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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09화 (709/805)

709화

“오셨군요.”

눈에 띄지 않는 차림새를 한 나단 주커만이 유더에게 눈짓을 했다.

“일단 따라오시죠.”

나단 주커만이 향한 곳은 저택의 뒷문 근처에 위치한 나무 앞이었다. 그는 행인이 다니지 않는 틈을 타 순식간에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것을 밟고서 위로 올라간 뒤 옆의 건물 지붕으로 뛰었다. 눈 깜박할 사이 일어난 일이었다.

유더는 어렵지 않게 바람의 힘을 사용하여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뒤를 따랐다. 지붕 위에 올라서니 과연 나단 주커만이 왜 여기로 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굴뚝과 굴뚝 사이에 이런 사각지대가 있었군.’

밑에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위치에 아주 교묘한 사각지대가 있었다. 몸을 숨기기 좋은 건 물론, 목표한 콘체 남작가의 대부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이런 위치를 어떻게 이리 빨리 찾았지?’

단순히 눈썰미가 좋다는 것만으로는 이런 곳을 잘 찾아내기 힘들다. 이건 말하자면 뛰어난 무력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잠복 경험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유더야 이전 생에서 쌓인 경험이 있다지만 본업이 키시아르의 부관이자 기사단 소속인 나단 주커만은 왜 이런 일까지 잘하는 것일까. 새삼 그의 숨겨진 능력이 흥미로웠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뇨. 이런 곳을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별것 아닙니다. 밤마다 머무는 곳을 빠져나가 이곳저곳 살피는 걸 좋아하시는 주군 아래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 늘게 됩니다.”

나단 주커만이 무표정하게 대답한 뒤 손짓을 했다. 몸을 숨기라는 뜻이었다.

유더는 군말 없이 그의 곁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두 사내는 시선을 콘체 남작가에 둔 채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지켜보고 계신 동안 뭔가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몇 가지 있습니다. 일단 아까 얼굴을 가린 하녀가 한 사람 나와 저쪽에 있는 정원 구석에서 쓰레기를 태웠습니다. 혼자 싣고 와서 태우기에는 상당히 크고 무거워 보이는 쓰레기더군요. 일하는 사람이 적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뭔가 지나치게 급해 보여 기억해 두었습니다. 이 거리와 위치에서는 정확히 뭘 태운 건지 확인하기 어려워 내용물은 모르겠군요.”

유더는 나단 주커만의 말대로 정원 구석에 검게 타다 남은 덩어리가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저리 큰 덩어리가 타다 말고 쌓여 있는데 확인하러 나오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정말 급하게 불만 붙이고 사라진 듯했다.

“그리고 저쪽이 마구간인 듯한데, 안쪽이 계속 소란스러워 보이더군요. 지금은 조금 잠잠합니다만…….”

“흠…….”

이번에 시선이 향한 곳은 태운 쓰레기 근처의 작은 마구간이었다. 지붕 때문에 내부를 완전히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구멍을 낸 창과 큰 입구를 통하여 말이 몇 마리 있다는 정도는 확인 가능했다.

“알겠습니다. 둘 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유더는 바람과 땅의 힘을 슬쩍 발휘하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정원에 쌓여 있던 쓰레기 덩어리가 자연스럽게 툭 쏟아져 사방으로 흩어졌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덩어리들 사이로, 반쯤 타다 만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형태를 본 유더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저건… 말안장인가?’

불에 타 그을리고 반쯤 부서진 상태였음에도 말안장의 기본 뼈대는 아직 남아 있어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말에 씌우는 용도의 고급 말안장이 분명했다.

‘색을 입힌 최고급 가죽에 보호 마법진까지 새겨 넣었군. 버려지기엔 너무 멀쩡한 상태의 물건인데.’

한눈에 보아도 아주 값이 나갈 물건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비싼 말안장은 당연히 그 가격에 어울릴 만큼 귀한 혈통의 말에게 씌우게 마련이며, 그런 말을 탈 수 있는 이는 돈이 썩어 나는 고위 귀족들뿐이다.

유더는 말안장이 제대로 불타지 않고 남아 있었던 이유가 혜안에 비치는 보호 마법진의 미약한 힘 덕분이리라 짐작했다. 마법의 힘까지 멀쩡하게 남아 있는 물건을 이런 식으로 버리다니. 어지간한 자들은 돈이 아까워서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콘체 남작가는 절대 저런 비싼 안장을 아무렇게나 쓰고 태울 만한 곳이 못 되지.’

현 콘체 남작은 유흥에 빠져 재산을 탕진했다. 키시아르가 아까 해 주었던 말이었다.

유더는 한참 그것을 살피다 시선을 마구간 쪽으로 옮겼다. 먼 거리에 있는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그곳의 말들은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치고 땅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을 터였다.

“----!!”

잠시 후 마구간 내에서 말들이 일제히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어디까지나 바람의 힘을 사용하고 오감이 기민하기 그지없는 두 사내 정도나 되었기에 파악할 수 있는 소리였다.

“뭘 하신 겁니까.”

“쓰레기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말들에게 자극을 조금 주었습니다. 저 정도면 아마 곧 진정시키려 사람이 오겠죠.”

유더가 말을 끝내자마자 저택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 뛰쳐나왔다. 이리 먼 거리에서 보아도 남국계가 확실한 청년이었다. 그가 마구간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들은 도로 조용해졌다.

흥분한 말 여러 마리를 혼자서 그리 손쉽게 진정시키는 남국인이라. 짚이는 점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 청년의 뒤를 따라 저택에서 또 다른 사람 몇 명이 나왔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천으로 얼굴과 피부를 가린 상태였다.

‘저 옷……!’

유더는 그 모습을 이전에 타이누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남국인 상인들이 여관에 묵으러 왔을 때 입고 있던 옷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마구간에 있던 이들이 모두 나왔다. 그들은 주변이 의심스럽다 판단했는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벽 뒤나 풀숲을 뒤졌다. 하지만 보통 각성자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먼 거리에서 교묘하게 힘을 쓴 유더를 그들이 발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도로 저택으로 들어갔다. 콘체 남작가의 저택도 다시 조용해졌다.

“…….”

유더는 더 볼 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단 주커만 또한 마찬가지로 몸을 세웠다.

“전부 보셨겠지요.”

“예.”

많은 뜻을 내포한 유더의 질문에 나단 주커만이 대답했다.

“콘체 남작가에 남국인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얼굴을 가리고 있던 놈들은 분명히 저희가 서부에서부터 쫓던 놈들임에 틀림 없어 보이고, 맨 처음에 나온 못 보던 자는 죽은 2공자의 하인일 가능성이 높은 듯합니다. 저기로 가서 타다 만 안장을 회수해 살펴보면 더 확실해지겠지요.”

“안장 회수만으로 충분하다면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나단 주커만이 제안했다. 그러나 유더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이 기회에 돌입해서 저놈들을 잡아 버리죠.”

동료 마병단원들이라면 유더의 성질을 알면서도 깜짝 놀랐을 과격한 말이었다. 그러나 충직한 남국인 기사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는 뭔가를 관찰하듯 유더의 얼굴을 살핀 뒤 입을 열었다.

“침입 관련으로 귀찮아질 수도 있으니 일단 회수 후에 물러나서 보고 후 재차 행동해도 될 것 같습니다만.”

“글쎄요. 저는 기껏 잡은 꼬리를 또 놓치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

물론 나단 주커만의 말대로 해도 된다. 하지만 그사이 저놈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또 도망칠 경우, 마병단의 일 처리가 정상으로 돌아갈 날도 그만큼 늦어지는 셈이었다. 유더는 실패할 자신이 전혀 없는 길을 두고 굳이 그렇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저희 둘만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아일 경의 실력이 뛰어난 건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굉장히 겸손한 말을 하시는군요. 저희 둘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겁니다. 굳이 스스로를 낮춰 가며 절 살피진 않으셔도 됩니다.”

“…….”

유더의 말에 나단 주커만이 허를 찔린 듯 입을 다물었다.

“허락 없는 무단 침입이 문제가 되는 건 저희가 아무 결과도 내지 못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그럴 일은 전혀 없을 것 같군요. 저 말안장이 2공자의 것이 맞다면 2공자의 말이 마구간 내에 아직 살아 있을 가능성도 아주 높습니다. 그 두 개만 잘 확보하고 아까 본 녀석들 중 몇 명만 잡아도 일이 아주 쉽게 끝날 겁니다.”

“…….”

유더는 침묵하는 나단 주커만을 향해 입술 끝을 들어 올렸다.

“물론 걱정하시는 마음은 이해하니 자신이 없으시다면 저 혼자 해도 됩니다. 방해나 도망이 없도록 망만 잘 봐 주시면 될 것 같군요.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도 저 혼자 지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지요.”

그제야 나단 주커만이 유더를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내려가죠.”

그들은 지붕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아주 자연스럽게 콘체 남작가로 향했다.

“분명 제가 아일 경과 만나 이런 일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대체 저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군요.”

담을 넘던 도중 나단 주커만이 작게 중얼거렸다. 유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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