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654화 (654/805)

654화

“혹시, 요즘 이 근처에 좀 더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 곳은 없나?”

“재미있는 게임? 주사위 게임, 뭐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아니. 내가 바라는 재미는…… 이것.”

키시아르가 카드 뒷면에 그려진 금화 무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돈?”

“목적이 있어 샬로인까지 온 건 좋았는데, 숙박비가 부족하단 걸 깨달았거든. 나 혼자라면 길에서 자도 상관없지만 지금은 일행이 있단 말이지.”

키시아르가 능숙하게 카드를 섞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재미있는 게임을 찾고 싶어. 모자란 여비를 채울 만한 것으로.”

그건 즉 돈을 걸고 하는 내기 도박성 게임을 찾고 싶다는 뜻이었다. 유더는 여태 가볍게 카드를 돌리던 이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조금 변화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목적이 있어서 샬로인에 왔다면…… 당신들, 혹시 ‘그거’였어?”

키시아르의 바로 곁에 앉아 있던 이가 눈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마병단 남부 지부 건물 꼭대기가 얼핏 보이는 거리 쪽이었다.

“맞아. 우리 같은 이들이 요즘 여기서 많이 보이지?”

“으음. 그렇긴 한데.”

키시아르와 유더가 마병단에 지원을 하러 온 각성자들이라고 생각할 만한 대화가 오갔음에도 카드 게임을 하던 이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두려워하지도, 꺼리지도 않고서 서로 슬그머니 시선을 마주하는 모습에서 유더는 키시아르가 정보를 캘 상대를 제대로 짚었음을 확신했다.

“당신 게임 실력은 그냥 평범한 수준 같은데, 여비를 좀 벌겠답시고 너무 위험한 길을 알아보는 것 아냐?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은 이런 장난하고는 완전히 달라.”

“오, 그렇게 보였나?”

키시아르가 능청맞게 대꾸했다.

“다들 취해서 잊고 있었나 본데, 내가 이 판에 끼어들어 진행한 게임이 총 네 판이야. 이기고, 지고, 이기고, 지고, 그리고 지금은 진행 중이지. 혹시 내가 몇 점 차이로 이기고 졌는지 기억하는 사람?”

“이길 때는 2등과 5점 차이로 이겼고, 질 때는 1등과 5점 차이로 졌죠.”

여태 묵묵히 게임만 참여했던 유더가 대답하자 카드 게임을 하던 사내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손가락을 꼽으며 기억을 돌이켜 보던 이들이 잠시 후 일제히 조용해졌다.

“……진짜잖아.”

그냥 단순히 이기고 지는 걸 조절하는 정도는 게임에 능숙한 이라면 어느 정도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점수 차로 번갈아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위화감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는 건 그야말로 소름이 끼칠 만큼 엄청난 일이었다.

“그…… 그건가? 능력? 능력을 쓴 거야?”

“아니. 내 힘은 이것과는 상관없어.”

“그런데 어떻게…….”

“그냥 원래 이런 걸 잘해. 감이 좋아서 그런지.”

가볍게 대답한 키시아르가 쥐고 있던 카드들을 흔들었다.

“만약 이번에도 내가 5점 차이로 이긴다면, 끝나고 나서 괜찮은 게임을 할 만한 곳들을 좀 알려 주겠어?”

“……좋아. 어디 한번 해 봐.”

가볍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리, 한결 무게감이 늘어나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게임이 재차 시작되었다. 사내들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눈을 부릅뜬 채 키시아르가 혹여라도 작은 속임수를 쓰지는 않는지 감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깃발은 키시아르 라 오르에게 돌아갔다.

“정확히 5점 차군. 끝.”

“…….”

키시아르가 마지막으로 내려놓은 카드를 보며 모두 침묵했다.

“분명 속임수는 없었는데…….”

“감이 좋을 뿐이래도.”

키시아르가 너스레를 떠는 동안 사내들은 키시아르의 카드를 뒤집어 가며 코를 박고 살펴보았다. 그들이 확인을 하는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등을 깊이 기댄 키시아르가 유더를 돌아보며 입을 벌렸다.

“아. 너무 열심히 게임을 했는지 목이 마르군. 누군가 내게 차가운 맥주를 먹여 주는 상을 내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냥 평범하게 달라고 하시죠.”

말은 그렇게 했으나 유더는 가볍게 그의 맥주잔을 들어 입가에 대 주었다. 살짝 힘을 사용하여 잔 안에 든 맥주를 시원하게 만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쾌하게 몇 모금을 꿀꺽꿀꺽 마신 사내가 눈을 휘며 감사를 표했다.

“그냥 받아먹으면 재미가 없잖나. 상으로 받는 게 뭐든지 더 좋은 법이야. 70년산 라이파 주를 준다고 해도 지금의 이 한 모금만큼 달콤하고 시원하진 않을 것 같은걸.”

“…….”

좀 지나친 비유 같지만, 아무튼 만족해하는 듯하니 다행이었다.

그사이 드디어 카드에 아무런 장치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사내들이 고개를 들었다.

“허…….”

“이제 믿을 수 있겠어?”

“진짜로 무슨 짓을 한 건진 모르겠지만, 그래…… 잘 감추는 것도 실력이지. 이게 정말이라면 당신은 어딜 가도 밥을 굶진 않을 거야.”

“실제로 그렇긴 했지.”

“그렇게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 싶다면 이런 곳보다는 간판 밑에 빨간 주사위가 그려진 가게들을 찾아가. 요즘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잠깐 돈을 벌고 싶은 이들이 많이 간다고 들었어.”

“빨간 주사위?”

“샬로인에서 이걸로 가장 유명한 누키조 놈이 관리하는 곳이란 뜻이야.”

‘이걸로’라고 말할 때, 그 말을 한 이는 주먹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안 좋은 일은 다 하는 지하 집단을 통틀어 표현할 때 쓰는 표시였다.

“흠. 거기서 무슨 게임을 하는지가 제일 궁금한데 그건 안 알려 주나?”

“우리도 그것까진 잘 몰라. 무슨 내기 게임이 요즘 인기가 있다고 듣긴 했지만.”

“내기라.”

“찾아가는 게 어렵진 않을 거야. 그 녀석들은 항상 이 주변을 돌고 있거든. 어쩌면 지금 이 게임도 어디선가 지켜보고 당신들을 찾아갈지도 모르지. 얼마 전에도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 근처에서 그쪽 녀석들과 같이 게임을 하다가 따라가는 걸 봤으니까.”

그렇게 말한 뒤 사내들은 게임 흥이 다 떨어졌다며 카드를 도로 넣고 떠나 버렸다. 유더는 자리에 남겨진 텅 빈 잔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누키조라는 이름.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떤 자지?”

“제 기억에 의하면…… 이전 게임에서는 남부 최대의 격투장을 운영하던 소유자였습니다.”

당시 남부엔 수많은 격투장이 있었지만 누키조 격투장은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온갖 범법 행위가 태연하게 일어나는 그곳에서 귀족들은 마약이 든 술을 마시며 각성자와 몬스터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돈을 걸었다. 눈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여러 신기한 힘을 사용 가능한 각성자는 최고의 내기 말이나 다름없었다.

귀족들이 내기를 거는 곳보다 더 아래층에서는 그보다 신분이 낮은 이들을 대상으로 여흥 삼아 비각성자가 각성자와 싸우는 격투 내기도 자주 벌어졌는데, 그곳에서 싸우는 이들은 대개 빚을 크게 진 상태라 목숨을 걸고 임해야만 했다.

지면 약을 먹인 다음 사지를 잘라 짐승에게 먹인 뒤 범해지게 만들고, 그걸 보며 술맛이 난다고 웃던 이들이 존재하던 곳.

그 끔찍한 지옥을 만들었던 운영자.

지금 시점에서 그 격투장이 이전 생처럼 크게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존재하고 있긴 하다는 걸 서부에서 보았던 타인 공작가 측의 인신매매 시도와 에르시를 통해 알 수 있었으니, 여기에 오면 분명 꼬리를 잡을 수 있을 터라 믿었다.

‘그때 타인 공작과 빌름 남작 놈의 인신매매 시도를 막아 내지 못했더라면 아마 그자들이 여기서 마병단에 지원하러 온 이들에게 직접 접촉을 하며 사람을 모으고 있진 않았겠지.’

내기 격투에는 언제나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그 피를 서부에서 수혈받지 못했으니 아마 지금쯤 상당히 마음이 급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짐작은 아무래도 틀리지 않은 듯했다.

“잘되었군. 빨간 주사위가 그려진 곳만 찾으면 될 테니.”

“네. 단장님께서 적절한 이들을 잘 찾아 주신 덕입니다.”

“아직 저녁을 제대로 먹을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앉아서 카드 게임이나 돌리고 있는 이들이면 뻔하지. 말은 아닌 척했지만 그자들도 누키조 패거리 소속이거나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을 거야. 그런데…….”

말을 잘 이어 나가던 키시아르가 별안간 뜸을 들이며 입을 다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유더는 빠르게 주변을 훑고 언제든 힘을 발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런 곳에서 그런 호칭으로 부르면 누군가 들을 수도 있지 않겠나? 앞으로 갈 곳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건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지?”

“…….”

키시아르가 하고자 했던 말이 제 예상과 전혀 달랐다는 걸 깨달은 뒤 유더는 조금 허탈하게 힘을 풀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기는 하군요. 호칭을 부르지 않는 쪽으로 할까요. 아니면 제가 주커만 경처럼 호위 기사인 척을 하고……”

“아니. 주군이라는 호칭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아.”

키시아르가 고개를 저으며 턱을 괴었다.

“다른 것도 있지 않겠나?”

“……다른 것, 말씀입니까.”

“그래. 세상엔 다양한 호칭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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