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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77화 (677/805)

677화

선즈가 또다시 무언가를 본 듯 고개를 쳐들고 외쳤다.

“저쪽에서 또 누군가 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팽팽했던 분위기가 그 외침으로 인해 순식간에 또다시 변화했다. 마병단원과 각협부대원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사라지고 확연한 경직이, 반대로 도망칠 기회만 노리고 있는 귀빈들과 누키조 패거리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희망이 떠올랐다.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새로운 이가 누구든, 이 비밀 통로를 알고 이용할 수 있는 건 오직 누키조 측의 소수 인원뿐이다.

‘대장이 우릴 보호하기 위해 추가 인원을 보낸 건가? 다행이다.’

‘어쩌면 대장이 직접 여기까지 오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건물이 이리 부서졌으니 상황이 정돈되는 대로 빠져나와야 할 테니까…….’

‘누키조가 오면 저놈들을 뚫고 나갈 수단도 찾을 수 있을 거야. 암만 강해 봐야 하나가 천을 상대할 수는 없는 법이지.’

한결 숨통이 트인 티가 난 누키조의 부하들 사이에 숨어 있을 은신 각성자 또한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없이 또다시 쇄도하기 시작하는 공격을 눈치챈 선즈가 힘겹게 입을 열어 소리를 쳤다.

“또 옵니다! 몸을 낮추고서 이동하는 것 같으니 허리 아래쪽을 방어하세요!”

은신한 채 공격하는 한 명을 피하기 위해 여러 명이 우왕좌왕 움직이는 건 힘든 일이었다. 마병단원들은 입으로 온갖 욕과 투덜거림을 토해 내며 육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힘겹게 공격을 피했다. 상대에게 받아치고 싶어도 자칫 잘못했다간 동료를 공격할 수 있는 판이라 부담감이 엄청났다.

“미치겠구만. 뭐가 보여야 상대를 하지.”

“젠자앙. 마음 같아선 유더처럼 죄다 태워 버리고 싶네!”

비명을 지르면서도 치명상은 입지 않고 제법 잘 피하는 마병단원들을 보며 선즈와 에몬은 동시에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저건 보이지 않는 공격을 피하면서도 욕을 할 정도로는 마음에 여유가 있단 소리지……. 투시 능력도 없는데 육감만으로 저 정도가 될 만큼 훈련을 하려면 대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사실 그건 그저 극한 훈련에 익숙해진 마병단원들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까지는 짐작하지 못했다.

그간 마병단의 지옥 같은 훈련사가 단원들에게 가장 강조한 건 한 가지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생존할 확률을 높일 것.’

싸움이란 무릇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지닌 능력의 장점을 단 하나도 발휘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황도 언젠가는 닥치게 마련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온갖 상황을 가정하여 훈련이란 이름하에 가차 없이 단원들을 굴렸다. 불을 쓰는 이를 물 한복판에 던지고, 무기가 꼭 있어야 하는 이를 빈손으로 싸우도록 만드는 정도는 그저 일부에 불과했다.

그 시간들이 빛을 발한 덕에 단원들은 답이 보이지 않는 대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은신한 능력자가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이 약간 바뀌는 것만으로도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 공격을 피하니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이런 미친. 내가 이걸 피하다니?’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도 몸이 저절로 굴러서 피하는 게… 우리 훈련 때 생각이 나네.’

단원들은 처음 보는 능력 때문에 불리해진 전황도, 땅을 구르며 공격을 피하는 이 상황도 굴욕이라 생각지 않았다. 치명상을 입을 상처를 땅을 굴러서 찰과상으로 끝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잘한 일이었다.

다만 누키조 측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어서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럴 틈까지는 찾을 수 없는 것만이 화가 났다.

‘이러고 피하기만 해서 끝날 게 아니라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마음이 급해지니 움직임이 점차 흐트러졌다. 결국 은신한 각성자의 공격을 피하려던 단원 두어 명이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말았다.

“윽!”

적의 공격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공격을 예감한 단원들이 입술을 깨물며 최대한 몸을 피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언제 끼어들었는지 알 수 없는 검날 하나가 보이지 않는 공격을 허공에서 완벽하게 막아 냈다.

그 검날의 끝, 손잡이를 움켜쥔 사람은 여태 조용히 사태를 관망 중이었던 나단 주커만이었다.

“주커만 경!”

힘을 주어 보이지 않는 공격자의 무기를 휙 밀어 낸 남국인 기사가 흘긋 시선을 돌려 마병단원들에게 말했다.

“공격 경로는 이제 대충 파악했습니다. 제가 막고 있을 테니 잠시 물러나 부상자를 파악하고 정리하십시오.”

“하지만……!”

“슬슬 모든 분들이 여유를 잃고 지쳐 가고 있습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큰 부상을 입게 될…….”

카앙. 거기까지 말하던 중, 나단 주커만이 번개처럼 다른 방향을 향해 검을 세워 움직였다.

허공에서 불꽃이 짧게 튀며 뭔가가 날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나단 주커만과 맞붙은 상대가 교묘하게 흘려보낸 힘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통째로 튕겨 나간 소리였다. 나단 주커만은 가차 없이 부딪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더듬어 시선을 돌렸다.

어둠을 꿰뚫는 것처럼 움직이는 기민한 반응과 눈빛에 여태 나단 주커만을 그들이 보호해야 할 평범한 기사라고 생각했던 마병단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뭐, 뭐야? 빠르긴 하지만 그리 힘이 들어간 동작도 아닌 것 같았는데……?’

‘보이지 않는 공격 경로를 파악했다고? 대체 어떻게?’

하지만 지독했던 마병단의 훈련이 그들에게 키워 준 것 중에는 전투 상황에서의 빠른 상황 판단력도 있었다.

‘내가 못 하는 일을 남이 해낸다면 쓸데없이 돕겠다고 나서지 말고 그냥 물러나라. 어설픈 손이 더해지는 건 때에 따라선 방해 공작보다도 못하다.’

그 교훈을 떠올린 이들은 나단 주커만의 의문스러운 무력에 대해 질문하거나 파악하는 건 일단 뒤로 미루고 그의 요청에 따라 빠르게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주커만 경! 일단 다들 물러나! 각자 상태부터 파악해!”

그사이, 나단 주커만은 상대와 몇 번의 공방을 가볍게 더 치렀다. 물론 그의 기준에서 ‘가벼운’이었고, 상대는 몇 번 날아가 천장이나 벽에 부딪치기를 반복했으나 독하게도 소리 한번 안 내고 귀신같이 금세 기척을 또다시 감추어 버리는 통에 위치를 재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단 주커만은 오감을 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깊이 숨을 내쉬었다.

‘죽이는 것보다 생포가 더 어려울 만한 상대군. 상당히 까다로워.’

오감을 평범한 이들보다 수 배는 더 끌어 올릴 수 있는 그조차도 이 정도로 모든 걸 완벽하게 지워 버릴 수 있는 적은 처음으로 보았다. 상대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이가 아닌 게 확실한 듯한데도 공격하는 경로의 규칙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건 그 때문이었다.

그가 여태까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은신 각성자는 몸집이 작고 근력이 약한 자가 분명했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최대한 공격 효과를 올리기 위해 몸을 낮추고 다니는 중이겠지만 본래 이런 방식에 익숙한 자가 아닐 터였다. 움직임도, 공격도 무엇 하나 뛰어난 면 없이 단순하기만 한 게 그 추측을 증명했다.

모습이 보이기만 했다면 마병단원들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을 자.

하지만 기척과 소리, 심지어 사용하는 무기마저 어둠 속에 완벽하게 지워 버린 저 특별한 능력이 그 모든 허술함을 상쇄했다. 오히려 허술한 면모 때문에 이쪽에서는 더욱 예측이 어렵기까지 했다.

‘그렇다 해도…….’

아예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마병단원들조차 훈련에 의해 예민해진 감각으로 상대의 공격을 얼추 피할 수 있었다. 감각을 끌어 올린 나단 주커만에게는 상대가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들이 천둥과 폭풍처럼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번엔 저쪽이군.’

나단 주커만은 흐릿하게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잡아내고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자신의 위치를 얼추 파악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은신 각성자가 이번에는 무언가 다른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무기까지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마법을 품은 비수나 독침 같은 걸 최후의 수단으로 숨겨 두었을 확률이 높겠지.’

아주 짧은 찰나에 상대가 할 만한 일을 짐작한 나단 주커만이 마병단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검을 높이 들었다.

그의 손에서 막 새파란 오러가 흘러나오던 순간이었다.

“그만!”

어디선가 들려온 누군가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일순 그들의 눈앞에 여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단 주커만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거의 바로 아래까지 다가와 침을 쏘려 하는 여자를 발견하고 치켜들었던 검을 내려 뒤로 훌쩍 물러났다. 쏘아 낸 침은 무력하게도 아무도 없는 벽에 박혀 버렸다.

“뭐지? 내 힘이 안 나와!”

“주커만 경! 괜찮으세요?”

뒤에서 나단 주커만을 도우려 했던 마병단원들이 놀라 소리를 쳤다.

자신이 남들의 눈에 보이고 있단 걸 깨달은 은신 각성자 또한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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