발밑의 단단함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생명은 본능적으로 공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었다.

-쿠르르르릉……!

때문에 남국인 검사는 유더의 눈동자에서 금빛이 터져 나오며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한 순간 망설임 없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소드 마스터의 것만큼 완전하지는 않으나 상당히 위력적인 오러의 파편이 각성자의 힘과 뒤섞여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띤 채로 유더의 전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유더의 몸에 닿지 못했다. 날아든 힘 덩어리가 머리를 막 맞히기 직전, 별안간 불쑥 흙벽이 솟아올라 막았기 때문이었다.

-쾅!!

흙벽이 부서지며 폭발했다. 엄청난 타격을 예상했지만 흙먼지 뒤에서 드러난 유더의 얼굴은 더없이 멀쩡했다. 그 창백하고도 차가운 얼굴을 본 남국인 검사가 미간을 한번 찌푸린 뒤 검을 움켜쥐고서 옆으로 뛰었다.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만한 속도로 이동하는 그의 검에서 이전과 같은 공격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솟아오른 사람만 한 크기의 네모난 흙벽들은 그때마다 완벽하게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쾅, 쾅, 쾅쾅쾅쾅!

어떤 기상천외한 방향에서 공격을 해도 파괴되는 건 유더가 아니라 벽뿐. 무너진 흙은 다시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으니 마치 흙이라는 이름의 철갑을 두른 상대에게 연약한 계란을 던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잔재주를 쓰는군.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남국인 검사가 힘 덩어리를 날린 뒤, 막아 내기 위해 솟아오른 흙벽을 눈 깜짝할 사이에 밟고 뛰어넘어 그 뒤에 있을 유더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원거리가 아닌 근접 공격을 노린 속임수였다.

대비할 시간을 찾기 힘들 만큼 대단한 속도를 갖추었기에 할 수 있는 대담한 공격이었으나, 내리친 검 아래 유더는 없었다.

‘……뭐?’

남국인 검사는 느리게 느껴지는 시야 속에서 자신의 생각보다 더 먼 곳에 서 있는 유더를 보았다.

‘대체 언제 저기에…….’

마주친 시선 속에서 유더의 금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그가 입을 열어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도 똑같이 굴러 봐라.”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 같은 그 눈에 시선을 빼앗기듯 맞춘 채, 남국인 검사의 몸이 텅 빈 땅 아래로 조용히 착지했다.

아니, 착지하려 했었다.

“……윽?”

땅에 닿기 직전이었던 그의 발아래가 별안간 푹 꺼졌다.

그는 중심을 잡기도 전에 늪과 같은 구덩이 속으로 추락할 뻔했다가 겨우 꺼지지 않은 부분을 잡고 몸을 날려 빠져나왔다. 그러나 빠져나와도 땅이 그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물렁하게 변하며 아래로 꺼지기를 반복하니 제대로 다시 딛고 설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을 할 시간조차 없이 땅이 계속해서 꺼져 갔기에 그는 황급히 능력을 쓰고 몸을 날리며 필사적으로 아직 멀쩡한 땅을 딛으려 노력했다. 마치 콘체 남작가의 정원 자체가 사막의 악명 높은 모래 늪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커다란 조경용 바위도, 키 큰 나무도 모두 움푹움푹 꺼져 가는 땅 사이로 묻혀 볼썽사납게 사라져 갔다. 겨우 조금 단단한 부분을 밟고 뛰어올라 공격하면 또다시 솟아오른 흙벽이 공격을 막아 내고 터져 사라졌다.

망망대해에 띄운 조그만 조각배 위에서 싸운다 해도 이런 기분은 아닐 듯했다. 인간의 힘으로 손쓸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이건 말도 안 된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힘을 쓸 수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하물며 이 넓은 범위의 땅을 마치 제 손발이라도 되는 것마냥 이런 식으로 움직이다니. 스스로도 여기서 죽을 각오로 한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수준의 힘이었다.

‘이런 짓을 계속할 수 있을 리 없다. 잠깐만 버티면 저쪽도 한계가 올 수밖에 없어.’

그 생각만으로 남국인 검사는 유더를 공격하려던 시도를 멈추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무너지는 땅을 피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어느 정도 버티기 시작하자 땅이 무너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하지만 그때였다.

“아톤 님!”

몸을 날리던 도중 별안간 들려온 고함에 고개를 돌려 보니, 어깨에 단검이 박혀 쓰러졌었던 동료가 어느새 무너져 가는 땅속에 반 이상 파묻혀 있었다.

남국인 검사가 유더를 공격하는 동안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 있었던 그 또한 무너진 땅에 휩쓸렸지만, 상처가 심해 잘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을 필사적으로 발휘하긴 하였으나 끝없이 무너져 아래로 발을 잡고 끌어당기는 땅 앞에서는 크게 소용이 없었다. 땅 아래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교육받은 전사도 자신이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죽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남국인 검사는 이를 갈고서 그나마 멀쩡한 땅을 딛고 힘을 발휘하여 높이 뛰었다. 그는 거대한 야수의 발처럼 변한 손끝을 겨우 무너지지 않은 땅 위에 박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동료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냈다. 그러나 반도 끌어내지 못했을 때 설상가상으로 그의 발밑까지 흔들대며 꺼질 조짐을 보이자, 동료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안 됩니다. 몸을 피하, 피하십시오! 이대로는 아톤 님까지……!”

“시끄럽다! 입을 열지 마!”

입을 열면 무너지는 땅에서 나온 흙이 들어가기 딱 좋았다. 구해 내기도 전에 입에 흙이 가득 차 죽을 판이었다.

남국인 검사가 막 더 힘을 주기 시작했을 때, 문득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지까지 몰아넣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다가오는 사냥꾼의 발소리.

고개를 돌리자 검을 든 손을 늘어트린 채 다가오는 유더가 보였다. 찢어진 옷과 그들처럼 흙투성이가 된 몸. 이전보다 더 창백해 보이는 얼굴을 보며 남국인 검사는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고 여겼다.

사람인 이상 당연히 한계가 온 것이다.

그 추측을 증명하듯 동료를 끌어당기던 무너진 땅 또한 서서히 가라앉아 갔다.

‘놈도 이미 지쳤다. 한계가 틀림없어. 그렇다면……!’

남국인 검사는 끌어당기고 있던 동료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서 혼자라도 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동료를 포기하고 검을 다시 고쳐 쥐어 유더를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둔화되고 있다 해도 이미 움푹 꺼진 땅이다. 반쯤 파묻힌 동료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남국인 검사는 눈을 내리깔았다. 선택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미안하다.”

그는 이를 악물며 동료의 뒷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으아……!”

그리고 움푹 꺼진 땅에 도로 파고드는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을 끝낸 그 찰나의 순간,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마주한 것은 높은 산처럼 몸을 일으킨 흙더미의 파도와 그 위에 선 유더였다.

남국인 검사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는 그의 발밑은 이 모든 일이 그와는 상관없다는 듯 조용하기만 했다. 인간의 범주라 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힘을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그 창백한 얼굴이 마치 죽음을 앞둔 자를 바라보는 사신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남국인 검사는 깨달았다.

‘저자는 아까까지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쪽을 잡기 위해 일부러 그물을 쳐 잔혹할 정도로 말끔하고 완벽하게 가지고 논 것이다.

자신이 그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땅을 구르게 만들면서, 자신보다 더욱 압도적인 힘으로.

거기까지 깨달은 순간 그대로 파도 같은 흙더미가 남국인 검사를 휩쓸어 까마득한 아래로 파묻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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