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유더는 선즈와 에몬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당신과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유더. 좀 늦었지만 남작 작위를 받은 걸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이거. 별건 아니지만… 축하 선물입니다.”
선즈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뭔가를 건넸다. 옷 안쪽에 착용 가능한 아주 작은 칼 두 개였다.
“이건…….”
“에몬과 제가 진급할 때 받은 겁니다. 제국군에서 진급할 때 하나는 본인이, 하나는 예비로 쓰라고 두 개씩 주곤 하죠. 장기 훈련 나갔을 때 나무를 베거나 요리를 하기도 좋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아요.”
급하게 오느라 마병단 남부 지부를 위한 공식 선물까지는 가져오지 못했다지만, 그 칼은 조만간 마병단으로 직접 보낼 생각이었기에 가지고 왔다고 했다. 일반적인 선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물건이었다.
“예비용이라면 나중에 필요해질지도 모르는데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요.”
“괜찮습니다! 말이 예비용이지, 그냥 기념 선물용이라고 봐도 되거든요.”
“그래요. 저희가 진급한 건 전부 유더 덕분이니 당연히 당신에게 주는 게 맞죠.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보통은 부모나 연인에게 줄 법한 선물이다. 그런데도 선즈와 에몬은 망설임 없이 하나뿐인 예비 칼을 유더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유더는 그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는지 느끼고 다소 묘한 기분이 되었다.
유더는 손바닥보다 작은 칼 손잡이에 새겨진 남부군의 문장을 확인한 뒤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유용하겠군요. 잘 쓰겠습니다. 두 분의 진급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즈의 눈이 기분 좋게 반짝거렸다.
“평생 일반 병사로 살 줄 알았던 저희가 이젠 특수부대 대장과 부대장이 되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저흰 이제 여기서 만족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계속해서 더 위를 노릴 거예요. 이젠 길을 만들 자신이 생겼거든요.”
저들을 이번 생에 처음 다시 만났을 때, 유더는 잠깐이지만 미리 죽이는 게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들을 미리 죽이지 않으면 똑같은 미래가 반복되어 자신이 그들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않기를 선택하였고 대신 그들을 도와 친분을 쌓았다.
당시에는 그게 맞는 선택일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확실히 그러기를 잘했다 싶었다.
군 내의 각성자 특수부대가 생겨나고 선즈가 그 단체를 이끌게 된 것 자체는 이전 생과 똑같다. 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달라졌다. 이제 유더는 더 이상 그들이 자신과 마병단의 적이라 느끼지 않았다.
유더는 진심을 담아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충분히 더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일에서도 대단한 활약들을 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하하, 무슨 말씀을요. 이번 일에서 저희는 정작 별로 도움도 되지 못한 것 같은데……. 오히려 부상이나 당해 치료까지 받았는걸요.”
큐레이지나를 상대로 싸우다 부상을 입은 부하들을 생각하며 선즈가 머쓱해했다. 유더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쪽 마병단원 모두가 입을 모아 제국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비밀 통로를 발견하지조차 못했을 거라고들 말하더군요. 선즈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 말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 그리 겸손해할 필요 없습니다.”
선즈의 투시 능력이 없었더라면 비밀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을 테고, 투명 은신화 능력을 지닌 큐레이지나를 그만큼 상대하기도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능력은 그가 마병단이 아닌 게 아쉬울 만큼 유용했다.
에몬 또한 유더가 조언해 주었던 방향으로 자신의 불꽃 능력을 훈련하여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다. 그가 부싯돌에 불이 튀기는 것과 같은 작은 불꽃을 적재적소에 아주 빠르게 뿌리면서 전투할 수 있었던 덕에 부상자가 이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 다 그들이 유더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생판 남의 조언을 그 정도로 진지하게 따르고 노력할 수 있는 이들은 세상에 그리 흔치 않았다.
유더는 마병단을 대표하여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마병단은 이번에 여러분이 준 도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치료와 보상은 모두 마병단 차원에서 당연히 해 드릴 일이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편히 말씀하십시오.”
“우와. 아, 아뇨. 저흰 정말 지금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각 잡힌 인사에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은 선즈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저흴 이곳으로 파견한 지노 장군님께서는 부대가 정식으로 세상에 나서기 전까지 마병단을 도와 많은 걸 배우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희가 도왔다는 걸 들키면 오히려 마병단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병단원 분들 말씀대로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죠.”
인사만 하러 왔다던 제국 남부군이 사실은 각성자로 이루어진 특수부대였고, 마병단을 도와 내기 격투장을 부수는 데 일조했다. 본래대로라면 지노 장군과 사이가 좋지 않은 샬로인의 영주는 물론, 기존의 권력층 여럿이 거품을 물고 항의했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키시아르와 유더가 오자마자 해치워 버린 남부 지부 앞의 시위자들이 이 일에서 묘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일어난 직후, 마병단장과 유더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한 영주와 세력가들은 그나마 마병단 남부 지부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 시위 책임자들을 불러들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느냐고 다그치는 윗선들 앞에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마병단장이 온 줄도 몰랐다고 말해 천하의 멍청이가 될 수는 없으니 할 말이라곤 자연히 시위를 그만둔 이유를 더욱 강화하여 도리어 목소리를 키우는 것뿐이었다.
‘어제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마병단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다 입막음을 당했던 겁니다. 제가 물러나고 싶어서 물러났던 것이 아닌데 제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으셨잖습니까!’
‘마병단에 대해 저희가 이미 알고 있던 정보는 모두 틀리다 생각하십시오. 그들을 무시하셔서는 안 됩니다! 직접 눈으로 본 그들은 정말 무서운 자들이었습니다. 분명 황제 폐하와 펠레타 공작, 지노 장군이 협력을……!’
‘차라리 제 말대로 마병단과 정보를 주고받아 이 기회에 좋은 관계를 쌓아 두시는 게 미래를 위하여 더 낫지 않겠습니까? 서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관리. 상인. 마법사. 기존의 권력층들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제국군 따위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 격투장에서 붙잡힌 젊은 귀빈들의 문제까지 더해지자 이제 약점을 잡힌 건 그들 쪽이 되었다. 마병단원들이 자신 있게 예측했던 대로 선즈와 에몬이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마병단이 해주신 일은 사실 저희가 이미 했어야 할 일들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를 하면 했지, 뭘 더 받아야 한다 생각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감사를 받고 이대로 헤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마병단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저희에게도 좋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다음은 어디를 치실 겁니까?”
선즈보다 성격이 솔직한 에몬이 유더에게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유더는 자신이 하려던 말을 먼저 해 주는 그들에게 흡족함을 느끼며 답했다.
“물론 여기서 끝내지 않을 생각이니 오늘 저녁부터 당장 남은 불법 격투장들을 수색하기 시작할 겁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있다면 더 좋겠지요.”
“저희가 샬로인에서 지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남부군입니다. 도움이 되리라 장담합니다!”
좋은 태도다. 이제부터 시작될 남부 지부와 제국군 특수부대의 불법 격투장 색출 협동 작전에 유더 자신은 다른 일을 하느라 참여하지 않을 테지만 걱정 따윈 전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좋습니다. 해당 작전은 남부 지부의 책임자, 쿠르가가 맡을 테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어. 그러면 유더와 마병단장님께선 더 참여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 시간이 있었다면 참여했겠지만… 아쉽게도 다른 할 일이 있습니다.”
“아……. 하긴 이 일에만 매달릴 순 없으시겠죠.”
“하지만 다른 일을 처리할 때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니 그때는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선즈와 에몬은 나가기 전까지 예전의 무기력해 보이는 태도는 간곳없이 활기찬 얼굴로 즐겁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유더는 조용히 앉아 그들이 남부군에서 어떤 공을 세웠는지, 각성자 특수부대가 만들어지기까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또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를 모두 들었다.
일 이야기만 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제국군 두 사람과 헤어진 뒤, 유더는 키시아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오는 내내 어쩐지 평소보다 많은 이들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향하는 듯했으나 언제나처럼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단장님. 다녀왔습니다.”
“아. 마침 잘 왔네. 큐레이지나의 조사 결과가 올라온 참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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