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7화
‘몸을 안 보이게 하는 능력?’
유더의 눈이 가늘어졌다. 키시아르 쪽을 바라보자 그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시선을 마주해 왔다.
은신 능력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 대개는 어둠이나 주변 지형지물 속에 꼼짝하지 않고 숨어 잠시 몸을 숨기는 유형이 일반적이며, 은신 도중에 움직임이 가능한 유형은 아주 적다. 움직임을 넘어 공격까지 가능한 능력은 그보다 더 희귀했고, 단순한 공격 수준이 아니라 실전에서 유용히 써먹을 정도가 되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보는 이의 인지를 흐리게 만들어 움직여도 알아채지 못하게 만드는 나한의 환상 능력이나, 그림자 분신 속에 몸을 숨기는 게 가능한 가케인의 능력도 그 소수에 속하는 예 중 하나였다.
그런데 몸을 아예 안 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공격까지 가능한 능력이라.
‘투명화겠군. 드문 능력인데.’
뛰어난 투명화 능력자는 자신의 몸을 포함해 손에 닿은 물건, 무기, 옷, 심지어는 존재감까지 모두 지울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힘으로도 얼마든지 치명적인 공격을 할 수 있기에 은신 계열 능력 중에서는 최고라 할 만했다.
‘이 시기엔 아직 그런 능력자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군.’
관리인은 그 능력자의 능력만 알 뿐, 이름이나 생김새 등은 하나도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도 뭐라도 기억해 보라는 뜻을 담아 다시 한번 잘 굴려 주자, 그는 마침내 눈물과 콧물, 부러진 이빨을 토해 내며 머리를 쥐어짜 겨우 작은 정보 하나를 생각해 냈다.
“그, 그 각성자가 언제 어디서 머물다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는지 아무도 모르다 보니… 어쩌면 그놈이 우리 중에 끼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단 말이 돌기도 했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대장 성격상 진짜 그럴 것 같단 생각이…….”
“그게 무슨 소리지? 그 각성자가 평소엔 너희 패거리 사이에서 일하다 능력이 필요한 위급 상황에만 나타난단 건가?”
“예에, 예. 그런 뜻입니다.”
관리인은 자신도 그 각성자가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본 적이 몇 번 없다며 믿어 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이가 빠져 어눌한 발음으로 더듬대면서도 필사적으로 말하는 걸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유더와 키시아르의 시선이 또다시 마주쳤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내가 모든 각성자를 보자마자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능력을 쓰고 있지 않은 상태로 누키조 패거리 사이에 끼어 있었다면야 알 수 없지.’
여태까지 마주쳐 쓰러트린 놈들은 모두 진짜 비각성자들이었다.
엘포킨스의 말에 의하면 은신 능력을 지닌 각성자는 무대 앞쪽의 위. 즉 귀한 손님들이 앉은 관중석 사이에서 나타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격투 시작 후엔 중요한 손님들을 지키는 업무를 맡은 상태로 대기하다 필요할 때만 나서라는 명을 받았을 확률이 높을 듯했다.
‘은신 능력을 지닌 이는 외부에 드러낼 때보다 오히려 숨은 전력으로 감추었을 때야말로 진가를 발휘하지. 부하들이 혹시라도 헛짓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줄 수도 있고, 격투장을 관리하기도 편해지니까. 쓸데없이 그런 면으로는 머리를 잘 굴렸군.’
하지만 그렇다 해서 정체를 유추할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유더는 침묵하다 재차 입을 열었다.
“그 각성자가 처음 나타난 시기가 언제인지 아나? 모른다면 네가 처음 그자를 본 게 언제인지라도 말해.”
“그, 이 지하 2층 격투장이 완공된 이후였습니다. 탈출하려는 놈이 처음 나왔을 때쯤 그놈도 처음 나타난 걸 봤으니 그건 확실합니다.”
“여기서 격투가 열릴 때 관중석을 지키고 있는 너희 패거리들은 항상 고정된 이들이 들어가나?”
“예? 아……. 네. 가끔 교대를 시키긴 하지만 이런 데는 검증된 놈들을 쓰는 게 좋다고 대장이……”
“그놈의 의견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어.”
유더가 관리인의 손을 꾹 밟자 손이 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푹 파묻혔다. 관리인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땅이 집어삼킨 손은 빠지지 않고 오히려 늪처럼 점점 더 몸을 아래로 깊이 끌어당기기만 했다.
“귀빈석을 지키러 들어가는 놈들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말하겠습니다. 말할 테니까, 이. 이 손 좀 제발……!”
“대답이 먼저라고 아까 말했을 텐데.”
“아악!”
머리가 나쁜 죄로 한바탕 응징을 당한 뒤에야 관리인이 제대로 된 답을 더듬거리며 빠르게 토해 냈다.
“귀빈석으로 오시는 분들은 어, 얼굴도 많이 따지고, 그러셔서… 진짜로 늘 비슷한 녀석들이 들어갑니다……. 오늘 확실히 온 녀석들은 리지나, 재그, 빅, 케스, 퍼세일라, 또……!”
귀빈석의 규모는 100여 석. 관리인이 말한 귀빈석 경호자는 10명 정도였다.
“네가 말한 이들 전부 지하 2층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거기서 일했나?”
“전부 다는 아니고요…… 생겼을 때부터 일한 녀석도 있고, 몇 달 전에 새로 집어넣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관리인은 기억 나는 대로 귀빈석에서 일하는 이들의 정보를 마구 말했다. 도대체 무슨 답을 바라고 이런 걸 묻는지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악마 같은 자의 손에서 벗어나 편해지고 싶다는 마음만이 그의 머리를 지배할 따름이었다.
몹시 두서없는 정보였지만 유더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그런 정보라도 아주 잘 알아듣고 뛰어난 분석을 해낼 수 있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뽑아낼 건 얼추 다 뽑아낸 것 같군.’
“저… 그러면 이제 다 말했으니 손… 빼 주시……”
“그래. 풀어 주마.”
유더의 시원한 수긍에 관리인의 눈에 희망의 불이 켜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에게 찾아온 건 눈앞 가득 날아든 발끝이었다.
“……!”
“눈을 뜨고 있을 때 풀어 준다는 말은 안 했지만.”
이번에야말로 진짜 기절을 맞이한 그를 뒤로하고 유더는 키시아르에게로 향했다. 유더가 사람 하나를 철저하게 다져 놓으며 정보를 빼내는 모습을 내내 웃는 얼굴로 지켜보던 사내가 입을 열어 말했다.
“은신 능력자가 귀빈석을 지키는 이라면 이 지하 2층이 처음 생겼을 때 들어왔다는 이 중 하나일 거야. 저자의 말로는 그런 이가 총 세 명이라고 했으니 그중 누가 각성자일지는 이제 곧 알게 되겠군.”
“단순한 은신 능력자가 아니라 아마 투명화 능력을 지녔을 겁니다. 싸우게 된다면 까다로운 상대가 될 테니 조심하십시오.”
유더는 창고를 나갔다. 그리고 관리인에게서 빼낸 정보를 토대로 거침없이 구역을 지나 대기실 근처의 어느 작은 창고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무기가 없는 참가자들에게 대여되는 무기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유더의 검 또한 방치된 상태였다.
‘관리인 놈 말로는 누키조가 여기 박힌 보석만 빼다 팔고 검은 대충 내버려 두라고 했었다지. 그 전에 회수해서 다행이군.’
만약 누키조 패거리가 물건 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이 검을 구성하는 요소 중 제일 귀한 게 실은 붉은 보석이 아니라 검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터다. 겉보기엔 그저 화려함 하나 없이 새카맣게 보일지 몰라도, 이 검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로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재료를 사용한 물건이었다.
회수하지 못할 거란 걱정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다시 손에 넣어 허리에 차니 안정감이 느껴졌다.
‘감히 내 검을 빼간 대가는 곧 치르게 해 주마.’
무기 창고는 격투 무대와 가까웠다. 멀리서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조금씩 흘러 들어오는 것을 보면 관중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이 알아내려면 아마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그러면 이제 다음은…… 대기실인가?”
유더가 검을 차는 동안 먼지 터는 걸 도와준 키시아르가 씩 웃으며 물었다.
“네.”
“나도 무기 하나를 고르긴 해야겠군.”
주변을 둘러본 키시아르가 바닥을 굴러다니던 낡은 검 중 하나를 주웠다. 검이 아니라 몽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녹이 슬고 이가 나간 검이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이상 이제 그건 세상 그 누구도 깨트릴 수 없을 최고의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그걸로 충분하시겠습니까.”
“그래. 이 정도 무게면 상관없어. 적당히 하기에 오히려 딱 좋아.”
사내가 가볍게 검을 몇 번 휘두르자 공중에서 바람이 베이는 듯 무시무시한 소리가 잠깐 일다가는 이내 사그라졌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을 대기실을 향하여 나아갔다.
같은 시각, 누키조는 부하에게 다소 묘한 보고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뭐? 갑자기 제국 남부군이 샬로인에 들어와? 무슨 소리야 그게? 그놈들 본진은 샬로인이 아니라 라코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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