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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66화 (666/805)

666화

관리인이 뒤에서 내리꽂힌 물건에 의해 그대로 침몰했다.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낡고 묵직한 촛대를 손도 대지 않고 끌어당긴 이는 물론 키시아르였다.

유더는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관리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엘포킨스와 다른 이들이 알려준 정보들이 유용하긴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구조가 복잡한 곳이기는 하군요.”

“뭐, 그래도 감이 좋은 이가 있는 덕에 필요한 이들만 쏙쏙 잘 찾아내고 있지 않나? 그거면 되었지.”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간단했다. 격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손님맞이 준비나 순찰을 위해 돌아다니는 소수의 패거리들을 골라내어 각개 격파하는 것이었다.

누키조 패거리의 숫자는 몹시 많지만 그 인원 전부가 격투장에 상시 와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본래대로라면 지금은 참가자들이 올라와 그날그날 설정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무기를 골라야 하는 ‘대기시간’이기에 사람이 더 적었다.

이곳에서 열 번이나 격투를 치른 엘포킨스는 격투장을 지키고 참가자들을 억압하는 누키조 패거리의 경비 방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격투가 열리는 날이 되어 눈을 가린 채 지하 2층으로 끌려가면 격투장 무대 뒤쪽의 대기실로 들어가게 돼요. 거기까지 가는 동안 있는 거라곤 전부 좁고 복잡한 창고뿐이고, 주기적으로 누키조의 부하들이 순찰을 돌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전부 비각성자지만… 쓰러트려 봐도 소용없어요. 무대 뒤쪽에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하나도 없거든요.’

탈출을 하려면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위층으로 가는 길은 격투가 열리는 무대 앞쪽. 즉 관중석을 넘어가야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대와 관중석 사이에는 엘포킨스의 말에 의하면 ‘온갖 무서운 것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몇 번 봤어요. 싸우다 말고 갑자기 무대를 넘어 도망치려고 한 사람들요. 그런 탈출자가 나오면 우선 무대 주변에 있는 마법의 벽이 막아요. 운이 좋아 그걸 깨더라도 여기저기서 화살이 쏟아지고 관중석 앞을 지키던 수많은 놈들이 달려들죠.’

대개는 화살조차 버텨내지 못하고 고슴도치처럼 화살받이가 되어 끔찍하게 죽는다고 한다. 어지간한 신체 강화 능력자도 뚫을 수 있을 만한 화살을 장착한 큰 쇠뇌가 관중석 가장 위쪽에 여러 개 설치된 까닭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것까지도 견뎌내고 탈출하려는 자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엘포킨스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걸 넘어서 가려고 한 사람은 딱 한 번 봤어요. 진짜 강한 사람이었죠. 귀한 손님들이 있는 곳까지 뛰어올라 인질을 잡고 탈출에 성공할 뻔했는데… 갑자기 죽었어요.’

‘갑자기 죽었다고?’

‘말 그대로 갑자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공격한 것처럼 죽었어요.’

눈에 보이는 공격은 상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도 않는 공격은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운 법이었다. 마법이 뭔지도 잘 모르는 순박한 엘포킨스는 그것도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마법의 힘이라고 믿으며 두려워했던 듯했지만 유더는 아마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짐작되는 건 하나다. 은신 능력에 뛰어난 각성자를 경비원 사이에 끼워둔 거겠지.’

키시아르 또한 현재 존재하는 마법의 힘으로는 그런 방식의 공격과 살해가 무척 어렵다고 단언했다.

‘격투장 무대를 보호하는 보호 마법진 설치 정도는 쉽지. 하지만 수백 년 전쯤의 마법사들이 만든 은신 마도구를 구해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의 마법사들이 그런 식으로 완벽하게 은신하여 공격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그런 식으로 은신한 채 무대 앞쪽을 지키는 각성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보통은 엘포킨스처럼 이 정도까지 파악하기도 전에 죽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유더와 키시아르는 일단 무대 뒤편부터 정리한 뒤, 손님들이 들어올 만큼 들어왔을 때를 기다려 격투장 안과 밖에서 양동 작전을 쓰기로 했다.

격투 참가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좁고 복잡하게 만든 무대 뒤편. 반대로 말하자면 그건 이쪽에서 상대를 각개 격파하기에도 최적의 구조라는 뜻이기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료들이 하나 둘 사라져도 누구 하나 이상한 줄 모르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지금쯤 위층에서 편안히 지내고 있을 누키조 놈은 제 발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으… 으으…….”

그때,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관리인이 겨우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제 뒤통수에서 흘러나온 피를 더듬어 만져본 그가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아! 이 새끼들…… 탈출을 하려고……! 이봐……! 거기 누구 없어! 살려 줘!”

그러나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기세 좋게 고함을 지르던 관리인은 아무리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동료들 때문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점차 목소리가 작아지고 마침내 입을 다물었다.

그때까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던 유더가 그제야 목소리를 내었다.

“언제까지 부를지 궁금했는데, 엘포킨스보다도 근성이 없군.”

관리인은 그게 누구의 이름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냐고 묻기에는 제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내려다보던 어두운 눈동자가 너무나 두렵게 여겨졌다.

소리가 나는 공이 제 앞에 있다 해도 그보다 무감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그 눈빛. 쓰러져 피를 흘리는 이를 바라보며 불쌍해하지도, 폭력의 희열을 느끼지도 않고 그저 정말로 해야 할 일거리를 보듯 쳐다보는 눈동자가 오히려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제, 제가 어제 당신들을 대장에게 소개해서 이러는 겁니까?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당신들을 거기에 가두라고 한 건 제가 아니라 대장이 시켜서 그런 것뿐이었고 저는 아무것도……!”

“…….”

“정말 아, 아무것도…….”

한참 동안 필사적으로 변명하던 관리인이 유더의 시선 앞에서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끝인가? 더 해 보라니까.”

“으…… 으으……!”

그는 무슨 말을 해도 눈앞의 사내들에게는 제 말이 통하지 않으리란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자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건 그저 언제까지 소리를 지를 수 있는지가 궁금해서일 뿐, 정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제는 그저 얼빠져 보이는 호구 남색가들이라 생각했었는데, 바닥에 엎드린 채 올려다본 얼굴은 이제보니 감정이 없는 사신과도 같았다.

관리인은 불쌍한 척을 하던 것을 포기하고 발악하듯 외쳤다.

“젠장… 이 더러운 남색가 남창 새끼들! 어디서 온 놈들이 이러는지 몰라도, 날 족친다고 나올 것도 없어! 대장이 너흴 잡아 죽일 거다!”

“그래?”

그리고 그 사신이 마침내 관리인을 향하여 선고를 내렸다.

“널 족쳐서 나올 게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면 알겠지. 그렇지 않아도 묻고 싶은게 많았는데 아직 기운이 남은 것 같아 다행이야.”

진심으로 기껍게 말한 유더가 무어라 욕을 퍼부으려 들던 관리인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그의 손을 바람이 휘감는 모습을 보며 관리인이 고통스레 발버둥쳤다.

“으… 으아아, 으아아아! 살려 줘!”

“그래. 아마 네놈에게 속아 끌려들어 온 각성자들도 그렇게 말했었겠지.”

주먹을 지켜든 유더의 등 뒤에서 물과 불, 공기와 땅바닥이 동시에 스르르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관리인은 기절할 듯한 얼굴이 되었다.

이윽고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 창고 안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간만에 몸을 썼더니 개운하군.’

유더는 고개를 꺾으며 널브러진 관리인을 내려다보았다. 대답을 해도 응징당하고, 안 해도 응징당하는 지옥 속에서 관리인은 금세 모든 의리를 버리고 살려 달라 울부짖으며 아는 정보를 잘 털어주었다.

“누키조는 지금 어디 있지?”

“위, 위층에…….”

“격투장에는 언제 내려오는지 알고 있나?”

“첫 격투가 열릴 때는, 내려올 겁니다……. 늘, 늘 그랬으니까요.”

뒷골목 출신들이 으레 그렇듯, 누키조 패거리들은 각자의 연대 의식이 몹시 희박했고 의리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관리인 덕분에 유더는 오늘 열릴 예정인 자신들의 ‘첫 격투’를 누키조가 아주 열심히 홍보했으며, 덕분에 하룻밤만에 수많은 ‘귀한 손님’들이 방문할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게 바랐던 대로였다.

‘누키조가 마병단 측의 움직임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도 분명하군. 그쪽에서도 다들 잘 해주고 있는 모양이지.’

“이… 이제 되었잖아……요……. 내가 아는 건 정말 이것뿐이야… 제발 살려줘…….”

“누가 언제 죽인다고 했던가? 질문이 하나 더 있으니 똑바로 대답해.”

마지막 질문은 역시 격투장을 지키는 은신 능력자에 대한 부분이었다.

“여길 지키는 놈들 사이에 각성자가 끼어 있던데, 그건 누구지?”

유더는 의도적으로 추측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추궁하듯 물었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태가 된 관리인은 유더의 생각대로 그 미끼를 잘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대장도 말해주지 않아서…….”

‘이것 봐라. 찔러 본 건데 역시 그런 이가 있는 게 맞았군.’

유더가 조용히 발끝으로 땅을 슥 긁자 관리인이 비명을 지르며 대답했다.

“본 적이 없어서 진짜 몰라요! 몸을 안 보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는데 그게 누군지 어떻게 압니까!”

‘몸을 안 보이게 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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