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658화 (658/805)

658화

“그걸 잘 홍보해서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단순히 주먹 잘 쓰고 배짱 큰 놈은 세상에 널렸다. 샬로인의 밤을 지배하는 누키조는 나쁜 일이라면 뭐든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그는 새로이 찾아온 돈줄들이 한 쌍의 알파와 오메가 각성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더욱 자극적이고 새로운 돈벌이 계획을 바로 생각해 냈다.

“일단 잘해 주는 척하면서 숙소에 모셔 놓고 수면제를 먹여. 자는 사이에 두 놈을 서로 분리해 놓고 신체검사 좀 한 뒤에 내일 싸우는 모습을 보자고. 실력이 괜찮으면 적당히 중독시켜서 굴려 먹고, 별로라면 특별 등급 손님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2성 각성자 놈들끼리 붙어먹고 돌려 먹히는 걸 구경하게 해 주는 거야.”

“굉장한데. 그건 나도 보고 싶어지는걸. 다들 돈을 싸짊어지고 와서라도 보려고 하겠어.”

관리인은 ‘역시 대장은 이런 데선 귀신같이 머리가 돌아간다’는 칭찬을 아낌없이 건넸다. 칭찬 듣기를 좋아하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습성이다. 누키조의 기분 또한 순식간에 더욱 상승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펠레타 공작 때문에 요즘 2성 각성자 수요가 늘었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지. 솔직히 사내새끼인데도 애를 가질 수 있다니, 밑구멍이 어떻게 생겼을지 정말 궁금하잖아? 높으신 분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고.”

하지만 비각성자는 각성자가 스스로 자신의 2성을 밝히지 않는 한은 상대가 2성을 가진 이인지, 아닌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 스스로 2성 각성자 티를 내며 제 발로 찾아온 각성자 한 쌍이 누키조에게는 그야말로 황금 돈줄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이건 격투장을 더 넓힐 절호의 기회야. 그러니까 잘 챙겨.”

“알겠어.”

“아니, 그냥 처음부터 내가 나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그놈들 지금 어디 있어?”

누키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호구 1과 2는 아직 지하 1층에 남아 있었다. 험상궂은 얼굴의 누키조가 나타나자 그들은 조금 놀란 듯 보였으나, 그가 친절히 웃으며 호의를 베풀자 이내 경계를 풀고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들처럼 가능성 많은 참가자들은 우리가 직접 관리하기도 하지. 오늘 당장 묵을 곳도 없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묵는 건 어때? 마침 숙소가 제법 남아 있거든.”

물론 그 숙소가 빈 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놈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리인과 누키조는 당연히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흠. 갑작스러워서 좀 곤란한데. 묵을 곳이 없는 건 맞지만 본래 신세를 지려고 했던 곳이 따로 있었거든.”

재워 주겠다고 하면 바로 미끼를 물 줄 알았던 호구 1이 뜻밖에도 턱을 문지르며 고민스레 대꾸했다.

‘이것 봐라. 내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누키조는 관리인에게 질책하는 눈빛을 보낸 뒤 제법 사람 좋은 이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쪽에 묵으면 식사도 공짜라는 건 말해 두고 싶구만. 마침 저녁 시간이니 같이 먹는 건 어때.”

“저녁을?”

“곧 같이 일하게 될 사이이니 서로에 대해 조금 더 파악할 겸 괜찮은 제의라 생각하는데. 오늘 ‘특별한 격투’는 열리지 않지만 일반 격투는 열릴 예정이니 보고 싶다면 그것도 한번 구경하고 가도 좋고.”

“흐음. 그렇지 않아도 그게 궁금하긴 했는데.”

호구 1이 고개를 슬그머니 기울였다. 굉장히 쉬워 보이는 흐릿한 생김새를 지닌 주제에, 제법 사람을 안달 나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넘어올 듯 말 듯 구는 게 짜증 났지만 누키조는 곧 놈들에게서 뽑아낼 돈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 기분이다. 주인의 권한으로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지. 편하게 앉아서 쉽게 돈 벌어가는 놈들을 봐 보라고.”

물론 그들에게 보여 줄 일반 격투는 미끼용으로 마련된 것이다. 겉만 보면 평범해 보이는 그들 패거리 일부가 출전해 바람잡이를 할 예정이었다.

이런 기회는 또 없다. 생색을 내자 호구 1과 2가 서로 눈을 마주했다. 잠시 후, 호구 2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 잘 생각했다.”

누키조는 껄껄 웃으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올라갔다. 관리인에게 두 호구가 먹을 밥과 술에 약부터 타라는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누키조는 두 호구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입수했다.

우선 호구 1과 2는 정말로 2성을 지닌 각성자였으며, 본래는 중부 출신이지만 여행 도중 마병단원 모집 소식을 듣게 되어 가장 가까운 샬로인에 온 듯했다.

누키조는 그 정보를 자신만의 거름망을 통해 재해석했다.

‘여행은 무슨. 각성자가 되어 고향에서 도망친 뒤 사내놈 둘이 배 맞아 용병질이나 하며 다녔겠지. 돈이 없으면 도박을 해서 벌고, 그러다 여기까지 흘러오고. 뻔한 쓰레기들 같으니.’

누구도 주우러 오지 않을 그 쓰레기들은 이제부터 누키조가 주워서 빛이 나게 닦아 잘 털어먹을 예정이었다.

누키조는 즐겁게 웃었다.

그러나 식사와 미끼용 격투까지 관람한 뒤, 예상치 못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저놈들. 대체 왜 안 쓰러지는 거지? 지금쯤이면 졸린 티라도 나야 하는데?’

분명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놈들의 밥과 물에 약을 섞었고, 경기 관람을 할 때도 가져다준 음료마다 약을 탔다. 그 정도면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각성자들도 이미 죽은 듯 잠들어 팔다리가 잘려도 모를 정도가 되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호구들은 너무나 멀쩡했다. 혹시 약이 잘못된 건가 싶어 몇 번이고 음료를 더 먹였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놈들 대체 뭐야?’

결국 배 안에 구멍이라도 났나 싶을 만큼 엄청난 양의 밥과 음료를 잘도 처먹다 못해 호구 1이 먹을 것까지 대부분 빼앗아 먹던 호구 2가 더 이상의 음료는 거절하겠다는 말까지 했을 때, 누키조의 곁에 있던 관리인이 경악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 안 졸려요?”

“뭐가?”

“아니. 그리 먹고 마시고 격투까지 봤으니 보통은 슬슬…… 피곤해할 때가 된 것 같아서.”

관리인이 얼버무리며 대답하자 호구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잠시 후, 호구 1이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 걱정해 주고 있었는데 몰라줘서 미안하게 됐어.”

“……엉?”

“사실 굉장히 졸렸는데 참고 있었거든. 당신도 그렇지?”

“……예, 뭐. 그런 것 같군요.”

그리고 잠시 후, 두 호구는 사이좋게 어깨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어이가 없어 가짜로 자는 척을 하나 싶었으나 슬쩍 뺨을 두드리고 넘어트려 봐도 그들은 깨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안 깬다는 사실을 확인한 누키조가 그제야 참았던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오늘 사라진 식재료가 대체 얼마어치냐?”

“아까 술 창고랑 부엌을 확인해 보니 3일 어친 될 것 같던데.”

“젠장! 저 돼지 자식. 제 몫을 못 하면 손님들 앞에서 묶어 놓고 사료를 들이부어 어디까지 들어가나 확인해서라도 돈을 다 받아 낼 테다.”

그 와중에도 새로운 돈 벌 거리를 궁리해 내는 게 과연 누키조다웠다.

잠시 후 누키조의 명에 따라 들어온 이들이 두 호구를 부축해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는 각성자라 해도 함부로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튼튼하게 지은 ‘숙소’들이 있었다.

두 개의 방에 호구들을 각각 밀어 넣은 패거리들은 그들의 옷과 몸을 뒤져 소지품을 확인했다. 짐은 어디다 두고 맨몸으로 왔는지 모르겠지만, 두 호구가 걸치고 있는 물건들은 전부 낡아빠져 보여 빼앗을 만한 것도 딱히 없어 보였다.

“갈색 머리 놈이 차고 있던 흠집투성이 팔찌랑 녹슨 구리 반지 같은 건 안 빠져서 냅뒀고, 검은 머리 놈이 가지고 있던 검만 가져왔어. 나머진 별것 없어.”

가져온 검을 본 누키조는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새카만 검집을 대충 훑은 뒤 던져두었다.

“불 쓴다는 놈이 검은 무슨. 어린놈이 어디서 겉멋만 들어서 싸구려 루비를 박아 뒀나 본데, 나중에 저거만 빼다가 팔아라.”

호구들이 잠든 숙소의 문을 잠근 뒤, 그들은 홀가분히 위로 올라갔다. 중간에 짐승처럼 억눌려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 숙소들의 문을 발로 차서 조용하게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분 뒤, 갇혀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으리라 생각했던 호구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눈을 뜨리란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였다.

‘……시작부터 약이라. 신선한 부분이 하나도 없군.’

유더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혀를 차며 창의력 없는 누키조 패거리를 냉정하게 혹평했다. 과연 각성자가 참여하는 격투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들의 운영 방식은 유더가 기억하던 이전 생에 비해 훨씬 조잡하고 규모도 작았다.

물론 악랄한 마음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했으니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더는 식사와 격투 관람을 하는 동안 파악한 이곳의 구조와 인원 등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팔다리의 근육을 풀었다.

그와 키시아르가 이 ‘검은 범고래’ 술집에 온 건 붉은 주사위가 그려진 다른 가게를 몇 군데 돌고 나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몇 군데의 가게를 도는 동안 그들은 샬로인과 남부 여러 곳에 퍼진 일반 무작위 격투장의 상황과 1년 전쯤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각성자 격투장의 정보를 확인했다.

일반 무작위 격투장은 몇 년 전부터 이미 조직적으로 수십 군데쯤 생겨난 상태였으나 각성자를 본격적으로 참여시키는 곳은 아직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규모가 크고 샬로인에서 누구보다 먼저 각성자 격투장을 따로 만들었다는 곳이 바로 이곳. ‘검은 범고래’였다.

때문에 유더는 각성자를 납치까지 해 가며 참여시킬 만한 곳도 여기일 확률이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는 건 여기만 불태우면 빠르게 박멸이 가능한 범위란 뜻이지.’

부수는 건 쉽다. 하지만 무작정 때려 부숴서는 이곳에 방문하여 온갖 범죄에 함께 머리를 맞대었을 귀족 놈들이나 다른 놈들의 꼬리까지 한 번에 잡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그들은 각성자 격투장의 자세한 상황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서 막 낚여 들어온 마병단 지원자들을 보고 화가 난 건 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놈들, 분명 아까 낮에 봤던 나그란의 별 소속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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