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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12화 (712/805)

712화

“여기까지는 쉽게 처리했군요.”

“본래 이런 상황에서 먼저 오는 놈들은 무리 중에서도 특히 약하고 경력 없는 녀석들입니다. 방심하고 있었으니 더 쉬울 수밖에요.”

유더는 나단 주커만의 말에 답하며 함께 세 놈을 사이좋게 묶었다.

이놈들이 무력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아마 그건 아닐 터다. 상단으로 오랫동안 위장하고 돌아다닌 놈들이니 칼 잘 쓰고 지나치게 우락부락한 놈들보다 남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며 머리가 잘 굴러가는 놈들 위주로 모여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훈련을 오래 한 티는 나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대단치 않으니, 이런 놈들을 상대로 기습전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과거의 화려한 전투 경력이 울 일이었다.

“계속 여기서 다 처리하실 겁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유더는 나단 주커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아까 위에서 봤을 때 마구간으로 들어간 자들의 숫자가 여섯입니다. 그중 셋은 여기 잡아 두었으니 남은 건 상대적으로 윗선에 있을 놈들이지요. 그들 중 어쩌면 타이누에서 마주쳐 싸웠던 그자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타이누에서 마주쳐 싸웠던 그자란 말에 나단 주커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단 주커만 또한 저들을 본 순간 그놈부터 떠올렸을 터다. 그때 비밀 창고 내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그자와 맞서 싸운 게 바로 그였으니까. 바로 맞부딪치기보다는 일단 안장만 회수 후 돌아가자고 말한 데에는 그 이유도 있었을 터였다.

“그자를 여기서 상대하는 건 저희에게 그리 유리하지 않습니다. 남은 자들 중 어쩌면 주의할 인물이 하나 더 끼어 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더욱 장소를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누굽니까.”

“기억 안 나십니까? 그때 그놈이 저희의 창고 침입을 알아차리고 돌아왔을 때, 힘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왔다고 했었지요.”

“아…….”

그때 키시아르와 유더, 나단 주커만은 비밀 창고의 정식 문이 아니라 숨겨져 있던 다른 방향의 통로를 통해 들어갔다. 그런데도 놈들은 그걸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나타났다.

유더는 그들 중 ‘힘’을 지닌 이나 물건을 감지하는 각성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특정 장소나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힘의 변화나 흐름을 감지하는 식이었겠지. 불법 마약을 가져다 놓고도 상시 감시하지 않은 건 그 힘이 있었기 때문일 테고.’

그 힘으로 정확히 어디까지 감지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면 여기 없을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나단 주커만도 그리 생각한 듯 입을 열었다.

“그런 힘을 지닌 자가 있었다면 나타나도 벌써 나타났을 겁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런 능력자들의 경우, 본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능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때도 저희는 해당 각성자 본인의 얼굴을 본 건 아니었죠. 그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군요.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변화를 감지한 뒤 해당 장소에 있거나, 갈 수 있는 동료에게 알리는 식이라면 시간 차로 조금 늦게 대응할 수도 있겠죠.”

“예. 그러니 이 이상 같은 자리에서 머물러 봤자 딱히 좋을 일이 없습니다. 쓸데없이 상대가 저희에 대해 파악할 시간을 주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놈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니 아마 여기에 그 두 놈 다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더는 남부에서 칼라네사 가루를 유통하려 한 자들이 있다는 걸 이미 누키조의 격투장에서 확인했기에, 적어도 그때 가루를 가져간 그놈은 확실히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검술 실력 하나는 상당히 뛰어난 놈이었지.’

소드마스터인 나단 주커만의 검을 상대하면서도 크게 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힘을 응축하여 날려 보내는 능력을 소유했던 자.

당시 유더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데다 키시아르 또한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각성자의 힘과 체술만으로 그자를 상대했다지만, 그렇다 해도 어쨌든 실력이 대단한 건 분명했다.

‘그래도 그때와 지금은 내가 낼 수 있는 힘 자체가 달라졌으니 상관없어. 그놈의 얼굴을 끄집어내어 정체를 드러내게 만들면 설령 놓친다 해도 오늘의 임무는 성공한다.’

유더가 생각에 잠긴 사이, 나단 주커만이 미간을 모으며 한숨을 쉬었다.

“늘 느낍니다만, 각성자를 상대하는 건 정말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일 같습니다.”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군요.”

“때문에 그런 이들을 능숙하게 파악하고 대응하는 아일 경이 더욱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만…….”

별안간 훅 치고 들어오며 잠시 유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사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계속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는 답을 알게 되겠지요.”

“…….”

글쎄. 과연 그럴 날이 올까.

그렇지만 나단 주커만이 유더를 경계하기로 했던 약속을 아주 놓은 게 아니라는 건 제법 기특하게 여겨졌다.

저 나단 주커만을 상대로 기특함이라니. 이전 생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마도 그간 함께 보내며 쌓인 시간들이 달라져서겠지만…….’

유더는 상당히 묘한 기분을 느끼며 남국인 기사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이전에 키시아르는 나단 주커만과 유더가 상당히 비슷한 성격이라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지금의 대화를 들었다면 아마 상당히 씁쓸해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유더는 지금의 그들 정도의 관계가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유더는 기꺼운 마음으로 나단 주커만에게 제안했다.

“각성자를 상대하는 법을 좀 더 잘 알고 싶으시다면 그만큼 많은 각성자를 만나는 게 최고입니다. 수도로 돌아가면 마병단 훈련에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각성자가 아니라 해도 주커만 경 정도면 문제없을 겁니다.”

“…….”

“적당히 상대만 하는 건 괜찮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훈련에 참여하면 저와 대련할 수도 있습니다.”

나단 주커만이 반응한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는 약간 구미가 당긴 얼굴로 침묵을 지키며 묶어둔 세 남국인을 말 위에 쌓았다. 백마는 남자 셋을 싣고도 불쾌한 콧김만 뿜었을 뿐, 그리 힘겨워하지 않았다.

“…일단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좋습니다. 마음이 정해지면 알려 주시죠.”

나단 주커만과는 이전 생에도 붙어 보았다. 이번에 여러 각성자를 상대하며 경험이 늘어난 그를 상대하면 어떨지는 유더도 제법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말에 세 놈을 한 번에 쌓아도 괜찮겠습니까?”

“힘이 좋기로 유명한 북부산 아스킴 백마의 혈통 같으니 한 명 정도는 더 얹을 수도 있을 겁니다.”

나단 주커만이 말의 콧잔등을 어루만지자 백마가 불쾌해 보였던 콧김을 줄이고 얌전히 따랐다.

그들이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막 마구간을 벗어나려 했을 때였다.

마치 나서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눈앞에 응축된 힘 덩어리가 날아들었다.

‘…분명 아무 기척도 없었던 것 같은데?’

유더는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했다. 나단 주커만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구간 문에 부딪친 기운이 크게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말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드디어 기어 나오는군.”

멀지 않은 곳에 두꺼운 옷으로 얼굴을 가린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유더는 그들이 자신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방금 기운을 날려 보낸 자의 능력이 몹시 익숙하다는 사실 또한.

‘저놈. 역시 여기 있었군. 이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빨리 나오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어.’

나갈 준비를 하던 도중 나단 주커만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사이에 이리 치밀하게 기척을 죽이고 바깥에서 공격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니. 판단력은 물론이요, 소드 마스터의 기감에도 걸리지 않을 만큼 기척을 완전히 죽였다는 점에서 나머지 두 놈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지닌 각성자일 듯했다.

‘어디 보자. 가운데 있는 놈이 기운을 날려 보낸 그놈이지. 서부에서 봤던…….’

유더의 시선을 받은 남국인 사내가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는 옷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시선으로 마주 노려보아왔다. 전신의 털이 바짝 설 듯한 긴장감이 단숨에 훅 일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침입하는 모양새가 상당히 익숙하다 싶더니, 역시 구면이군.”

“…….”

“그들을 내려놓고 얌전히 투항하라 말해도 하지 않겠지.”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유더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자 남국인 사내가 조용히 온기 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리 말할 줄 알았어.”

그가 손을 올림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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