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화
“우… 우우……. 우우우!”
그 덩어리가 사람이며, 어디가 얼굴인지 확인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보통 뭉개진 상태가 아니었을뿐더러, 상대의 모습도 보통 인간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머리에는 거대한 사슴뿔이 달렸고,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붙었다. 팔다리에도 크고 긴 깃털이 억세게 나 있어 윤곽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도 잘 보면 짐승과 사람이 반씩 섞인 듯한 생김새였다.
평범한 사람과는 다소 다른 생김새를 가지게 된 각성자들을 많이 접해 온 유더도 이 정도로 이질적인 생김새를 지닌 각성자를 본 경우는 흔치 않았다.
더 확실히 말하자면, 흔치 않았기에 기억에 남아 있던 각성자였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런 생김새를 지닌 사람을 기억 못 하는 게 오히려 어렵겠지.’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유더의 미약한 반응을 곧바로 눈치챈 키시아르가 소리 없이 입 모양만을 움직여 물었다.
‘아는 이인가?’
유더는 작게, 그러나 키시아르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
좋게 아는 사이였는지, 아니면 적이었는지.
유더는 고통에 신음하는 각성자를 내려다보며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키시아르의 손등에 가볍게 글씨를 썼다.
‘이전에 마병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찍 죽었습니다.’
저 각성자의 이름은 엘포킨스. 이전 생에는 마병단이 남부에서 불법 격투장 여럿을 때려 부수고 나서도 1년쯤 지난 뒤에야 입단했다. 그는 독특한 생김새만큼이나 엄청난 괴력, 그리고 괴력보다도 대단한 재생 능력으로 많은 기대를 받으며 신과에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약간의 성격적 문제가 존재했다. 별것 아닌 일에 몹시 쉽게 흥분하기 일쑤였고, 한번 분노하면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죽어라 달려들어 싸웠다. 강한 힘에 집착하는 정도도 다른 단원들보다 훨씬 심했다.
함께 팀 활동을 하다가 필요한 조언을 하는 동료들의 말조차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며 과도한 싸움을 벌이다 보니 그의 마병단 내 평가는 언제나 최하위를 맴돌고는 했다. 일부러 능력을 빨리 성장시키려고 폭주를 일으킨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나마 내 손속이 무서운 줄은 알아서 내 앞에서는 얌전하게 굴었지만…… 그뿐이었지.’
날이 갈수록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게 된 엘포킨스는 결국 어느 날, 임무 도중 또다시 일으킨 폭주를 견뎌 내지 못하고 끔찍한 몰골이 되어 사망했다. 그 어떤 위험에서도 스스로를 구하리라 믿었던 재생 능력조차도 그때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기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의 죽음은 유더가 각성자의 폭주를 심각하게 인지하는 가장 큰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의 마병단원들이 힘을 키우기 위함이란 이유로 함부로 폭주하려 드는 일을 막는 규범을 세우는 데도 한몫을 했다.
유더는 그 사건을 몹시 간략하게 키시아르에게 전달하는 한편,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엘포킨스를 내려다보았다.
‘이전 생에서 만났을 때는 남부에 있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하긴, 이런 곳에 붙잡혀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었을 터다. 사납고 자존심이 강한 엘포킨스라면 더 그랬을 터였다.
유더의 기억 속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미 재생 능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쓸 수 없는 듯 피투성이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지금은 이 지하 공간 전체에 퍼져 있는 억제의 힘 탓에 재생 능력이 있다 해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식으로 힘을 억제당하는 공간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채 지내야 했다면 그가 불가사의할 만큼 강력한 재생 능력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해가 되었다. 살아남으려면 강제로라도 힘을 발전시켜야 하는 환경이었을 테니까.
‘아무튼 상태를 확인해 봐야겠어.’
유더는 키시아르에게 시선을 짧게 보낸 뒤 천장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바로 앞까지 다가갔는데도 엘포킨스는 누가 다가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보였다.
“우우…….”
“…….”
가까이서 본 그의 상처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더욱 심각했다. 피투성이로 얼룩진 두 날개는 뼈가 이리저리 뒤틀려 꺾이고 부러진 상태였고, 팔다리도 성한 곳이 없었다. 본래는 흰색과 푸른색을 띠었을 깃털은 반 이상 뽑혀 나가 피부가 너덜거렸다.
납작하게 뭉개지고 부은 코와 얼굴 등은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처보다도, 유더는 엘포킨스가 걸친 옷이라고 부르기도 무엇한 천 조각에 제일 강하게 시선이 갔다. 대상의 치부를 가리거나 몸을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할 본래의 목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상품처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그 천 쪼가리는 보기만 해도 굴욕스러운 생김새였다.
‘내일 격투에 참여한 뒤 본격적으로 박살을 낼 생각이었는데…… 이딴 걸 입고 싸워야 한다면 계획을 당기고 싶을 지경이군.’
하지만 그 천 쪼가리 덕에 알 수 있었던 장점도 하나 정도 있기는 했다. 유더는 엘포킨스의 상처 깊은 곳이 뭉글거리며 조금씩 서로 달라붙으려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능력을 억제당하는 상황에서도 재생 능력이 기를 쓰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걸 보니 지금 수준에서도 엘포킨스의 재생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던 듯했다.
역시 이런 곳에서 맥없이 죽을 놈은 아니었다.
확인을 끝낸 유더의 곁에 내려선 키시아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상태가 좋지 않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여간해서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이가 아니지만, 지금의 목소리를 통해 하나는 확실히 느껴졌다. 키시아르 또한 유더와 같은 것들을 보고 추측했으며, 그로 인해 이 격투장 측에 상당히 유감이 쌓였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회복이 조금씩 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렇다 해도 고통이 길어지는 건 좋지 않지. 잠깐 물러나 보게.”
유더를 치료할 때 외에는 거의 발휘한 적이 없어 그가 이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반쯤 잊을 때가 있었지만, 키시아르 라 오르는 대단한 신성력의 소유자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까 시험해 본 결과 이곳에 퍼져 있는 억제의 힘은 각성자의 힘을 가장 강하게 억누르고, 다른 힘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더군. 치료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거야. 다만…….”
키시아르가 손가락 끝에서 눈부신 흰 빛을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치료해야 할 상대의 상태가 심각한 만큼 내 힘이 많이 사용될 테니, 이후에는 큰 도움이 못 될 수도 있겠어.”
그건 문제없다. 키시아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유더가 나서서 힘을 쓰면 그만이고, 그를 지키면서 나아간다면 오히려 마음도 편안할 테니까. 하지만 지나치게 힘을 쓴 나머지 키시아르의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큰일이었다.
‘알아서 무리할 정도로 사용하진 않을 거라 믿고 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군.’
다른 이의 몸이 걱정되어 오히려 이쪽이 더욱 초조해지다니. 그것도 키시아르를 상대로.
여태 그럴 일이 거의 없는 삶을 살았던 탓에 낯설면서도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조심하십시오.”
유더는 짤막하게 말한 뒤 뒤로 물러났다. 곧 키시아르가 신성력을 본격적으로 뽑아내어 엘포킨스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빛이 사그라질 때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끝났네. 지금은 이 정도가 한계군.”
키시아르는 그렇게 말했지만 치유가 끝난 엘포킨스의 몸은 겉보기에는 거의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겉의 부러진 부분이나 상처는 거의 치유했지만 완전히 나으려면 재생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며칠은 더 치료를 해야 할 거야.”
깊이 숨을 내쉰 키시아르가 뒤로 물러나다 잠시 비틀거렸다. 유더는 빠르게 그를 부축했다. 큰 마법을 썼을 때도 잘 버텨 냈던 사내의 얼굴이 잠깐 사이에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잠깐 발을 잘못 디뎠을 뿐이지만…… 이리 걱정해 주니 굉장히 기뻐서 이대로 계속 있고 싶어지는데.”
“농담하실 때가 아닙니다.”
유더의 차갑고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은 사내가 눈을 휘어 웃었다. 그가 유더의 머리칼에 고개를 기대었다.
“음…… 그래. 사실 내가 가진 힘 중에서는 이 힘이 가장 적성에 안 맞는 듯해. 아무리 나라도 모든 게 적성에 맞을 순 없는 법이긴 하지.”
“…….”
“하지만 그만큼 사용한 뒤의 보람도 확실한 힘이지 않나? 있는 힘을 평생 사용하지 않은 채 숨기고 싶지는 않아. 필요한 이가 있다면 써야겠지.”
유더는 키시아르를 올려다보다 잠시 후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윽……. 다, 당신들은……?”
그때, 엘포킨스가 드디어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린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낯선 이들을 발견하고 잠시 겁에 질린 눈빛을 했으나, 그다음으로 깨끗이 나은 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 난 분명 오늘 크게 져서 다친 상태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당신들이 나를 치료한 건가?”
“그래.”
“대체 어떻게… 여기서는 아무도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비밀.”
키시아르가 소리 없이 웃으며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일단 자신을 치료해 준 건 분명하다는 걸 알았는지, 엘포킨스는 어떻게 자신이 치료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경계심 어린, 그러면서도 떨리는 눈으로 유더와 키시아르를 훑어보았다.
“……당신들, 누키조 패거리가 아니지.”
“그래.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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