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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57화 (657/805)

657화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입장금을 지금 내실 건가요? 아니면…….”

“뭔가 착각한 게 있는 것 같은데.”

호구 2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린 처음부터 ‘돈을 거는 입장’에서 참여하고 싶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예?”

술통 관리인이 어리둥절하게 반문했다가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끔뻑거렸다.

“그러면, 돈을 거는 게 아니라… 두 분이 직접 참가를 하시겠다는……?”

“그래.”

“실례지만, 아니. 각성자……였다고요? 당신들이?”

관리인의 말투가 바뀌었다. 당연히 돈을 거는 도박꾼 쪽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정체가 사실은 정반대였다는 사실에 당혹을 금치 못한 건 문 앞을 무료하게 지키고 서 있던 문지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렇게 안 보였나 보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호구 1은 몰라도 2는 귀족이 틀림없다고 내심 판단했었는데, 아무래도 사람 보는 눈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관리인 또한 문지기와 같은 생각을 한 듯 어이없음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면, 혹시, 이번에 마병단에 지원을 하러 온… 거요……? 두 사람 다……?”

대답 대신 호구 1이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긍정을 뜻하는 미소였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그쪽이 워낙 열심히 설명을 시작하기에 말할 틈을 놓쳤어.”

“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긴 했다. 놈들에게선 이곳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돈을 벌고 싶어서 온 인간들 특유의 머뭇거림이나 간절함, 두려움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도박을 하러 온 손님 쪽이라 판단한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기막혀하던 관리인이 겨우 정신을 다잡고는 이전과 다른 태도로 두 호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모셔야 할 호구 손님들이 아니라 팔아야 할 상품을 살피는 상인의 눈빛이었다.

“팔다리는 일단 멀쩡들 하시고…… 별로 급해 보이지 않는데 왜 참가를 원하는 거요?”

“급해 보이지 않는단 건 당신들 생각이지.”

호구 2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의 어깨를 진정하라는 듯 부드럽게 두드린 호구 1이 설명을 보탰다.

“우린 오늘 잘 곳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야. 감이 좋다 보니 평소엔 게임으로 부족한 여비를 벌곤 했는데, 들어보니 여기가 제법 짭짤하다잖나? 그래서 왔을 뿐이지 다른 이유는 없어.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할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무튼 굴러 들어온 돈들을 그냥 보낼 순 없는 법이었다.

관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요.”

그들이 향한 곳은 아까 순진한 젊은 각성자들이 빠져나왔던 술집 안쪽의 문이었다. 닫힌 문을 열고 내려가자 평범해 보였던 술집 풍경 대신 잘 꾸며진 복도와 책상이 나타났다.

그곳에 참가자들을 위한 계약서와 서약서가 있었다.

“싸워서 돈을 벌고 싶다면 우선 이걸 작성해야 해요. 일단 그 전에 진짜로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증거부터 보여 주시고.”

“그러면 내가 먼저……”

“아뇨,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자연스레 나서려던 호구 1을 제치고 호구 2가 손을 올렸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당신보다 그냥 내가 먼저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위험할 수 있으니 당연히 제가 먼저 하는 쪽이 맞습니다.”

서로 제가 먼저 하겠느니, 내가 먼저 하겠느니 나서는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쩐지 몹시 짜증이 났다. 같은 사내놈들끼리 투닥대는 중인데 대체 왜 이리 눈꼴신 걸까. 관리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짜증을 눌렀다.

‘누가 먼저 하든 상관없으니까 아무튼 빨리 하라고! 참가하고 싶어서 온 것 아니었어, 이 자식들?’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결론은 곧 났다. 호구 2가 칼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듯 싸늘한 얼굴로 이렇게 위협했기 때문이었다.

“저 혼자 참가해도 충분한 걸 여기까지 양보한 것만 해도 많이 참았다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킷.”

그러자 눈을 살짝 크게 떴던 호구 1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실대며 한발 물러났다.

“정말이지…… 고집 세기는. 당신은 내가 무엇에 약한지 너무 잘 알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히죽대는 얼굴을 보아하니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보다 작은 놈한테 위협을 당한 게 그리 기분이 좋나? 미친놈인가?’

처음엔 그냥 평범한 일행인 줄 알았는데, 두 놈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남자끼리만 아니었다면 관리인은 아마 그들이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인 사이쯤 된 줄 알았으리라.

‘……아니. 잠깐. 저 두 놈이 진짜 각성자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관리인은 얼마 전 바람을 타고 남부까지 흘러들어 온 소문들을 떠올렸다.

‘마병단장 펠레타 공작이 서부에서 공을 크게 세운 단원을 정부로 삼아 파티에서 함께 춤을 추었는데 그게 남자더라고 했지… 2성이 달라서 아무도 항의하지 못하고 황제조차 묵인했다던 그…….’

그 소문의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각성자 격투장을 운영하는 누키조 패거리들조차 잘 몰랐던 각성자의 2성을 갑자기 모든 이들이 잊지 못하게 된 것이다.

관리인은 갑자기 호구 1과 2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 두 놈이 정말 그런 관계라서 여기까지 같이 온 거라면 저 이상하고 근지러운 행각들도 말이 되는 것 아냐?’

“…….”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호구 2가 여태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눈을 가리던 후줄근한 천이 사라지자 새카만 머리칼과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예상보다 더 단정한 생김새에 관리인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판단했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놈들이 오늘 당장 묵을 여비조차 없다니, 얼마나 막 살았길래.’

“서명은 어디에 하면 됩니까.”

“아, 그 전에 일단. 진짜 각성자라면 증거를 보여 줘야 해요.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우리 쪽에서도 보고 판단해야 하니까.”

각성자 격투장은 이길 때마다 금화 1개도 아니고 5개씩이 지급된다. 물론 그 돈을 다 가지고 멀쩡히 빠져나간 놈을 본 적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큰 돈이 걸려 있는 만큼 확인은 필수였다.

‘가끔 그 돈을 노리고 멍청한 놈들이 각성자인 척하며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단 말이지.’

호구 2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아무런 준비 동작조차 없이 관리인의 얼굴 바로 앞에 거대한 불꽃이 훅 일어났다.

“우악!”

관리인이 깜짝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자 불은 곧 사라졌다.

“이, 이게 뭐 하는 거요?! 하마터면 내 얼굴이 탈 뻔했어!”

“실례. 조절이 좀 안 되다 보니.”

호구 2가 무표정한 얼굴로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사과를 했다. 관리인은 씩씩거리며 일어나 항의하려다 간신히 분노를 내리눌렀다. 그는 방금보다 한층 경계심 어린 눈으로 호구 1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안심해도 좋아. 나는 저이보단 얌전한 능력이니까.”

그렇게 말한 뒤 호구 1이 책상 위에서 깃펜을 집어 그대로 허공을 향해 던졌다. 다트처럼 벽을 향해 날아가던 깃펜이 잠시 후, 마법처럼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파르르 떨리던 깃펜이 스륵 한바퀴 돌아 반대로 향하더니, 그대로 던졌던 이의 손으로 되돌아가는 광경을 보며 관리인은 숨을 삼켰다.

‘물건을 움직이는 능력인가? 조절이 정말 대단한데.’

한 사람은 거대한 불꽃을 순식간에 불러냈다 끌 수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물건을 움직인다. 여태 왔던 각성자들 중에 이 정도 급 능력을 지닌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도박장을 운영하는 패거리의 본분으로 되돌아가 흥분을 느꼈다.

“훌륭하군. 바로 서명하죠.”

“글을 못 쓰는데 어떻게 쓰면 되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름은 내가 대신 써 줄 테고, 당신들은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찍으면 되니까. 자, 그래서…… 이름이?”

“아킷. 그리고 나와 함께 온 이는…… 유드레인.”

“…….”

호구 1이 유드레인이라는 이름을 말하며 호구 2를 향해 씩 웃었다. 상대는 별 반응이 없는데도 혼자 웃어 대는 꼴을 보아하니, 역시 2성이 다르답시고 같은 사내놈에게 눈이 돌아간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서약을 마친 뒤 관리인은 그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서류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한창 내일의 경기를 준비 중인 2층 안쪽에는 그들의 대장인 누키조가 와 있었다.

“이봐, 대장! 쓸 만한 물건들이 들어왔어.”

“흠? 뭔데.”

관리인이 건넨 종이를 보고 설명을 들은 누키조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 정도 능력들은 흔치 않지. 내일 당장 내보내도 되겠는걸. 묵을 곳이 없다고 했다니 이쪽에서 묵게 해.”

“그래도 될까? 여기서 재우고 있는 놈들이 지금 좀 상태가 안 좋은데…….”

“멍청한 놈. 도망이라도 가면 오히려 곤란해지는 건 우리야. 두 놈이 정말로 2성이 다른 게 맞다면 한 놈은 무조건 오메가일 것 아냐?”

누키조의 눈이 비열하게 빛났다.

“그걸 잘 홍보해서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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