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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03화 (703/805)

703화

기사들의 말로는 2공자를 따라간 하인이 한 명 있었다고 했다. 그는 2공자가 탔던 말과 마찬가지로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높은 확률로 죽었으리라 추측되는 상태였다.

키시아르의 질문을 들은 무조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만 그건 자식처럼 키운 2공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드리운 슬픔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어두움이었다.

“아… 맞아요. 그 빌어먹을 녀석도 아직 찾지 못했다지요.”

그가 냉랭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 녀석의 이름은 파나젠. 헤른 가에 들어온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신입이었습니다. 저희 공자님을 모신 지도 그 정도 되었지요.”

2공자가 어릴 때부터 모셨다는 늙은 하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주인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젊은 하인은 죽어 마땅한 놈이기야 할 터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도 그는 본래부터 그 파나젠이란 하인을 싫어했던 듯 보였다.

“들어온 지 반년도 안 된 자가 홀로 2공자를 따라갔다고? 몹시 신뢰받았나 보군.”

“신뢰는요. 무슨……. 그냥 그놈이 말을 아주 잘 돌보았기 때문에 데리고 가신 겁니다.”

“말을?”

“예. 아쉴라브 공자님께선 승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셔서 늘 마차를 타고 다니셨죠. 그래서 말을 타야 할 때는 반드시 그놈을 데려가셨습니다. 어제도 그랬습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말을 잘 돌본단 이유만으로 자신을 수행할 하인 한 명을 고를 때 경력도 얼마 안 된 자를 고르진 않을 테니까. 유더가 보기에 무조는 그저 자신의 주인이 저보다 파나젠 같은 놈을 더 믿고 동행했다고 말하는 게 싫은 듯했다. 그 증거로 파나젠에 대해 말할 때마다 코를 벌렁거리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싫어하는 건 그렇다 쳐도 말은 똑바로 해 줘야지.’

유더는 키시아르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키시아르가 소리 없이 조용히 웃었다. 손가락을 살짝 흔드는 걸 보면 잠깐만 기다려 보라는 뜻인 듯했다.

“말을 잘 돌봤다……. 그래. 좋은 장점이군. 하지만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나? 그 외의 일은 어땠지? 똑바로 하는 이였나?”

“아니요! 뭘 가르쳐도 도무지 배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놈이었습니다. 추천을 받아 들어왔다는 이유로 저희와는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무시하며, 매일 바깥으로 나돌기 일쑤에 오직 아쉴라브 공자님 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놈이었죠. 망할 토마토 같으니!”

“오, 역시 그랬군. 정말 고생했겠어.”

“정말 모두 고생했지요. 가엾은 공자님은 그놈의 말을 곧잘 믿으시곤 했지만 저희는 그놈이 언젠가 진실을 들켜 경을 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추천이란 건 어디서 한 건가? 그곳도 정말 못 써먹겠는데.”

“그것이… 콘체 남작가의 밀라일 도련님께서 신분 보증서를 써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콘체 남작가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키시아르의 뒤에 서 있던 유더의 눈썹이 움찔 움직였다. 그것을 흘긋 살핀 키시아르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2공자와 친분이 깊은 곳이었나?”

“콘체 남작께선 헤른 공작님의 사촌이십니다. 아쉴라브 공자님과 밀라일 도련님은 본래 큰 친분이 없으셨지만 작년 생일 이후로 많이 가까워지셨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편히 타라는 이유로 파나젠 같은 놈도 소개해 주신 것이었겠지요.”

과연 키시아르였다. 교묘하게 마음을 긁어 주는 한마디에 늙은 하인은 순식간에 파나젠에 대한 진짜 정보를 싸그리 뱉어 냈다.

“그렇군.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 도움을 주어 고맙네.”

“아, 아닙니다…….”

외부인인 마병단과 펠레타 공작을 상대로 혹 자신이 너무 입방정을 떤 게 아닐까 싶어 늙은 하인은 뒤늦게 움찔 놀랐다. 그러나 키시아르는 그 마음까지 예상한 듯이 그를 다독였다.

“2공자를 해친 자가 각성자인 이상 그자는 우리 마병단이 책임지고 잡아야 할 상대이기도 하네. 2공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잡아내겠다고 약속하지. 그러기 위해 혹 어젯밤 이상했던 점이 더 생각난다면 뭐든 좋으니 마병단으로 연락을 줄 수 있겠나? 자네만큼 2공자에 대해 잘 아는 이는 없을 것 같아 부탁하고 싶군.”

주인을 잃은 하인 따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다. 2공자를 모시지 않았다 해도 그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죄인이었다. 헤른 가로 돌아가 보았자 남는 건 크게 혼이 난 뒤 쫓겨나는 일뿐일 상황에서, 키시아르의 그 말은 늙은 하인의 가슴에 크게 와닿았다.

경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무조는 그 순간 키시아르에 대한 경계심을 거의 풀고 말았다. 그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무조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간 틈을 타 내내 조용히 앉아 있던 1공녀 마이라가 입을 열었다.

“무조는 아쉴라브밖에 따르지 않는 고집 센 사람인데, 제대로 녹이셨군요.”

“죽은 이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을 뿐이지. 공녀가 동생을 상대로 그리한 것처럼. 그리고 공녀 또한 지금은 가족을 잃은 상황이니 힘들다면 억지로 버티고 있지 않아도 된다네.”

“…….”

마이라가 허를 찔린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쌀쌀맞은 무표정을 지키던 얼굴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며, 유더는 그녀 또한 방금 동생을 잃은 사람임을 자각했다.

후계자 자리를 사이에 둔 경쟁자였고 샬로인에 와서도 같은 집조차 쓰지 않을 만큼 서로를 경계했다지만 그래도 마이라는 2공자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만큼은 정이 있었다. 동생이 무엇을 싫어하는지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모조리 기억하는 건 귀족 사이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다지만 분명 마이라도 속내엔 충격과 슬픔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했으나 마이라는 언제 표정을 허물었냐는 듯 곧바로 태도를 다잡았다. 그녀는 오히려 전보다 더욱 꼿꼿한 태도로 서서 눈에 힘을 준 채 대답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쉬지 않을 거예요. 아쉴라브의 장례가 치러지기 전까지 범인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만 제가 쓸데없는 말들에 휘말리지 않을 테니까요.”

누군가는 독하기 짝이 없다 말할 만한 모습이다. 하지만 키시아르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깔끔하게 물러났다.

“굳세고 멋지군. 공녀의 생각이 그렇다면 알겠네.”

“…….”

“여하튼 일이 이리되었으니 남부의 골칫덩이들을 해치우는 건 2공자를 죽인 이를 찾은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아쉽게 되었어.”

“그래도 협력해 주신다고 하신 말씀에는 변함이 없으신 거겠죠?”

마이라가 협력 관계를 재차 확인했다. 키시아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전 이제 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가서 아쉴라브의 죽음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겠어요. 제가 어제와 오늘 마병단에 방문한 사유는 어디까지나 멀빈의 구명을 위한 걸로 말해 둘 생각이니 맞춰 주세요.”

“알겠네.”

“관련해서 마병단에서도 혹 뭔가를 더 알게 된다면 바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아… 그거라면 돌아가기 전에 말해 두고 싶은 게 있긴 하지.”

마이라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네?”

“아까 무조라는 하인이 말했던 실종된 하인 말이네. 그자를 보내 주었다는 콘체 남작가에 대해 먼저 조사해 주게. 그리고 아까 우리가 부탁했었던 남부의 상단에 대한 조사도 함께.”

“…콘체 남작가는 저도 돌아가는 대로 조사할 생각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그 상단을 함께요?”

“조금 짚이는 부분이 있어서 말이야.”

짚이는 부분이 없을 마이라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을 말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그는 그리 말하는 순간 자신을 쳐다본 키시아르의 눈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역시 키시아르도 그 말을 듣자마자 연상 작용으로 떠올렸나 보군.’

아까 늙은 하인 무조는 실종된 하인에 대해 말하던 도중, ‘토마토’란 단어를 사용했다. 썩은 토마토라는 단어가 남부인들이 사용하는 남국인이나 남국계 비하 단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라면 그 단어를 통하여 실종된 하인이 남국계 사람이라는 사실을 짐작 가능했을 것이다.

귀족가에서 남국계 하인을 쓰는 일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흔치 않은 일이다. 같은 귀족가에서 추천을 해 준 게 아니었더라면 아마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 추천을 해 준 이의 이름이 누구던가.

‘콘체…….’

유더는 콘체 남작가의 이름을 들은 순간 그가 이전 생에 희미하게만 들어 거의 잊고 있었던 다음 대 헤른 공작의 정체를 번개처럼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마이라도, 그리고 그녀의 동생도 아니었던 이전 생의 헤른 공작.

그가 바로 콘체 남작가의 사람이었다.

너무나 한미하고 존재감 없던 가문이라 잊고 있었는데, 들으니 비로소 기억이 났다.

‘게다가 우린 때마침 남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남국인 상인들을 쫓고 있지. 하필 남국계 하인에 각성자가 얽힌 살인 사건……. 연관이 있다 생각하고 쫓아 봐서 나쁠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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