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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62화 (662/805)

662화

“괜찮아. 그보다, 방금 그 모습이 유드레인 단장으로서의 모습에 가까울 거라 생각하니 정말 흥미롭더군.”

‘……단장으로서의 모습?’

유드레인 아일이 단장이었던 시절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사내가 그리 말하니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조용하시기에 몸이 좋지 않으신가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까?”

유더는 이전 생의 비밀을 밝힌 이래, 일어날 정보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공유했으나 그때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한 적이 없었다.

특히 단장이었던 시절은 특히나 앞으로도 별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키시아르는 그때의 유드레인 아일이 궁금했던 걸까?

지금의 단장은 그다. 그건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사실이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흥미롭다 말하는 사내의 눈빛에 미약한 당혹감이 올라왔다.

“하하하.”

뭐가 그리 좋은지 키시아르가 웃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셨더라도…… 실제 모습과는 전혀 달랐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엘포킨스에게 예전처럼 조금 하대를 하듯이 말한 부분이 있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단장 시절과 비할 수는 없었다. 그때의 그였다면 임무 도중 타인에게 직접 이렇게 다가가지조차 않았을 테니까.

그런 건 사람 상대를 잘하는 다른 부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부터 해치우는 게 유드레인 아일의 단장 시절 방식이었다. 그러니까 즉, 지금처럼 앞뒤 살피기 전에 바로 손부터 써서 죄다 때려 부수고 뒷일은 다음 이들에게 맡긴 뒤 사라졌을 거란 소리다.

그때는 이런 방식으로 일 처리를 할 수 있다는 선택지 자체가 안중에 전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쏟아진 임무와 그것을 해결한 뒤 앞으로 해야 할 또 다른 일들만이 머릿속을 차지한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적인 감정 같은 건 그런 일 처리에 별로 필요하지 않았기에 그저 효율만을 중시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의 신임을 얻고 그를 보필하여 마병단을 공고한 위치로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 사람이기 이전에 마병단의 수장이자 제국을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인간 병기로서 존재할 것.

그게 바로 마병단장 유드레인 아일이 지닌 가장 중요한 책임이었다.

‘신과 부단장으로 오래 근무했기에 그나마 얼굴을 가장 오래 본 사이라 할 만한 에버와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어 본 일이 거의 없었으니 말 다 했겠지.’

그때는 에버가 춤추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다. 그녀가 어떤 전투에서 어떤 부상을 입었는지, 어떤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지는 기억했어도 가족 관계나 취미 여부 같은 건 일절 나누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도 내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다닐 땐 내 주장을 완전히 믿지 않으면서도 제법 도와주려고 했었던 것 같지만…….’

입단 동기이자 오랜 부단장의 말조차 그때의 유더는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게 호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으리란 점도 나중에 사형을 앞두고 나서나 희미하게 깨달았을 정도였다.

제 생각을 믿어 달라고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요청했으면서도 정작 어느 정도 도움을 주려 했던 이들에게는 벽을 치고 다녔으니 유드레인 아일의 끝이 좋지 못했던 건 당연한 결과였다.

유더의 눈빛이 어두워지던 찰나, 키시아르가 부축한 유더의 손을 가만히 꾹 잡아 왔다.

상념이 끊기며 정신이 되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가라앉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내가 보고 추측한 모습과 실제는 분명 똑같을 수 없겠지. 그건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말이야, 어찌 되었건 무슨 상황에서든 자연스럽게 각성자를, 그리고 마병단을 위하고 있는 그 태도는 똑같지 않겠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발정기 때문에 고통받는 2성 각성자들을 위해 지부를 쉼터로 만들었다던 이가 지금은 억압받는 각성자를 위해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주고 입단을 권유하지. 그게 무언가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지도 않은 채 그저 그게 당장 필요하다 여기기에 하고 있을 뿐이란 점에서 나는 두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혔다.

“……저는…….”

“물론 옛 부하를 만난 덕인지 말투가 조금 바뀌었던 게 특별히 매력적이었다는 것도 분명하지만 말이야.”

아무튼 내 생각은 그러해. 그렇게 말하며 키시아르는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이전에 무슨 짓을 하다 죽었는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한다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유드레인 아일의 단장 시절을 그리 좋게 생각하거나 포장하지 말라고, 지금과 그때 사이에 똑같은 게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유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키시아르 라 오르를 상대로는 늘 그랬다.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가슴 안쪽을 꽉 짓눌렀다. 유더는 어둠에 잠긴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크게 두방망이질 치는 자신의 심장박동을 느꼈다.

“아까는 차가운 아픔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도로 뜨거워졌어.”

유더가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 그 감각들의 정체를 키시아르는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서로의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럴 땐 좋군. 이 얼굴 아래 이토록 큰 감정들이 있다는 걸 눈으로만 보았을 땐 감히 짐작하지 못했을 테니까.”

“…….”

유더는 그제야 키시아르에게 제 감정이 흘러들어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길게 숨을 내쉬자 키시아르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천천히 가까이 붙였다.

“뜨거움 다음은…… 갈구. 맞나?”

유더는 대답 대신 어둠에 가린 눈을 응시했다.

너무 솔직하게 감정이 전해지니 좀 그렇긴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면 행하면 될 일이다.

그는 천천히 호선을 그리며 올라간 입술 위로 살짝 고개를 올려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지그시 붙었다 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몹시 짧았지만, 동시에 길게도 느껴졌다.

로맨틱한 장소도,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지만 거침없이 행한 그 짧은 접촉이 유더의 머리를 도로 맑게 만드는 데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느낀 건 비단 그뿐만이 아닌 듯했다.

“어쩐지 그릇의 상태가 다 회복된 것만 같군. 이런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신성력을 두 번쯤은 더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그런 류의 말씀은 농담이라도 하지 마십시오.”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야.”

웃고 있는 키시아르의 얼굴이 정말로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 보이는 듯도 했다. 사내는 더 이상 유더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섰다. 정말로 이제 어느 정도 회복과 안정이 되기는 한 모양이라, 유더는 한결 긴장을 덜었다.

그들은 엘포킨스가 알려 준 지하 3층 중앙의 방을 찾아 천장 위쪽을 다시 헤맸다. 다행히 찾는 데는 시간이 그리 걸리지 않았다.

“여기겠군.”

“네. 위치상 이곳이 맞을 것 같습니다.”

천장 블록을 들어 올리자 이번에도 아래쪽의 작은 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다만 그곳은 엘포킨스가 묶여 있던 끔찍한 피투성이 방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숨이 막힐 정도로 호화롭게 꾸며진 방 안에서, 뼈의 윤곽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깡마른 여자가 엎드려 있었다. 천장 블록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듯 천천히 고개를 든 여자가 유더와 눈이 마주친 순간 비명을 지르려는 듯 입을 벌렸다.

유더는 날쌔게 뛰어내려 그녀의 입을 막았다.

“……흡!”

“으음. 갑작스레 찾아온 무례는 사과드리죠. 해치려고 온 건 아니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쉽게 긴장을 풀기 어려우리란 건 이해합니다만.”

뒤따라 내려선 키시아르가 부드럽게 말을 잇자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여자가 눈을 굴리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유더는 그녀가 조금 진정한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여기까지 왔을 뿐이니, 소리를 질러 외부의 누키조 패거리를 부르지 않겠다고 확언해 준다면 손을 놓도록 하죠. 동의한다면 눈을 두 번 깜박이십시오.”

“…….”

잠시 후, 여자가 천천히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유더는 입을 막았던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여자가 불안에 찬 눈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누구죠.”

“여길 손보러 온 마병단입니다.”

“……마병단? 그게 뭐예요?”

유더의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응답은 그들이 여기에 오기 직전 생각했던 최악의 반응 중 하나였다.

“마병단을 모르십니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습니까?”

“……몰라요. 얼마나 되었는지.”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머리칼이 증명했다. 깡마른 몸에 무거워 보일 정도로 두텁고 화려한 옷을 걸친 여자의 머리칼은 제대로 손질하지 않은 듯 산발이었다.

엉망으로 엉켜 있는 머리칼과 홀쭉한 얼굴, 핏발 어린 눈동자와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비싼 옷.

그녀가 처해 있는 이 모든 상황이 한 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역시 당신이 이곳 전체에 각성자의 능력을 억제하는 힘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군요.”

“…….”

그 말에 여자의 몸이 덜컥 크게 떨렸다.

“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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