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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74화 (674/805)

674화

누키조를 따르는 이들은 검은 범고래 술집만이 아니라 샬로인의 어디에든 존재했다.

누키조가 요즘 들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각성자 내기 격투가 열리는 날이면, 그의 부하들은 평소 하던 일을 잠시 접어 두고서 검은 범고래 주변을 맴돌며 감시를 했다.

손님들의 안전을 지키고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누키조는 오늘 열릴 격투의 흥행 결과가 앞으로의 사업 확장에 몹시 큰 영향을 미치리라 직감적으로 확신했기에, 부하들에게도 평소보다 단단히 대비하도록 지시를 해 두었다.

“오늘 귀빈들이 역대급으로 많이 왔다며? 엄청나네. 각성자들 싸우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나도 내려가서 구경이나 좀 해 봤으면.”

“그러고 싶으면 일단 이 일이나 잘하라고. 우리처럼 뭣도 없는 놈들은 적어도 몇 달은 꾸준히 얼굴을 비춰야 안쪽에서 일할 기회라도 주는 거 몰라? 아주 지독하다니까.”

“빌어먹을. 날씨도 추운데 들어가서 파르카 맥주나 마셨으면.”

“멍청한 놈. 그냥 술병을 들고 지나가는 놈이 있으면 한 대 때려서 상납받으면 되잖아. 그러면 여기서도 마실 수 있다고.”

“아, 그런가?”

남부는 위쪽 지방보다 훨씬 따뜻하지만, 그렇다고 겨울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정도는 아니다. 제법 쌀쌀한 날씨 때문에 투덜대면서 쓰레기 같은 농담을 일삼던 누키조의 부하 두 사람은 문득 발바닥 아래서 우르릉거리는 이상한 진동을 느꼈다.

“엉? 배가 고파서 무릎이 떨리나. 땅이 다 떨리는 것 같네.”

“아니, 나도 느꼈는데.”

“……뭐지?”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서 검은 범고래 술집의 지붕이 쾅 폭발하며 새빨간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키조의 부하들 또한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엎드렸다. 사방에 파편을 흩뿌리며 밤하늘을 낮처럼 보이게 만들 만큼 높이 치솟았던 불꽃은 잠시 후 사그라졌지만, 충격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몹시 다행스럽게도, 검은 범고래 술집은 오늘 영업 상태가 아니었다. 지하 2층에서 열릴 각성자 격투에 집중하기 위해 1층의 일반 격투장도 교대하듯 문을 닫아 둔 채였고, 누키조의 입김이 닿아 있는 주변 술집들도 모두 눈치를 보며 일찍 영업을 끝낸 참이었다.

하지만 그 불길은 샬로인 어디서든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이 치솟았다. 그 거대한 충격을 느끼고 하늘을 물들였던 붉은빛을 본 사람들이 웅성대며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불이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격투장에서 무슨 일이 난 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아무도 술집으로 못 들어가게 막아! 대장이 우릴 여기 둔 이유가 뭔지 몰라?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문 잘 막고 쓸데없는 놈들 못 들어오게 하라고 그런 거야! 여기서 뭘 하는지 아는 놈들 다 알아도, 그래도 밝혀지면 안 되는 게 있는 법이다 새끼들아! 정신 차려!”

오랫동안 누키조의 오른팔로 일해 온 이가 주변을 돌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지시에 따라 누키조의 부하들은 허둥지둥 검은 범고래 주변을 둘러싸고 다른 이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들이 검은 범고래 술집을 감싸자마자 속속 다른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뭐? 불이 난 게 아니라고? 정말이오?”

“그렇다니까! 봐요. 구멍이 났지 불이 난 건 아니잖소!”

“허, 정말이네.”

“아 여기서 뭐 하는지 다 알지 않습니까. 그냥 잠깐 작은 사고가 나긴 했지만 곧 수습할 겁니다.”

맨 처음 나타난 이는 당연히도 근처에서 순찰을 돌고 있던 치안 경비대였다. 그들 대부분은 누키조 패거리들과 이미 안면이 있었기에 술집 밑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대충 다 알았다. 범죄 행각을 눈감아 주는 대신 뇌물을 받아먹는 데 익숙한 경비대들은 거대한 구멍이 뻥 뚫린 술집 지붕을 보며 혀를 차긴 했지만 억지로 밀고 들어가지는 않았다.

“쯧.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붕이 뚫린 건 처음 아니요? 너무 시끄럽게 굴지 말았으면 좋겠어. 우리와 영주님이 눈감아 주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알지. 알아. 그래도 금방 다 수습하고 치울 거요. 우리가 언제 허튼소리 한 적 있었습니까? 피차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이러지 맙시다. 이번만 눈감아 주면 우리 대장도 잊지 않고 잘해 드릴 테니까!”

누키조의 부하들이 손가락으로 돈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구슬리자 경비대 병사들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으흠. 그래요. 그럼 빨리 수습들 하시고, 우린 갑니다.”

지붕이 뚫린 건 좀 대단하지만 주변이 텅텅 비어 있던 덕에 다친 이도 딱히 없어 보이고 아래는 도로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굳이 들쑤실 이유가 있겠는가?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하고 싶은 이는 여기 없다.

눈을 한 번만 감으면 누키조는 언제나 그랬듯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 줄 것이다.

경비대들은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누키조 패거리들과 함께 주변에 다가온 사람들에게 손을 내저으며 몰아내 주는 호의까지 베풀었다.

“별일 아니라니까 다들 가도 좋소! 다친 사람 없고, 곧 수습한다고 하니 돌아가요! 구경 났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불안해하면서도 험상궂은 이들이 무서워 떠밀려 돌아가려던 사람들 속에서, 유독 키가 큰 어느 사내가 누키조 패거리들이 떠미는 손에 부딪혔다.

“뭐야, 넌. 빨리 가라는 말 안 들려?”

“…….”

사내가 묵묵한 얼굴로 시선을 마주쳤다. 그는 남국인의 특징이 진한 인상착의를 지녔으며, 허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강인하고도 차가워 보이는 눈빛에 잠시 겁을 먹었던 누키조의 부하는 이내 어깨를 쭉 펴고 강한 척을 하며 다시 한번 그를 떠밀었다.

“뭐야. 이거 썩은 토마토 놈이었네. 제국 말 몰라? 엉? 여기서 꺼지라고.”

썩은 토마토는 붉은 기가 도는 남국인들의 피부색을 비하하는 남부식 욕설이었다.

낯이 뜨거워질 만큼 원색적인 욕설을 먹은 남국인이 그제야 조금 반응을 보였다.

“여기입니다.”

다만, 그 반응은 누키조 패거리를 향하지 않았다. 그는 누키조의 부하가 아닌 그 뒤쪽을 향하여 한 손을 담담히 들었다. 그러자마자 뒤쪽에서 수많은 이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뭐, 뭐야? 평범한 놈들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언제 저렇게 많은 놈들이 여기 와 있었지?’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고요하고도 사나운 기운들. 그런 기운을 지닌 이들이 수십 명이나 남국인 사내의 곁에 다가와 서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여기 계셨군요. 신호는 방금 봤는데, 상황은 어떻습니까.”

“보다시피.”

남국인 사내가 짤막하게 대답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키조의 부하들은 도무지 그들의 공통점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엇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성별 다양, 나이대 다양, 덩치 다양한 못 보던 놈들이 별안간 여기서 접선할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뭐야 네놈들. 누구야? 어디서 왔어?”

못 보던 얼굴들의 등장에 누키조의 부하가 윽박을 질렀다. 얼굴에 칼자국이 가득해 유독 사납게 생긴 그가 그렇게 고함을 지르면 누구든 겁을 먹지 않는 이가 없었다.

눈앞의 기이한 사람들을 빼고는 말이다.

그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그의 고함을 받아넘겼다. 몇몇은 가소롭지도 않다는 듯 실실 웃기까지 했다.

‘……웃어?’

그러더니, 유독 곰을 떠오르게 만드는 한 사내가 품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단추를 꺼내 들며 말했다.

“우린 마병단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각성자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 들어가서 확인할 테니 비켜서.”

“…마병단이라고?”

마병단원들이 남부 지부를 만들기 위해 왔다는 건 누구나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이들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누키조 패거리들은 그제야 이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오합지졸 같은 무리의 공통점이 바로 ‘각성자’였음을 깨달았다.

‘젠장. 귀찮은 놈들. 하필 이럴 때!’

누키조의 부하들은 당연히도 그들을 들여보낼 생각이 없었다. 안에서 누키조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는 누가 뭐라 해도 이곳을 지켜야 했다.

“당신들이 마병단인 게 뭐 어쨌단 거냐? 여긴 우리의 땅이고 우리의 가게야. 그냥 들어가고 싶다는 이유로 아무나 다 들여보내 주는 그런 곳이 아니란 말씀이야! 여기 있는 샬로인의 자랑스러운 경비대 분들도 괜찮다고 해 주셨는데, 당신들이 뭐나 된다고 침입하려 하지?”

그들은 언제나처럼 법과 권리, 그리고 뻔뻔함에 기반한 전략을 사용했다. 이곳은 그들의 고향이자 그들의 땅이었다. 정당한 이유 없이는 방문자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걸 그간 결탁한 경비병들과 기사, 관리, 그 외 수많은 귀빈들이 가르쳐 주었다.

한몫 거들어 달라는 누키조 패거리의 눈빛을 받은 샬로인 경비병들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당신들… 진짜 마병단이야?”

“그런데.”

“괜히 나서지 말고 가지 그래. 여긴 샬로인이야. 샬로인에서 일어난 일은 샬로인의 사람들이 처리하는 거라고. 당신들은 여기서 뭘 할 권리가 아무것도 없어.”

“이보쇼. 들었지? 이제 그만 꺼져!”

하지만 마병단 놈들도 보통은 아니었다. 버티고 서서 묵묵하게 말을 듣던 사내는 쏟아진 적대감에도 아랑곳없이 입을 열어 답했다.

“그 말도 맞아.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는 각성자와 관련된 사건은 마병단에게 우선 처리권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우린 들어갈 수 있어.”

“그러니까, 방금 그 불꽃은 각성자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잖아!”

몇 마디 고함이 오고 가도 마병단 사내는 벽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 어떤 협박과 욕도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다. 누키조 패거리들이 서로 눈을 마주하며 욕설을 읊조렸다. 결국 먼저 폭발한 건 누키조의 부하들 쪽이었다.

“좋게 말해서 꺼지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막 마병단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저게 뭐야?”

멀리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고함과 함께 뚫린 지붕 위로 무언가가 휙 날아올랐다.

“세상에! 날개 달린 사람이다!”

무슨 미친 소리인가 했으나 정말이었다. 등에 거대한 날개가 달리고 머리에는 사슴처럼 뿔이 솟은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하늘 높이 떠 있었다.

모두의 경악 속에서 그 남자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이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각성자입니다! 이곳 아래의 불법 격투장에서 방금 탈출했습니다! 도와주세요!”

그 처절한 고함이 울려 퍼진 뒤, 곰과 같은 인상의 마병단 사내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들어가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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