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701화 (701/805)

701화

“글쎄요. 공범 이야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각성자에 대해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유더는 시체 가까이로 다가가 번개에 지져진 듯 검고 가느다란 자국이 남은 손을 들어 올렸다. 시체에 상대적으로 익숙할 기사들도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으나 키시아르와 마병단원, 그리고 선즈와 에몬은 상대적으로 침착했다.

“두 개 이상의 능력을 지닌 각성자는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마병단에 있는 이상 저나 단장님,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눈을 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지요. 특히나 이렇게 큰 살상력을 지닌 능력이라면 감추기 더더욱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감추기 어렵다고요? 왜입니까? 그냥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기사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날카롭게 반문했다. 유더는 담담히 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각성자의 능력이란 사용하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는 쪽이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건 각성자가 아니라면 체감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각성자들은 모두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각성을 하고 나면 그 힘은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도 시시때때로 발휘되고는 한다. 신체가 변화된 이들은 물론이요, 고작 물 한 방울 정도만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지닌 각성자라도 마찬가지였다.

힘을 일단 발휘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발휘하고 응용하는 법보다 조절법을 우선적으로 익혀야 했다. 마병단원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수련하는 부분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한번 구멍이 뚫려 솟아 나오기 시작한 샘을 사람의 손 하나로 전부 틀어막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때문에 각성자의 힘이란 단순히 위력이 강한 이보다 오히려 강도는 좀 약할지라도 조절을 섬세하게 잘하는 사람이 더 뛰어난 이로 취급받고는 했다. 유더가 조절력 부분에서 자질이 뛰어난 에버 벡의 힘을 유독 높이 평가한 이유였다.

“일단 가지게 된 힘을 아예 감추고 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위력이 강한 능력일수록 조절력은 더 떨어지게 마련이죠.”

2공자의 전신에 어지럽게 남은 상처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의 몸에 상처를 낸 각성자는 힘 조절에 능한 이가 결코 아니었다.

“범인들은 일부러 크게 상처를 남긴 게 아닙니다. 힘을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던 겁니다.”

마구잡이로 발휘한 게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는 공포를 더 크게 불러일으켰을 테니 딱히 조절을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할 수 있으면서 일부러 이런 공격을 한 것과, 이렇게밖에 못 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유더 아일은 그 차이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문에 듣기로는 마병단에도 여러 힘을 쓸 수 있는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원하는 힘만 골라서 사용할 수도 있다던데…… 그런 사람이 또 있다면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이 말을 한 기사는 시체가 안치된 곳을 지키고 있던 이였다. 유더가 누구인지 소개를 듣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그를 단순히 제일 먼저 나선 마병단원이라고만 생각한 듯했다.

단장인 키시아르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대놓고 시비를 걸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각성자로서 아는 척하는 건 고까우니 이런 식으로 유더가 하는 말에 무조건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저런 말을 할 때는 앞에 있는 상대가 바로 제가 말한 소문의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정도는 하는 게 좋을 텐데.’

분명 키시아르가 샬로인에 나타났다는 소식보다 유더의 소식이 먼저 전해졌을 텐데도 저런 식으로 구는 건 그가 그만큼 마병단을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그시 그를 응시하는 유더의 뒤에 있던 선즈와 에몬, 그리고 나머지 마병단원 동료들이 이를 꽉 악물고 배에 힘을 주며 일제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시체를 들여다보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웃음을 터트려선 안 된다는 이성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유더는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그 사람이 바로 저인 것 같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저와 같은 사람이 또 있지는 않을 겁니다.”

“예?”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오만한 대답. 그러나 유더의 싸늘한 눈은 반박을 허락지 않는 기이한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기사가 잠시 말을 잃은 사이 낮게 웃음을 흘린 키시아르가 말을 거들었다.

“사실이네. 나의 보좌 유더 아일 남작은 자연에 속한 힘을 모두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으며 각성자의 다른 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그와 같은 이가 세상에 또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겠지만……. 글쎄.”

그가 진심으로 의문스럽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세상에 그런 이가 또 있었더라면 어디서든 그 빛나는 재능이 태양처럼 빛을 내어 금세 모든 이의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다들 어떻게 생각하지?”

“예. 단장님의 말씀대로지요. 유더 같은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저희 같은 평범한 자들이 어디 감히 겁이 나서 입단이나 했겠습니까.”

“전원이 각성자인 저희 각협부대 병사 48명 중 두 개의 힘을 지닌 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제국 전역에서 능력 있는 각성자만 300명 넘게 끌어모은 마병단 내에도 2개 이상의 힘을 가진 사람이 한 손가락에도 안 든다고 들었는데 아일 남작님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속성만 해도 4개, 그 외 무기술과 체술에도 능하시다지요. 그런 사례가 일반적일 거라 생각하는 건 사건 조사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군요.”

남부 지부의 책임자, 쿠르가의 묵직한 비꼼에 이어 선즈가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토해 냈다. 일부러 ‘아일 남작’을 강조한 선즈의 뒤를 이어 그의 친구 에몬도 심드렁하게 한 소리를 했다.

“솔직히 저희가 듣기에 기사님 말씀은 소드마스터와 일반 기사를 비교하는 소리나 다름없이 들립니다. 두 개 이상의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자유자재로 숨길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마병단에 있으며 범인이라 생각하시는 거라면 애초에 그냥 아일 남작을 범인이라 지목하는 게 맞지 않으십니까?”

“오, 그런 뜻인가. 즉 상사인 내가 보좌를 시켜 2공자를 살해했다고 판단했다는 거군?”

“아닙니다!”

키시아르가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듯 답하자마자 기사가 황급히 소리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순간의 말실수로 펠레타 공작을 증거도 없이 죄인으로 만들려 했다고 몰릴 판이었다. 그의 얼굴이 희게 질리자 동료 기사들이 나섰다.

“그가 각성자에 대해 잘 모르고 염려되는 마음에 실수를 한 것입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테니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키시아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기사들의 말을 한참 동안 들어 준 뒤 철없는 한량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뭐. 아니라니 그런 거겠지.”

“…….”

그러나 기사들이 겨우 가슴을 가라앉히기 전, 키시아르는 웃는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하마터면 헤른 가에서 내가 2공자를 죽였다고 이미 결론지은 것이라 생각할 뻔했지 뭔가. 오해를 살 말은 자중해 주게. 나는 몸이 몹시 약하거든. 특히 심장이 아주 약해서 지나치게 놀라게 만들면 기절할 수도 있네.”

헤른 가 기사들의 시선이 그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키시아르에게 가 닿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키시아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이 기사들은 더 이상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알 수 없군…….’

‘신검의 주인이 되었다더니, 사람이 변한 건가.’

‘아무래도 마병단을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일 나겠어.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키시아르가 그리 말한 이후로 기사들은 더 이상 유더의 판단에 질문이란 이름의 쓸데없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훨씬 냉정해진 분위기 속에서 유더는 훨씬 편안하고 빠르게 시체 살피는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2공자께서는 적어도 2인 이상의 각성자에게 당하셨습니다. 하나는 전기, 하나는 신체를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괴력 능력을 지닌 자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상처는 모두 사망하기 전 난 게 확실해 보이는군요. 제 소견은 여기까지이고, 나머지는 여기 있는 선즈 대장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유더의 지목을 받은 선즈가 긴장된 얼굴로 나섰다. 그의 눈동자에 은은하게 아지랑이 같은 힘이 어렸다.

“으음…….”

“뭔가 특이한 부분이 보이십니까.”

“공자님의 위장에… 뭔가가 보이는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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