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668화 (668/805)

668화

같은 시각, 누키조는 부하에게 다소 묘한 보고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뭐? 갑자기 제국 남부군이 샬로인에 들어와? 무슨 소리야 그게? 그놈들 본진은 샬로인이 아니라 라코타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전 연락도 없이 굉장히 갑자기 들어왔다고 샬로인 주둔군 쪽에서 소식을 전했더라고. 그래서 듣자마자 대장에게 알리러 온 거야.”

“영주가 버티고 있는 이상 그놈들이 샬로인에 그냥 들어올 순 없었을 텐데… 우라질. 원인을 모르니 신경이 쓰이는군. 하필 오늘은 손님도 많이 오는 격투가 열리는 날인데 말이야…….”

존경받는 소드마스터, 지노 보델리 장군이 이끄는 오르 제국 남부군의 본진은 샬로인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코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샬로인에 주둔하는 제국군도 물론 존재했으나 그들은 대체로 누키조 패거리와 ‘대화’가 잘 통했다. 뒷구멍으로 이런저런 편의를 다년간 주고받아 온 덕에 단속이나 처벌을 걱정할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갑자기 샬로인에 들어선 제국군 부대는 라코타에서 온 남부군 본진 소속이다. 누키조 패거리들과 안면도 없을뿐더러, 잘못 걸리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누키조의 불안을 불러 일으키고 경계심을 자극했다.

사실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한 지노 보델리는 그간 샬로인의 범죄 조직들을 여러 번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돈을 지독히도 사랑하며 지노 보델리를 딱 그만큼 싫어하는 샬로인의 영주가 단단히 버티고 있었기에 그런 불행한 일은 아직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놈들이 우리 같은 잔챙이들 때문에 온 건 아니겠다만…… 혹시 모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오늘은 정말 귀한 손님들이 오는 날이다.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비밀을 지키고 안전을 유지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해 주는 건 누키조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일단 남부군 본진 부대 놈들이 왜 여기로 왔는지부터 알아야 대비를 하든 말든 할 수 있다.

누키조는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렸다. 그는 아랫놈들에게 주먹을 휘두르기보다는 우선 칭찬을 먼저 건넸다.

“일단 듣자마자 알리러 온 건 잘했다. 그 소식, 정확히 누가 알려 줬어? 틸인가? 아니면 베인스?”

“메힐이야. 주둔 군부 출입경비대 쪽.”

“아, 그놈. 그래. 알겠어. 출입경비대라 소식을 일찍 들은 거군. 보답의 표시로 ‘과자와 술’ 좀 챙겨다 주라고 애들한테 전해. 그리고 가져다주는 김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도 들어 보고.”

“알겠어.”

누키조의 부하들은 발 빠르게 움직여 담뱃갑 속에 숨긴 돈과 비싼 술을 들고서 샬로인 주둔군부 출입경비대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새로운 소식이 누키조의 귀로 들어왔다.

“대장. 오늘 들어온 남부군 본진 부대 놈들의 정체를 알았어.”

“말해 봐.”

“얼마 전에 새로 생긴 무슨 각성자 부대인가 하는 놈들이래.”

“뭐? 각성자?”

“그래. 병사들 중에 각성한 놈들만 모아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아직은 임시 부대라서 정식 발표가 나진 않았는데, 마병단 지부에 가벼운 인사차 보낸 것 같다고 해. 지노 장군이 황제파 사람이잖아? 그래서 샬로인 영주도 출입을 허가한 거야.”

“아하…….”

“놈들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마병단 지부로 갔다는데, 고작 서른도 안 될 만큼 머릿수가 적고 대장이라고 나선 놈도 바로 얼마 전까지 병사였던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다더라. 더 궁금하면 그쪽으로도 애들을 보내서 좀 더 알아볼까?”

“아니. 됐다.”

누키조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여기까지만 알아봐도 그들과는 딱히 상관없는 문제인 게 확실하니 더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만약 거기서 좀 더 알아보기를 택했더라면, 어제까지만 해도 시끄럽기 그지없었던 마병단 남부 지부 건물 앞이 오늘부터는 아주 조용해졌다는 기상천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병단에 ‘인사차’ 방문했다는 남부군 특수부대원들이 마병단원들과 만나자마자 심각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는 마치 ‘일’이라도 하려는 듯 들어섰다는 소식 또한.

묵직하고도 정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마병단 남부 지부.

마병단복을 입은 이들 사이로 다소 낯선 제복을 걸친 이들이 끼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마병단 측의 도움 요청을 받고 쏜살같이 달려온 제국 남부군 소속 특수부대로, 대장을 맡은 이는 하늘을 닮은 머리칼에 검은 눈을 지닌 성격 좋은 인상의 젊은 청년이었다.

“안녕하세요, 마병단 여러분. 저는 제국 남부군 소속, 제23번 특수부대 ‘각협부대’의 대장 선즈입니다. 이쪽은 부대장 에몬이죠. 본래대로라면 천천히 식사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의 남부 생활에 도움을 드리는 게 마땅하겠지만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그건 어렵겠군요.”

그래도 선물은 가져왔다며 선즈가 인사를 건네자 마병단 대표로 나선 쿠르가가 손을 뻗어 그와 악수를 했다. 쿠르가의 곰처럼 큰 덩치 덕에 두 사람의 악수는 마치 거대한 곰과 접촉한 작은 인간처럼 보였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남부군에서 단장님의 말씀을 전달받자마자 저희를 돕기 위해 이렇게 빨리 여러분을 보내 주셨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하하하. 과연 마병단 분들이시군요.”

“단장님께 온 서신에서 여러분에 대한 이야기를 봤습니다. 이전에 저희 쪽과 함께 임무를 하신 적이 있으시다고요.”

“네. 맞습니다. 임무 내용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저와 에몬이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큰 조언을 준 대단한 마병단원 친구도 거기서 처음 만났으니까요.”

“그게 누굽니까?”

의외의 말에 쿠르가가 궁금해하자 선즈가 곁에 선 에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옛 일을 회상하듯 동시에 씩 웃었다.

“유더 아일입니다. 아, 지금은 작위를 받았으니 아일 남작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 유더라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부르던 대로 불러 달라고 하겠죠. 우리들에게도 그랬으니까요.”

“역시 유더답네요. 몇 달 전 수확철 축제 때 차출되어 수도로 올라갔을 때 그의 얼굴을 보러 마병단에 갔던 게 마지막 만남이었는데 이제 곧 얼굴을 직접 보고 축하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무척 기쁩니다.”

선즈와 에몬이 유더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친구라는 말에 마병단원 모두의 얼굴이 일제히 부드러워졌다. 선즈와 에몬의 등 뒤에 선 각협부대 병사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좋으니 이후의 대화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단장님께선 유더와 함께 현재 비밀 정찰 도중 발견한 불법 내기 격투장 내부에 잠입 중이십니다. 몹시 위험한 곳이라 바로 싹을 뽑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더군요.”

“그 불법 내기 격투장 문제는 남부에서 몇 년간 줄곧 골머리를 앓아 온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왔던 곳인데, 이제는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더 자극적으로 운영하며 규모를 늘리고 있다니……. 정말 할 말이 없군요.”

“걱정 마십시오. 그놈들이 각성자와 마병단을 건드린 건 최고로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곧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저희도 당연히 도울 겁니다! 그런데… 그놈들을 오늘 전부 때려잡는 건 그렇다 치고, 샬로인의 영주를 비롯한 주둔군과 귀족들이 뒷배로 버티고 있다면 오히려 뒤처리가 더 힘들 수도 있을 텐데 마병단에서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선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곳 영주가 저희 지노 장군님과 정말 사이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보니, 정작 일보다는 그다음 처리 쪽이 배는 더 걱정된다고 다들 그러더군요.”

“물론 그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쿠르가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부분도 단장님께서는 모두 이미 저희에게 지시해 두셨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그런 부분의 해결책은 어제 유더가 오자마자 거의 끝내 버린 상태라서요.”

“예?”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도 안 가는 표정이 된 선즈와 에몬이 눈을 깜박이며 반문했다.

“지금 설명드리기엔 너무 길고, 나중에 다 아시게 될 겁니다. 아무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만 아셔도 됩니다. 저희 단장님과 유더를 믿고, 신호가 떨어지면 그냥 마음대로 때려 부수시죠.”

“…….”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선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마병단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정말 누구 하나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있는 게 분명한 눈빛들을 확인하고는 내심 감탄을 토했다.

‘다들 기세와 믿음이 정말 대단하군……. 우리 부대가 저만한 수준이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아직 멀었어.’

“자, 그러면 이제 시간이 되어 가는군요. 일어날까요.”

“아, 네.”

“그쪽에 도착하시면 대기 중인 펠레타 기사단 분도 뵐 수 있을 겁니다. 단장님의 부관인 나단 주커만 경이죠. 그분과도 인사를 나누실 수 있도록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펠레타 기사단까지 여기 와 있습니까? 대단하군요.”

마병단에서 어제 보낸 갑작스러운 도움 요청을 받고 달려오는 동안 선즈는 가슴이 정말 많이 두근거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유더 아일을 다시 만나 그에게 당당히 진급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마병단을 돕는 입장에서 말이다. 선즈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안내를 받아 옷을 갈아입은 뒤, 마병단원들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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