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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05화 (705/805)

705화

“현자님,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수도 7구역의 허름한 가옥에 몸을 숨긴 젊은 각성자들은 누워 있는 현자의 곁에 꿇어앉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살폈다. 물수건으로 이마와 눈을 덮은 현자가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사람은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걱정일 뿐이지요.”

“저희는 걱정 마세요. 이 정돈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맞아요.”

본래 5명이었던 젊은 각성자들의 수는 이제 3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랭바튼과 엘라가 그들의 탈출을 돕고 나한을 상대하기 위해 남은 탓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희생 덕분에 현자와 나머지 각성자들은 마병단의 추격을 뿌리치고 그들을 돕던 렌보우 자작이 마련해 준 가옥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몸을 피했다고 기뻐할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현자는 이곳에 오자마자 쓰러졌고, 다른 세 사람도 뒤쫓아오던 데브란의 추격을 피하던 도중 그의 불꽃 능력에 당해 화상을 입었다.

그런 상황에서 렌보우 자작에게 무작정 연락하거나 황태자궁으로 바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숨을 죽이고 숨어 있는 것뿐이었다.

만약 멀리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네조와 매개체를 통해 일정한 장소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쥬브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이미 마병단에 잡혔을 것이다. 디에먼은 그나마 상처를 가장 덜 입은 사람이었기에 미력하게나마 모두를 간호했다.

“미안합니다……. 이 사람이 너무 섣불리 나한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바람에 애꿎은 여러분이 다치고 말았군요.”

현자의 말에 세 사람은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한은 이미 마병단과 손을 잡은 배신자였다. 그 배신자 때문에 현자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통했다.

하지만 원통한 건 원통한 것이고, 다음 일은 다음 일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네조는 깨진 안경을 끌어 올리며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현자님. 랭바튼과 엘라는… 죽었겠지요?”

현자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몹시도 어려운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요. 그 두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예? 그러면…….”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지요. 그러기로 그날 이 사람에게 맹세했으니까요. 기억나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들은 네조가 눈을 깜박이다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가라앉았다.

“그랬지요. 기억납니다. 랭바튼과 엘라가 저희를 위해 떠나기 직전 현자님께 그런 맹세를 했었지요. 그 직후 현자님께선 너무나 힘이 들어 몸조차 가누지 못하시고…….”

젊은 각성자들은 현자가 랭바튼과 엘라의 생존을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지 묻지 않았다. 현자가 쓰러진 것이 화상 때문이 아니라 능력을 너무 썼을 때 일어나는 탈진 현상과 비슷하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면… 그 둘에 대해서는 걱정을 덜겠군요. 마음은 아프지만… 어쩔 수 없네요. 하면 이제 저희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 바깥에 돌아다니는 치안대 병사들이 줄었으니 한 사람이 나가 렌보우 자작에게 연락을 하십시오. 자작은 디아카 공작님에게도, 황태자 전하에게도 연락을 할 수 있는 이니 저희를 도울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연락은 몸이 가장 멀쩡한 디에먼이 맡았다. 그는 겁을 먹었지만 이곳의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이가 자신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 좋아하는 얼굴이 영 기분이 나빠서 네조와 쥬브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현자는 묵묵히 디에먼을 격려했다.

“디에먼. 이 사람과 다른 이들이 믿을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아시겠지요.”

“그, 그럼요. 헤헤. 저만 믿으세요.”

디에먼이 눈에 띄는 외모를 가릴 수 있는 순례자의 옷을 걸치고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렌보우 자작이 헐레벌떡 나타났다. 그는 누워 있는 현자를 보자마자 뒤로 넘어갈 듯 놀랐다.

“현자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광휘궁에서 나가신 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셔서 황태자 전하께서 너무나 걱정하고 계십니다. 방 하나가 거의 망가지고 시종 한 사람이 거울 파편에 맞아 크게 다칠 정도였죠!”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현자는 담담하고도 초연한 태도로 ‘옛 동료를 만났다가 배신을 당해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그 동료가 마병단과 손을 잡고 그들을 적으로 몰았기에 광휘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말을 듣고 렌보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런 일이……. 어쩐지 5구역인지 어디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났다며 황제 폐하께서 마병단을 전역에 배치하고 입궁하려는 자들마다 검사하게 하더니……!”

그렇게 말한 뒤 렌보우는 조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게다가 사실은, 요즘 들어 누군가 제 뒷조사를 하는 듯하여 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에 현자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렌보우 자작께 저희의 입궁을 도와 달라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궁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나 위험하겠군요.”

“…….”

“혹, 디아카 공작 전하를 먼저 뵐 방도가 없겠습니까.”

그 말에 렌보우 자작이 찌푸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분께서는 폭발 사건에 연루되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결코 만나려 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야 현자님을 믿습니다만, 그분께서는 아니니까요. 저희가 남부에서 마병단 내부에 저희 사람을 넣는 일에 성공했다면 모르겠으나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만나 주시겠습니까…….”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딱 한 번이면 됩니다. 그래도 어렵겠습니까.”

현자의 눈이 희미하게 빛나며 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 눈을 마주한 렌보우가 잠시 침묵하다 줄에 이끌린 인형처럼 고개를 삐걱대며 끄덕였다.

“…실은, 황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폐하께 올린 태양궁 침범 사건의 범인들이 전부 증거 불충분으로 반려된 터라 공작 전하께서 몹시 짜증이 나셨습니다. 그래서 막내아들 디아카 경을 데리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시 외유를 나갈 생각이란 소문을 들었는데…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곧일 테니… 그때를 노려보심은 어떨까요.”

“외유라…….”

고민에 잠겨 있던 현자는 렌보우의 말이 괜찮은 조언이라 생각한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 외유 날짜가 확실해지는 대로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남부 쪽 계획 또한 바로 시작할 테니 걱정 마시고 디아카 공작 전하께도 그리 말씀하여 주십시오. 이 일로 마병단의 세력 확장을 염려하는 디아카 공작 전하나 렌보우 자작님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으니 모두 최선을 다하여 움직여 줄 것입니다.”

“역시 현자님께선 언제나 이 렌보우의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 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께는 이 편지를 전해 주시면 그분의 힘드신 마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자가 품 속에서 편지를 꺼내 넘겼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짧은 편지에는 현자가 평소 품고 다니는 향낭의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현자를 아는 이들이라면 맡는 것만으로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는 향이었다.

렌보우는 반색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다음 날, 렌보우는 현자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었다.

“디아카 공작 전하께서 외유를 나가시는 게 바로 오늘 저녁입니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4구역의 호수에서 머리를 식히실 계획이신 듯하더군요.”

“4구역이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마병단이 폭발 사건 현장에서 체포했던 각성자 중 두 사람이 어제 스스로 혀를 끊어 죽었다고 합니다. 발표된 인상착의를 보니 현자님을 따르던 이들 같아서…….”

그 말에 일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젊은 각성자들이 충격을 감내하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

렌보우가 떠난 뒤 현자는 슬픈 얼굴로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를 따르는 세 명의 젊은 각성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동료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분노했다.

“이 모든 게 나한 때문이야. 그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만 있다면…….”

“렌보우 자작의 도움을 받아 남부 거점과 중부 거점에 각각 연락을 보냈으니 놈이 그곳으로 간다면 소식이 올 거야.”

“…너무 슬퍼 마십시오. 우리는 언젠가 랭바튼과 엘라를 하늘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나한은… 그래요. 이 사람이 무리하여 디아카 공작을 뵈려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습니다.”

현자가 조용히 그들을 달래며 속내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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